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99화-라스펠(1)
레니아는 쉬는것을 프쿠타에게 방해받자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일단 벤의 상태가 좋지 않으니 마을로 데리고 가는게 좋을것 같은데,"
"그렇겠군."
앞서 프쿠타가 말했듯 7법은 보통 기를 주는 매개체의 경우 상대적으로 피곤하기는 해도 위험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제네스의 세뇌때문에 강제적으로 한계 이상의 힘을 보낸 퀘이소들은 기진맥진해 있었다.
"으음."
"됐어. 내가 들면 되니까,"
프쿠타는 7법의 주체로써 레니아의 몸 상태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수많은 무리중 가장 기를 많이 보냈던것은 레니아였다. 자신이 말을 걸지 않았다면 한숨 자려고 했었던 만큼 지금 서있는것만으로도 얼마만큼 힘든지 짐작할수 있었다.
'뭐 나만큼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누군가가 도와줄수 있는것도 아니고, 프쿠타 본인만 해도 벤하르트 다음 갈 정도로 중상이었기 때문에 따로 말을 할 사항은 없었다.
레니아는 낑낑 거리면서 벤하르트를 들쳐 업었다. 팔이 흔들리자 벤하르트는 기절해있는 상태에서도 절로 인상을 찡그렸다.
"자 그럼 모두 일단은 마을로 돌아갑시다."
"우리는 일단 올라가 봤으면 하는데,"
마누어가 조심스레 말했다.
"아 그건 안되지."
"무슨 말이지?"
"나는 뭐 누구의 편도 아니긴 하지만, 당신들이 먼저 가는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뭐가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거냐?"
"너희들이 숲에서 이야기했잖아. 벤하르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이녀석들을 라스펠에 데리고 간다고 했었지?"
"그게 어쨋다는거지?"
"그렇다면 최소한도 상부상조하는 관계는 되었어야지. 너희들이 이녀석들보다 먼저 라스펠에 가기 위해서는 동등한 조건이 충족 될때다. 너희가 안전하게 이녀석들을 라스펠에 데리고 가 주었다면 상관 없겠지만, 현실은 이모양이지. 너희도 라스펠에 갈수 없는것을 벤하르트가 나서서 갈수 있게 바뀌었다면, 최소한도 이녀석에게 먼저 가도 된다는 허락을 구하고 나서 가도록 하는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럴.."
"인도의 책임도 다하지 않고,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겠다? 분명히 레니아나 벤하르트가 저곳에 가는것은 사리사욕때문인게 맞겠지만, 경과야 어찌 되었든 너희들은 이녀석들에게 도움을 받는 입장이지. 너희를 위해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너희에게 득이 되는 일을 하느라 이렇게 반 폐인이 된 녀석이 있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게 맞다고 생각한다만?"
마누어는 프쿠타를 조금 노려 보았다.
"그래도 가야겠다면?"
"그 뒤에는 여기 있는 이 여자의 뜻에 달렸지. 같은 과오를 반복할 셈인가?"
프쿠타의 뒤에서 레니아는 꽤나 날카롭게 그리고 확실히 화를 머금은 눈초리로 마누어를 보고 있었다. 사실 먼저 간다 라는 말에 화가 난것은 아니었다. 화가 나게 된것은 프쿠타의 말을 듣고 동조했기 때문이었지만, 그것으로도 조금 열받는 수준에 그칠 정도였지만, 방금 마누어의 말에 그녀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프쿠타의 말은 옳다. 굳이 따지고 들자면 마누어의 행동은 용인할수 있을 정도의 행동일 뿐이지. 마누어의 행동보다는 프쿠타의 말에 더 정의가 있다고 보는게 옳은 것이다. 프쿠타는 사리사욕이라고 말했지만, 레니아는 벤하르트가 도시를 끌어 당긴게 '도시를 위해'였다는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몸이 이지경이 될때까지 혹사시켰다. 치하를 받고 싶은것도 아니고, 사실상 이것으로 무언가를 바라는것도 아니지만, 최소한의.. 프쿠타가 말했던 예의 노력을 알아주는것은 필요했다. 하지만 방금 마누어의 말은 설사 어떤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용서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금방이라도 공격할것만 같은 레니아의 살기를 보고 그들은 뜻을 접을수 밖에 없었다.
'저들이 가지고 있는 지령을 빌리...'
거기까지 생각한 마누어는 기존에 생각했던 것을 수정해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알았다. 그럼 벤하르트가 일어날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지."
"레니아 괜찮아? 도와줄까?"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레니아를 보고 트레이야는 걱정을 담아 물었다.
"아니야 괜찮아."
사실은 걷고 싶고 멈추어서 쉬고 싶었다. 바로 발을 멈추면 그대로 끝날것만 같은 기분으로 비유하자면 흡사 벤하르트가 도시를 끌었을때의 고통을 묽힌것 같은 느낌으로 지친 몸을 하면서도 그녀는 트레이야와 일행들의 속도에 맞추어 마을로 향했다.
몇번이고 트레이야는 도와주려 했지만, 그때마다 레니아는 한사코 거절했다. 표정은 금방이라도 기절해버릴것만 같았지만, 끝까지 속도는 떨어지지 않아 트레이야도 도와줄 기회를 잡을수 없었다.
얼마쯤 뛰었을까 마을 근처에 오자 마누어가 소리쳤다.
"말도 안돼."
마누어를 따라 시선이 공중으로 바뀌었다. 벤하르트가 끌어낸 도시 라스펠은 끌어냈을 당시에는 땅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간 이동하고 나자 그 외곽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외곽에 마누어가 기억하고 있었던 모습은 없었다.
"뭐야?"
레니아는 방금전의 일때문에 마누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무리한 속도를 따라 가느라 전력을 사용하고 있는데, 멈추게 되니 휴식보다도 몸이 더 늘어지는것 같아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라스펠이 이상해."
"뭐?"
"라스펠은 저렇지 않단 말이다."
마누어의 꽤나 다급한 말에 레니아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벤하르트가 말했던 '차갑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해주는 광경. 그곳은 강철과 은색과 녹으로 어우러진 기묘한 도시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장관이기는 했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말은 연상되지 않았다. 너무도 인공적이고 부자연 스러웠다. 아름답다기 보다는 역시 '차갑다'가 알맞다고 느끼는 외관. 물론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수 있을정도의 시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외관이 아름답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것은 확실했다.
마지막에 참여해 많은 체력을 소모하지 않았던 퀘이소중 하나가 달려와 말했다.
"잠시 둘러보고 와도 될까요?"
"부탁한다."
마누어는 곧바로 대답했다.
"어 잠깐!"
레니아의 만류를 듣지 못하고 퀘이소는 새로 변해 공중으로 날아 올랐다. 벤하르트가 당겨낸 라스펠은 지상과 거의 근접해 있었기 때문에 퀘이소의 단순한 마수화로도 충분히 다다를수 있는 거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중에서 퀘이소가 날아왔다.
"오는군."
마누어는 조급하게 퀘이소가 오는것을 기다렸다
"아니 오는게 아니다. 떨어지고 있어."
프쿠타는 퀘이소의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모두 잡을 준비를 해!"
모두는 지쳐 있었지만, 같은 동족 답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겨우 퀘이소를 받아낼수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공중으로 올라갔을때 공격을 받았습니다. 이상한 빛이 제 날개와 배를 꿰뚫어서."
"돌아가야겠어."
"잠깐 그건 안돼."
"너희들의 그까짓 예의 때문에 가지 말라고 하는거냐?"
"아니 그렇지 않아. 사실 그딴건 아무래도 좋아. 기분은 더럽지만, 이럴수록 이라고 해야 하나? 너만 보낼수는 없지."
"무슨 헛소리를.."
레니아는 마누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네 반응을 보면 알수 있어. 저건 본래의 라스펠의 모습이 아닌거지? 그것뿐이 아니야. 아마도 라스펠은 저런 무차별적인 공격도 하지 않겠지. 이건 네가 생각하고 있던 라스펠과 저기 있는 라스펠은 뭔가가 다르다는것을 말하고 있지. 즉 '너조차도' 안전할수 있을지는 보장할수 없다는거야."
"뭐.."
"그렇잖아? 도시가 송두리째 바뀌었어. 나는 기존의 모습이 어떤지 알수 없지만, 네가 지금 당장에라도 가려고 했다는것은 그만큼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거지. 벤하르트에게 말했었지? 아름답다고, 도시 하나가 저런 모습으로 네가 알지 못하는 수준으로 변했는데, 네 안전을 보장할수 있는게 뭐가 있지?"
"나는 라스펠의 장군이다."
"저렇게 바뀌게 된게 라스펠이 바꾸었다면 그게 먹히겠지. 하지만 네 반응은 달라 '저런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저건 뭐지?' 같은 분위기로 전혀 이 상황을 알지 못하고 있지. 결국 너는 장군이니까, 위험해도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겠지만, 그렇게는 못하지."
"어째서냐!"
"최악의 경우 네가 죽으면 우리가 곤란해지잖아? 부하들만으로 이동할수 있는것은 아니었잖아?"
'그런 말은 한적이 없는데?'
마누어는 레니아를 의심스레 바라보았다.
"내가 그 마법진을 연구했던것 잊었어? 그때 방법을 살짝 보아뒀던것 뿐이야. 술식은 네가 꼭 필요하게 되어 있어. 부하들과 함께라는 측면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주체는 네가 아니면 안된다는것이지. 상대적으로 부하들보다 네가 더 지쳐 있는것을 보면 예측으로도 가능한 범주지만 말야."
"....."
"그러니까 안돼. 갈거면 만전까지는 아니더라도 몸 상태를 회복 시킬 수준은 되어야만 해. 프쿠타 묻고 싶은게 있는데,"
"말해봐라."
"너나 벤하르트는 다르겠지만, 우리들의 경우는 쉬면 쉬는만큼 회복 되는거겠지? 기를 사용한것 뿐이니까,"
"그래. 지금의 피로는 아마 잠을 자고 나면 얼마만큼은 회복되겠지. 조금 무리를 했으니까 만전의 상태는 기대할수 없겠지만,"
"그러니까 하루를 기다려. 저 거대한 도시가 하루만에 저렇게 될리는 없을테니까, 지금껏 지나왔던 것처럼 단 하루만 쉬고 가도록 해. 물론 그때는 우리도 데리고,"
"....."
"네가 뭘 하려는지는 몰라도, 네 그 알량한 생각으로 도박을 할만큼 라스펠의 가치가 낮다면 좋아. 지금 가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어."
"괜찮은거냐? 레니아. 그런 도박을 해도, 진짜 가버릴수도 있을텐데?"
"어찌 하시겠습니까?"
델킨이 묻자 마누어는 신음성을 내고 말했다.
"어쩔수 없군. 기다리겠다."
"기다린다니, 너도 쉬지 않으면 곤란할텐데 인심이라도 쓰는듯 말하지 말라고, 마력도 잔뜩 탕진해버린 주제에 말야."
"윽."
레니아는 축 늘어져서 꿈쩍 않는 벤하르트를 보고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들쳐 업었다.
"어이 루켈 벤하르트놈을 잡으러 가지 않는거냐?"
아오이스의 한 거처에서 카이후는 루켈을 만나 말했다. 한손에는 독기 가득한 검은 기운을 머금고 한줌한줌 쥐어서 주변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그 행동을 루켈은 굉장히 싫어했지만, 그의 앞에서는 어디까지나 평정을 가장했다.
"그 일은 이제 준비만 해두려고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뭐 차차 아시게 될겁니다. 명령이 떨어져서요."
루켈이 피해 나가려 하자 카이후가 말했다.
"그보다 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네녀석이 벤하르트라는 녀석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서 왔더니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이 바로 나가다니."
"명령이 떨어진게 있어서. 그 벤하르트와도 관계가 있는 일입니다."
"오 그래? 어떤 일을 하는거지?"
루켈은 흥미를 보이며 카이후가 따라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대놓고 불만스런 내색을 할수는 없었다.
'실언을 해버렸군'
벤하르트에 대한 이야기는 하는게 아니었다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정보수집입니다. '발자취'라고 하지요. 아오이스에서는 기본중의 기본입니다만, 누군가가 머물렀던 곳의 특정 정보를 모으는 행위를 하고 있는겁니다."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는군. 거슬리는게 있으면 죽이면되고 원하는게 있으면 빼앗으면 될텐데,"
"세상사가 다 간단한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것은 벤하르트 발자취입니다. 어떤 여행을 했는지 수집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게 무슨 쓸모가 있지?"
"이건 직접 명령이기 때문에 거절할 권리가 제게는 없지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가치를 지니고 있는것은 '정보' 라고 말이죠."
"유식한 척 하기는."
'당신이 무식한거야.'
루켈은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카이후를 욕했다.
"직접 명령이라, 지금까지 그녀석들은 자유임무가 아니었나?"
"슬슬 준비를 해둬야 겠다고 생각한것 아니겠습니까, 샤이한의 그 전략가 때문에 일이 진척되지 않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 외에도 따로 요구가 들어왔다고 하긴 하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너같은 말단 녀석에게 가는 정보라봐야 신용이 가질 않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생각도 없는 당신보다야 낫지만.'
"다시 만나면 철저하게 괴롭히다 죽여줘야겠어. 약한 주제에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는것을 볼수는 없지. 약한 녀석은 약할때 죽여둬야.."
루켈은 카이후의 시선을 느끼고 식은땀을 흘렸다.
'썩어도 준치라 이거로군. 역시나 대행자.'
"그나저나 그때 왜 그녀석을 죽이지 않았던 거냐?"
"아 그때 말입니까. 사실 저도 죽이려 했었습니다만, 다른 살기를 조금 느껴서 말입니다. 카이후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겁이 많잖습니까."
"그랬나? 그런것 같군."
스스로는 조심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루켈은 그런식으로 말하는것이 카이후가 좋아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위험한 기분이 들어 도박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카이후님마저 이렇게 만든 녀석들을 제가 상대하기는 힘들것 같기도 하고, 또 카이후님의 먹이를 건드리면 안되잖습니까. 뒤에서 중독 되버릴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군."
'바보같은 녀석.'
하지만 그것이 연기라는것을 루켈도 잘 알고 있었다. 선천적으로 경박스럽기에 넘어가주는 찌를수 있는 틈을 찌르고 있을뿐. '대행자'가 되는것은 간단하지 않다. 판단력도 힘도 어느것하나 소홀하게 해서 올라갈수 없다는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 그렇기에 그는 사실을 고백했다. 단 그것이 사실임에도 부족한 진실이었을뿐.
"누군가가 있었다라... 정말이냐?"
"아니라면 죽이지 않았을리가 없겠지요. 어쨋든 저는 임무를 하러 가야 됩니다.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너저분한 잡일은 질색을 하는 카이후는 손을 내젓고는 다른곳으로 가버렸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루켈도 곧 자신이 맡은 임무를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작가의말
후아 새벽에 쓰려니 힘이 드는군요. 그래도 써야죠 뭐..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기 때문에 쓸 시간이 없어서,
야간 알바때문에 사이클이 완전 야행성이..(원래 그랬지만 더더욱 심해져버렸..)
그나저나 제가 자주 하는 맞춤법 실수는 참.. 큰일이네요. 습관적으로 실수를 하게 되고, 아예 모르는것도 있고, 이래저래 고민입니다.
그나저나 벌써 500화를 눈앞에 둔 순간이네요.
500화는 기념이니 홍보나 한번 해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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