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69화-재회(5)
도시로 돌아 오는 도중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벤. 그런데 해둬야 하는 일이 뭔데?"
"아 사실은 말야. 퀘이소의 무리중 일원이 이 도시에 잡혀 있다고 하는것 같아."
라프라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렇게 떠는 라프라의 어깨를 레니아는 잡아 안정시켜 주었다.
"그렇다면,"
"그래. 그 퀘이소들을 구하고 나서 출발해야지. 부르달도시를 암묵적으로 지배하고 있는것은 룬델에서 온 대부호 크래치라는 사람인것 같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수 없지만, 악인이던 선인이던 우리는 퀘이소들을 구해야겠지."
"당연하지. 트레이야는 어떻게 할래?"
레니아의 물음에 트레이야는 조금 난처해하며 말했다.
"음. 우리는 준비를 해야 할게 있어서 말야. 크래치는 엄청난 부자이고, 또 그 집의 경계는 꽤나 삼엄한 편이지만, 너희들이라면 별 걱정은 없을테고, 인적사항이 드러나는것만 조심하면 무리 없을거라고 봐."
"의외인걸 반드시 도와줄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방금전까지만 해도 벤하르트를 동경한다고 했던 트레이야의 말은 확실히 앞뒤가 맞지 않았다.
"미안 미안."
"아니 그렇다면 할수 없이. 원래 트레이야 없이 계획을 실행하려 했었으니까, 사실상 우리에게는 손해랄것도 없는 일이고, 신상을 걸어서 까지 강요할수도 없는 일이니까,"
"아니 꼭 그런 문제때문에 이렇게 말하는건 아니지만 말야."
"그래. 뭔가 사정이 있겠지."
다른 누구도 아닌 트레이야가 하는 말이니 벤하르트는 별다른 의심이나 추궁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행동할 참이지?"
"이쪽은 준비를 해야 하고 너희들은 퀘이소를 구해야 되지? 일단은 떨어져 있는게 좋겠지만, 라스펠에 가기 직전에 만나게 되면 조금 꼬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을테니까, 출발하기 하루 전에 만나는건 어떨까?"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자."
트레이야는 머뭇 거리다가 벤하르트를 붙잡고 말했다.
"그리고 이곳 부르달에는 유명한 정보상이 하나 있어. 이미 라스펠에 대한 정보는 의미가 없을테지만, 그 사람이라면 크래치의 저택으로 침입하는 가장 좋은 길을 알고 있을거야."
"그게 누구지?"
"도시의 남동쪽에 가보면 누더기의 옷을 입은 한 거지가 있을거야. 정보상에게 가는것은 암호가 있는데, 우린 그 암호를 알아내기 위해서 두달을 고생했지. 사실 이곳에 이렇게 길게 머문건 그 암호가 꽤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었어. 결론적으로는 라스펠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지만,, 아!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끌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라스펠에 갈수 있게 되었으니 잘된건가? 어쨋든 그 거지에게 '암푸누' 라고 말하면 그 거지가 어떤 곳으로 안내해 줄거야. 안내해 주는곳은 총 세군데, 마을의 서쪽과 남쪽 동쪽에 있는 벽으로 안내해 줄텐데, 서쪽이면 '수도루' 남쪽이면 '기도루' 북쪽이면 '콘도루' 라고 말하면 비밀 통로를 열어줄거야. 어느쪽으로 가던 그 정보상을 만날수 있어. 하지만 암호를 잘못 말할 경우라면 폭발해버리니까 조심해."
"폭발?"
벤하르트가 놀라며 물었다.
"그건 인간이 아니거든. 꽤 인간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조종하는 인형이야. 재미있지?"
레니아는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
"하지만 말야.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신상은 그 정보상에게 팔리는것 아냐?"
"아 지금 말하려고 했는데, 꽤 예리해졌구나. 옛날에는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였는데 말이지."
"누가.. 말야?"
레니아 특유의 차가운 눈빛도 트레이야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부인하는게 더 수치스럽지 않을까?"
"으.."
레니아도 짐작가는게 없을리 없었다. 사실 트레이야와 만난것은 여행의 초창기 무렵. 그때의 레니아는 사실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애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에 대해 부인하는것이야 말로 수치라는것은 실로 그 말대로였기 때문에 레니아는 부인하지도 못하고 인정하기도 싫은 미묘한 기분이 될수밖에 없었다.
"자"
트레이야는 레니아에게 돈을 던졌다. 무심결에 레니아가 차례로 받아 든 돈은 3마크닐이었다.
"절대적인 침묵. 의뢰자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하는돈이 3마크닐."
그것에 이어 그녀는 다시 돈을 던졌다.
"정보료는 1마크닐. 4마크닐이면 이 도시의 어떤 정보든지 알아낼수 있지. 단 요구하는 정보가 '의뢰자의 안정성'과 겹치는 경우에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지만, 너희들이 원하는건 퀘이소를 구하기 위한 크래치의 저택침입이지? 그 경우에는 단순하게 크래치의 저택에 대한 정보 뿐이니까, 걸리는게 없는거야."
다시 트레이야는 돈을 들었다.
"어이."
제네스는 그녀를 조금 제지하려 들었지만, 트레이야는 미꾸라지처럼 그의 손을 살짝 피하며 레니아에게 돈을 던졌다.
"그 1마크닐은 지도의 값. 도시의 원하는 구역의 통합적인 지도를 얻을수 있지. 크래치의 저택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1마크닐이면 구역은 전부 알수 있을거야. 본래 이곳 부르달은 예전에도 꽤 큰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수들의 습격에 대비한 여러 비밀 통로가 있다는것 같거든. 그 지도를 얻는데 필요한 값으로 가져가도록 해."
"5마크닐이나 선뜻 내어 주다니, 트레이야 너 괜찮아?"
벤하르트는 물론이고 레니아도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 돈이면 몇달은 여행할수 있을 정도의 거금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네스가 말린것으로 생각해보면 실제로 엄청난 여유가 있는 상태는 아닐텐데,'
"일을 도와주지도 못하잖아.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될수야 없으니까, 미리 써두는 돈이야."
"아무리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원수 까지는 아니잖아."
"글쎄.. 참고로 너희가 나에게 선뜻 내어준 돈은 자그마치 800마크닐이었잖아? 5마크닐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음 음... 앞으로 160번만 더 이렇게 하면 돈을 전부 갚는건가? 그런 큰 돈을 은혜 입었음에도 돕지 않는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배은망덕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선뜻 내어주지도 않았고, 최대한 고민고민해서 내어준거라니까.."
"그래도 내어줬잖아. 내가 이곳에 이렇게 서 있을수 있는건 전부 너희들 덕분이야. 세상을 뒤져봐. 어디에서도 '타인'에게는 1크닐 조차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 그정도로 돈은 소중한 것이었음에도 너희들은 모르는 나를 구해주기 위해 그 거금을 내어주었지."
레니아는 부스스하게 눈을 감아 신음하며 말했다.
"음.. 그때는 돈에 대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벤이야 흐물흐물한 상태였고, 아마 지금이라면 그렇게 했을지.."
"아마 하지 않았을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마 속이 검다 못해 그을린 채로 하거나 했을걸. 안할지도 모르고,"
"그러니 5마크닐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니 오히려 받아주지 않으면 곤란해. 받아주지 않으면 자해라도 해버릴지도 몰라."
"왜이리 과격한거냐! 너는."
"받아주면 그뿐이잖아?"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뒤에서는 뭐라 중얼 거리면서 조잡한 살기를 띄우는 제네스가 있었지만, 그런 제네스는 트레이야의 한 팔에 사로 잡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건 이후로 미루기로 하고 일단 2일 후 밤에 보도록 하자."
"그래. 알았어.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것도 뭐한것은 사실이지."
"그럼 그때에.."
트레이야와 제네스는 바람같이 도시로 들어갔다.
트레이야가 떠나고 나서 라프라는 굉장히 불안해 하면서 물었다.
"저희 퀘이소가 잡혔다는게 사실이에요?"
벤하르트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사실인것 같다. 우리가 이곳을 목표로 온 이유를 알고 있지? 첫째로는 우리가 에린델을 목표로 했었던 이유인 라스펠을 보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퀘이소들이 이곳을 지난다는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아마 얼마전 이곳을 지나다가 잡힌 모양이야. 최근 부르달도시는 마수들을 사냥하는것에 혈안이 되어 있거든. 대부호의 취미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 때문에 주변에 마수들도 없었던 거야."
"취미?"
"....."
벤하르트는 대답할수 없었다. 사실 모든 생물이 그저 인식하지 못할뿐이지 어느정도의 생각이라는것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퀘이소라는 마수들은 상당히 인간에 가까운 이성체였다. 그런 그들이 인간에게 사육되고 애완으로 취급받는0 것을 어찌 라프라에게 말할수 있을까. 되려 그런점때문에 아직 살아있을 확률이 높다는것이 다행이었지만, 그 다행인점은 라프라에게는 절대 말해서는 안될 금기였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거야. 라프라 기억해둬. 되려 이질적인것은 벤이야. 이녀석을 근간으로 인간을 생각하면 안돼. 사실을 말해줄까? 아마도 그 대부호는 그런 취미의 악과 선을 떠나 이 도시 사람들에게는 좋은 취급을 받고 있을거야. 어째서인지 알아?"
아직 어린 라프라는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할수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인간에게 마수들이란 해악적인 것이거든. 그 자가 선하고 악하고를 떠나 이 주변이 안정되었다는 사실에 인간들은 좋아하지. 그것에 무수히 희생된 무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 오로지 인간이라는 굴레를 자신들을 그리고 자기 자신에 이르기까지, 스스로를 중점적으로 생각하는게 인간이야. 라프라 너는 퀘이소를 잡은 그 인간을 안좋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부분 이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지."
"그런가요."
"어디에나 이런건 마찬가지지만, 인간은 특히나 심하지. 고로 이녀석과 인간을 동격화 해서 보면 안돼. 벤도 엄밀히 말하면 인간에 한없이 가깝지만, 이녀석의 이기주의는 타인을 위한 이기주의거든. 가끔은 그런게 괴롭지만,"
레니아의 마지막 말은 조금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마라. 트레이야가 그렇게 말했다는것은 우리가 퀘이소를 구할수 있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것을 뜻하는 것이니까 말야. 괜찮을거야."
한번 트레이야와 제네스와 싸웠던 벤하르트는 그들이 어느정도의 실력자인가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트레이야가 자신들을 그렇게 말해주면서 돕지 않는다는것은 실상 둘만으로도 충분히 할만하다는 결론을 도출할수 있는 것이었다.
"정 안되면, 도시와 통째로 싸우는것도 괜찮겠지."
팔을 걷어붙이면서 레니아가 말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너희들은 생각이 너무 과격해!"
벤하르트의 호들갑스러운 질타에 연이은 울상에서 살짝 미소 지었다. 동족이 도시에 잡혀 있다고 들었을때에는 청천 벽력과도 같아서 머리가 혼잡하기 막급했다.
"도로호우이를 생각하면 이정도 쯤은 괜찮지 않아?"
레니아는 속편하게 이야기 했지만, 벤하르트는 그 말에 칼같이 즉답했다.
"전혀!"
벤하르트는 단언 할수 있었다. 부르달에 모인 사람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완벽한 치안을 이루고 있는것은 마수들을 그만큼 사냥했다는 증거였다. 이곳에서 마수를 잡는것은 그것만으로도 돈이 된다는것을 안 '에린델'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룬델에 비해서 선천적인 신체 능력이 배는 더 되는 에린델. 그 중에서도 일류라고 할수 있을법한 사람들은 오늘 벤하르트에게 들어온 사람만 해도 셋은 가볍게 넘었다. 트레이야의 신상만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게 하라는 말은 결코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막말로 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의 벤하르트라면 50수 안에 잡을수 있을만큼 강한 사람도 있을 정도니 도시 전체를 적으로 삼는다면 되려 더욱 고생 꽤나 할것이 틀림 없었다.
벤하르트의 표정을 보고 레니아도 어느정도 감은 잡을수 있었다. 에린델의 사람들은 일반인 부터가 룬델에 비하면 그 선천적인 능력은 괴물이나 다름 없었다. 에린델의 장정 한명이면 무장을 안한 룬델의 병사들은 열은 넘게 덤벼야 할 정도였으니, 그들중에서도 기를 사용하거나 무술이나 무도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그만큼 상대하기 더 까다로울게 뻔한 일이었다.
"일단은 내 상태를 완벽하게 만들고 나서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는게 좋겠어. 이틀째 밤에는 트레이야를 만나야 하니까, 내일 밤이 좋겠지."
만만치 않다고 해도 벤하르트는 나름대로 자신은 있었다. 최악의 경우 레니아의 말처럼 도시를 적으로 돌린다고 할지라도 라프라를 데리고 잡히지 않을 정도의 자신은 충분했다. 덴에게서의 수행 이후로 조금 자신감이 붙었기 때문인데, 바로 얼마 전 트레이야와 싸울때까지의 그의 상태는 사실 조금은 자신감을 넘은 호기(豪氣)에 가까웠다. 그 익히기 어렵다는 유려의 움직임부터 시작해 자신에게 숨겨진 능력에 대한 덴의 칭찬등이 본래 그에게 없었던 자신감을 과하게 심어준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트레이야나 제네스에게도 그만큼 쉽게 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트레이야에게 당해 몸소 그녀의 지적을 받은 지금 그의 호기스러운 상태는 조금 완화 되어서 딱 좋을 정도로 달아 올라 있었다. 방심이 아닌 호방함으로 호기(豪氣)는 변해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일단 정보부터 얻어 둘까?"
"그러는게 좋겠어. 아.. 맞다. 그런데 혹시 암호 기억해?"
"'암푸누' 서쪽'수도루' 남쪽'기도루' 북쪽 '콘도루' 말이지?"
레니아는 마치 그 말을 저장이라도 해놓은듯 칼같이 꺼내 말했다.
"이럴때면 참 네가 대단한것 같아. 나는 사실 암푸누 하나 밖에 기억하지 못했거든."
"흥. 평소에도 조금 자각좀 하란 말야."
"충분히 하고 있어 특히 요즘에는 말이지."
"그럼 일단은 거지를 찾으러 가보자."
"네."
"좋아."
그들은 다시 부르달 도시로 들어갔다.
- 작가의말
후딱후딱 갑니다. 과연 제가 연참대전 끝날때까지 라스펠에 도달할수 있을까요? 솔직히 연참대전이 끝나고 나면,
시험기간이거든요. 올리는게 조금 애매해집니다. 하나 둘정도는 몰라도, 마지막 3~4주인지라 쑥 비게 되어 버리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 라고 말하고 싶었던 그 미용사의 기분이 이해가 갑니다. 어제 속 시원히 그냥 초창기의 댓글을 털어 놓았더니 속이 아주 시원하더군요. (사람들 반응도 좋았고요 ^^;;)
으.. 지금 남아 계시는 분들은 300분의 1의 확률을 뚫으신 분들이니 백번 감사하신 분들입니다. 이렇게 길게까지 봐주시다니 말이죠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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