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부 73화-시공(時空)(2)(631화)
벤하르트의 몸은 부유해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기억의 소용돌이들을 보며 벤하르트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여기는.."
그제야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래.. 그때 나는 레니아와의 마지막 환영을 보았었지. 그리고 손을 내밀어서,, 이곳에 빨려 들게 되어 버린건가.'
그의 시야속에서 정신없이 이동하는 장면이 있었다. 처음 보았던 것 지금까지 보아 왔었던 것. 보았음에도 인식하지 못했던 것. 그의 기억속에 있는 파편들은 소용돌이처럼 어우러졌다.
레니아의 일 리스의 일. 자신의 일. 기억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일마저도, 넘실거리면서 그의 눈에 비추어졌다.
"이것이 시간과 공간.."
기억들은 정신없이 넘실대더니 일순간 벤하르트의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섞여 버리더니 벤하르트의 시야는 검게 물들었다.
"으읏."
"흐음.."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빛. 그곳은 검은 광장이었다. 두터운 옷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은 벤하르트를 보고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는.."
"이곳은 시공의 틈. 시간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 최후에 이르는 장소이지."
'아 케이슨씨가 말했던 그 곳인가.'
양갈래 수염을 기른 마른 노인이 벤하르트를 의심쩍게 바라보면서 물었다.
"자네는?"
"제 이름은 벤하르트 하르크라고 합니다."
"아니 그런것 보다도 자네.. 시공의 세례를 받은 자가 아니로군."
"시공의 세례?"
"이런 일이.. 시공의 세례를 받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곳에.."
"아.. 실수로 균열을 건드려 버려서.. 이곳으로 말려 들게 되어 버렸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사죄하겠습니다."
"흠.. 흠.. 별로 사죄할 필요는 없네. 다만, 본래라면 시공의 균열을 통해 이동하는 것은 보통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일세."
"세례라고 한다면 혹시.."
노인은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시공의 균열을 눈치챌 수 있는 힘. 우리들은 그 힘을 얻는 것을 '시공의 세례'라고 말하지. 세례를 받은 사람은 죽을때 이곳에 도착하게 되네.하지만 자네는 세례를 받은 인간이 아니로군."
"그렇습니다."
"본디 세례를 받지 않은 인간의 경우 균열을 통해 들어오는게 불가능하네. 튕겨져 나가거나 안에서 갈갈이 찢겨 죽거나 혹은 몸이 견딘다 해도 폐인이 되거나 하는 경우가 다반사지.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 사람외에는 본적이 없네만, 자네의 경우는..."
"재능이 있습니까?"
노인은 유심히 벤하르트를 보고 단언했다.
"아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시간에 대한 재능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는지,, 의문이구만,"
"저기 여기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곳 입니까?"
"시간을 관장하는 곳. 시공여행자들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시작의 장소이자 끝의 장소. 시간이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것일세. 잘못 다루게 되면 하나의 세계가 파괴 되어 버리기도 하고 하나의 세계가 생겨나 버리기도 하지. 그것을 조율하기 위한 공간이지. 시공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죽게 되면 생사를 떠나 영생을 이곳에서 지내게 된다네. 시간의 관리자로서 말이지."
"저는.."
"후우 찾았다."
"네 네녀석은.."
"오랜만이구만, 영감. 그녀석은 내 동행자야."
"케이슨씨!"
"마지막에 손을 얹어서 다행이군. 이곳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영영 미아로 남아 버릴뻔 했으니 말야."
노인은 케이슨의 얼굴을 보고 노려 보고 있었다.
"이런 말썽을 일으키다니,"
"거 말을 그렇게 할 건 없잖수. 죄송하지만 말이오. 잘못한건 내가 아니라 이쪽이라고,"
"네. 제가 잘못한게 맞습니다."
"그럼 묻겠네만, 재능도 세례도 받지 않은 자네가 어떻게 시공의 균열을 찾을수 있었나?"
"그 그건.."
벤하르트는 케이슨의 눈치를 살폈다. 케이슨은 실실 웃으면서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하하.. 그게 한번 보여 주고 싶어서.."
"후우.. 그런 위험한 장난을 하다니, 이 남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 이곳에 무사히 도달 했네만, 정말로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그 그렇게 위험한 것이었나?"
"....."
"알겠수다.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니 용서해주시구려.."
"경박한 말투부터 고치게. 하아.."
"케이슨씨 이곳은 케이슨씨가 말하던,"
"그래. 시공의 틈이다. 시공여행자들은 처음 무조건적으로 이곳을 거치게 되지."
시공의 틈은 굉장히 단순한 곳이었다. 공간의 기본적인 색은 검은 색이었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몰라도 빛이 들어와 건물이나 사람의 윤곽은 보이지만, 하늘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혀 있었다. 그리고 큰 마을 정도의 땅 정도가 공간에 부유해 있었는데, 그 아래를 내려다 보면 역시나 검은 배경뿐이었다.
시공의 틈의 사람들은 전부 합쳐도 30 정도.. 기본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기에 자식을 낳거나 하는 일도 없긴 했지만, 연애를 하는 것도 친하게 지내는 것도 자유였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새로히 친하게 지낼 생각은 없어 보였다.
"후우 암울한 광경이구만,"
"....."
"이게 내가 이후에 도착하게 될 세계란 말이지. 영감 처음 왔을때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곳은 왜이리 재미가 없는거지?"
"각자 자신의 시간에 먹혀 버렸기 때문이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이미 죽은자들. 그렇기 때문에 과거 자신의 삶 기억 시간을 곱씹으며 살아가는 것이지. 이곳에 있는 것은 과거의 망향뿐.. 멈추어 버린 자들의 고역 밖에는 없는 것일세. 개중에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 있어서 미래를 이어나가는 사람도 존재하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
"나는 후자겠구만,"
"그럴지도 모르겠군. 여하튼 자신의 시간에 먹히지 않도록 조심하는게 좋아. 특히 자네 말일세."
노인은 벤하르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말입니까?"
"듣기로 자네는 자신의 기억을 보고 이곳에 빠져들었다고 했는데, 시공의 균열에서 자네가 가장 바랬던 곳을 보아 버린 거네. 그야말로 이곳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과거의 시간에 먹혀 버린 것과 다르지 않아. 욕망을 비추었던 것이지. 스스로가 '되돌리고픈' 욕망을 균열이 자극한 것이야. 자기 자신의 본능을 뛰어 넘은 욕구를 자극 시킨 것이었겠지."
노인의 말에 벤하르트는 시간의 터에 들어오기 전에 들끓었던 욕구를 떠올렸다. 그것은 그때 그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되돌리고 싶었던 욕망.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이해에 그의 정신은 이미 균열에 먹혀들고 있었다.
"....."
"후회하고 있나?"
벤하르트는 노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후회하고 있지요. 하루에도 몇번씩 떠올릴때도 있습니다. 그때 그 이전에 내가 더 잘했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이미 앞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군요."
"본래 과거에 먹히는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안되는 것이네. 아니 과거에 미련이 적은 사람일수록 세례를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겁니까?"
케이슨은 눈을 치켜뜨고 물었다.
"자네를 보면 답이 나오지 않나."
"하하 그것도 그런가 보구만요."
"벤하르트라고 했었나? 그래 앞으로 어떻게 할텐가?"
"저기..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겁니까?"
"없다네. 본래의 세계로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은 그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 밖에는 없지. 하지만 그것은 '죽은자'에게만 허용되어 있지. 그리고 내가 살던 곳과 자네들이 사는 곳은 그 경우가 전혀 다르니 도와줄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렇다니깐,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케이슨이 투덜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노인이 말했다.
"있다고 한다면, 이 무한의 굴레를 돌려 '연결점'을 찾는 수밖에는 없지. 무한이라고 불리우는 주사위를 굴려서 원하는 숫자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끊임없이 돌리는 것일세. 자신이 원하는 눈이 나올 확률에 기대하는 것도 있겠고, '연결점'에 의해 그 시대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겠지. 어느쪽도 굉장히 확률은 낮네만,"
"....."
"네가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알았냐. 하여간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어린애구만,"
벤하르트는 불만어린 눈초리로 케이슨을 바라보았다.
'아니지.. 불만을 가질것은 없지. 이건 어찌보면 내탓이니까.'
"운이 좋다면, 하루만에도,, 운이 나쁘다면 죽을때까지 본래의 세계로는 돌아갈 수 없네."
"그래도 시도하는 수밖에 없겠죠."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는 균열을 찾는 능력이 없지 않나."
"그렇습니다."
"그 점은 내가 맡아 줄테니 걱정 말라고,"
"케이슨씨.."
"아저씨라고 불러라.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 버렸지만, 그 점이 적당히 좋은 걸.. 보호자 노릇도 나쁘지 않지."
케이슨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결정된 모양이구만, 그렇다면 출발 전에 시공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군."
- 작가의말
연참대전 종료 3일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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