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67화(625화)
"아버지라니.. 나이가 맞지 않잖습니까."
수염은 덥수룩 햇지만, 케이슨은 그렇게 까지 늙은 모습은 아니었다.
"그거야 이쪽의 사정이고, 내 입장에서 보면 네가 그 모습을 하고 있는게 더 놀라운 것이지. 어니스력이 만년을 넘었다는건 너도 그 나이를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그건.. 그렇겠지요."
"서로간에 뭐라할 처지는 아니라는 것이지. 그 이야기는 둘째 치더라도, 너 어째서 데인을 기억하지 못하는거지?"
"데인이라고 하셔도 저는 어렸을때 다른 곳에서 길러졌었던 기억 밖에 없기 때문에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래뵈도 나이가 백을 넘었다구요."
"그런가.. 그렇다면 데인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긴가."
케이슨은 씁쓸해 보이는 얼굴로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것도 인연이구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을지도, 그렇군 시간이 이렇다고 한다면 '그녀석'이 한 말도 일리는 있겠어."
"그녀석.. 이요?"
"사실 나는 시간 여행자라고,"
벤하르트를 향해 엄지를 세우면서 케이슨은 밝게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이봐 농담이 아니라고, 이 모습을 보면 상상할 수 있잖냐. 거기다가 내가 시간 여행을 하게 된 일은 네 아버지와도 관계가 있단 말이다."
"저기 물론 아들인 입장에서 아버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건 당연하지만, 저는 지난 수십년간 제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라고 해도 썩 와닿는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건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케이슨은 경박해 보이는 웃음을 거두고 벤하르트를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벤하르트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저기 뭘.."
"잠시만,"
한순간 케이슨의 손에서 살짝 빛이 나더니 벤하르트는 둔탁한 충격에 의해 뒤로 몇바퀴나 굴러 벽에 부딪혀 버렸다.
"뭘.. 으윽.."
무언가 막혀 있던 것에 구멍이라도 나듯 시원한 느낌이 그의 머릿속에 퍼져 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이정도야."
"읏.."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마치 봇물터지듯 퍼져나갔다.
"이게 무슨.."
"나는 말야.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모르고, 너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한가지만은 잘 알고 있어. 너는 절대로 데인을 잊거나 할 녀석은 아니라는 거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다고 해도 데인을 잊을리는 없는 녀석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기억상실이거나 혹은 기억조작이거나 그런 종류의 문제겠지. 지금 사용한 것은 어디선가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긴 하다만, 효과는 있었나?"
"....."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싶다. 뭐 그런 얼굴이로군."
"어머니도. 입니다."
"그렇겠지. 바야흐로 수십년전 네가 아직 어린아이였을때의 일이다. 세계는 전란에 휩싸여 있었지. 룬델에서의 각국의 전쟁 그리고 다른 대륙 가우스에까지 퍼져있는 '전쟁' 이라는 이름의 독. 나와 데인은 샤이 한의 군인이었다."
"군인!?"
"그래.."
아직은 샤이 한이 대국으로써 존재하고 있을 무렵의 일. 샤이 한은 용장과 지장 강한 국력등을 가진 어니스대륙에서도 가장 큰 국가였다. 그들의 상대가 되는 국력을 가진 나라라고 한다면 라군델정도가 있었을까, 그 라군델마저도 샤이 한에 비하면 한수 접어 들 정도라고 전해지던 시절의 이야기.
"정말로 한가해서 심심한 날이다. 어이 데인 뭐하고 있는거냐?"
"검의 손질."
"재미 없는 녀석. 이런 한가한 날에 무슨 짓거리를 하고 있는건지."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전쟁터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것은 뭐라고 해도 자신의 무기라고,"
"그 말에 이의는 없다만, 이런 날에 해야한다고 하기에는 날이 너무 좋잖냐?"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건데? 케이슨."
"놀러가자!"
"미안하지만, 이쪽은 이제 혼자가 아니라서 말이지."
케이슨은 데인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이 배신자 녀석.. 마치 이제 너와는 어울릴 수 없어!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잖아!"
"꼭 그런건 아니지만, 어차피 놀러간다고 해도,"
케이슨의 난봉꾼 기질은 이미 주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너와 함께 다녔다 라는 이야기를 테미가 듣는건 싫단 말이지."
"크읏 믿었던 친우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친우는 친우 그리고 이건 이거지. 벤하르트도 나이가 차고 있고 조신하게 살아야겠지 어쨋든 그런 의미에서 너는 너무 소란 스럽다고. 이러니 저러니 가족을 생각하게 되면 건실한 취미를 가져야 하는 법이지."
"그래서 한다는 것이 검을 손질하는 거라고!? 헹. 재미없는 녀석."
"그래. 이제는 지켜야 할 것이 생겨 버렸으니까, 벤하르트와 테미를 생각하니, 이런 것이나 하게 되더라고, 여차할때 라는 건 오지 않았을때 준비해야 하는 것이잖아?"
데인은 시퍼렇게 서린 검을 집어 넣고 케이슨에게 말했다.
"케이슨 최근 잇달아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그거야 뭐라고 생각하겠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각지에서 발발하는 사건 그리고 라군델과 샤이한 뿐만이 아니라 어니스의 전 지역에서 범람하듯 일어나는 소규모에서 대규모의 전쟁. 그리고 그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의미도 없고 사실상 나라는 손해만 누적되어 가고 있는 실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계속하려고 하는 분자들.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잖냐."
"그래. 어째서 상층부는 그정도로 전쟁을 하려고 노력하는거지?"
"알겠냐? 높으신 분들의 생각따위를 말야. 우리편이 아니거나 내가 더 높은 직위였다면 말야. 당장에 버릇을 고쳐줬을 거라고,"
케이슨은 눈살을 찌푸리며 분한 듯 고개를 떨구었다.
"참 밥맛 떨어지게 한다니까,"
"미안. 너도 한시라도 빨리 결혼이나 하라고 지킬 것이 있다면, 목적의식부터가 달라지니까 말야. 이 기분나쁜 전쟁터에서도 동기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고,"
"흥 긍정주의인 네녀석이나 할 말이겠지. 이 전쟁에 명분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전쟁에 명령을 따르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잊지 않으면 정신이 버틸수가 없다고, 요즘은 그냥 일개 병사였다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은 한단 말이지."
"어째서?"
"이정도의 '직위'가 아니라면 말야. 이 전쟁이 무엇을 위함인지 의문을 품을리도 없으니까,"
한가한날이 되어 버리면 생각나 버린다. 지난 전쟁에 대한 생각이 자신의 마음을 뚫고 서서히 구멍을 열고 나와 버린다. 쓸데 없는 공격 쓸데 없는 전쟁. 그리고 그 참상을 그는 잊고 싶었다. 그랬기에 케이슨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꼭두각시마냥 명령의 당위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싸웠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그렇군."
케이슨은 자신의 한 말에 전쟁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 보다가 누군가를 알아채고 너털웃음을 짓고 데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왜?"
"뒤나 봐라."
"아.. 테미. 벤하르트."
"아빠!!"
어린 벤하르트는 데인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그에게 안겼다.
"사이 좋은 부자지간이구만,"
"안녕하세요. 케이슨."
"아 하하.. 네 오랜만입니다."
"아직도 별명 그대로 놀고 계씬건 아니겠죠?"
날카로운 눈으로 테미가 쏘아붙히자 케이슨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럴리가요. 요즘은 바른생활 사나이로 불리고 있습니다. 헤헤.."
"하아.. 듣기로는 한량이라거나 난봉꾼이라거나 배신자 데인이라거나.. 이런 저런 소문의 중심인 것 같던데 말이죠."
"그럴리가요. 유언비어라니까요 유언비어."
"유언비어라면 좋겠지만, 데인을 꾄다면 용서하지 않을거에요."
"알았다니까요. 어이 데인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건 사절이라 난 갈란다."
케이슨은 단번에 성벽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그런 케이슨을 보고 테미는 전혀 놀라움도 없이 말했다.
"아! 도망쳐버렸다."
"그만해두라고, 저녀석도 외로워서 그러는거니까."
데인의 말에 테미는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같이 간적은 없겠죠?"
"없어 없어.. 저녀석에게 미안할 정도로 없다고,"
"알겠어요. 하여간 케이슨씨도 빨리 결혼 하셔야 할텐데,"
"그러게나."
"아래에서 들었는데 오늘의 일은 이걸로 끝이라고 하던데,"
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래. 이후는 벤하르트의 검술이나 조금 봐주도록 할까?"
"와 정말요!?"
찌릿 하고 쳐다보는 테미를 보고 데인은 기겁하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그렇지만 테미 호신술 정도는 가르쳐줘도.."
"안되요."
"알았다고,"
"하아."
부자는 쌍으로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고로 전쟁터에서는 타인을 속이는게 일상다반사라는 이야기지."
"그럼 아빠도 속이는거에요?"
"뭐 어느정도는 시범을 보여줄까?"
"네!"
"나에게는 무기가 없습니다. 적인 벤하르트에게는 무기가 있습니다. 자 그럼 어떻게 할 것 같아?"
"음.. 공격?"
"그래 해볼래?"
데인이 건넨 나무 막대기로 벤하르트는 바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데인은 품 안에 있던 단검을 들고 나무를 잘게 썰어 버렸다. 벤하르트는 잘라진 자신의 나무조각을 보더니 분한 얼굴로 데인에게 말했다.
"치사해요!"
"그게 전쟁이라는 거야. 뭐 같은 이치로 여러가지 응용하는 건 많지만, 벤. 나는 네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구나."
"방법?"
"예를 들자면, 그래. 별로 싸운다거나 하는 방법이 아니고 말이지.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때 시체 곁에 죽은 듯 쓰러져 있으면 말야. 그 사람은 시체라고 생각해서 더 건드리지 않거든. 집안에 있는 사람은 약탈해도 죽은 사람은 전쟁이 끝날때까지 그들에게는 죽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사각이라는 것이지. 예외는 언제든지 있지만 말야."
"시체?"
벤하르트가 시체라는 말에 의아해하자 데인은 당황하며 말했다.
"읏.. 어이 벤하르트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우리가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에 대해서 비밀로 한다면 검술을 하나씩 알려주도록 할테니까,"
"정말요!?"
"그래."
좋아하는 벤하르트를 보고 데인은 보이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같은 전란..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내부로 외부로 전쟁중인 샤이 한에서 요직을 맡고 있는 이상 어쩐지 그는 불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들에게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는 아버지라니,, 정말 아버지 실격이다.'
다행인것은 벤하르트가 그의 이야기를 재밌게 받아 준다는 것이었다. 성격상 딱히 전쟁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그저 자신이 이야기 하는 이야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좋아하는 아들을 보고 있노라면 죄책감과 기쁨이 어우러져 교차했다. 검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는 테미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었다. 벤하르트마저 군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 터.. 하지만 그가 지금 벤하르트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딱히 아들을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전쟁의 참상 그 잔혹함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테미는 전혀 그의 이야기를 수용해주지는 않았다.
'어쨋든 가장 중요한것은 한시라도 빨리 전쟁이 끝나는 것이겠지.'
"데인! 거기 있어요?"
'어쨋든 이 일을 테미한테 들켰다가는 한동안 고생하겠지?'
"벤하르트 알았지? 테미한테는 비밀로 하는거야. 남자대 남자로써의 약속이다."
둘은 서로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져가 약속 했다.
- 작가의말
후우.. 전화에 썼던 말은 사실입니다.
이제 제가 취직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1년간은 정말로 소설을 거의 쓰기 어려워 질 듯 싶습니다. (아직 조금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기분이 울적해져서 써버렸네요.. ㅠㅠ..
그런고로 곧 긴 연중이 다가 올 것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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