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44화(598화)-마굴(2)
"틀리지 않았다?"
"그래. 나는 딱히 네게 열등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자가 말했듯 책임에 대한 것은 느끼고 있었다. 네가 일처리를 똑바로 하지 못했다면 왜 내가 확실하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하곤 하지. 그 점에서는 분명 인정하도록 하지."
로지닌은 벤하르트를 보며 연이어 말했다.
"감정적으로 나온 것은 사과하도록 하지."
그는 심호흡을 해 점잖은 얼굴을 했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지. 확실히 너를 탓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벤하르트 네게 이 일을 맡길 수는 없다. 한번 실수라고는 했지만, 그 뒤로도 네 행적은 항상 같은 식이었으니까, 어때 그쪽의 여자. 반박할 것은 있나?"
"벤하르트씨가 없다고 한다면 딱히는 없네요. 그나저나 그렇게 쉽게 인정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여하튼 네가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일은 반드시 우리가 처리하겠다."
"한가지 신경 쓰이는게 있는데 말입니다."
"뭐지?"
"제가 멋대로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쪽에 뭔가 폐가 되는 일이라도 있는지?"
로지닌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까전 마르티나에게 방해를 받아 제대로 이야기 하지 못했던 부분을 말해달라고 하는 건가? 좋지. 저 마굴은 흡수의 마굴이다."
"그게 무엇입니까?"
"저 마굴은 강한 자를 끌어 들이고 스스로의 힘을 늘린다. 정확한 것은 사실 나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 저 곳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마계인들을 흡수한 뒤에 저것의 마기(魔氣)는 점점 강해져갔다."
"강해졌다..?"
"그래. 같은 마굴 아마도 이어져 있는 것이겠지만, 제 5지역에서 군사를 파견했었다. 300여명의 군사는 들어가서 단 한사람도 살아 나오지 못했지. 그리고 그들을 먹었을때 마굴은 더더욱 그 마기를 거칠게 내기 시작했다.
"5지역이라니,,"
"듣지 못했나? 이 마굴은 3구역 5구역 7구역 그외에도 여러 장소에서 '똑같은' 마굴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최근들어 이 마굴은 엄청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단순하게 접근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마굴이 스스로 세력을 넓힐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해 버린 것이지. 그 원인은 이쪽도 아직 모르고 있어. 다급히 나는 인의 스승인 로엔님과 함께 마굴이 있는 곳으로 가 결계를 치고 돌아왔다."
로지닌은 약간 분한 얼굴로 말했다.
"광룡에게 당한 상처만 아니었어도 당장 돌입했을 것을.."
"그렇군요. 제가 들어갔을때, 만약에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더욱 저 마굴의 힘이 커지게 된다는 그런 말입니까."
"그거야. 물론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도 네가 마굴을 없애는 것을 별로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로지닌.. 그걸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인은 벤하르트에게 실례가 되는 말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로지닌을 말렸다.
'포기할 수 밖에 없나.'
"이쪽도 사실은 이 마굴을 없애라는 임무가 들어와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에시오르의 100계(係) 들어본 적이 있지."
"휴가중이기는 합니다만, 이건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부디 양보를 해주실수는 없으시겠습니까? 더 미루게 되었을시 피해자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헛소리. 피해자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결계다. 지금 최악의 상황은 네가 들어가서 마굴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로지닌의 말에 벤하르트는 차분하게 답했다.
"흡수라고 했지만, 과연 정말로 흡수일까요?"
"그건 무슨.."
"안의 일은 누구도 모릅니다. 안으로 들어간 마계인들의 힘에 비례해서 단순하게 힘이 늘어난 것이라는 가정은 어떻습니까? 만약 이 순간에도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면?"
"그런.."
"아니라고 확신은 없으시겠죠? 들어가본적이 없을테니까요."
로지닌은 벤하르트의 말에 답할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너 몸이 정상은 아니잖아?"
'간파했나.. 역시..'
벤하르트는 로지닌의 눈썰미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쪽 정도는 아닙니다."
"얕보지 말라고, 이런 몸이어도, 누구에게 지거나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설사 벤하르트 너라고 해도 말이지."
"그렇겠지요."
"그 몸으로 간다면 싸워서라도 나는 말릴거다. 네 말은 분명 일리가 있다. 그런 확률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너무나도 월등하게 높다고 생각되지 않나? 들어간 병사들은 어째서 나오지 않을까? 이미 당한 것은 아닐까? 이건 어때?"
"나오지 못할 이유가 있다고 한다면? 지금도 나오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고 한다면? 혹여 얼마전에 있었다고 하는 갑작스러운 마기의 증폭때문에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면? 이런 가정은 어떻습니까?"
"그건 가정일 뿐이야!"
"설사 가정이라고 해도 제가 맡은 임무이며, 그 가능성이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고 해도 가야합니다."
"어째서지?"
로지닌의 물음에 벤하르트는 그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이번에도 후회하면 안되니까요."
"......"
"후회는 한번이면 족합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알지 못했다. 늦어 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변명을 늘여 놓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설사 지금 가는게 최악의 선택이 될지 모른다고 해도 이후에 후회할지 모르는 것 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같이 가도록 하지."
"아니요. 저 혼자 가겠습니다."
"자살행위야."
"'최악'은 막아야 하겠지요? 지금 상황에서 최악은 어떤 것일까요? 물론 제가 마굴에 먹혀 버리는 것 또한 안좋은 일이기는 합니다. 더욱 안좋은건 전부 들어가 흡수 당해버리는 것일 겁니다. 피차 전력이라면 모를까, 저도 로지닌씨 조차도 전력이 아닌 지금 둘이 함께 가는건 전력 낭비입니다."
"나는 방해만 된다는 건가?"
벤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요. 다만, 보험을 하나 남겨두고 싶습니다. 제 선택이 최악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말이죠."
"뒤치닥거리를 내게 맡길 셈인가?"
"믿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로지닌과 벤하르트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달변가군 더 따질수는 있지만, 그만두도록 하지. 좋아. 지난날의 과오를 갚는다고 생각하도록 하지. 설사 벤하르트 네가 실패하더라도 나는 그것까지 포함해서 확실하게 일을 끝마쳐 주지. 일주일.. 내가 몸을 회복하는데에는 그정도면 충분해. 그때까지도 연락이 없다면 내가 일을 마무리 지어도 되겠지?"
"부탁드리도록 하죠."
"우와 로지닌을 설득하다니, 대단한데?"
마르티나는 감탄하며 이야기했다. 순간 검은 기운이 그녀의 등뒤에서 물씬 일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챈것은 벤하르트와 로지닌 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빠른 움직임으로 로지닌은 마르티나를 잡아 당겼고 벤하르트는 백뢰를 사용해 검은 기운을 뿌리쳤다.
"도망쳐!"
마르티나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검은 기운은 벤하르트가 만들어낸 균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벤하르트는 검은 기운을 보고 어쩐지 친숙한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그 검은 기운은 한없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들고 있었다.
'뭐지 이 느낌은..? 어디서... 느낀적이..'
"벤하르트!"
벤하르트는 다가오려 하는 로지닌의 움직임을 막았다.
"오지 마세요. 여기서 같이 걸려 버리면 '최악' 입니다. 하지만 저만 걸린다면 지금 방금전에 짰던 계획대로이니 손해 볼 것은 없겠죠. 또 하나 '실수'를 저질러 버렸군요.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딴 이야기는 됐어! 지금은 상황이 안좋다. 얼른 이쪽으로 와."
"인. 내가 있는 곳을 포함해서 결계를 쳐 줄수 있지? 그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뒤덮어 버리는거야. 할 수 있어?"
"할 수는 있지만,"
"그럼 부탁하도록 할게."
검은 기운은 인의 결계를 조금이라도 더 달아나려는 듯한 움직임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늘 하나 통과하지 못하도록 막아 서는 벤하르트를 뚫을 수는 없었다.
"서둘러. 지금 네가 해야 하는게 무엇인지 생각해!"
"으.."
"망설인다고 해도 벤하르트씨는 나오지 않아요. 그렇다면 원하는대로 하는게 좋지 않겠어요?"
이니프의 말은 정곡이었다.
"좋은 말을 해주는구만 이니프. 동행은 아쉽지만 여기까지로 하도록 하지."
"그런가요? 그거 참 아쉽네요."
"미안해 벤하르트!"
인이 결계를 만들자 이니프는 그 짧은 사이 공간을 열어 재빨리 인의 결계가 닫히기 전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
"아쉽게 됐네요. 원하시는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바보 같은 녀석."
"과연 어느쪽이 바보일지 물어 보고 싶네요."
"그럼 로지닌씨 부탁합니다. 이니프 붙어."
벤하르트는 자세를 취하고 균열을 향해 백뢰를 쏘아 날렸다. 균열은 쩍 벌어지더니 갈라져 마굴으로 통하는 입구가 되었다. 벤하르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마굴로 몸을 날렸다.
- 작가의말
어제 제대로 적지 못했더군요..
로지닌은 가렌더부크에 왔을때 티온과 잡담했던 마계에 있는 ‘인간’ 중 최강자라고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음.. 따로 수정해서 채워 두기는 하겠지만,
일단은 이미 넘어오신 분들이 있으니 사족으로 붙혀 둡니다.
마르티나는 설명을해뒀지만, 일전 수마행의 탑 6층의 수호자였던 검은 피부 백색의 머리 그리고 밤에는 빛나는 눈을 가진 그 여인이고,
인은 말 안하셔도 다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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