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73화-
그날밤 부르달 도시는 나름대로 분주했다. 혹여 전날에 올지도 모른다는 레니아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은 혹시 올지 모르는 침입에 방비를 철저히 했다. 비단 그런 무리가 아니어도 도시 내의 분위기는 꽤나 달아올라 있었다.
과연 도적들은 퀘이소를 훔쳐가는게 가능한 것인가? 에 대해 예상하는 무리들로 가득했다.
레니아는 도시를 한눈에 볼수 있는 자리를 점하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집중했다. 도시를 한눈에 볼수 있다는것은 곧 그만큼 눈에 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상당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음."
그녀는 이 밤에 나와 도시를 배회하며 이 자리를 점거 하기 까지 사람들의 반응을 들어 왔기에 '오늘은 오지 않을것'이라고 거진 확신할수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높은 가능성을 의미할뿐이었기에, 조심해야 할 필요는 다분했다.
도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의문의 도적은 지금뿐만 아니라 여러번 마수들을 훔쳐갔다는 이야기였다. 어찌나 귀신같이 훔쳐가던지, 지금껏 단 한번도 막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크래치도 큰마음을 먹고 그 도적들을 잡을 생각을 결정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의문의도적에 대한 현상금은 무려 1000마크닐. 대부호인 크래치에게 있어서 1000마크닐이라는 돈은 다소 비싸긴 해도 충분히 걸만한 재량이 있었다. 크래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낼수 있을만한 돈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1000마크닐이라는돈은 몇년은 놀고 먹을수 있을 만한 거금이었다. 때문에 반은 호기심으로 반은 생사를 걸고 의문의 도적을 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 수는 역대 최대에 이른다고 하여, 사람들은 의문의 도적이 승리할것인가, 혹은 잡힐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몇번이고 같은 일을 했다고 한다면, 그 날짜는 지키겠지.'
하지만 이번에 모인 사람들은 그 정도가 상당히 심했다. 레니아도 다음날 벤하르트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들 정도로 수비는 강대해져만 갔다. 그렇기에 의문의 도적이 오늘 올수 있을 확률도 배제할수는 없었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의표를 찌를 의도의 확률은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이거리면,, 조금 애매한데, 하지만 더 접근했다가는 저녀석들에게 들키겠지. 의심을 사는것만은 절대로 피해야해.'
의심을 사게 된다면, 최악의 경우 벤하르트 혼자서 퀘이소들을 데리고 와야 할 경우가 생길가능성도 있었기에 그녀는 최대한 신중을 기했다.
"하아. 벤 녀석 도대체 어떻게 마을의 수비를 했던걸까."
중얼 거린것은 벤하르트에 대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그녀는 집중하는것을 멈추지 않았고, 집중은 밤새도록 계속할수도 있었지만, 벌써부터 몸은 그녀의 그 행동에 대한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본능은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성으로 틀어 막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 차려야지.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딴청을 부릴수야 없으니까,'
그녀가 상대로 삼고 있는것은 지금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훔치는것에 성공했다고 하는 스스로를 의문의 도적이라고 밝히는 자들. 그정도의 실력이라면 방심 한번에 그녀의 마법을 적중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것은 당연했다.
'아.. 그렇지만 안오면 생고생 하게 되는건가. 그건 그것 나름대로 미묘하네.'
새삼스래 그녀는 벤하르트를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날 도적은 오지 않았다. 벤하르트는 완벽하다고는 할수 없었지만 제법 기를 회복 할수 있었고 레니아는 질렸다는듯한 얼굴로 너털걸음으로 돌아왔다.
"수고 했어. 별탈 없어서 다행이다."
"고마워. 아 피곤하다. 벤 네가 어떻게 이짓을 할수 있었는지 나는 이해를 할수가 없어."
"의지와 노력이지."
"정말 그거야 말로 어떤 상황에서든 써먹을수 있는 마법의 말이네. 일단 보고를 하자면 경계는 삼엄해. 벤 네가 말하는것처럼 정공법으로 나간다면 굉장히 힘들지도 모를 정도로,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있어."
그녀는 도시 사람들을 통해 들은 현상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말이 1000마크닐이지.. 나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눈 돌아갈만 한것 아냐? 아마 도시에 있는 힘 좀 쓴다는 녀석들은 전부 참가했을걸."
"그래?"
"실제로 도로호우이 때보다 전력이 더 대단한것 같아. 상황은 그정도고 딱히 별일은 없었어. 몇놈들이 나를 오해하려고 하긴 했었지만, 이쪽이 피하기도 했고, 어쨋든 나는 한숨 잘게. 여섯시가 되면 깨워줘."
"그래."
레니아는 벌러덩 눕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안정화된 모습으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저기.. 괜찮을까요?"
걱정스럽게 라프라는 벤하르트를 보며 물었다.
"아마 괜찮을거야. 걱정마라."
그렇게 이야기는 했지만, 벤하르트는 이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프라에게 쓸데없는 불안감을 안겨줄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그는 최대한 밝은 얼굴로 말했다.
"우리 정도의 수준이 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리는 없을테니까 너희 종족은 꼭 구해주도록 할테니 걱정 하지마."
"아니 저는,, 저희 부족도 부족이지만, 언니 오빠도 걱정이 돼요."
"그래? 고맙다."
벤하르트는 라프라의 호의를 순순히 받아 들이고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 집중하려다 라프라를 돌아 보고는 말했다.
"참고로 말해두지만, 라프라 너는 따라 오면 안돼. 그건 알고 있지?"
"네."
그녀는 다소 서운한듯한 기색을 숨김 없이 드러냈다.
"아쉬워 해도 할수 없어. 네가 오게 되면 사실상 정말로 퀘이소를 구해내는건 정말 힘들어 지게 되거든."
"알고 있어요."
벤하르트의 말은 평상시와 다르게 꽤나 직설적이었다. 어중간하게 풀어 두어서 라프라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을 끝내고 벤하르트는 다시 명상에 들어갔다. 라프라는 벤하르트의 기를 볼수는 없었지만, 순간 주위가 따듯해 지는것을 느꼈다. 더 방해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레니아가 읽던 책 하나를 들고 주변에서 읽기 시작했다.
"벤. 상태는 어때?"
"꽤 괜찮아 졌어."
"평상시를 100으로 놓고본다면?"
"90 이상 정도? 아니 지금이라면 더 좋은것 같기도 한데,"
벤하르트가 몸을 풀면서 그렇게 말하자 레니아는 미덥지 않다는듯 말했다.
"기를 거의 고갈당했는데 하룻밤사이에 90이상이 될리가 없잖아. 특유의 거짓말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훤히 드러나 보인다구."
"아니 정말 사실을 말한거야."
"뭐?"
벤하르트는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호흡을 길게 내쉬고는 기를 방출했다. 레니아도 보는 눈은 높아졌기 때문에 벤하르트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레니아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글세. 나도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상태는 괜찮아. 이제 퀘이소를 구출하는데 집중하기만 하면 될것 같아. 라프라 다녀올게."
"네! 조심하세요."
"기대하고 있어."
조금 이른시간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밖으로 나왔다.
"어떻게 할까?"
"정공법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주장하지 못하겠어."
"자각은 하고 있었던거야?"
레니아는 말없이 벤하르트의 등을 툭하니 쳤다.
"농담할때야?"
"어른이 되었구나."
"전체적으로 경비가 허술한 부분은 거의 없었어. 하지만 수준으로 따지고 볼때 안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경비가 삼엄해졌지."
"그래?"
"특히나 시오우스가 말해주었던 그 퀘이소들을 노리는 방은 굉장히 삼엄하더라. 크래치의 저택에 고용되어 있는 고수들이 전부 그쪽에 포진되어 있어서 전투는 불가피 할지도 몰라."
"그런가."
고요하게 벤하르트는 자신의 기를 다시 갈무리했다.
"그녀석들이 습격하기 전이 좋을까 아니면 후가 좋을까?"
"후가 좋지 않을까?"
"하지만 말야. 그녀석들이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고도 훔칠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사이에 퀘이소들이 훔쳐질지도 모르지 않겠어?"
"그것도 그렇군."
"어.. 아!"
레니아는 나지막하게 탄성을 내질렀다.
"왜그래?"
"그거야 벤. 우리중 한명은 녀석들을 잡는 쪽에 속하는건 어떨까?"
"오. 그것 괜찮은데?"
"시간은 애매하지만, 이정도라면 우리들의 실력에 따른 배정이 가능할지도 몰라."
"그렇네. 그렇다면 한명은 외부에서 침입하는 쪽인가?"
"그래. 두명이 동시에 올 경우에는 움직임이 훤히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 한명은 확실한 침입자로 가정해주는쪽이 좋다고 봐. 역시 내부의 배신자의 역할에는 내가 딱이겠지?"
"뭐? 어째서?"
"그야 내 마법이 네 기 보다 더 범용성이 뛰어나니까, 내부에서 돕기에 네 검술은 조금 한정적인 입지를 지니잖아? 나 같은 경우는 지키다가 혹시 만일의 경우 도적들에게 마력의 실을 붙이는것도 가능하지만, 벤 너는 그저 추격을 해야하니까,"
"그건 그렇군. 작전 자체는 굉장히 좋고 불만은 없지만, 혹시나 해서 묻겠는데, 레니아 너 혹시 귀신을 무서워 하는것은 아니겠지?"
벤하르트의 물음에 레니아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무서워 할리가 없잖아. 나는 신이었는걸."
"왠지 얼굴색이 창백해진것 같은데,"
"절대로 기분 탓이야."
"레니아 네가 귀신을 무서워 할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니라니까!"
"그럼 바꾸자. 너보다야 못하지만, 나라고 해도 충분히 내부의 역할을 잘 해낼 자신은 있으니까 말야."
"아냐. 미덥지 않아."
"뭣하면 네 말대로 깽판을 쳐서라도 퀘이소들을 구해내 보일테니까 그점은 걱정 말고 바꾸도록 하자."
"....."
레니아는 말문을 멈추었다.
"...서워."
"뭐?"
벤하르트는 못들은척 반문했다.
"무섭다고! 나는 말야. 신이었던 시절에 귀신에게 당했던 적이 있단 말야. 귀신을 얕보면 곤란해. 그래뵈도 신(神)자가 붙는 마물. 인간의 신앙심을 모으면 신이 되는것과 같이 귀신도 어떤 의미에서는 신처럼 아니 지독한 녀석이 될수도 있지."
창백한 얼굴로 그녀는 말을 멈추었다.
"질이 나빠. 그녀석들은."
"잠깐..."
"그러니까 부탁해. 벤. 침입자는 네가 맡아줘."
"아니. 그렇게 이야기하면 나도 조금.."
"정말 그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져."
고개를 돌리며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말은 들은척도 않은채 말했다.
"어이.."
"그럼 부탁할게. 벤. 나는 내부에서 인정받아 너를 도울 준비를 하고 있을테니까 말야. 실은 연결해두고 지도는 여기에 있어. 지도를 잘 보고 이곳으로 오면 될거야."
"레니아!"
"부탁해."
"....."
'설마 거기서 시원하게 인정해버릴 줄이야.'
꼼짝없이 레니아에게 당해버린 벤하르트는 어쩔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 일은 내가 하도록 할게."
"고마워."
레니아는 진심으로 고맙다는듯 말했다.
"그리고 침입 말인데, 내가 안에 있다고 해도 실제로 내가 퀘이소를 훔칠수는 없어. 왜냐하면 얼굴이 팔릴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부에서 도적들이 오는것을 감시할게. 그렇게 되면 도적들이 왔을때, 너에게 신호를 보내는거야. 그러면 너도 샛길로 나와서 네가 제 3의 도적이 되어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퀘이소를 훔치는건 어때?"
"나도 지키는 사람처럼 위장해 들어가는건 어때?"
"퀘이소를 데리고 나올 수단이 없잖아. 퀘이소를 데리고 나온 순간 네가 도적이라는걸 다 알게 될걸. 그게 아니어도 서로간에 구분하는 법칙이라도 있는 경우에는 되려 영락없이 침입자라는 낙인을 찍히게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처음부터 도적임을 가장하는게 도리어 낫다고 생각해."
"그것도 그렇겠군."
"너는 나를 놀리려고 했을지 몰라도, 이 경우에 네 논리대로라면 편한건 네쪽이라구."
"그렇지."
실제로 벤하르트도 레니아가 하려는 말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는 레니아를 못믿는것은 아니었지만, '목숨'이 담보로 잡히는 위험한 일은 자신이 감수하고 싶었다. 지하의 길도 침입자의 쪽도 레니아에 맡기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수였기 때문에 차라리 자신이 맡는쪽이 마음은 편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아 그리고 혹시 네 수납하는 공간기술은."
"안돼. 여기에는 공기 같은게 없거든. 있는것은 존재하는 공간뿐이지. 생물체가 들어가게 되면 당장에 죽어 버리게 될걸? 애초에 넣어지지도 않도록 만들어 둔거고 말야."
"어째서?"
"벤. 내가 필요했던건 편리하게 들고 다닐수 있는 도구였어. 만약 네가 생각한것을 넣었을 경우에 이 마법은 '목숨마저도 앗아갈수 있는' 무기로 변하게 되지. 가령 이 공간에 누군가를 가두는것을 전투에 사용하게 되면 어떻게 될것 같아? 공간을 뒤엎으면 숨을 못쉬게 한다거나.."
"대단하겠지."
"하지만 그런 고 수익적인 기술은 그만큼의 마력을 네 경우에는 기를 동반하게 되어 있어. 높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부담을 짊어 져야 한다는것이지. 때문에 나는 그런 기능은 완벽하게 배제한 마법을 만들었던 거야. 너도 기술을 사용할때는 참고로 해두는게 좋아."
"그런거야?"
"그런거지. 기와 마법은 달라 보이지만, 다른것은 오로지 성격차이 뿐이야. 그 기본적인 힘의 사용은 동일하니까,"
"그랬지."
"그나저나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야? 어쨋든 작전은 그걸로 가도록 하자. 나는 내부에서 너는 외부에서 침입 준비를 하고 도적들이 들어오게 되면 나는 최대한 소란을 피우며 네게 연락을 하도록 할게. 그렇게 되면 작전 실행이야."
"좋아."
"조심해. 벤."
그녀의 으스스한 소리에 벤하르트는 왠지 자신감이 떨어지며 지하의 비밀 통로로 향했다.
- 작가의말
여러가지 의미로 쓰리씁쓸 하군요. 제 추한 감정에 쓰리고, 상황에 쓰립니다. 여러가지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추천글을 써주신 jeuskan님 그리고 독자님들에게 죄송스럽네요.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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