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83화-시공(時空)(12)(641화)
"헌데, 사부라고 불리우는 카실러스는 우리를 어떻게 교정할 생각이신가?"
케이슨은 살짝 도발을 섞어 말했다. 카실러스는 그 말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답했다.
"거창하게 교정이라고 말을 쓰기는 했지만, 뭐 자네들의 강함은 이미 방향성이 완성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내가 따로 건드릴 부분은 없겠지. 아니 그보다 그걸 건드리게 되면 되려 주객전도가 되어 버리게 되려나."
"그럼 어떤 것을 교정 한다는 이야깁니까?"
"자네들을 이루고 있는 강함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들. 특히 에르니아 자네의 경우는 그 특유의 독특한 자세에 대한 교정이 조금 필요할 것 같군."
카실러스의 대단함을 방금 전 보기는 했지만, 벤하르트는 과연 카실러스가 자신의 자세를 교정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었다.
"미심쩍은 모양이군."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자네의 힘은 나나 케이슨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기도 할 거고, 강함이 아닌 전공의 방면을 따지고 본다면 나같은 사람은 발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대단할테니까,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고, 정말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도전하는 것에는 도전하는 자체의 의미가 있는 법이지. 에르니아 자네가 혼자서 하지 못한다면 내 도움을. 그리고 나도 힘들다면 케이슨의 도움을 받아서 다양한 시선으로 힘을 모아보는 것도 방법인 것일세. 불가능이라고 생각해 포기하는 순간 정말로 불가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말야. 내 확신적인 감에 의하면 케이슨과는 달리 자네는 이 배움이 필요하게 될 걸세."
'확신적인 감?'
"그러면 일단은 에르니아 자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보도록 할까?"
벤하르트는 케이슨을 보며 물었다.
"제 이야기를 해도 괜찮은 겁니까?"
"어차피 네 일생이 궁금한 것도 아닐테니까, 적당히 교정받을 정도의 부분만을 설명한다면 별 문제는 없겠지. 애초에 시간여행자라는 것을 아는 시점에서 무엇을 말해도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적어. 그런 걱정 보다도 네 기술이나 과거를 저녀석에게 말해주는 게 괜찮은지나 고민해 보는 게 더 나을거다."
케이슨은 조금 떨어진 눈을 감고 풀밭에 누웠다. 벤하르트는 잠시 고민을 하고 자신의 기술에 대한 기원을 이야기 해 주었다.
벤하르트의 이야기를 들은 카실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군."
"어떻습니까?"
"음 어떠려나. 시도는 해봐야 알겠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끝날지도 모르지."
"간단이라구요?"
벤하르트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자신의 검술이자 대장장이의 기술은 연철장의 정수나 다름 없었다. 겉으로는 자신감을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기술과 연철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기에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것도 없이 단순히 자신의 이야기만으로 간단할 지 모른다는 카실러스의 말이 그는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았다.
'어딘지 연철장이 무시당한 기분인데,'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벤하르트의 기분은 슬쩍 나빠졌다.
"혹시 가능하다면 물건을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물건요?"
"가능하다면 전공인 검이면 좋겠지만, 혹시 그게 부담스럽다면 자네가 만들 수 있는 어떤 물건이라도 좋네. 단순한 철 덩어리라도."
"검이 필요한 겁니까. 아니면 검을 만드는 과정이 제 교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까?"
"예리한 질문인걸? 물론 후자네."
"저는 검을 아무에게나 만들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검을 만들도록 하죠.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뭔가를 가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단, 검을 드릴지 폐지할 지는 제가 카실러스 씨를 보고 정하겠습니다."
"현명한 판단이군."
벤하르트는 카실러스를 따라 공방에 들어갔다. 공방에선 뜨거운 열기와 친숙한 쇳소리가 들려온다.
"카실러스 씨 아니요? 여긴 어쩐 일로?"
"잠시 자리를 비켜줄 수 있겠나?"
"일이 조금 밀려 있기는 하지만 카실러스 씨의 부탁이라면야 못 비킬 것도 없지요."
곧 남자는 대장장이들을 인솔해서 자리를 비워주었다.
"자네라면 별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검을 만들 수 있겠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보여주게."
카실러스는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그 눈빛은 매우 예리하며 날카로웠다. 순간 벤하르트가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은 의구심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으나, 그는 의심을 접고 자리에 앉았다.
벤하르트는 한동안 검을 만드는 행위를 하지 않았지만, 마치 한번도 쉬지 않고 단련해 온 것만 같이 능숙하고 정교하게 검을 만들어 나갔다.
"다 됐습니다."
한차례 폭풍같은 기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카실러스가 놓칠 리 없었다.
'과연'
벤하르트는 은빛의 소도를 보며 언제나처럼 손가락에 작게 상처를 내었다. 그는 꽤나 신선하고 상쾌한 검이 만들어 졌다고 생각했다.
완성된 검을 본 카실러스가 말했다.
"정말 대단한 기술이었네. 이거 참.. 그런 세계도 있다는 걸 오늘에야 알게 되다니, 역시 세상은 참으로 넓어."
카실러스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자네 정도의 실력이라면 교정도 그닥 어렵지는 않을지 모르겠군."
"제 정도의 실력이라니 그게 무슨 뜻인지?"
"자네의 기술들이 검을 만드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야 당연하죠. 되려 그걸 카실러스 씨에게 듣는 게 놀라우면서도 우습네요."
카실러스는 벤하르트가 검을 만드는 그 짧은 시간에 아니 그 이전부터 벤하르트의 기술을 꿰뚫고 있었다. 마치 당연히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발언은 곰곰이 되씹어보면 어떤 의미로 굉장히 두려운 것이었다.
'괜히 보여준 것 아닐까?'
"자네의 실력은 굉장히 이질적이네. 그 도구에 기를 불어 넣는 기술(氣術) 거기에 검을 단련하는 그 기술(技術)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신기에 이르러 있지."
"그정도까지야.. 저도 재능이 없다느니 거기까지 겸양을 떠는 척 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 거창하게 포장하시다니."
"그건 자네가 판단할 문제가 아닐세. 자네는 그렇게 겸양을 떨었지만 곧 자네 스스로 본인이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게 될걸세."
그렇게 말하고 카실러스는 벤하르트가 앉았던 장소로 가서 검을 만들기 시작했다. 벤하르트는 곧 카실러스가 자신을 흉내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는 나도 유명한 대장장이의 밑에 들어가서 각종 병기를 만들어 보았지. 곧 스승을 뛰어 넘어서 내쫓기기는 했지만,"
확실히 카실러스의 실력은 뛰어났다. 벤하르트도 비록 방식은 달라도 검을 만드는 사람. 당연히 카실러스의 실력을 못 알아볼 리는 없었다.
카실러스의 주변에서 기가 넘실 거렸다. 필시 벤하르트의 기술을 흉내낸 것으로 한번 본 것만으로 흉내내었다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능숙했다. 곧 카실러스는 검을 만들고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정공법으로 만들게 되면 시간도 내용물도 별로일테니 참고좀 했지. 자 보고 느낀 게 있나?"
"카실러스 씨가 천재라는 것이요?"
"하하 바보같은 소리를. '자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광대가 되어 버리잖나. 질문을 바꾸지. 자네와 비교하면 어땠나?"
벤하르트는 광대가 된 쪽은 이쪽이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일단은 카실러스의 물음에 답하기로 했다.
"제 쪽이 위입니다."
"비교도 할 수 없겠지?"
"뭐.."
카실러스의 실력은 대단하기는 했다. 하지만 벤하르트와 비교하면 분명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실력이었다.
"처음이시니 어쩔 수 없으시겠죠."
"하하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아까 말하지 않았었나? 스승을 뛰어넘어서 스승에게 쫓겨났다고 말야."
"하지만 이 방식으로 만드는 것은 처음이지 않습니까?"
"아니지. 나는 기를 불어 넣는 네 유파의 방식에 내 기술(技術)을 이용해서 검을 만들었어. 기를 불어 넣는 것은 네가 말한 대로 처음이니 미숙한 게 맞겠지만, 검을 단련하는 기술쪽은 그렇지 않아. 하지만 말하는 걸 보면 역시 네 눈에는 검을 단련하는 기술쪽도 마찬가지로 어설퍼 보였겠지?"
벤하르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우리 왕국 제일의 대장장이의 솜씨야. 기를 담아내는 것도 검을 손질하는 기술도 자네에게는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이 말이지. 자만이 아니라 자신으로 나는 무기를 만드는 실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왕국 제일의 대장장이였던 스승을 꺾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사는 세계가 다르긴 하지만, 자네가 머물던 세계에서도 그렇게까지 저열한 수준은 아닐테지. 절대적인 수준으로는 그래 백점 만점에 80점 정도를 줄 수 있으려나? 하지만.."
그는 검을 던졌다. 벤하르트는 그가 하고자 하는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이 만들었던 검을 들어 그의 검을 쳐냈다. 벤하르트의 검과 마주치자마자 카실러스의 검은 간단히 양단되어 버렸다.
"에르니아 네 검과 비교하면 0점이나 다름 없지. 백점 만점에 80점이라는 건 백점만점을 상대로 20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이지만, 그 만점의 기준이 천점이라거나 만점이라면 어떨까? 네 기술은 그정도의 가치가 있다. 너도 알고는 있을텐데?"
"하지만 연마하면 달라지겠죠. 한번 보고 그 정도라면 이후에는.."
"아니 이번 한번으로 알았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네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노력도 해보지도 않고 말입니까?"
벤하르트는 픽하고 비웃음을 보였다.
"카하하 노력이라 좋지 노력.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다. 나라는 인간이 그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야. 인간의 가치는 무한하기에 불가능 같은 건 없지."
카실러스는 너털웃음을 보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말을 하신 겁니까?"
"인생이라는 건 선택의 연속이거든. 에르니아 자네가 유려의 움직임을 익혔지만 나는 익히지 못한 것처럼.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 선택에 따라 운명은 바뀌게 되지. 엄밀히 말해서 내가 자네의 영역에 오를 가능성이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야. 하지만 자네의 수준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겠지. 거기에 많은 것을 포기하더라도 자네의 수준에 오른다는 보장조차도 없다네. 그러니 나는 그쪽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고, 자연히 나는 자네의 수준에 이르지 못하게 되겠지."
벤하르트는 이곳에 오기 전 카실러스가 말했던 불가능 이야기를 떠올렸다.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지만, 불가능을 선택 했다는 건가.'
"자네의 검술에 독특한 자세가 있는 것은 '검을 만드는 기술'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야. 모든 것의 주체를 도공술에 맞추어 놓은 기술. 만류귀종과 자네 유파의 기술은 의미는 일면 비슷한 듯 보이지만 정반대의 것이지. 그 도공술을 고안한 사람은 하나로 통할 결과를 정해 놓고 한가지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테지."
벤하르트는 스승인 알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스승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게 얼마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단 스승뿐만은 아니지만'
"그 한가지만을 극한까지 연마한 기술은 정점에 이르러 있네. 그런 기술에 자네의 재능과 열정이 쌓아 올린 게 자네의 실력이지. 내가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어도 그건 자네에게 실례가 되는 말이 아닐까? 자네는 내 단편적인 재능을 보고 열등감을 느꼈을지 몰라도 나는 허언은 하지 않아. 흠.. 그래 내가 자네의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몇가지 가정이 필요하겠군."
카실러스는 턱에 손가락을 가져가 무언가를 생각했다.
"연철장 혹은 그에 버금가는 기술이 내 근간이 되는 것. 그리고 에르니아 자네 정도의 재능이나 그 이상의 수준을 가진 사람이 근처에 있을 것. 내가 검을 만드는 것에 집착을 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할 것. 이 세가지 중에 하나라도 빠진다면 나는 자네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걸세. 그리고 이 세가지가 모두 충족되어 있다고 해도 아마 백번의 인생이 있다면 그 중 한번 꼴로 성공하게 되겠지."
"해보지도 않고 거기까지 알 수 있는 겁니까?"
"나는 '보는 자'니까. 타인을 파악하는 것 못지 않게 스스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이네. 자네와는 다르게 말이지. 겸손 겸양 좋지.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들여다 보는 것도 중요한 거야. 때마침 자네의 교정도 그부분과 연관이 있어 보이는 군. 좋은 기회겠어."
카실러스는 싱긋 웃었다.
"저는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자세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이유를 알아야 겠지. 자네의 검술에 자세가 나오는 것은 연철장의 기술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지. 즉 검을 단련하는 기술이 들어갈 때, 자네의 검술은 극치에 다다르게 되지. 그렇다면 교정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글세요. 연철장의 기술을 버릴 수도 없고, 다른 기술을 지금에 와서 배운다고 해도 교정이 된다거나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의 효과를 보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만, 애초에 그리 쉽게 답이 나올 문제였다면 고민조차 하지 않았겠죠."
"자네는 연철장에 너무 얽메어 있어. 신성시 여기고 있다고 해야 하나. 분명 훌륭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연철장의 기술이 불가침의 영역이냐 하면 그건 아니지."
"연철장을 무시하는 겁니까?"
"아니. 연철장을 무시할 리가 있나. 연철장의 기술은 정점에 이르러 있다고 아까도 이야기 했거늘. 다만 그 대단하신 연철장의 그릇조차도 자네를 담아두기에는 역부족이지 않나 그리 생각해서 말이지."
벤하르트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흔히 무언가를 배우게 되면 형을 배우게 되지. 기본적인 자세. 기본적인 공식. 기본적인 내용. 연철장도 다르지 않게 초식들이 존재하고 그 초식들은 자네의 몸 곳곳에 배여 있지. 그 형이야 말로 지금의 자네를 만들고 자세의 모든 기술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지만, 과연 지금의 자네에게 그런 초식이 필요할까?"
벤하르트의 살이 떨렸다. 지금껏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아니 생각할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다.
"필요 이상의 겸손은 자신을 구속하지. 스스로에 대해 똑바로 바라 보게."
"무엇을 하면 되는 겁니까?"
"어려우면서도 간단하네. 연철장의 기술에 구애받지 않는 완벽한 자유 속에서 검을 만드는 것. 어떤 행동이로든 '검을 만드는 것' 자네의 기술이 형식을 부술 수 있을 정도의 극치에 이르지 못하면 영원히 만들지 못하겠지만, 뛰어넘었다면 간단하게 해내겠지. 자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의 실력을 직시하도록 하게."
"그렇게 말하시긴 하는데 못하면 어쩌시려고."
"그렇다면 내 눈이 옹이구멍인 것이겠지."
벤하르트는 그렇게 말했지만, 눈에는 정열로 가득찼다. 벤하르트는 그저 시도해 보지 않았을 뿐이다. 연철장의 기술은 그에게는 종착점이며 우상이었다. 그렇기에 그 틀을 벗어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필요 이상의 겸손이나 겸양도 그 일환이다. 그의 눈에는 루크나 덴이 다른 사형이나 스승이 더 대단해 보였기에, 은연 중 스스로에 대한 과신을 억제해 왔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연철장이니 카실러스니 동문이니 뭐니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은 이미 온데 간데 없었다. 그저 자신의 기술의 새로운 영역을 보고 싶다는 대장장이로의 일념만이 가슴 속에 한없이 그득했다.
'천상 대장장이로군.'
검을 휘두르지 않으면 실력이 떨어지듯 검을 만들지 않으면 실력이 떨어져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벤하르트는 따로 검을 만들지 않아도 실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지?'
벤하르트는 레니아와 만나도 난 뒤부터였다고 생각했다. 레니아와 만나기 전에는 언제나 검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연철장의 검이 많이 풀리는 게 위험하다는 것을 느낀 것도 레니아와의 여행을 통해 느꼈다. 레니아와 헤어진 후인지 헤어지기 전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손을 놓아도 떨어지지 않는 실력. 붙잡고 노력해도 늘어나지 않는 실력. 벤하르트의 실력은 분명히 완성되어 있었다.
'연철장'이라는 틀 안에서는..
공방 내 철들이 흔들린다. 벤하르트의 움직임 하나 하나는 기존의 연철장의 기술과는 전혀 달랐다. 어린아이가 허우적 거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힘없는 노인이 건드리듯 휘두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떤 행동이든 연철장의 기술을 사용하듯 기는 주변을 폭발하듯 휘감았다.
"하아.. 하아.."
벤하르트의 손에는 하나의 검이 들려 있었다. 평소 언제나 검처럼 보이는 것과는 다른, 검이라고 부르는 게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의 물건이었다.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철 막대 처럼 보이기도 하고 구부정한 둔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베는 것 보다도 갈아내는 것인가?'
카실러스는 벤하르트가 들고 있는 둔기처럼 보이는 막대를 보며 생각했다.
"어떤가?"
벤하르트는 손가락에 작게 상처를 내 보았다. 마치 살을 뒤집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손 끝에 전해졌다.
"신기하네요. 이건."
자신의 손을 보며 벤하르트가 말했다. 검의 수준은 이전의 자신이 만들던 검과 크게는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 성질. 기본적으로 벤하르트의 검은 베는 검에 재료에 따라 그 방향성이 결저되었지만 지금의 그는 무엇이든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저 단순하게 '좋은' 도구를 만들던 이전과는 다르게 무엇이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후우. 조언 하나에 이치를 통달해 버린 건가? 엄청난 재능에 질려 버리겠군."
"....."
이제는 벤하르트도 카실러스의 말이 과장이라고 잡아 뗄 수가 없었다.
"어떤가? 아직도 자신의 실력과 재능에 대한 자신이 없나?"
"아닙니다. 그렇네요. 카실러스 씨의 말대로군요."
"것 보게. 스스로 증명하게 된다고 했었지?"
"카실러스 씨. 그쪽도 만만찮게 질린다구요."
돌아 오는 길. 벤하르트는 카실러스에게 물었다.
"카실러스 씨는 어떻게 그렇게 모든 것을 잘 알고 계신 겁니까?"
"모든 건 아니네. 하지만 자네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보이겠지. 세상에는 이치를 통달한 사람도 이치를 벗어난 사람도 존재하지. 자네가 '만드는 자'라면 나는 '보는 자'라네."
자신의 재능 못지 않게 타인을 본다는 것은 어떤 영역일지 벤하르트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신을 직시하게 된 벤하르트는 자신 못지 않게 카실러스도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럼 저는 이제 교정이 된 겁니까?"
"아마 수행해야 겠지. 아까 헉헉 거리지 않았나? 고작 그정도 휘두르고 호흡을 추스를 수 없다면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힘들테니까. 나도 될 수 있는 한 도와주도록 하지."
벤하르트는 카실러스를 보았다.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거대한 산처럼 흔들림이 없이 무거운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런 자가 나를 도와주는 거지?'
"저기 카실러스 씨 어째서 저를 여기까지 돕는 겁니까?"
"흠. 그래. 어째서라. 이유, 동기는 중요한 법이지."
카실러스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좋은 질문이네. 케이슨도 비슷한 것을 지적 했었지. 아무래도 이야기 하는 게 좋겠군,"
- 작가의말
찔끔찔끔 쓰고 있습니다. 다들 좋은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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