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35화(589화)-
정확하게 이틀 뒤 호루탈 숲을 침공했었던 컨푸르의 병사들은 요새를 철거하고 나라로 돌아갔다. 컨푸르는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왕에게 베스의 말을 전했다. 왕은 컨푸르를 꾸짖었다. 왕은 컨푸르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상당한 양의 투자를 했는데, 이제와서 숲의 자원을 얻을 수도 없고 또 숲을 지켜야 한다는 혹마저도 딸려 왔으니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하지만 베스라 하면 환마왕 루그벨트의 아들이었다. 아무리 불합리적인 일이라고 해도 루그벨트의 제국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던 제 4지역의 왕은 마지못해 컨푸르의 말에 동의하고 그 전권을 컨푸르에게 맡겼다. 설사 잘못 되더라도 일에 대한 책임은 컨푸르에게 돌릴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졸지에 권력의 길도 그리고 양쪽으로 약점을 잡혀 버리기도 한 컨푸르의 상황은 최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이틀간 벤하르트와 캐뱃은 요새의 경과를 전부 보고 난 뒤에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베스와 그 일행들이 요새를 철거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도박을 할리는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건 없었다. 어디까지나 베스 케멘트 컨푸르에게만 적용된 사항이었기 때문에 그 셋이 죽게 되고 '제 삼자'가 다시 숲을 침공하는 일이 없다고 100% 장담 할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요새가 전부 철거된 모습을 보며 캐뱃은 기뻐하며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벤하르트! 우리 마을에 초대하겠다."
캐뱃은 활기차게 소리쳤지만, 벤하르트는 내키지 않는듯 밋밋하게 말했다.
"됐다. 그냥 내 볼일이나 끝낼 수 있게, 철편수가 어디 있는지나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캐뱃은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래서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아! 오지 않겠다면 따로 알려주지 않겠다."
"나야 상관 없어. 혼자 찾으러 가도, 네가 오해만 하지 않으면 이쪽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지."
설마 그렇게까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캐뱃은 난처해 하며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아니 그러지 마라. 혹시나 우리 부족이 너를 적으로 생각하고 공격하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아. 나는 확실하게 네가 우리의 은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벤하르트는 난처해하는 캐뱃을 보는게 싫었기 때문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다."
그들은 숲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숲은 마치 살아 숨쉬는 것만 같았다. 녹음이 만연한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 내에 들어온 듯한 기분에 벤하르트는 붕 뜬 기분이 되었다.
'그냥 뒀어도 쉽게 베스가 이곳을 점령하거나 하지는 못했겠군.'
그 숲의 짙은 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벤하르트조차도 압박감을 느낄만큼 대자연은 거대했다. 그 안이라면 가호를 받는 자들은 얼마나 뛰어나 지게 될지 가호를 받지 않는 자들은 얼마나 '저주'를 받게 될지 벤하르트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여기가 우리 쉬에프 종족이 사는 거처다." 숲의 이곳 저곳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지."
캐뱃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종족에 대해 자랑했다. 거대한 나무의 틈새에서 쉬에프 종족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곧 캐뱃의 얼굴을 본 쉬에프 종족들은 웅성 거렸고, 그들중 하나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곧 종족의 안에서 헐레 벌떡 한 쉬에프가 뛰어나왔다.
"캐뱃 도대체 요 며칠간 어디를 갔다 오는거.."
녹색 수염을 기른 남자는 벤하르트를 보자마자 적의를 드러내었다.
"캐뱃 얼른 이곳으로 오거라!"
"아버지 이녀석은 나쁜 녀석이 아니에요."
자신의 아버지가 벤하르트를 오해한다는 것을 바로 깨달은 캐뱃은 도리어 아버지와 벤하르트를 가로 막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저녀석은 그때 그 외부인 이잖냐!"
"네 맞아요. 분명히 이녀석은 외부인이지만, 그 침략자들과는 달라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세뇌라도 당한거냐? 얼른 이곳으로 오너라!"
"세뇌라뇨 제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을 당할리가 없잖아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지?'
캐뱃과 그녀의 아버지는 고대 요정의 고유 언어로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무엇인지 벤하르트는 알아 들을수가 없었다. 벤하르트가 마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마계의 공용 언어 뿐이었다.
'한눈에 봐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싫어서 벤하르트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차분하게 캐뱃이 그들을 설득하는 것을 기다렸다.
"아버지. 이 자가 그 침략자들을 몰아내 주었다니까요?"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것이냐? 우리 쉬에프 종족의 용맹한 전사들 조차도 그 요새는 뚫어낼 수 없었다. 그것을 저런 이방인 하나가 몰아 낼수 있을리가 없지!"
"아니에요 정 못믿겠으면 확인해보시면 되지 않겠어요?"
"흥. 무엇을 말이냐. 요새가 사라진 것을 믿으라는 것이냐? 설사 사라졌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를 속이는 행동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 할 수 있지? 만약에 네 말 그대로 요새를 몰아내 주었다고 해도 나는 저녀석을 믿을 수 없다. 은인이라고? 헛소리 하지 마라!"
"아 왜 이렇게 답답하신 거에요. 이 남자는 우리의 은인이나 다름 없는 사람이라고요."
"믿을 수 없다. 아무래도 세뇌된 모양이니 숲의 가호로 네 정신을 되돌려 놓아야 겠다."
벤하르트는 밋밋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벌써 오십도 넘는 쉬에프 부족들이 자신을 두르고 있었다.
"저자를 잡아라!"
"아버지! 그러면 안되요. 숲은 저자에 의해 구해졌다니까요!"
"시끄러워! 그것 조차도 너를 홀리기 위한 작전임에 틀림 없어! 이방인은 믿을 수 없다."
'설득에는 실패 했나. 하기사 그렇게 쉽게 일이 잘 풀릴리는 없겠지.'
벤하르트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가 한 일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임에 분명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쉬에프 종족 전원이 모여도 해낼 수 없었던 일을 단 하나의 인간이 해냈다는 것을 쉽게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설사 결과를 보더라도 그것에 쉽게 승복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어떤 '계략'에 의해 벤하르트와 침략자들이 짜고 요새를 철거했다는 쪽이 믿기에 형편 좋은 일일 것이다.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막연하게 '믿는다면' 벤하르트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한심하다고 느낄 것이다.
'딱 좋은 시기군.'
"캐뱃 됐어. 나는 간다."
"자 잠깐만! 기다려라!"
캐뱃은 당황하며 말했다.
"나를 위해서 더 노력 할 필요는 없어. 나는 아무래도 상관 없으니까, 너희들에게 멸시를 당해도 좋고 원수같은 취급을 받아도 별로 상관은 없어. 나 때문에 종족과 틀어지는 일이나 없도록 조심해라. '믿을 것'을 믿고 '의심할 것'을 의심하면 되는거야. 지금의 이 의심은 '필요한' 의심이다. 그 점에 나는 만족하고 나가도록 하지. 막아도 좋지만, 그게 소용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겠지?"
"으읏.."
"비켜라 캐뱃. 쳐라!"
캐뱃의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쉬에프 종족들은 줄줄이 벤하르트를 공격하기 위해 노리고 들어왔다. 벤하르트도 눈 뜨고 당할 수만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에 대항하려 했다.
'엇?'
가볍게 종이 한장 차이로 피하려 했던 벤하르트는 거리를 삽시간에 벌렸다. 그 '빠른' 움직임을 본 자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벤하르트가 다른 쪽에서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은 쉬에프 종족들은 흠칫하며 놀라고 쉬쉬했다.
"바보같은 캐뱃 녀석 우리 종족을 망치려고 저런 녀석을 데리고 온 것이냐.."
캐뱃의 아버지는 통곡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정도'의 움직임이라면 얼마나 대단한 자일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지금 있었던 쉬에프들중에 벤하르트의 움직임을 눈치 챈 자는 단 한사람도 없지 않았는가?
"아버지 아니에요."
그렇게 말했지만, 벤하르트의 기이한 움직임에 캐뱃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벤하르트가 혹여나 자신을 속이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그녀에게서도 일고 있었다.
"흐음."
벤하르트는 자신의 움직임에 주변을 둘러 보고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깨달았다.
'과연 그런 것인가..'
그는 기분이라도 살리듯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을 쫓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쉬에프 종족들은 공포스럽게 주변을 두를 뿐이었다. 벤하르트는 캐뱃의 아버지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 이!!"
그는 검을 뽑아서 벤하르트에게 휘둘렀지만, 간단하게 벤하르트에게 잡혀 검을 빼앗기고 말았다. 벤하르트는 빼앗은 검을 던지고 캐뱃의 아버지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벤하르트는 악수를 청하며 적의가 없음을 드러내려 했지만, 캐뱃의 아버지쪽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기분에 난폭하게 소리쳤다.
"뭐 뭐하는거냐!"
"흐음. 요정의 말은 뭐라고 하는지 알아 들을수가 없군. 어이 캐뱃!"
"우..왜?"
캐뱃도 살짝 경계하는 것을 보고 그는 웃음 짓고 말했다.
"아무래도 '숲의 가호'인가 뭔가를 받아 버린 것 같다. 숲에 '의지'가 있다면 아마 공정하게 풀 수 있지 않을까?"
캐뱃은 그 말에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그럼 그렇지 라고 말하며 기뻐했지만, 실제로 그녀도 전전긍긍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여러분 지금 혹시 숲의 가호를 받으시는 분 계신가요?"
"아니 아까부터 몸이 무거워. 평소보다도 더 힘든데,,"
캐뱃의 아버지 조차도 평소보다 무거운 자신의 몸에 두리번 거렸다.
"지금 저 자에게는 '숲의 가호'가 서려 있어요. 다들 집중해서 보시면 보일거에요. 숲의 가호를 받았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다들 아실거라고 믿어요. 저 자는 우리 쉬에프는 물론이고 숲마저도 구해주신 은인이라구요. 도리어 저 자에게 칼을 들이미는 요정들은 숲의 저주를 받고 있잖아요?"
"지 진짜다.."
하나 둘씩 벤하르트와 자신을 번갈아 보고 쉬에프 종족들은 상황을 깨닫기 시작했다.
"아버지."
캐뱃의 아버지는 얼굴을 내리 깔고 한껏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그래 그런 것 같구나. 숲의 의지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 네 말이 아무래도 맞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마음을 먹자 무거웠던 몸은 언제 그랬냐는듯 가벼워 졌다.
'설마 진짜였을 줄은,, 감사합니다 호루탈이여.'
그는 고개 숙여 숲을 향해 인사하고 모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딸 아이가 영웅을 불러 온 모양이다. 다들 오늘은 축제를 벌여야 할 것 같으니 준비 하도록 하자!"
몇몇의 쉬에프가 반대의 의견을 내려 했지만, 몸이 무거워 차마 이야기도 꺼내지 못하고 묵살 당했다.
'오해는 풀린건가? 그나저나 대단하군. 호루탈 숲의 가호라는건.'
자신을 두르고 있던 가호가 걷히는 것을 느끼며 벤하르트도 캐뱃의 아버지가 한 것처럼 살짝 고개 숙여 숲에 감사의 예를 보였다.
- 작가의말
모두 좋은 주말 보내시길~
그나저나 시간이 지날수록 선호작이 천천히 떨어지는군요. 음..
뭐 이제는 해탈 했지만요.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나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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