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5화(559화)-백검사(6)
"그 무츠라는 사람 말야 굉장하던걸?"
벤하르트는 리스의 말에 약간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아.."
"네 연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람을 읽어내는 능력이 아주 뛰어 나던데 말야. 인간에게 놀란건 꽤 오랜만에 있는 일 같은데, 이런 작은 마을에서도 놀랄 일들은 잔뜩 일어날 수 있다는게 재밌었어."
벤하르트는 흘끗 리스를 보았다. 반응을 보니 아까전에 마셨던 술이 굉장히 마음에 든 듯한 모양이었다.
"나로써는 가급적이면 마을에 관계 하지 않고 싶었지만 말야."
"그런 이야기를 할 생각이라면 애초부터 돕지 않았으면 좋지 않았겠어? 그러니까 누누히 이야기 하잖아. 벤 네가 다른 사람들과 연관 되지 않는건 무리일 거라고 말이지."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
"내가 보기에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지만, 네가 그렇다면야 군말 할건 없겠지."
벤하르트는 감정을 숨기는 것에 아주 능숙해졌다. 본래가 타인의 앞에서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잘 하기도 했지만, 레니아가 봉인 당하고 난 뒤에는 더더욱 스스로를 숨기고자 들었다. 그에게 있어 레니아가 없는 시간은 죽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살아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을 때는 리스와 함께 있는 시간 뿐 그 외에는 일체의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때로는 비정한 것처럼 때로는 무심한 것처럼 타인을 멀리하는 것은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죽이는 것을 꺼려 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무츠가 이야기 했듯이 극단적인 약점으로 부각 될수가 있었다. 대화를 하게 되어 자신을 노출 하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의 약점을 숨기는 것도 가능 했다. 누군가를 돕는 다고 해도 그 사람에게 적당한 미움을 살 수 있는 정도라면 딱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리스의 입장에서 보면 우스운 소꿉장난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렇게 벤하르트의 본질을 깨달은 것은 무츠 한명 뿐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위기를 구하고 선행을 베푸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백검사'라는 칭호 까지 붙힐 정도로 그를 존경하며 길이길이 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연관되고 싶지 않다면 돕지 않으면 될텐데 선천적으로 벤하르트는 그러지 못했다.
사람을 구하지만 사람을 멀리한다.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괴롭히고 싶지 않지만, 필요하다면 죽기 직전까지라도 괴롭힌다. 그 상반된 모순적인 행동은 마치 스스로에게 벌이라도 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벤. 이제 에시오르와의 계약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과연 그 여자가 네 부탁을 들어 줄거라고 생각해?"
"글세. 공정 하다고는 못해도 적어도 그녀는 거짓된 공정 정도는 보장하니까, 미룰지언정 답을 알려 주기는 하겠지만, 나도 참을성에 한계는 있으니까,"
그로부터 3년 벤하르트는 이제 97번째의 에시오르의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한개 한개의 일화가 전설의 한 획으로 남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위업이었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사실 97번째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벤하르트는 에시오르의 일을 해준 것만 따진다면 100번은 벌써 넘은 상태였다.
에시오르와의 계약에 따라 임무를 실패 했을때 받는 벌칙에 의해 세번의 추가적인 일을 끝마쳐야 하나로 인정해주는데 벤하르트는 '모종의 이유'로 벌써 수십번이나 일을 메꿔 왔다.
"내가 보기에 에시오르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너를 놔 줄것 같지는 않은 느낌인데 말이지."
벤하르트는 리스의 말을 듣고 품안에서 사진을 꺼내 들었다. 붉은 머리의 작은 소녀였는데, 그 사진을 보며 그는 리스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그 애를 죽이라고 한 걸까?"
사진속의 소녀를 보며 리스가 말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기준으로 생각해본다면, 붕화 도시의 종교와 관련이 있을 확률이 굉장히 높지. 무엇인가 붕화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일이 이 소녀에게 달려 있기 때문일 것 같지만,"
사진을 보고 벤하르트는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이런 임무를 맡아 왔었다. '누군가를 죽이라.' 어떤 거대한 일의 주축에 속해 있는 중추인물을 죽이라는 것을 예지해 벤하르트에게 제거 하라고 명령 하는 것으로 사실상 벤하르트가 그 임무를 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다.
어려운 것은 '죽이는 것' '죽이는 것' 자체의 행위에 이르는 과정은 벤하르트에게 있어 어려울리가 없었지만, 그 행위 자체는 벤하르트에게 있어서는 금기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벤하르트는 쉬운 일도 구태어 '돌아서' 해결했다. 목표인물을 죽이면 간단한 일을 '죽이지 않고' 살리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그 결과는 에시오르의 판단에 의해 인정되었고, 때문에 그는 많은 실패를 거듭 한 것이다.
이번에도 에시오르가 낸 임무는 한 소녀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안에는 많은 함축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에시오르는 그 안에서 가장 '쉬운 일'만을 벤하르트에게 권할 뿐이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벤하르트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벤하르트에게 일을 시키는 것은 스스로의 목적을 위해서 였기 때문에 '죄없는 소녀가 죽던' 혹은 '벤하르트가 소녀를 죽이지 않고도 자신의 목적을 성사시키던' 그녀에게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최대한 단편적인 부분만을 벤하르트에게 임무로 내어 주었다. 소녀를 죽이면 죽이는 것만으로도 에시오르는 잠정적으로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일을 처리해 왔다.
"이번에도 죽일 생각은 없지?"
리스는 살살 놀리듯 물었다. 벤하르트는 죽이지 않겠다고 확언 하는것이 왠지 미안해서 말을 흐렸다.
"일단 상황을 보고 생각하자고,"
"그래놓고 죽인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건 알고 있겠지?"
"그야 뭐.. 모를리 있겠냐.. 만은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일수는 없잖아!"
"네 경우는 있어도 마찬가지잖아. 죄가 있으면 살려서 속죄하게 하겠다. 죄가 없다면 없으니 죽이지 않겠다. 하여간 제멋대로라니까, 나도 지금껏 억지란 억지는 다 부려 왔지만 너도 참 옹고집이란 말이지."
리스의 투덜거림에 벤하르트는 따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답답하게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기술을 익힌 것은 에시오르의 임무를 한창 하던 도중이었다. 죽이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벤하르트가 떠올린 것은 레니아의 종이의 계약이었다. 상대가 동의를 하기만 한다면 그 규칙대로 임해야 한다는 규칙의 마법에 의해 탄생하게 된 것이 벤하르트의 '힘의 서약'이었다.
힘으로 강요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그 능력은 벤하르트에게 있어서는 더할나위 없는 최고의 능력이었다. 규율의 강요 벤하르트는 스스로에게 공정했기 때문에 사리사욕으로 악용은 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하지 않는다고 '정해 놓음으로써'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능력을 사용하지는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정' 지어진 능력은 벤하르트가 허락 하지 않는 한 절대로 풀 수 없는 강력한 주박으로써 작용되었다. 사실상 무적 같아 보이는 이 능력은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무적은 아니었다. 상대가 '졌다'라고 시인해야 발동 한다는 것은 그것 이외에는 무슨 짓을 해도 절대로 주박을 걸수 없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규칙은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되었다.' 또 사리사욕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벤하르트가 '결정' 지어 놓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제물'이나'명령'등의 스스로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취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상대에게 지독해지지 못하고 나아가서 결정적으로 '죽이지 못하는'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능력은 더할나위 없이 어울리는 능력이었다.
"그나저나 오묘한걸."
약간 진지한 얼굴이 된 리스를 보고 벤하르트가 물었다.
"뭐가 말야?"
"어딘지 친숙한 느낌이 들어. 아니 친숙하다기 보다는 익숙함..? 그래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닌데, 굳이 비유하자면 '악의'에 가까운 느낌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악의?"
"이 느낌 미미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언제였더라? 그래.. 확실한건 가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벤 쉬운일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리스는 여유롭게 웃어 제끼며 말했다. 그녀는 스스로의 말과는 다르게 술에 붉어진 얼굴로 무언가 기대에 찬 듯한 얼굴이 되었다.
"표정은 굉장히 두근두근 거리는 모양인데 말이지."
"그야 이 시간이 즐거우니까, 즐거움은 한껏 '즐겁게' 지내두지 않으면 안되잖아? 이 시간을 하나라도 낭비하는건 어리석은 짓이거든. 위기라면 위기를 즐겨라 행복하다면 그 자체를 즐겨라 아무렇지도 않아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즐겨라. 라고 결정했거든."
벤하르트는 목적에 가까워 졌지만, 실상 그 목적이 끝나는 순간 리스와의 여행은 끝을 고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둘은 어느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3년째 레니아를 구하게 되면? 이라는 소재는 나올법도 한데도 둘은 누구 하나 그 이야기를 꺼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짜잔."
리스는 컵 하나를 들고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벤하르트에게 다가왔다.
"너 설마.."
"그 설마지. 느긋하게 한잔 해볼까?"
그녀는 손가락에서 투명한 액체를 떨어트려 컵에 받았다.
"나 참 아까전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술이 없는가 했더니 몇잔 마시는척 하면서 그걸 훔쳐 뒀었던거야?"
"내 취미가 뭐지 잊은건 아니겠지? 나는 수집가라구 처음에 너를 만났을때도 소유하고 싶어 했었잖아? 이런 술을 그냥 놓고 갈리가 없지. 암.."
"그 애주가가 어련 하시겠어."
"부탁한다면 특별히 내 술을 한잔 사하도록 하지."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스님."
그렇게 시덥잖은 농을 주고 받고 한잔의 술을 교차하며 그들은 붕화도시를 앞에 둔 마을에서 한 밤을 지냈다.
- 작가의말
오늘은 술 약속이 생겨서 조금 일찍 올리고 갑니다.
급하게 써서 그런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군요.
참고로 말하면 벤하르트는 저 기술외에도 여러가지 다른 기술도... 있습니다만,
이후 작중에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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