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52화(608화)-마굴(12)
"음 아무래도 강제로 여는 수 밖에는 없나."
벤하르트는 검을 들어 부드럽게 검을 휘둘렀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검의 궤적은 간단하게 문을 잘라 버렸다.
"아까부터 느낀건데, 정말 이해가 안갈정도로 대단한 검이구만, 그거,"
"과찬이십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 네 검은 말이다. 딱히 검사가 아닌 사람이 보기에도 너무나도 가지고 싶게 만드는 욕망을 불러 일으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검이란 말이다. 과찬이라니, 한참은 모자르지."
"네.."
"내 도적으로써 밑바닥 시궁창 생활을 해봐서 조언하는건데, 형식적인 겸손은 말야. 어떤 의미에서는 폐가 되거나 혹은 이후에 꼬투리를 잡힐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둬."
"잘 알겠습니다."
그들은 운송기 안에 들어갔다.
"읏.."
그 안에 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체.. 백골이 되어 있는 인간들이었다.
"으히익.."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백골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시체들을 보고 벤하르트는 천천히 다가갔다.
"어이 뭘 하는거야?"
"조금 조사를 해볼까 해서,,"
"조 조사따위 안해도 상관 없잖아. 얼른 나가자고, 조금이라도 위험한게 있다면 멀리하는게 상책이다."
구도우는 당황하면서 뒷걸음질 치다가 문득 뒤를 돌아 보았다.
"으읏.."
벤하르트의 검이 없는 밖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뿐이어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등골이 오싹해질정도로 공포가 몰려왔다. 앞에는 백골들이 뒤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때문에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제 젠장."
이러니 저러니 해도 벤하르트가 있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여긴 구도우는 어쩔수 없이 안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뭘 조사한다는 건데?"
"왜 이들은 여기에 존재하는 것일까요?"
"뭐 그야 밖에는 망자들이 넘쳐나니 이곳에 와서 죽은것이겠지."
"그럴까요."
벤하르트는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래?"
"아뇨.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조금 마음에 걸리는게 있습니다. 이들은 외상이라고는 없고 또 나가고자 한다면 이 안에서는 나갈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짓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죽었다는 것인데,"
"말하고자 하는게 뭔데 그러는거냐? 너무 뜸 들이지 마라.. 이런 곳에 내가 있다는 것 자체로도 무서워 죽을 것 같으니까,"
"네. 여기 있는 시체들은 살고자 해서 이곳에 온게 아닌건 아닐지."
"그게 무슨 뜻이지?"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앞을 더 가겠다는거야?'
"제정신이냐 네녀석?"
"그럼 여기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구도우는 울상을 지으며 눈치를 살피며 벤하르트를 따라갔다. 다음 칸에 이르자 구도우는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으아아 으악.."
벤하르트도 순간 눈을 돌릴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한 칸 자체가 피투성이로 얼룩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백골들이 서로서로 뒤엉켜 있었다.
"이걸로 나름대로 확실해 졌군요."
"뭐가 말야.."
"여기의 일이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벤하르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백골에 접근했다. 그리고 그 해골의 갖가지에 난 상처들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일단 나가도록 하죠."
"그 그래."
나가고 나서도 구도우는 얼이 빠진 듯한 얼굴로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 안 게 뭔지 말해줘."
"아까전에 이것이 운송기라고 추측했었더랬죠. 그 말대로 이것은 사람들이 타고 다녔던 이동수단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그리고?"
"아무래도 밖의 망자들처럼 이 안에도 망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망자만 있다고 해도 도망칠 수단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고, 지금까지 싸워보았던 망자들은 전부 얼마간의 충격으로는 막을수 없었으니, 결론적으로 하나가 연쇄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감염시켰겠죠."
"그거야 참상을 보면 간단하게 추리할 수 있잖냐. 별 것도 아니구만,"
"그 다음이 있습니다. 아까전에도 그렇고 망자들은 왜 '이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구도우는 순간 대답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들은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어둠이 될 경우에는 전부 저렇게 뼈만 남는 것은 아닐지.."
"그렇다는건, 아니 이상하잖냐. 그렇다면 저렇게 인간들이 전멸하기 전에 망자들이 당하지 않았을까?"
벤하르트는 주변을 둘러 보았다.
"이곳의 문명으로 이런 어둠속에서 저런 이동수단을 사용했을리 없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이곳 조차도 '빛'이 있었던 것이겠죠."
"그 그렇군. 하긴 일리가 있군. 으힛!"
"왜 그러십니까?"
"아니 방금 뭔가 오싹한게 느껴진 것 같아서,,"
"놀래키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군요."
"오호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네녀석도 인간이라는 것이군. 강철심장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그런 모습도 있었구만 그래?"
"어쨋든 지레 겁을 먹게 되면 두려워서라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을테니까, 이제부터는 조금 밝은 생각을 하도록 하셨으면 좋겠군요."
"밝은이라고 해도 말이다. 눈앞에 저 참상이 아른거리는걸 어쩌란 말이냐. 으.. 아앗. 젠장."
벤하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음?"
벤하르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인가를 바라보았다.
"어이? 벤하르트? 뭘 그렇게 보고 있는거냐? 어이?"
"큿."
구도우의 말을 무시한채 벤하르트는 검을 바로 잡고 그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이! 으아으아.. 뭐야 이게 젠장.. 기다려! 임마."
행여나 자신을 떼버리고 가버릴까 두려워 구도우는 말 그대로 정신없이 벤하르트를 뒤쫓았다.
"헉.. 헉.. 뭐하는거냐?"
"방금 못보셨습니까?"
"뭘?"
"여기에 어린애가.. 하나.."
"임마 농담 하지 마. 제발 부탁이다. 거짓말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련?"
당황하면서 구도우가 말했다.
"아니 정말 못보셨습니까?"
"정말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봤다니까!?"
'뭐였지? 그건?'
벤하르트가 보았던 것은 소년의 형상. 그것도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건방진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저기 벤하르트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주지 않겠나?"
"뭡니까?"
"어차피 외길이고 하니 옆에 서서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오해하지 말게나. 크흠 크흠.."
괜한 헛기침을 하며 구도우는 벤하르트의 옆에 섰다.
"도적이시지만 도박은 못할 타입이시겠군요."
"어쨋든 거의 다 도착한것 같군."
"그렇습니까?"
"그렇습니까?는 무슨 얼마전에도 확인 했잖나."
지하의 길은 지상과도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틈에 그들은 자신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지상으로 나왔을때 몇몇의 망자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소수의 망자들로는 벤하르트에게는 작게 스치는 것 조차 이룰 수 없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다음 장소를 구분 짓는 곳에 이르러 벤하르트와 구도우는 철길에서 위로 올라와 조심스럽게 출구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그 그럴까? 하지만,,"
뒤를 보면 기다리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시게 하는 깊은 어둠이 있었다.
"나오는 것 보다는 나을겁니다. 조금 참으세요."
"빠 빨리오라고,"
벤하르트는 조심스럽게 출구쪽으로 한발자국씩 내딛었다. 한발 한발 소리라고는 전혀 내지 않는 무음보행으로 그는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바글거리는 망자들중 아직 누구도 벤하르트를 보지 않고 있었다.
'청각에 의지 하는건가?'
잠시동안 난 틈을 이용해 그는 주변을 둘러 '중심'의 건물이 가깝다는 것을 확인했다.
"캬오오오 크아아아!"
벤하르트를 확인한 망자중 하나가 달려들자 순간 일제히 다른 망자들도 호응해 벤하르트에게 달려들었다.
'시각도 사용하는군.'
그는 검을 들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망자 넷을 단번에 밀치는 듯 하다가 한 망자를 자신이 올라온 출구 쪽으로 밀쳐 넣고 자신또한 그 망자와 함께 들어왔다. 망자들은 그를 따라올 생각도 하지 못하고 머뭇머뭇 거리다가 곧 다시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쿠어어어 으아아 구아아.."
"어이 벤하르트 뭐하는 거냐?"
"확인입니다."
기이한 괴성을 내던 망자는 그대로 살이 타오르더니 결국에는 뼈만 앙상한 백골이 남아 버렸다.
"제가 추측한게 맞았던 모양이군요."
"그렇군. 그래 찾아온건 제대로 찾아온게 맞나?"
"그런것 같습니다. 이 출구를 통해 나갔을 경우 약 1000기아 정도, 확실히 거리는 있습니다만, 노려볼만은 할 겁니다."
"그래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일단은 은거지에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응? 지금 노리지 않고?"
"사실 노려도 상관 없긴 합니다만,"
벤하르트는 빤히 구도우를 쳐다보았다.
"어..? 아.."
"혼자 돌아갈수 있겠지요?"
"자 잠깐, 으.. 미안하네."
벤하르트는 주먹을 쥐어 보이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이대로는 아무래도 무리겠지.'
마계에 들어온 이후로 연전. 그중에서도 형태를 이루는 백검기(白劍氣)를 수도 없이 사용한데다 아직 상처도 제대로 나지 않은 몸이었기에 사실상 벤하르트의 몸은 만신창이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벤하르트라고 해도 저 망자들의 벽을 이정도의 힘으로 뚫는다는 것은 버겁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약한 모습을 구도우에게 보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기본. 설사 100% 아군이라고 해도 그는 자신의 처한 상태를 속일 터였다. 그 쪽이 여러모로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유용하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이 유일하게 그게 불가능한 이가 있다면 리스와 레니아 뿐이리라.
"어쨋든 구도우씨를 돌려 보내기는 해야 겠으니, 일단은 돌아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렇고 말고, 돌아갈때도 잘 부탁하네."
"예."
- 작가의말
이제 연참대전도 거의 다 끝나가네요.
연참대전 끝날때까지 이 챕터는 끝내고 싶었는데, 모자랄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군요.. OTL..
일단 힘은 내보겠습니다... ㅠㅠ..
대학생활을 하면서 하다보니 3천자 쓰는것도 꽤나 버겁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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