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37화-
프쿠타는 서서히 공격의 강도를 높히고 있었다. 느껴지지 않을정도로 미세했지만, 확실하게 벤하르트는 공격이 어려워져 간다는 것을 느꼈다. 프쿠타의 신체능력은 마족답게 굉장히 뛰어났고, 그는 드물게도 여행을 다니면서 여러가지 기술을 습득했었다.
벤하르트는 유려의 움직임을 사용할수 있었지만, 프쿠타는 압도적이라고 할수 있을 정도의 경험으로 그 유려의 움직임을 점점 제한해 나갔다. 하지만 프쿠타의 실력은 그런 시덥잖은 것이 아니었다.
대결에서 공방은 중요하다. 공격을 해야 상대를 이길수 있고 방어를 해야 상대의 공격을 막아낼수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소홀히 했다가는 승부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프쿠타는 그런 공방을 극한으로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었다. 즉사를 당하지 않는다면 힘이 닿는 범주 내에서 무한히 재생해버리기에 그는 극단적으로 방어가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상대방이 공방에 신경쓰는것을 공격만을 행함으로써 공격을 유도 해낼수가 있었다. 종종 벤하르트가 스스로의 방어를 버림으로써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는 것을 프쿠타는 극한으로 활용 할수 있었다. 그때조차도 벤하르트는 10중에 3정도는 급소를 막는데 사용해야 했지만, 프쿠타의 경우는 모든 힘을 공격에 사용할수가 있었다.
'이정도라니,'
프쿠타의 실력은 결코 벤하르트보다 낮지 않았다. 그렇기에 공격과 방어를 유동적으로 거기에 설사 치명상이라고 해도 금방 부활해버렸다. 프쿠타는 점점 서서히 강도를 높혀 나갔다.
순간 벤하르트의 움직임이 급변했다. 흐느적 거리는가 싶더니 프쿠타의 손을 베어 넘겨 버린 것이다.
"호오."
잘려나간 손을 보고 프쿠타는 여유롭게 받아쳤다. 하지만 방금의 일격은 프쿠타에게 있어서는 완벽하게 허를 찔린 움직임이었다. 프쿠타는 수비를 버리고 전력을 공격에 쏟아 부었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빈틈이 많을수 있었지만, 그것을 찌른다고 한다면 벤하르트도 어느정도 상처를 각오 해야만 했다.
하지만 방금의 벤하르트는 일방적으로 프쿠타의 팔을 자르고 프쿠타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대응조차 하지 못할정도로 군더더기가 없는 움직임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대련이니까, 내가 바라마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느새 복귀되어 있는 손을 뻗어 프쿠타는 벤하르트에게 달려 들었다.
벤하르트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몸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피하는것도 공격하는것도 막는것도 어느것 하나 생각하기 전에 몸이 행동 하고 있었다. 한번 프쿠타를 베었을때 프쿠타는 멀쩡했다. 그 부분이 벤하르트의 인식을 달리 바꾸었다. 자신이 얼마나 애를 쓴다고 해도 프쿠타를 죽이지 않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저거 괜찮은 건가?'
벤하르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스스로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는것보다 몸이 먼저 그것을 감지해내었다. 하지만 멀리서 레니아가 보기에 벤하르트는 위태하기 짝이 없었다. 프쿠타의 손의 손톱은 한번만 정확하게 맞아도 벤하르트에게는 중상을 일으킬 정도로 강맹한 것이었다.
'놀고 있는게 아닌데도 스칠수도 없다니, 이녀석..'
프쿠타는 전력을 다했다고 할수는 없었지만, 확실히 벤하르트를 반쯤 죽일 생각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마치 공기처럼 그것을 모두 회피해 나갔다.
"크하하.. 재밌군. 뭐 이정도는 해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프쿠타는 한손에 힘을 집중해 막무가내로 벤하르트만을 향해 돌진했다. 몽롱한듯한 눈으로 벤하르트는 그의 결사이면서 결사가 아닌 일격을 보고 있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프쿠타의 팔과 배는 몇갈래로 갈라졌고 그와 동시에 프쿠타는 벤하르트를 눈앞에서 놓쳐 버렸다.
'조금더..'
벤하르트는 검을 바로 잡았다. 조금만 더 빠르게, 조금마 더 강하게, 조금만 더 정확하게.. 그의 움직임은 정교해졌다. 마치 그것이야 말로 유려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의 싸움은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였다. 프쿠타도 공격에 사용하던 일변도를 방어를 하기 시작했다.
둘의 싸움은 제 삼자인 레니아가 보기에는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어째서 저기서? 저런 행동을 하는거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프쿠타가 벤하르트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도 벤하르트가 프쿠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것도 사라졌다. 둘의 싸움 형식은 너무도 달랐다. 벤하르트가 부드럽다면 프쿠타는 투박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어느하나 양보 없이 싸움을 계속해 나갔다.
이해할수 없는 각도에서의 공격과 그것을 막아내는 것은 거의 동시에 마치 서로 짜고 싸우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나게 할 정도였다. 레니아의 눈에 그들의 공격과 방어는 너무도 상식 밖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 만큼은 객관적으로 인식할수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고 상정하고 있었던 벤하르트의 강함은 가짜 였다는 것이다. 지금 눈앞의 벤하르트는 그녀가 지금껏 상상하고 예상해 왔던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어.. 어?"
"걸렸군."
벤하르트의 실수 하나를 물어 프쿠타는 거대한 손톱을 그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그것은 벤하르트의 특기중 하나인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는 행위였다. 막아서는 손을 자르는 것과 동시에 프쿠타는 복귀를 했다.
이미 눈을 깜박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는 시계에서 싸우는 그들이었기 때문에 팔 하나가 없는 시간이 1초라 할지라도 치명적이 될수 있었다. 프쿠타가 재생을 이루기도 전에 벤하르트는 번개처럼 검을 휘둘렀다. 재생할 겨를도 없이 프쿠타는 연전으로 밀려 나갔다. 온몸은 피로 물들여져 평소의 벤하르트라면 절대적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았을 텐데 그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벤! 뭐하는거야!"
"후우."
검에 난도질 당하면서도 프쿠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컥."
벤하르트의 손은 멈추었다. 그의 배는 거대한 손에 꿰뚫려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보질 못했지?"
"으..."
벤하르트는 검을 휘두르려다가 놓쳐 버리고 흰눈자위를 보이면서 쓰러져 버렸다.
"벤! 프쿠타 너!"
"진정해 내 몸을 복구하고 나면 벤하르트 차례다. 나도 이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설마 재생력보다도 더 공격이 강할줄이야."
"서둘러 배에 구멍이.."
"걱정 하지 말라고, 고쳐 뒀으니까,"
"어? 어.."
프쿠타는 레니아에게 물었다.
"그래 이제 알겠나? 이녀석은 본래는 이정도 아니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는것이다."
"그 이상이라고? 설마.. 지금것도.."
"나도 이정도일것이라고 생각은 못했지."
"그런데 이정도의 실력이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까지는 어째서 보일수 없었던 걸까."
"설마 몰라서 묻는것은 아닐테지. 이녀석은 무언가를 죽이는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니 잃는다 앗아간다 라는 측면을 스스로의 손으로 하지 않는 것이지. 그러니 노린다고 해도 급소를 '없애는' 공격을 하지는 않아. 예를들어 심장을 찌른다거나 배를 베어낸다거나 하는 식의 공격은 애초에 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레니아도 짐작이 가는게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언제나 노리는 것은 팔과 다리등 전투시에 가장 주가 되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하는 부위들 뿐이지. 하지만 벤하르트와 싸우는 상대는 고스란히 그런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거든. 물론 팔이나 다리는 분명히 주요한 부위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격에 대한 억제는 가능했겠지. 하지만 애초에 공격의 방향을 제한 한다는 것은 엄청난 약점을 쥐고 싸우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것 뿐 아니라 이녀석은 심적으로도 이미 자신의 실력을 죽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레니아 만약에 적이 팔로 공격을 막는다면 너라면 어떻게 하지?"
"글세.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격하겠지."
"벤하르트로 친다면 검을 휘둘러 팔을 베어낸다는 것이겠지만, 벤하르트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억제한다. 검을 휘두르지만 어디까지나 위협용이고 팔을 절단할 생각은 좀처럼 가지지 못하지. 때문에 전력을 다해서 휘두르지 못하는 것이다."
레니아는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말했다.
"확실히 그렇네. 아까도 그렇고 하지만 너는 어떻게 그런것을 알고 있는거야?"
"제 7법을 사용했었으니까, 벤하르트의 잠재력은 나나 너를 가볍게 뛰어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싸움 실력은 너무도 비례 하지 못하고 있었지.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레니아 너나 벤하르트가 스스로 생각하는 수준보다는 더 높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것이다. 이전에도 이야기 했었지? 잠재력이라는것은 본래가 무한하다고,"
"그랬었지."
"하지만 '현재의' 잠재력은 분명히 한도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단기간에 강해질수 있는 그 수치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하지만 벤하르트는 퀘이소 무리와 너희들의 힘을 전부 엮은것조차 받아내었다. 기본적인 능력 자체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더 높다는 이야기지. 물론 본인은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는것 같지만, 설마 저렇게 공격할줄은.."
레니아는 이전 벤하르트가 가끔씩 보이던 답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렸다. 평소에는 한없이 나약해 빠진 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무서운 일면 방금도 벤하르트는 잔혹할 정도로 프쿠타를 찢어 발겼다. 아마 프쿠타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몇번은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용케도 벤의 진짜 실력을 끌어내었네."
"그거야 벤하르트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 차렸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이녀석은 지는것도 싫어하지. 그러니 '죽지 않는다는 것'과 '스스로의 실력'을 자극 시킬수만 있다면 유도해 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해는 조금 컸지만 말야."
"아직 완치가 안됐잖아?"
"그만큼 매서웠다. 솔직히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야. 방금전 벤하르트는 나를 정말로 죽이려 들었다."
"미안."
"네가 사과할 일도 아니고 벤하르트가 사과 할일도 아니야. 나는 이런걸 원하고 있었으니까, 정말 대단했지. 재생하는 부위를 베어내면서 틈이 나는데로 나의 배와 내장을 동시에 베어내는 그 공격은,"
프쿠타가 덤덤하게 이야기하는것을 레니아는 질린채 바라 보았다.
"낭비가 없는 검술. 겪어 본것은 지금껏 처음이었다."
"유려의 움직임을 익히고 있으니까,"
"유려의 움직임?"
프쿠타는 유려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에 레니아에게 물었고 레니아는 대답해주었다.
"그렇군. 어쩐지 처음에 몸이 풀리지도 않았는데도 멋지게 막아내는 게 신기하다 싶었지. 후우 벤하르트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아마 이 승부는 내 패배였을거다."
"어째서?"
"그 유려의 움직임이라는것은 본래 '빈틈이 없는' 공방일체의 움직임이다. 몇번이나 '통했어야 할' 무리스러운 공격을 전부 받아 넘겼으니까, 그러니 마지막의 일부러 잘려 주었던 팔로 벤하르트를 노리는 것도 본래라면 통하지 않아. 그정도의 위험을 막아낼수 있는게 유려의 움직임이니까,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벤하르트는 이성을 잃은 채로 공격을 해왔고, 마지막의 공격때는 주변을 둘러 보지 않았다. 애초에 이 비장의 한 수는 일부러 보여 주지 않았지만, 그랬기에 통했지.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아마 통하지 않았을거야."
"그렇군."
"그럼 잘 놀았으니 슬슬 가볼까."
"어딜?"
"글세. 라스펠도 좋고 발따라 여행이나 가봐야겠군."
"왜 그렇게 갑자기 가는거야? 벤이 저렇게 정신이 나간 사이에, 이야기도 안하고 가려고?"
프쿠타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레니아는 사자머리인데도 어떻게 저렇게 감정 표현이 느껴지는지 신기해했다.
"그래. 너도 그녀석을 데리고 도시에나 들어가는게 좋을걸. 여기를 봐라."
주변은 온통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은 프쿠타의 피였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벤하르트에게는 보여주기 꺼려지는 광경이었다.
"벤하르트가 나와의 대전을 떠올리든 떠올리지 않든 지금은 만나지 않는게 좋을거다. 애초에 '적' 마저도 베지를 못하는 유리같은 정신 아니냐. 자신이 나를 '죽이려' 했다는것을 깨닫는다면 어떻겠나. 가급적이면 기억도 지워 두고 싶지만 나는 그런 영리한 마법같은건 모르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굉장히 생각해주네?"
"친구니까, 아 이건 나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건가?"
"설마.. 하지만 당신같은 마족이 있다는게 신기해."
"그러니 기억을 떠올릴만한 매개체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게 좋아. 기회가 닿는다면 나중에라도 한번 보도록 하자고. 벤하르트에게는 적당히 둘러둬. '방랑벽이 발동했다고'라도 적당히 둘러대는건 어떨까?"
"너무 적당히야 그건."
"최근 몇주는 정말로 즐거웠다. 고마웠다."
프쿠타는 한달음에 레니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덩그러니 지독한 피냄새속에 서 있던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보고 있다가 중얼 거렸다.
"나도 재밌었다고 생각해."
제 7법부터 시작했던 라스펠로 향하는 여정에 함께 했던 프쿠타를 보내고 그녀는 벤하르트를 부축해 도시로 향했다.
- 작가의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쓸수 있으면 쓰려고 했지만, 연참대전조차도 어제 등록했을 정도로 정신이 산만해서,,
이래저래 여행도 다녀오고 맞이도 해보고 시험은 망치고, 너무나도 멘탈이 붕괴가 되었던 나날이었습니다. 연참대전이 찾아왔으니 한달간은 달려 보도록 할게요.
ㅠㅠ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