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45화(601화)-마굴(5)
그들은 안내인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은 기이하게 생긴 물건의 백색의 빛으로 밝혀져 있었다.
'아홉 정도인가?'
안을 밝히는 빛은 강하지 않아서, 전원을 비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벤하르트는 짧은 시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내자를 포함하면 열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빛을 내는 물건의 앞에는 남색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 서 있었다.
"그쪽이 이번에 이곳에 들어온 사람인가보군."
"그렇습니다만,"
"하아..."
그녀는 벤하르트를 보며 대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
벤하르트는 그녀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도 그런 그의 얼굴을 읽었는지 한발자국 물러서서 말했다.
"차근차근 이야기 하기 전에,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뭐지?"
"마굴을 없애기 위해서."
"뭐? 아하.. 그렇군. 그래 그거라면 납득이 안될것도 없지. 일단 통성명을 하도록 할까? 내 이름은 에실러라고 해. 직업은 도적이지. 임시직이지만, 이곳의 지휘를 맡고 있어."
'도적?'
전혀 의외의 직업이 튀어나오자 벤하르트는 내심 살짝 놀라며 말했다.
"제 이름은 벤하르트 이쪽은 이니프라고 합니다."
"딱딱한건 싫어하니까, 말은 놓기로 하자고, 괜찮겠지?"
그녀는 시원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이곳 '마굴'이라고 했던가? 이곳을 없애버리기 위해서 들어왔다고?"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수로?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건가?"
에실러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제부터 해봐야겠지."
"그렇군. 그럼 일단 이쪽의 투정부터 들어 줘야겠어."
"투정?"
에실러는 의자에 앉아 심상치않은 얼굴을 해 보였다.
"이야기 하자면 긴데 말이지. 이 마굴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건 얼마나 있지?"
"글세. 흡수한다는 것과 그 크기를 키워 세력을 넓히는 점을 알고 있으려나?"
"틀리지는 않아. 하지만 자세하게는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 이곳은 '독'이야."
"독?"
"아 착각은 하지 말아줘. 정식 명칭은 아니고 그저 내가 제멋대로 지어낸 것이니까, 독을 먹는 독 이라고 해둘까?"
에실러의 말에 벤하르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추론에 불과하지만 일단 여기서 오래 머물러 여러 정보를 토대로 한 이야기를 해주도록 할게. 괜찮겠지?"
"그렇게 해준다면 이쪽은 감사하지."
"이곳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니야."
"이계인가?"
"글세. 정확하게 대답은 하지 못하겠지만, 추상적인 의미의 '이계'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따졌을때의 '다른 세계'인 것 같아."
"다른 세계..?"
에실러는 뒤에 있는 한 남자에게 부탁했다.
"그것을 좀 가져와 줄래?"
"알았어."
남자는 어디선가 네모난 무언가를 들고 왔다.
"그건?"
"아마 이 세계의 물건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녀는 무언가를 눌렀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래?'
"자 이걸 봐."
그녀는 끝을 벌려 화면을 보여 주었다. 화면안에는 영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의 영상이 끝나고 곧 화면은 비명과 울부짖음이 가득한 영상으로 변했다. 찍혀 있는 것은 밖의 '무리'. 망자라고 부르고 사자라고 불렀던 것들이었다.
"이게 뭐지?"
"나도 몰라. 아마도 이 세계의 물건이겠지. 나는 아마 이 '독그릇'에 가장 먼저 들어온 자중 한명일거야. '저것들'은 내가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부터 존재하고 있었어. 이걸 다시 봐."
영상안의 사자들은 있는대로 사람들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력하게 당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저 정도 움직임에 당하는거지?"
"그 점 보다도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그래. 어째서 지금 이곳의 망자들은 그렇게 강한거지?"
"바로 그거야. 왜 이곳의 망자들은 그 화면에 찍혀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것일까? 그 이유를 알겠어?"
"아니 모르겠는데,"
에실러는 영상을 멈추고 말했다.
"말해주지. 이곳은 말야. '들어온 사람'의 '강함'에 비례하게 저 망자들의 힘이 상승하게 되어있어."
"!?"
"아까 네가 말했지? '흡수' 한다고, 엄밀하게 말하면 흡수가 맞지만, 네가 생각하고 있는 흡수와는 질이 달라. 여기에 들어온 것 자체가 바로 이 공간의 일부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거야."
"설마.. 아까 투정을 들어 줘야겠다는건.."
벤하르트도 슬슬 짐작가는게 있었다.
"우리라고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게 아니야. 되도 않는 노력 합심해서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서 길을 열려고 노력했었지. 망자들이 머리가 좋지 않다는건 이 와중에서도 희망적인 관측이었지. 그리고 길을 열기위해 나섰을때, 네가 들어온 거야. 그러면 어떻게 되었을까? 평상시보다 곱절은 더 강해진 망자들을 상대로 오늘 우리가 잃은 사람들만 넷이지."
"....."
"탓할 생각은 없어. 이곳에서 누군가를 탓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는 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미안하다."
"그것보다도 우리도 이제야 쓸만한 카드를 손에 넣은 것 같은데, 벤하르트라고 했었지? 보나마나 엄청나게 강하겠지?"
"아니 그렇게 까지는,"
"변명해봐야 소용없어. 이곳에 네가 들어왔을때, 망자들의 실력은 겉잡을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었으니까, 그게 증거야."
"흐음.. 그건 그렇고, 저 망자에게 당하게 되면 망자화 된다는 것은 정말인가?"
"그래. 한번이라도 긁히면 그대로 끝. 길던 짧던 반드시 망자가 되어버려. 네가 망자가 되어 버리면 그 뒤에는 수습할 수 없어지니까, 조심해줬으면 좋겠는데,"
"참고하도록 하지. 그건 그렇고,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금 들을수 있을까?"
"좋지."
"앞서 밝혔듯이 나는 도적이야. 이곳에는 마계인들도 많은 모양이지만, 나는 인간이지. 태어난 곳은 라군델의 무법마을이고,"
"아.. 그렇군."
벤하르트는 어쩐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렇다는건 인간계에도 이런 마굴이 나왔다는 건가?"
"마계에서는 어떻게 불리우는지 모르겠지만, 인간계에서는 소문으로 가득해. 최고의 보물이 뭍혀져 있다는 등 고대의 병기가 존재한다는 등 와전된 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고 있지. 벤하르트 당신도 인간이지?"
"그래."
"부러운데 인간이면서 그런 엄청난 실력을 가지면 어떤 느낌이야?"
"글세. 좋기만 한건 아니라고 일단 말해두지."
에실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지. 그래서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그놈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어. 일원을 모아 이곳에 왔지. 처음에는 마물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지. 지금 남은 것은 저기 안내해온 구도우를 포함해 셋 뿐이야."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말했다.
"처음에는 전혀 강하지 않았어. 우리는 이 도시를 조사했지. 우리가 사는 곳과는 완전히 다른 '이계' 흥미로웠어. 마물들이라고 해보야 그다지 강하지도 않았고, 어느정도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
"정보?"
"이곳의 문명은 우리들보다 훨씬 위라는 것? 그리고 그 문명에 반비례라도 했는지, 우리들보다 신체 능력은 확실히 떨어진다는 정도일까?"
"그래.."
"어찌보면 너무 즐겼는지도 몰라. 일행들은 둘째치고 인간들도 어느정도 들어와서 슬슬 진심으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2주정도 되는 시기에. 마계인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어. 한명의 마계인들의 실력은 인간들보다 훨씬 뛰어나서 갑작스럽게 성장한 능력에 희생자가 나오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이곳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거야. 벤하르트 너라면 어떻게 할래? 방금까지는 아군이었던 사람이 적으로 돌변해서 자신을 죽이러 온다면?"
"....."
에실러는 침묵하는 벤하르트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미안. 짓궅은 질문이었나? 어쨋든 거기서 부터 꼬이기 시작했지. 이곳의 수준이 월등히 높아져 버린거야. 보통의 인간으로는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마치 개미가 인간의 발을 피하지 못할 정도로 급격하게 실력이 도태된 사람들은 그대로 망자화 되어 버렸지."
"....."
"나는 '그' 무법도시에서도 한가닥 해서 그런지 그렇게 까지 당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 마굴을 빠져 나갈수 없을 정도로 곤욕스러운 상황에 처한 것은 확실했어. 문제는 그 뒤였지. 그 뒤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마계인과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
"그래.."
벤하르트는 마계 곳곳에 생긴 마굴의 경계에 관한 소문을 떠올렸다.
"거기까지 이르게 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빠져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려 했지. 여기에 있는 위니스트는 굉장한 백마법사였는데, 선뜻 내 의견을 들어서 결계의 길을 만들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망자들은 충분히 힘으로 제압이 가능했거든. 내가 그간 조사해온 정보를 토대로 버틸수 있는 '은거지'가 필요했는데, 이곳을 삼기로 했지."
"어째서 이곳을.."
"이곳은 아마 상점일테니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어느정도는 있었거든. 그리고 이곳에 빠져드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빠져나갈 길을 천천히 뚫으려 했지. 공동체로써 모두를 모아 훈련도 시키면서 힘을 길렀어. 그때 수백명을 이끌고 들어온 마계병들이 들이닥쳤지."
벤하르트는 로지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지금까지도 별로 일이 제대로 풀렸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진짜로 문제시 된 것은 거기서 부터야."
- 작가의말
댓글이 너무 많이 달려서 감개무량한 기분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냥 묘사만 하려고 했는데, 현대 분위기라는 것을 다들 알고 계셨다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음 화도 힘차게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댓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