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27화-응보(3)
"일단 안내는 해주었으니 나는 이만 돌아가겠다."
벤하르트는 가볍게 감사를 표하고 트레이야를 찾았다. 그는 지나다니던 한 시중을 드는 여자아이와 마주쳤다.
"저기 붉은 머리를 한 나와 같이 온 여자를 혹시 본적이 있으신지."
여자아이는 벤하르트를 신기한듯이 눈을 껌벅이며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그분은 남자분과 함께 주변을 둘러 보신다고 나간 것 같던데요."
'그러고보니 주변을 둘러 본다고 했었나.'
"으음."
여자아이는 벤하르트를 위아래로 흝어 보고는 말했다.
"그런데 라스펠을 구해준 그 벤하르트님이 맞으신건가요?"
"아마 맞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왜?"
"아 아니에요."
벤하르트는 그녀의 태도를 보고 무슨 내용인지 대충은 짐작할수 있었다. 그는 기대한 것만큼 대단하게 보이지 않았고, 벤하르트 스스로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뭘 해야 하나."
레니아를 만나러 도서관에 가는 것은 머리가 아파서 싫었고, 트레이야와 제네스와의 산책에 끼어들정도로 그는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여자분을 좋아하시나봐요?"
'이 여자는 왜 이렇게 주책스러운 거지.'
시중을 드는 여자아이에 불과한데도 왠지 붙힘성있게 민폐를 끼치는 여자를 보고 벤하르트는 조금 기가 찼지만, 그녀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아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냥 의미 그대로 좋아한다고는 말할수 있겠지만,"
"에헤헤. 에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만두어 줬으면 좋겠군. 내가 트레이야를 찾은것은 선물을 주려고 하기 때문이야."
"선물!"
눈을 반짝이며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벤하르트는 작게 한숨을 쉬고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이상한 오해는 하지 말라고,"
그는 도망치듯 숙소를 빠져 나왔다.
'저렇게 오해를 할 정도라면 애초에 레니아와의 관계부터 의심할 것 같은데, 아니지 애초에 저 아이는 처음보는 것 같은데, 처음 배정이라도 받았던 건가? 내 얼굴도 처음 본 것 같았고,'
"그나저나 이제부터 뭘 해야 되나. 일단 나도 거리나 조금 둘러 볼까."
몇일만에 라스펠은 꽤나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도시처럼 활기를 되찾고 북적이는 사람들로 거리는 가득했다. 아직 남아있는 기계의 잔재를 도시 사람들은 힘을 모아 없애가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얼굴로 일을 하는 라스펠의 사람들을보는 그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이런 도시를 만들다니 여왕도 대단한 사람이군,'
그는 검을 휘둘러 백색의 끈을 만들어 위쪽으로 올라갔다. 도시의 높은 건물위에서 그는 도시가 한눈에 들어오는 공간을 찾았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의 모습은 지상과 별반 다른게 없는데도 특별함이 느껴졌다.
"....."
"뭘 그렇게 꿀꿀해 하고 있는거지?"
"리스구나."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닌데?"
"이렇게 혼자가 되면 나올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호라. 그럼 나는 네 생각대로 놀아난 거라 이건가?"
"그렇다기 보다 그냥 내가 너를 만나고 싶어서 이런 곳에 왔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는데,"
"그 그런거야?"
벤하르트는 의아해 하며 물었다.
"왜 당황해 하는건데?"
"그야 뭐.. 내 입장에서는 당황해 할만 하지. 네가 일도 없이 사적인 감정에 의해 나를 부른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테니까,"
"그러고 보니.."
반짝이는 황금빛 머리가 바람에 일렁였다.
"그나저나 정말 흡혈귀가 맞는거야?"
"왜?"
태양을 등지고 웃는 모습은 흡혈귀와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아니 뭐 됐다."
리스는 건물의 옥상위에서 몸을 움직이다가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벤. 너 뭔가 말할게 있어서 나를 부른 것 아니었어?"
"아니 딱히 그런 건 없어."
"거짓말 하기는. 하여간 너는 너무 마음을 쓴다니까,"
"거짓말은 아니라고, 말할게 있는것도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너를 부른건 아니었단 말이다. 애초에 부른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있기 적적해서 네가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 뿐이었다고,"
"그건 좋은데 그래? 여하튼 뭔가 말하고 싶은게 있는 것도 사실인 모양이지?"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다면 중요하지 않은데 말이다. 너는 내 기억을 자주 휘젓고 다니니까, 혹시 내가 어떤 언덕에서 이런 자세로 있었던 기억 같은 것도 있었어?"
"레니아와 이야기 했던 그 기억을 말하는건가? 딱 잘라 말하자면 없었지. 나는 네 기억을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그건 목적해서 얻어낼수 있는게 아니거든."
리스는 다소 진중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너와 나는 인형이라는 매개체로 연결 되어 있지. 본래 인간의 기억이라는건 굉장히 간섭하기 어려운데도 내가 네 안에 존재하며 네 기억을 어느정도 볼수 있는건 그것 때문이야. 하지만 그 기억이라 함은 네가 평상시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잊혀 지지 않는 기억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지. 레니아가 이전에 네 기억에 들어왔었을때도 말했겠지만, 기억이나 정신은 작은 우주와 같지. 나는 네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리를 한다면 어느정도 볼수 있지만,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것은 정말로 찾기 어려워. 네가 잊은 기억을 내가 얻는 것도 사실은 가능해. 그런 기억들은 부유상태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든. 운이 좋다면 발견도 가능하곤 했지만, 적어도 그 기억 만큼은 나도 본적이 없어."
"그렇구나."
"기본적인 인권은 지켜 줘야지."
"이미 나는 네게 있어서 지킬만한 인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그렇네."
"시인하지 마. 그나저나 리스. 너는 답답하거나 하지 않아?"
"답답? 어째서?"
"아니 여왕이나 에시오르를 보고 생각했거든. 그들은 누군가에게 갖혀서 그 안의 일원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을 저주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리스는 킥킥 거리더니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나는 말야 내가 원해서 이렇게 있는거야. 네가 위험에 처하더라도 구태어 내가 나가지 않는 것은 이 여행을 계속 하고 싶기 때문 아니겠어? 물론 인형의 안 네 안에서 존재하는건 나름대로는 답답하지만 말야. 나는 그녀석들과는 입장이 달라."
"뭐가 다른데?"
"그녀석들은 평생을 죽어서도 또 다른 사람이 전생하여 죽어서도 그 안에서밖에 존재할수 없는 인격체에 불과하지. 고로 영원히 갖혀있는 감옥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야. 만약에 내가 네 안에서만 존재할수 밖에 없다고 한다면, 나라고 해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나가고 싶을걸? 가령 너를 죽여야 한다면 뭐 죽일 의향도 있을 정도로,"
"그 그런거냐? 잊고 있었다. 네가 원의 흡혈귀라는 사실을.."
"농담인데 놀라기는.."
벤하르트는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방금 보인 그녀의 살기는 필요하다면 그런 행동도 가능함을 느끼게 해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정도로 대단히 답답할거다. 라고 말했던 거였는데, 역효과만 나버렸군.'
"그녀석들은 그 현실을 타파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극단적으로 운명을 피해가기를 원했던 거야. 하지만 나는 다르지 나는 언제든지 나가고 들어올수 있잖아? 원하는 만큼 즐기면 되니까 그녀석들과는 입장이 달라."
"하지만 보고만 있는다는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특히나 내 이야기 같은 건 그게 뭔 재미야?"
"생각보다는 재밌어. '못하는 것의 미덕'을 볼수 있거든. 아마 레니아는 이해할거야."
"못하는 것의 미덕은 도대체 뭐야?"
"이전에도 이야기 했지만, 나는 무엇이든지 행할수 있었지.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잠정적으로 면죄가 되어 버리고 무슨일이든 실패하는게 없었지. 대들면 죽이면 되고 얻고 싶은게 있으면 빼앗으면 돼. 정점에 군림해 있기에 모든 일이 재미 없어져 버리는거야."
"네 그 옛시절의 만행은 별로다만, 그러면 재미 있지 않아?"
리스는 싱겁게 헛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실패도 하는 인간은 그것을 부러워 하겠지. 벤 잘 기억해둬. 무엇이든지 용납되는건 결코 좋은게 아니야. 그게 좋다고 느껴지는건 자신이 '한정적이라고' 느낄때 뿐이라는 것을 명심해둬. 잘 생각해봐. 100번을 싸워서 100번을 이긴다. 기분이 어떨까?"
"좋지 않을까?"
"100번을 싸워서 100번을 쉽게 이긴다면?"
"좋잖아?"
"그럼 이건 어때? 100번을 행해서 새끼손가락 만으로도 100번을 전부 이기고 무엇이든지 통용된다면?"
벤하르트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그걸 즐기려면 말야. 네 기준으로 말하면 나는 미쳐 버려야 해. 온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인간을 짓뭉개고 망가뜨리는 것을 낙으로 살아가는 괴물이 되지 않으면, 내게 있어서 세상에 재미란 정말로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지. 그래서 네가 여행하는게 정말 재밌어. 나는 알수가 없거든, 그런 상황에 어떻게 하는지 무엇 하나 알수 없었어. 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너는 어떻게 하지?"
"글세."
"나는 죽여버렸어. 내게 있어서 정답은 그것 하나 뿐이었지. 아무 어려움 없이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체 본능대로 움직이고 면죄받는 그럼 시시한 삶을 사는거지. 내게 있어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은 '어떤 짓을 해도 나를 이길수 없는 장난감' 정도에 불과했지. 하지만 그건 나만의 큰 착각에 불과했던 거야. 알겠어? 그 하나하나의 사람들은 나보다 어떤 방면에서는 더 큰 행복을 얻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는걸."
"성취감의 문제일까."
"성취감?"
"사람은 도전을 하잖아. 나도 검을 만드는 것을 도전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곤 하지.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네가 말하는 것처럼 안되기에, '되도록' 하는 그리고 되었을때에 느끼는 그 성취감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리스는 놀란 눈을 하며 말했다.
"놀랐다. 네 말대로인것 같아."
"그럼 뭔가 네가 약한 것을 도전해보는건 어때?"
"나한테 약한 건 없어."
"아니 그렇게 이야기 하면 '무력'쪽의 느낌이 강하지만, 돌려 생각해보면 어때? 무언가를 만든다거나 지식을 대결한다거나 이런 것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음.. 그렇군. 그러니까 '검을 만드는 것'은 너를 당할수 없을테고 '생각을 대결한다는 건' 레니아를 이길수 없다는 거지?"
"어? 그렇게 되나? 하하."
"어쨋든 네가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답답하지는 않아. 이 시간을 깨기 싫을 정도로, 깨도 상관 없었다면 진작에 속 편하게 나와서 한바탕 난리를 쳐줬겠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것도 그렇군."
"그럼 벤. 네가 말한 그 검을 만든다는 것 부터 한번 도전해볼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줄래?"
"뭐? 으음."
벤하르트와 리스는 한동안 이름모를 옥상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왔다.
- 작가의말
소설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즐겁습니다만, 가끔 막힐때면 답답할때가 있곤 합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제 자식 같은 느낌이라 포기는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인기도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복덩이 같은 느낌?) 말이죠 ㅎㅎ 모두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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