엔쿠라스 529화-응보(5)
"협박 하시는 겁니까?"
"단순한 부탁이다. 사리 사욕으로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야. 벤하르트. 너는 이 사실을 레니아에게 말하지 않게 하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레니아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그게 무슨 소리지?"
"레니아의 입장에서 보면 네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나는 개인적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협박이라기 보다는 레니아를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
"궤변이군요. 그렇다면 이쪽이 검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레니아를 위해서 말해야 된다는 것 아닙니까?"
"굳이 따지고 들자면 검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벤하르트 네 사정을 봐주지 않는것이고, 검을 만들어 준다면, 형편을 전부 봐 가면서 행동하겠다는 이야기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제가 검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을 더 사라지게 만든 다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하지만, 이제 너는 곧 내려가게 될테지. 그렇다면 이런 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언제 검을 얻을수 있을까?"
"한가지 말씀드리죠. 제 검은 언제나 바른 검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이런 기분으로는 제대로 된 검을 만들 수 없을 것 같군요. 차라리 다저난님에게 부탁하시는게 더 나을겁니다."
"다저난이라면 라스펠의 대장장이를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의 실력은 이미 알고 있다. 대장장이로써는 일류지만, 네 검에는 비할수 없다는 것도,"
"여왕님 당신은 라스펠에 대해 전부를 알고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인간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단 하루의 시간만으로도 난장이가 거인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죠. 아마 그 분은 이미 여왕님이 생각하시는 실력은 아득하게 넘었을 겁니다."
여왕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사실을 술술 말한 다는 것은 다저난의 실력이 늘었다고 해도 아직 벤하르트 너의 실력에 미치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게 아닌가?"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미 제가 검을 만든다고 해도 다저난님의 검보다 못한 검 밖에는 만들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인가?"
"결렬은 무슨."
붉은 그림자가 벤하르트의 뒤에서 튀어 나와 여왕과 마주했다. 여왕의 옆에서 대기 하고 있었던 그리츠와 자고왕은 순간 움찔 거리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리스는 주변을 둘러 보면서 헛웃음 지었다.
"웃기는 노릇이군. 레니아가 없는 틈을 타서 벤을 협박한다는 그놈의 작전은 말야. 레니아가 없기 때문에 이미 성립 될수가 없는 거야."
"....."
"내 정체에 대해서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라스펠의 주인아."
물론 정보를 다루는 라스펠의 여왕은 그녀의 정체가 원의 흡혈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슨 볼일인...가."
"도도한척.. 아니 정말 도도하게 여왕이라고 해도 내가 보기에는 그저 헷병아리에 불과해. 무슨 볼일이냐고? 네가 말한 그 얼토당토한 협박의 결과를 알려줄까 해서 말야."
"....."
주위의 사람들은 벤하르트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숨하나 쉬기 어려울 정도로 공기는 텁텁하게 막혀 왔다. 여왕일동은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죽일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수 있었다.
"그래 그 사실을 레니아에게 알리면, 너희들에게 얻어지는건 뭐지?"
얻어지는게 있을리 없었다. 레니아의 행복? 그런건 그저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게 정말 행복으로 느낄지는 알수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그저 벤하르트를 설득하기 위해 협박하기 위해 꺼내든 말이었을 뿐. 그 사실을 레니아에게 말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돌아오는 이득은 전혀 없었다.
"없..."
눈치를 보던 자고왕이 대답하려고 하자 리스는 그의 말을 단박에 끊어 말했다.
"얻어지는건 있어. 뭘까? 맞춰봐."
여왕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다리가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리스는 그런 그녀를 보며 너무도 아름답지만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얻어지는건 라스펠의 멸망이라는 거다."
"뭐라!"
여왕은 그리츠를 막았다. 리스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건방지게 나서지 마라. 인간 꼬마야. 혹시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약점을 쥐고 늘어질 대상을 '벤하르트'만을 잡은건 아니겠지? 난 인형이 아니야. 인형에 숨어 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이라도 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얌전히 붙어 있는 것은 이 동행을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너희가 깬다면, 나는 더 이상 얌전히 있을 필요가 없지."
리스는 여왕을 노려 보았다. 리스가 노려본 여왕주변의 온도가 몇도정도 내려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저 기분탓만은 아니었다.
"라스펠을 위해? 아주 좋아. 공평하다고 생각하게 하면서도 라스펠을 위해서라면 다소의 억지도 부릴수 있게 하는 그 타산적인 모습은 내 예상을 벗어나서 참 좋지만, 대상을 잘못 잡은 것 아닌가? 벤에게서 작은 힘을 구하기 위해서 나라를 팔아야 겠다면 뭐 말리지는 않겠어. 나는 지금 이 동행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지. 의식을 전생하는 여왕 너보다 더 아득한 시간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기분으로 즐겁게 이 시간을 즐기고 있어. 그런데 그걸 네가 부수어 주겠다라.. 아주 좋네! 네 그 욕심에 의해서 내 행복을 부수겠다니 간이 아주 커. 하고 싶다면 해도 좋아. 나도 손해 보는건 이 동행이 사라진다는 것 외에는 없으니까, 하지만 내 행복을 앗아간 대가는 받아가야겠지. 라스펠을 지키기 위해 라는 명분으로 시작한 일이니까, 내 행복에 초를 친 대가로써 라스펠을 멸망시켜줄게. 라스펠 전역을 천천히 붕괴시키면서 기계 보다 더한 절망이 무엇인지 보여줄게. 점점 강해지기에 아쉽게 지키지 못했다? 절대 넘어설수 없는 힘에 절망하면서 멸망되는걸 보여줄게. 그래도 좋다면 레니아를 위해서? 하하 말해도 좋아. 너희들의 희생을 각오 하고 할수 있다면 나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
방안은 붉은 기운으로 뒤덮어 졌다. 리스가 서 있는 바닥으로 부터 시작해 온 방안을 가득 메우는 붉은 혈액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고,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스멀 스멀 올라오는 붉은 혈액은 수백 수천가닥의 창이 되어 전 방위에서 여왕을 노리고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날카로운 피에 상처를 입을 것만 같은 창의 철망이 여왕은 물론이고 호위마저도 구속했다. 수백 수천개의 창이 마치 밧줄처럼 엮여서 그들을 구속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전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대드는 것 마저도 할수 없었다. 기계병과 싸울때는 '명예'롭게라도 죽을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조금이라도 나섰다가는 개죽음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알겠,.. 습니다."
"현명하군. 고마워. 내 손에 피를 묻히게 하지 않게 해줘서, 난 이제 살인 같은건 별로 하고 싶지 않거든."
방안을 그득히 메워서 사람을 취하게 만들 것만 같은 혈향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없어졌다. 마치 방금전에 있었던 일이 꿈이었던 것처럼 방안은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그리츠는 다리가 풀려서 몸을 주춤 거리며 흔들었다.
혈액과 혈향이 사라지자 마자 언제부터인지 리스의 모습도 사라져 있었다. 여왕은 찬물이라도 한번 끼얹어 진듯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이렇게 되어 버려서 미안하군. 결국 득도 없이 미움만 사게 되어 버렸다."
여왕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래 네 검이 욕망을 불러 일으켰어."
그녀는 현명했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벤하르트의 검은 매력적이었다. 그 검이 있다면 라스펠을 지키는 데에 그리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 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벤하르트를 무시했지만, 그간의 일을 통해 벤하르트가 보여준 그 무용으로 인식이 바뀌었고, 그의 검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령검을 박아 라스펠을 구하는 순간 그녀는 벤하르트의 검을 받아 인정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벤하르트의 무른 성격이라면 반드시 자신들에게도 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스스로의 욕망과 희망에 따라 확신으로 바뀌었고, 결과는 그녀에게 굉장한 배신감을 가져다 주었다.
욕구로써 검을 얻지 못한게 분했고, 검으로써 나라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야심이 깨어진게 분했고, 벤하르트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그 사실에 분했다.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런 모양이었다. 여왕으로써의 존엄도 신비도 다 벗겨 버린채 추잡한 모습만 남은 욕망에 허덕이는 사람이 되어 버려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독에 빠진다는 것이었나? 여왕님 저는 그저 한낱 대장장이일 뿐입니다. 검으로 밖에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가짜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같은 사람의 검을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하락 시키면 안됩니다."
'아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이 가짜라고 말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벤하르트가 진짜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더욱 아쉬움이 짙게 남았다.
"검을 만들어 줄수는 없지만, 제가 만든 검으로 라스펠을 지켜주십시오. 이후에 정말 라스펠의 기회가 닿게 된다면, 그때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끝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군. 무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쪽에서는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는게 제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누군가 말하더군요."
"그 장점에 라스펠이 구원 받았다고 생각하겠다."
마지막에 보인 여왕의 모습은 다시 이전의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 작가의말
일단 추천을 해준 꼬메네요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참 오랜만에 추천을 받아 보네요.
추천은 언제 받아 봐도 정말 즐겁습니다.
하도 길게 연재를 하다 보니 이제 조금 해탈 하고 있지만, 사실 추천 댓글 이 두개가 많이 쌓일때면 혼자 실실대곤 합니다. 이 맛에 소설을 쓰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댓글중에 한분이 정확하게 뒷 이야기를 짐작하셔서 흠칫 했습니다. 간질 간질 하니 뭔가를 가지고 싶은데 가질수 없는 그 기분, 확 질러 버리고 싶은데 지를수 없는 그 기분... 그런데 그게 터무니 없는 보물 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중에 다시 글로 쓸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여하튼 꼬메님!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정말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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