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10화-이물(異物)(4)
다음 층에 도착 하자 거짓말처럼 기계병들의 모습을 찾아 볼수 없었다. 벤하르트의 예민한 귀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서두르자."
쉴틈없이 그들은 다시 은백색의 통로를 달렸다. 이따금씩 벽에 설치되어 있는 함정이 그들을 공격했지만, 그들은 그런 단순한 함정에 당할정도로 어리숙하거나 약하지 않았다. 이곳의 지배자 벤하르트일행이 이물이라고 불리우는 제노스의 계산은 하나씩 빗나가고 있었다.
보통 어느정도의 실력을 보면 그 사람의 실력을 예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린아이가 강하다고 해도 그 강함을 예상하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확무비하게 오차 없이 계산해서 그들이 '자신'에게 오기 전에 막아 낼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 제노스의 생각은 보기 좋게 오류와 오차를 보이고 있었다.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는 벤하르트의 검은 함정을 하나 하나 파쇄해 나갔다. 얼마나 정확하고 빠른지 다른 사람들은 달리기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정도의 반응으로 함정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갔다.
"제네스."
"뭐냐."
제네스는 언제나 벤하르트를 퉁명스럽게 대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른 태도를 부리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벤하르트를 대하는 태도는 유독 심했다.
"세뇌를 당한 사람들을 고칠수 있으려면 어느정도 손상이 되어 있어야 가능하지?"
"그런건 모른다. 확실하게 말해두지 위에 있는 녀석들은 이미 가망이 없었다. 저건 고칠 수준이 아니라 이미 죽어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설사 고쳤다고 해도 자아를 가지지 못한 인형으로서 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건 알고 있다. 별로 그것에 대해서 따로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다만 조금 궁금했을 뿐이다."
"뭐가 궁금했다는거지? 너는 역 세뇌를 사용하지도 못하잖나. 설사 어느정도의 손상이 분기점인지 안다고 해도 고칠수 없는 너는 의미가 없는것 아닌가?"
"알고 싶었던 것은 어느정도나 휘저어야 그렇게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분상의 문제.
"그래. 그쪽을 알고 싶었던건가. 그녀석들은 시험하기 위한 연구 재료 였을 것이다. 예전 어떤 사람에게 들은적이 있다. 사람은 어디까지 살아남을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어떤 방법으로든 죽여 보는게 가장 실험하기 좋은 것이라고 하더군. 어느정도의 불을 견딜수 있을까 어느정도의 숨을 참을수 있을까, 어느정도의 출혈량을 견뎌 낼수 있을까, 인간이란 어디까지 살아 남을수 있는가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것이 누군가를 죽이는 행동이라니 웃기는 노릇이었다고 생각한적이 있었지."
제네스는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그녀석들은 실험쥐 같은 녀석들 이었던 걸거다."
"이봐 확실해?"
"확실? 레니아 지금껏 여행을 하면서 네가 머리가 좋다는건 잘 알았는데, 그런 너와 내기를 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확신하지. 그녀석들은 인간을 어디까지 망가뜨려도 사용할수 있는가의 실험체였다. 몇몇 버릴 말들을 골라 뇌를 쑤셔 자신이 사용하기 편한 방패막이를 만들기 위해 개조되었을 녀석들이라는건 확실하다. 왜냐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녀석은 더 효율적이게 인간을 조종할수 있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싸웠던 꼭두각시 인간들은 실패작이다. 너희들을 상대하는데에는 성공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단순히 자신이 부리기 위한 병기의 차원에서는 완벽한 실패작이었다. 너희도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니 알고 있겠지. 싸움이란 결국 머리를 사용해야 되는 것이다. 본능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인지가 가능할때의 이야기지. 손을뻗는다 피한다 몸을 접는다. 이런 '기본적인' 움직임조차도 잊게 할 정도로 뇌는 심각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명령에 의해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을뿐이었지. 잠재력을 아무리 끌어 올려도 그런 녀석들 따위가 전투에 써먹힐일은 절대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저 연구를 위해서 그런 짓을 했다는건가.."
벤하르트는 평소 답지 않은 독기를 품은 눈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신기할정도로 아무것도 나오지 않네. 기계병도 그렇고,"
"그렇네. 로이한이라는 사람이 말했듯이 한 층에 하나의 다른 무언가가 나오는거 아닐까?"
"왔다."
벤하르트의 말과 동시에 그들은 떨어졌다. 방금까지 달리고 있었던 통로의 한 켠이 산산히 박살나 있었다.
"저놈들은.. 의식이 있군."
제네스는 눈앞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다섯명의 사람을 보고 말했다.
"이 앞은 지나갈수 없다."
레니아는 그들이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일단 공격을 가했다. 적광색의 광탄은 수십발로 쪼개져 그들에게 도달했지만, 그들은 손쉽게 그 마법을 막아 내었다.
"저녀석들 의식이 있단 말야?"
"그래. 다섯이라,, 재밌군."
"뭐가 재밌어?"
"말해도 되나? 레니아. 여기서 재밌다고 말한 이유를.."
레니아는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말로 그녀는 알수 있었다. 레니아가 스스로 가로 막은 사람들의 말을 말하기도 전에 공격을 가한것은 벤하르트를 더 이상 자극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제압을 하든 제거를 하든 그들과 이야기를 해서 득을 볼 부분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제네스는 이곳에서 그런 말을 해도 되는가 하는것을 물었다. 그것이 '벤하르트'를 의식한 말이라는것을 그녀는 쉽게 알아 차릴수 있었다. 평상시보다 과묵하고 왠지 모르게 오싹한 느낌 마저도 들 정도의 벤하르트의 모습은 레니아 뿐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제공한것이 다름 아닌 지금의 상황이라는것까지도 제네스는 알고 있었다.
제네스가 굳이 그런 역 질문을 한 것으로 레니아는 상황을 파악할수 있었다. 제네스가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것은 다름아닌 세뇌의 부분이며, 그것을 통해 그가 재밌다고 한것이 무엇인지 유추해 낼수 있었다. 세뇌와 관련된 그러나 벤하르트에게는 말해서는 안될 그리고 방금전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녀는 생각해나갔다.
'아마도 제네스가 말한것은 저 다섯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것이겠지. 그딴걸 재밌다고 하다니 저녀석도 어딘지 맛이 갔어.'
실로 정확하게 추리해 냈지만 레니아는 한가지는 잘못 알고 있었다. 제네스가 말한 재밌다는것은 반어의 의미 였다는 것이다. 세뇌를 잘 아는 제네스였기에 그 금기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 층에서 사람들을 죽일때도 그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기분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죽거나 살거나 하는것에 초탈한 그였지만, 그런 소모적인 죽음을 그는 굉장히 싫어했다. 누군가가 죽는다는것에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무언가를 위해 개죽음을 당하는것을 그는 굉장히 싫어했다. 트레이야의 부모이자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지난날의 과거가 떠오르기 때문이었다.
"벤하르트 움직여라."
찌릿 찌릿하게 한껏 저려오는 뇌를 집중한다.
"그녀석들의 의식은 살아 있다. 선택은 알아서 해라."
흡사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으로 벤하르트는 검을 들어 움직였다. 레니아와 트레이야는 그를 뒤따르는 정도밖에 행하지 못했다. 벤하르트의 접근에 다섯명의 사람은 일제히 공격을 하고자 했지만, 그대로 몸을 움직일수가 없었다.
"뭐 뭐..."
"이게.. 으.."
의식은 있었다. 눈을 통해 인식한 정보가 빨리 피하라고 고래고래 온몸을 뒤흔들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대로 그들의 시야는 검게 물들었다.
"후우.."
"제네스 그건 사용하지 않기로 했잖아."
"사용하고 안하고는 내 자유야. 그리고 분명히 나는 그때 대답하지 않았다. 잊은건 아니겠지?"
제네스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눈도 충혈 되어서 그의 상태는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괜찮아?"
레니아의 걱정섞인 물음에 제네스는 눈을 돌렸다.
"쓸데 없는 걱정 하지 말고 그녀석들이나 이쪽으로 가져 와라."
"잠깐 내부의 기계는 내가 제거 하도록 하지."
벤하르트는 주변을 기로 짙게 둘렀다. 생체의 내부를 완전히 느끼려는듯 응축된 기로 그는 느껴지지 않는 물체를 파악했다. 흐물흐물한 백색의 검기는 사람의 귀를 통해 들어가 조심스레 뇌에 당도해 기계를 부수어 버렸다.
'엄청나군.'
벤하르트를 칭찬하기는 싫어 따로 입밖으로 내기는 싫었지만, 그 신기에 그는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벤하르트가 부수고 제네스가 치료하기를 반복해 곧 다섯명의 사람들은 제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로이한이 그러했듯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망가져 있다는 인상은 지울수가 없었다. 사람마다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을 보고 떠올린것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애매모호한 첫인상이었다.
"윗층으로 가면 지금 자고왕이 싸우고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노스 녀석이 강제로 심어 놓은 이 힘으로 그녀석을 없앨수 있다니 정말 다행이군요. 모두 어서 서두릅시다!"
한 사람의 인도에 따라 다섯의 사람은 윗층으로 올라갔다.
"저정도라면 전력에 도움이 많이 될테지."
조금 안심하며 그들은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자 탁 트인 원형의 공간에 도착할수 있었다. 그 고립된 공간 뒤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장소가 있었다.
"가자!"
계단을 향해 달릴때 벤하르트는 멈칫 거리면서 검을 뽑아 제자리에서 돌아 무언가를 쳐내었다.
"큭."
손이 저릿하게 저릴 정도로 강력한 일격에 그는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벤하르트가 공격을 당할때까지 기척을 느낄수 없었던 그것은 처음 만났었던 소년들 이었다.
"다음은 이녀석들이었나."
미끄러지듯이 내달려 그들은 공격을 하고 빠져나갔다. 순수한 능력만 놓고 봐도 이미 벤하르트도 쉽게 승리를 거머쥐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한 실력이 되어 버렸다.
"벤하르트. 너희들은 가라. 더 이상 어물렁 거릴때가 아닌것 같군."
"뭐라고?"
"내가 이런 닭살 돛는 이야기를 하게 했으니까 어서 가란 말이다."
"하지만 이녀석들은."
"나나 트레이야가 이녀석들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는거냐? 트레이야 이녀석이 너를 엄청 무시하는 모양인데?"
"그래? 벤 정말 그런거야?"
화가 난 척인지 진짜 화가 난 건지 모를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트레이야가 말했다.
"벌써 이정도다. 여기서 내려오기 시작한 이 시간에 이정도로 발전 했다는것은 아마도 머지않아 라스펠 녀석들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이런곳에서 죽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제네스는 손가락을 퉁겼다. 그 행동 하나로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자신들이 한두단계는 더 강해진것을 느꼈다.
"내가 죽게 하지 마라. 어서 내려가서 깡통 녀석을 부숴 버리는거다."
"..... 고맙다."
벤하르트는 레니아와 함께 자리를 뒤로 했다. 그런 그들을 한 소년이 쫓았지만 그보다 더 빠르게 제네스는 막고 그를 걷어 차서 떨어 뜨렸다. 그 한차례의 공방에도 소년모습의 기계는 제네스의 다리에 작은 생채기를 내었다.
"정말 성가신 녀석들이군."
- 작가의말
조금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댓글로 사족을 남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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