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19화(573화)-대가(1)
"정말로 크로세트를 없애 버릴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나도 인간의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이기는 하지만, 진짜 상식으로 잴수가 없구나. 그나저나 리스 괜찮아?"
구아나는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몸가짐하는 리스를 보고 물었다.
"나는 괜찮아 벤이나 봐줘."
"벤하르트는 상처도 없는걸. 멀쩡하잖아."
"아냐. 구아나 얼른 이 공간에서 나가자. 나는 벤이 '저 기술'을 쓰는 것을 몇번이나 봐왔어. 저 기술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만능의 기술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구아나의 얼굴에는 의문이 일었지만, 그녀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결계를 갈라내었다.
"하아.. 후아.. 정말 이번에는 꽤 힘들었어."
벤하르트는 약간 창백한 얼굴로 일어나 티온에게 다가갔다.
"티온. 저.. 어머니의 일은 미안하게 됐다."
티온은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벤하르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벤하르트는 한눈에 보기에도 상처는 없었지만, 만신창이였다. 그런 몸으로 하는 첫마디가 자신에게의 사과라는것에 그녀는 머리로 이해할수 없었지만, 감정적으로 울어 버리고 말았다.
"벤 그럼 안되지. 꼬마를 울려 버리면 말야."
"리스 몸은 괜찮아?"
"나야 아무 문제 없어. 이정도는 위험하기는 했지만, 사흘 정도면 정상으로 돌아가려나..? 내가 걱정하는건.."
"그건 됐어. 아무 말 하지 마."
벤하르트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리스는 흙 씹은 얼굴로 구아나를 따라 공간의 밖으로 나왔다. 밖은 어둑한 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몸을 숨기고 나가는 것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룰루루."
구아나는 흥얼거리면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리스는 한손으로 티온을 들고 구아나의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뭐가 그렇게 기뻐서 흥얼 거리는거야?"
"이제 너희들이 내게 이야기를 지불하게 될 거잖아?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들일지 기대가 되서."
"이전에도 궁금했지만, 이야기를 왜 그렇게 원하고 있는거야?"
"리스 물을 필요도 없겠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있어?"
"그야 뭐 주문으로 마법을 구현한다거나 그런거 아니겠어?"
리스는 사실 마법에 대해서는 잘 아는 편은 아니었지만, 벤하르트에게 붙어 있었던 시절 어깨너머로 들었던 내용을 슬쩍 말했다.
"그래 자기 자신에게 연상을 시켜주는 무언가의 주문으로 마법을 발산하거나 뭐 이런게 기본이지. 하지만 내 방식은 그걸 조금 변형 한 것이거든."
"변형..?"
"기존의 마법이 만약에 카스라 라고 하는 것을 '불'이라고 느끼는 어떤 사람의 주문이 있다고 쳐. 그 사람이 연상하는 것은 단일적인 측면에서의 불의 마법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법의 술식을 만들어 내는거야."
구아나는 간만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문이라는 것이 '강한 연상'을 하게 되면 될수록 마법이 강해지듯 내게 있어서 무언가의 '이야기'는 마법을 다양하고 강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지. 같은 주문이라 할지라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마저 포함하는 마법이라면 더 대단하겠지? 하지만 좀처럼 그렇게 형편좋게 재밌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단 말씀이지."
그녀는 다시 지루한 눈을 하며 무덤덤하게 거리를 걸었다.
"저기 저기요!"
"음? 뭐야?"
"벤하르트가 없는데요?"
리스는 아차 싶어 주변을 둘러 보았다. 그녀가 약해진 탓도 있었지만, 벤하르트의 실력이 워낙에 뛰어 났기 때문에 아무도 벤하르트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이 바보가.."
리스는 입술을 깨물고는 구아나에게 티온을 맡겼다.
"책임지고 데리고 가. 사고라도 나면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해둬."
"어딜 가려는거야?"
"몰라서 물어? 벤을 찾으러 가는거지."
리스는 붉은 안개로 몸을 뒤덮어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끄으으 으아아악.."
고통 스러운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졌다. 최대한 참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참을수 없어 세어나오는 신음소리는 조용한데도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으으으.. 끄으.."
가슴을 움켜쥐고 벤하르트는 뒷 골목의 바닥에 누워 몸을 쥐어 짜고 있었다. 몸은 멀쩡하고 또 멀쩡했지만, 벤하르트의 정신은 몸이 쪼개지고 박살이 나고 죽어 나갔다. 그것은 '지불'이자 '대가'였다.
"정말 이번에는 가볍게 넘어가질 않는구만,, 우우우아아.. 으아앗."
고작해야 몇분의 고통이었음에도 실제 벤하르트가 느끼는 고통은 벌써 몇일은 지난듯 했다. 죽어도 몇번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그는 의식을 바로 잡았다.
"넌 바보야."
"리스!?"
바닥을 기면서 벤하르트는 리스를 올려다 보았다. 리스는 벤하르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잘도 찾아내는구나.."
"네 피의 조금은 내가 준 것이니까,"
"크으윽. 으으으.."
벤하르트가 처음 천륜요란의 기술을 사용했을때, 리스는 당황해했다. 밤낮으로 고통 스러워 하면서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고통이 이정도로 자신을 약하게 만들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벤하르트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 뿐인데도 '자신이' 고통을 당하는게 차라리 편할 정도로 가슴이 시큰거려서 참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절망했던 그녀의 얼굴을 보고 벤하르트는 천륜요란을 사용할때마다 리스를 피했다. 그리고 언제나 리스는 벤하르트를 찾아서 그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았다.
"끄으으.. 어억."
자신이 벤하르트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그럼으로써 벤하르트와의 아픔을 공유하는것 외에 그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홀로' 고통 스러워 하는 것과 누군가와 함께 고통을 공유하는게 실로 말뿐일지라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하.. 참.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언제나 말야.. 아아아,.. 으윽."
"헛소리를 지껄일 여력은 남아 있나보지? 나에게는 네 약한 모습이야 일상이나 다름 없잖아? 꼴사납다고 했지만, 별로 꼴사납지 않아. 네 그 모습은 말야. 내가 이끌렸던 그때의 멋진 약함이라고 생각하거든."
"하하.. 그러냐.. 쿠헉.. 으으.."
"그나저나 얼마나 남은거 같아? 이번의 '대가'는."
"조금 길지도 모르겠는걸. 반은 '죽었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돌아가는게 어떠..크아아아아아악."
벤하르트는 참아내려고 애썼지만 그 모습을 보고 리스는 툭 하고 그를 걷어 찼다. 그것에 그는 더 참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바닥을 내뒹구르기 시작했다. 리스는 주변을 안개로 뒤덮어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결계를 이루었다.
"내 앞에서 자질구레한 체면따위는 지키지 마. 아니.. 네가 그런걸 할리가 없겠지. 너라면 '내가 걱정할 것이기에'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크으윽.."
"그런게 쓸데 없는 오지랖이라고 하는거야."
"후아.. 하아.. 어어억."
리스는 씁쓸한 얼굴로 벤하르트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리스.. 꽤 걸린다니까, 너도.. 몸이 많이 다쳤잖아. 구아나의 집에 가서 쉬는게,,"
"걸려봐야 10분정도겠지? 이 대가 아무리 오래가도 30분을 넘긴적은 없었으니까, 내가 쉬는건 그게 끝난 다음의 일이야."
"나 참.. 정말 똥고집이구만, 지금부터는 정말 힘들단 말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런게 좋을리가 없잖아."
"그래 싫으니까, 그러니까 이곳에 '있어야' 하는거야. 너 혼자 고통을 당하게 할꺼라고 생각해?"
"원의 흡혈귀라고 불렸던 주제에, 악마나 마왕보다도 악랄하다고 불리웠잖아 그런데 무슨 정이냐고 그건 으아아아아악."
벤하르트는 이제는 체면 볼것 없이 바닥을 내뒹굴렀다. 힘껏 고통 스러워 하는 편이 오히려 고통은 덜한 법이었다.
"글세... 옮기라도 한 것 아니겠어? 네녀석한테 말야. 참.. 후우. 이래저래 난감하다니까,"
누군가의 고통에 무감각했던 시절과 벤하르트의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에 참을수 없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녀는 난감해했다. 아마 어느 누가 '어느쪽의 자신'이 더 좋은가를 묻는다면 아마도 후자의 쪽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원의 흡혈귀인 리스에게 있어서는 죄악이나 다름 없는 부분이었기에 그녀는 벤하르트가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찌뿌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 작가의말
모두 크리스마스는 잘 지내셨나요?
사실 크리스마스에 쓰려 했는데 일이 생겨서 한참이 지난 지금에야 글을 쓰게 되었네요. 으음..
국어쌤님의 조언은 참 일리가 있는 비평이 많아서 좋았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하도 정성이 담겨 있으셔서,, 참 힘드시고 죄송스럽겠다 싶었는데,
이번에 수정하면서 보니 제가 오글거릴정도로 놓친 부분이 한두개가 아니더군요. 오타야 애교로 넘어간다 쳐도 아는 맞춤법을 틀린다거나 혹은 띄어쓰기(지금도 아리송;;) 같은 경우는 아시는 분들이 보시면 얼마나 짜증나실지 상상도 안가는군요.. 언제라도 너무 심한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감사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학을 맞이하여 약간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새로운 소설을 조금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도 다른 소설을 써보는게 도움이 되겠다 싶은 관계로 한번 끄적여 볼까 하니 혹시라도 기회가 나시면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엔쿠라스는 계속 쓸 생각이니 별로 상관은 없을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쉬면서 댓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행복했습니다. 모두들 댓글 감사드려요. 기운내서 엔쿠라스든 신작이든 써내려 가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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