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82화-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한잠을 자고 나서 일어난 시간은 오후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레니아의 책을 읽고 있던 라프라는 그들이 일어나자 전날밤 있었던 일을 조심스레 물었다.
벤하르트는 난처한 기색도 없이 트레이야의 일은 쏙 빼어 놓고 천연덕스럽게 나름대로의 선의의 거짓을 섞어 각색해서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라프라는 뒷 이야기는 상상조차 못한채 순수하게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감탄했다.
곧 마누어 일행을 만나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슬슬 준비하고 밖으로 나왔다.
"하하 이제들 나오십니까?"
실실 웃으면서 인사하는 여관 주인의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의아해했지만, 신경은 쓰지 않았다. 다만 라프라만이 그의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이거 참 아까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아니.. 뭘요."
"이거 나이가 드니 눈치가 없어져서."
헤실헤실 거리면서 웃는 여관 주인의 모습을 보고 미묘하게 이야기의 내용이 맞지 않는다고 느껴 벤하르트는 슬쩍 라프라를 보았지만, 주눅 들어 있는 라프라의 모습을 보니 추궁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여관비는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여관을 나서서 벤하르트는 도시를 나가기 위해서 기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라프라의 기지로 자신들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용의자가 되어 완벽하게 의심을 떨쳐낸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사건과 범인은 미궁속에 빠져 있었다.
거리를 거닐면서 그는 라프라에게 전날에 있엇던 일에 대해서 묻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역시나 라프라에게 직접적으로 묻지는 못했다.
도시의 안은 여느때와 다름 없이 크래치가 도적에게 당했다 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어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화재거리로 삼고 있었다.
"도적녀석이 장난이 아닌걸."
"크래치님이 데리고 있는 직속의 호위도 장난이 아닌데 말이지. 저번에 술집에서 싸우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귀신 같더군, 그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마수를 빼오다니 할수 있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구먼,"
"그럼 도적은 얼마나 괴물이라는건가?"
"글세."
소문에 홀린 사람들은 점차 소문을 무성하게 부풀려 나갔다. 그런 소문의 향연에 벤하르트는 조금 참가하고픈 생각도 들 정도였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그 자리를 뒤로 했다.
'위에 세명인가. 다른 곳을 살펴봐야 겠는걸.'
벤하르트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얼굴하나 들키지 않고 셋을 동시에 쓰러뜨리는건 쉽지 않았다. 거기에 이전과 다르게 조금 떨어져서 미묘한 위치에서 걷고 있는 경비병들이었기에 그 부분은 위험하다 할수 있었다.
때문에 다시 기를 놀리던 그는 순간 섬칫하며 기를 회수했다. 자신의 기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인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휴."
"왜 그래?"
"아니 조금 위험할뻔 해서, 내 기에 반응한 사람이 있었거든. 에린델의 사람들은 감각이 대단하군."
"정말 괜찮은거야?"
못미더운 눈초리로 레니아가 말했다.
"아니 괜찮아. 내가 조심하면 되니까 말야."
벤하르트는 엷게 편 기를 타인이 느끼지 못하도록 이중으로 숨기는 힘도 같이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주축이 되는것은 기이기에 벤하르트처럼 스스로를 지키거나 혹은 여타의 이유로 민감한 사람도 여럿 있었다. 방금의 사람도 그중 하나 였다.
"괜찮다는 말은 살짝 취소해야 겠다. 위험한건 아니지만, 음 역시 이곳으로 오고 있는데, 위치를 옮기자 조금 속여 둬야 겠어. 너희는 이대로 민간인인척 남쪽에서 기다려."
"알았어."
레니아도 흔쾌히 라프라를 데리고 도시의 남쪽으로 향했다. 고작해야 용병 정도에게 벤하르트가 당하지는 않을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실상 별로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니아의 생각과는 다르게 벤하르트는 조금 시험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
그는 레니아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쫓아오는건 한명이 아닌걸로 보아 일행이니까... 조금 꼬아볼까?'
그는 역으로 돌아 기를 이용해 뭉치를 만들었다.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는걸.'
사실 그는 시오우스의 흉내를 내어 기를 이용해 인형을 만들어 둘수 있는가 실험을 해볼 생각이었지만, 완성된 작품은 엄청난 졸작이었다. 진흙인형도 그것보다는 나을 정도로 그의 기 덩어리는 그저 백색으로 일렁이는 오물 같은 느낌이었다.
"으음."
벤하르트는 그 기 덩어리를 움직이게 해보았다. 모양새는 요상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명령대로 오물거리며 기 덩어리는 이동했다.
"미묘하군."
사실상 벤하르트의 의도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이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뭔가 석연찮은 기분은 접을수 없었다. 이런 모습이라고 해도 기 덩어리, 방금전 민감하게 반응을 했던 사람들을 역으로 일부러 감지 당하게 되면 추적자들은 다른 사람들도 포함해 이곳으로 눈을 돌릴터, 그때 표적이 되는건 벤하르트가 아닌 다름아닌 이 기 덩어리로 할 참이었기에, 어느정도의 이동 능력만 있다면 사실 아무래도 좋은 기술이었지만, 역시나 모양새가 찝찝했던 것이다.
'어쩔수 없나.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역시 시오우스가 다루는것은 고도의 정밀화된 기술(氣術)이라는 셈이 되어 버리는 건가? 꽤나 다방면으로 사용할수 있구나, 하기사 기를 처음 알려 주었던 요셉도 여러가지 신기한 기술을 사용할수 있었더랬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기를 방출해 일부러 사람들에게 감지 당했다.
'몰려온다.'
벤하르트는 기 덩어리에 지시해 이동을 시켜두고 자신은 반대쪽으로 가려다 위치를 꺽었다. 지금껏 벤하르트가 경험했던 용병이라는 작자들은 대체적으로 신중하고 냉철했다. 그런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기 덩어리를 보고 상대가 반대쪽으로 갔다고 예상하는것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정도면 나도 조금 신중한것 아닌가.'
레니아만 아니었다면 벤하르트는 광적일정도로 신중하다고 할수 있었다. 거진 한세기 가량 쌓이고 쌓여온 행동은 대단할 정도로 신중함을 기한다고 할수 있었지만, 그저 운이 나쁜것이 있다면, 사기처럼 생각될 정도로 예측하는 레니아가 자신의 일행이라는 점이었을 것이다.
그는 신중하게 기로 조심스럽게 감지하며 도시의 광장에 들어와 흡사 일반인들처럼 돌아다녀 남쪽으로 향했다.
"왔다."
벤하르트는 자신의 작전대로 흘러가자 약간 의기 양양한 태도로 레니아에게 말했다. 레니아는 슬쩍 벤하르트의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왔어?"
"그래. 제대로 속여 놓고 왔지."
"으음 그래?"
레니아는 삐질 삐질 하게 눈을 흘기다가 살짝 호흡을 멈추고는 냉랭하게 말했다.
"벤. 나도 조금 살펴 봤는데, 지금 상당히 감시자들이 사라져 있어."
"그렇겠지."
"어? 뭔가 한거야?"
"아.. 뭐 조금."
레니아는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말도 없이."
옆구리를 찌르는 그녀의 공격을 순순히 맞은것은 그 자신도 조금 잘못함을 시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넘어가볼까. 눈에 뜨이면 안되니까 조심하고,"
벤하르트의 기습과 레니아의 마법으로 셋은 손쉽게 도시의 밖으로 빠져 나올수 있었다. 도시의 성벽을 넘고 벤하르트는 성벽을 뒤돌아 보며 말했다.
"이정도면 진짜 도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는데,"
"한때 신이었던 내가 도둑신세라니 운명이라는건 참 알수 없어."
그렇게 이야기하면서도 그녀는 별로 기분나빠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프쿠타의 나무집으로 향하는 길. 간혹 그들에게 덤비는 마수들도 있었지만,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대적할만한 마수가 있을리 없었고, 그들은 손쉽게 프쿠타의 집에 도착할수 있었다.
"라프라!"
"라프라님!"
류누와 스크루는 엄청난 안도와 반가움 그리고 약간의 질책을 담으며 말했다.
"아 모두 안녕하세요."
그에 대답하는 라프라쪽은 상당히 떨떠름한 얼굴이었지만, 둘은 다행이라는 생각에 라프라의 얼굴까지는 살피지 못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잘 수습한 모양이네?"
"뭐 그럭저럭.."
"하아.."
트레이야는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왜 거기서 한숨을 쉬는거야?"
"아니. 내기를 했거든."
"이건 가져간다."
제네스는 트레이야의 허리에 있는 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갔다.
"트레이야 너.."
눈치 빠른 레니아는 트레이야가 어느쪽에 내기를 걸었는지 그 대사 하나로 알아차렸다.
"하하 너무 그러지 마. 나는 너희들이니까 뭔가 또 말썽이 일어나지 않을까 해서 반반의 기대심리로 걸었던 거라구."
"하여간,"
"그것보다 제네스가 너희에게 돈을 걸었다는게 더 놀랍지 않아?"
"확실히 그건 놀랍네."
레니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쳇."
제네스는 고개를 돌리며 마크닐 금화를 공중에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나저나 말이다. 라스펠에 가기 위해서 만나야 할 녀석들은 어디서 만나기로 했었지?"
프쿠타는 예의 사자 머리에 잔뜩 기대된다는 얼굴을 하며 물었는데, 그 모습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무나도 무섭게 보일 정도였다. 흡사 사악한 웃음이라는건 저런걸 말하는거구나 싶을 정도의 웃음을 보며 벤하르트는 새삼스럽게 그가 마족이라는것을 상기했다.
"저 그보다 먼저 인간형으로 만나셨으면 좋겠는데, 프쿠타씨가 착하냐 악하냐를 떠나서 첫인상이라는게 중요하잖습니까. 애초에 나는 마족이다 라고 하는데 자신들의 본거지에 데려가 줄 정도로 대범한 사람들처럼은 보이지 않았고요."
"음. 일리는 있군.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수 없나."
프쿠타는 산발의 미남으로 변신했다.
"만나는 곳은 따라오시면 아시겠고, 시간은 거의 다 된것 같으니 가도록 하죠."
- 작가의말
연참대전 2일차 밤새고 와서 도저히 밤에 쓸수 있을것 같지가 않아 12시까지 쭉 소설을 썼습니다. 아무래도 밤에 외식을 나갈것 같아서 말이죠.
으아 야간 알바는 꽤나 힘들다는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습니다. ㅠㅠ; 생활 싸이클 다 버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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