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32화-신뢰의 증명(3)
레니아는 품에서 종이를 꺼내 들었다. 어젯밤 만든 '규칙의 서'였다. 레니아는 그곳에 자신은 이 마법을 해독하지도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써내려 갔다.
"이건 스스로가 규칙과 그것을 어겼을시의 벌칙을 스스로가 맹세하는 종이야. 나는 이 종이에 멸절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규칙을 정해두었어. 해독하는것도 사용하는 것도 하지 않겠다고,"
"그럼 그 규칙을 깨버리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지?"
"그자리에서 죽어 버리게 되겠지. 네가 생각하는 결말은 절대로 오지 않을거라고 맹세할수 있어. 내가 설사 벤하르트를 구하기 위해서 그 마법을 사용할때, 이 한번이라는 그 때라고 해도 절대 '연쇄'는 사용하지 않아. 아니 사용할수 없다고 하는게 맞겠지. 연쇄를 사용하게 되면 가장 먼저 사라지게 될 것은 항상 같이 있었던 벤하르트일 테니까, 벤을 지키기 위해서 연쇄는 사용할수 없지. 하지만 개인적인 멸절의 마법을 사용하게 된다면, 최소한도 그 위기를 모면할지라도 그 순간 나는 죽어 버리게 돼. 그러니까, '연쇄'에는 이르지 않겠지."
"그렇군."
"사실 그 이전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멸절의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지만, 너희들의 의심과 의혹을 벗기기 위해서는 이런 눈에 보이는 수단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될테니까,"
레니아는 품안에서 종이 하나를 더 꺼내어 여왕에게 건넸다.
"그걸로 실험을 해봐. 내가 말한게 평범한 종이로 서약을 한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든 것을 건 것인지는 네가 스스로 확인해야 되겠지?"
여왕은 그 종이에 무엇인가를 썼다. 그리고는 손을 들었다. 손 안에 모인것은 검은 구체의 광탄이었다.
"무슨!"
"괜찮아 벤."
세갈래로 펼쳐져서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로 쇄도하는 마법은 레니아의 손짓 하나에 손쉽게 와해 되었다. 여왕의 마법은 강력했지만, 레니아는 그 마법의 본질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줌의 마력으로도 그 마법을 와해시킬수 있었다.
"여왕님!"
"과연, 이런 것이었군. 스스로의 서약으로 인해서라는 이야기인가."
여왕은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 스러워 하고 있었다 얼굴색이 창백한 것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병자의 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야?"
"우리에게 확인해 본거겠지. 아마도 썼던 것은 우리에게 해악이 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거나 아니면 단순하게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다거나 하는 식의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긍정적인 초점을 맞추어서 규칙을 써 둔 것 같아. 그러니까 우리를 공격함으로써 내 종이가 적용되는지 확인 한 것이겠지. 그리고,"
레니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고 벤하르트는 그녀의 답을 재촉했다.
"그리고?"
"내가 마법을 어디까지 익혔는지도 확인하고자 했겠지. 진척도를 확인해보려 한 것 같아. 또 내가 지금 사용한 마법이 어떤 것인지도 혹은 자신의 마법으로 상쇄를 할수 있을지를 생각해봤을지도.."
여왕은 레니아의 추측을 듣고 스스로는 통쾌하게 웃었다.
"역시.. 레니아. 전부 읽고 있었군. 벤 그리고 레니아. 멸절의 마법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그 신뢰를 주기 위해서 목숨까지 걸었던 너희들의 그 각오는 대단했다. 우리는 라스펠에서 너희들에게 좋지 않은 일들만 보여주었었지. '그대로' 끝내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너희들이 그 계약서를 이용해 신뢰를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이쪽도 가능하겠지. 이제는 뭐라고 하든 믿을수 있겠지? 너희들이 만약에 횡포를 부린다고 해도 이제 나는 너희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런 명령조차도 못 내리도록 계약을 해버렸으니까, 이 정도면 지금까지의 나름대로의 만행을 잊어줄수 있을까?"
"횡포를 부릴 것도 없으니 그런 가정은 필요 없다고 생각되지만, 벤만 좋다면 나는 이제 아무래도 좋아."
"나도 별로 상관 없어."
"그건 고맙다. 나는 간사했다. 라스펠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해주기만 해도 무엇이든 다 해줄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어땠나. 도와준 사람에게 잔꾀를 부리려고 했고, 또 억지를 부리기도 했었지. 물에 빠진 사람 구해놓으니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식의 만행을 저질렀다. 라스펠만 구해주면 그것으로 좋겠다고,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를 속이는 행동이었지. 가능하다면 조금 더 너희들의 자상함에 기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상함과는 거리가 멀지. 이녀석의 경우 그런 인자함때문에 구해준건 절대로 아니니까, 여왕. 당신은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몰라. 아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특별하긴 해. 하지만 말야. 일련의 사건들은 여왕이니 뭐니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건 너도 인간이라는 것의 반증이 아닐까?"
"그렇군."
여왕은 약간은 씁쓸하게 말했다.
"인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지 않게 생각해서는 안돼. 신이었다면 라스펠 같은 건 만들수 없었을 테니까, 인간은 끊임없이 향상되고자 하는 욕심은 굉장히 중요해. 신에게는 그런게 근본적으로 결여 되어 있으니까,"
신은 딱 잘라 말하면 대단하다. 기본적인 신체능력도 마법도 머리도 인간과 비교하면 인간이 덧없게 느껴질 정도로 대단했다. 신은 인간의 기술을 익힐수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신들도 익히고자 하면 얼마든지 인간 이상으로 발전해 나갈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현실에 만족했다. 자신의 힘 자신의 존재에 만족하지 않으면서도 더 이상의 무언가는 바라지 않았다. 어떤의미에서는 그것은 무료함이라는 이름의 지옥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달아날수 없었다. 그나마도 레니아는 선천적으로 그런 향상되고자 하는 마음을 다른 신들보다는 더 가지고 있었기에 약을 개발하고자 했고, 500년의 세월을 거쳐 레나스트라는 비약을 만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레니아조차도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무심했다. 신으로써 '아는 만큼 알고 있었고' '필요한만큼 힘을 가지고 있었다.' 더 강해질수 있어도 '구태어 그것을 노리지 않았고' 그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료함속에 신들의 이상향이라는 엔쿠라스는 갈구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분명히 저주였다.
레니아는 신이었던 것에 후회는 없었고, 신의 직책을 내팽겨 쳤다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어느정도는 지금이 이전보다는 더 즐겁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지의 여행. 모르는 것에 대해 알게 되는 기쁨. 스스로의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갖가지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을 이겨내거나 지기도 하는 격변적인 운명은 한때는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그녀에게는 도리어 기쁜 일이었다.
"설마 신이라도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젊었을때는 그랬던 적도 있었지."
"애초에 그런 몸으로는 무리겠지만, 여왕 당신의 경우는 신이 되는 것은 추천하지 않아. 이전에 신이었던 자로써의 충고니까 잘 기억해두라구."
"참고하겠다. 그나저나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그래도 당장에 출발을 할 생각인가?"
"그럴까 생각해. 라스펠을 이번 한번으로 그친다면 조금 더 기다리겠지만, 그 못다한 구경거리는 다음으로 기약해 두도록 할게. 더 멋지게 라스펠을 가꾸고 있으라구."
"그렇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너희들이 다시 오기를 기원하겠다. 라스펠을 내려가기 위한 길은 마누어가 안내해줄 것이다. 라스펠의 동쪽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전해두지."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레니아."
"왜."
"아까 이야기 했던 것 말인데, 만에 하나라도 멸절의 마법은 사용하지 말라고,"
"사용하지 않을거야."
레니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
"아까 나를 지키기 위해서 라고 예시를 들었었지?"
"그랬지."
"만약 정말 나를 지킬수 있고 그런 상황이 도래 했다고 해도 절대로 멸절의 마법은 사용하지 마. 최악의 경우 우리 둘다 죽는다고 해도 나는 너와 함께라면 죽는다고 해도 상관 없어. 되려 혼자 살아나고 싶은 마음따윈 절대로 없으니까,"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그런 말을 들으며 기분이 좋았지만, 겉으로는 냉랭하게 말했다.
"벤. 나는 사용할 생각이 없지만, 사실 네 그 말은 너무 이기적이야. 여행을 다니면서 몇번이고 말했었지만, 너 자신은 스스로를 아끼지 않잖아? 그러면서 왜 항상 나한테는 그런걸 강요하는건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넌 여자잖아. 이제 신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데다가, 인간으로 쳐 버려도 곤란하긴 하지만, 나는 네 시종으로써 너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애초에 신이었던 너를 이렇게 만든 건 나라고 할수 있으니까,"
'그건, 나에게는.. 좋은 일이었어.'
신이 아니게 되었을때는 투덜 거렷다.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잃고 벤하르트에게 장난 스런 투정을 부리던 나날들. 지금에 이르러서 그녀는 아직도 노시엘트 산에 미안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녀는 그렇게 되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존재했다.
'이기적이기 짝이없구나. 벤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아닌걸. 질로 따지면 내쪽이 더 저질일지도.'
"그리고 나는 별로 나를 아끼지 않는건 아니야. 정해진 것에 최선을 다 할 뿐이지. 이전에도 네가 말했었지? 서로의 등을 기댈수 있게 되자고, 그래 네 말이 맞아. 이제 내가 너를 일방적으로 지키기만 할수는 없고, 나는 이미 너를 믿고 있어. 하지만 멸절의 마법만은 달라. 우리가 앞으로의 여행에서 살기위해 역경을 헤쳐나가기 위해 서로간에 다소 무리를 하고 헤쳐나가는건 이제 좋아. 나만 짊어질 생각은 없고 그렇다고 너에게만 짊어지게 하지도 않겠어. 서로간에 무리는 해도 좋지만, 아무리 위험해도 멸절의 마법만은 사용하지 마. 그건 사용하게 되면 죽는 것이잖아. 그러면 의미가 없어. 죽을때는 같이 산다면 같이 사는쪽으로 가자고,"
"어느 한쪽이 무리를 해서 죽게 되면?"
"그때는 아마 내쪽이 먼저 죽을테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이.. 바보같은 녀석이."
레니아는 수도로 벤하르트의 머리를 내리 쳤다.
"농담이야. 레니아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이미 한번 죽었던 사람이야. 사는것은 좋다고 느끼면서도 사실 이 목숨은 널 위해서 쓰기로 결정했었어. 지금도 그 결심은 변하지 않아."
"뭐야 그런건 엄청 부담스러워. 그리고 느끼해."
벤하르트는 약간 당황하면서 말했다.
"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아까 한 말 말인데, 내가 죽으면 뭐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겠지만 말이지. 만약에 네가 먼저 죽게되면, 그때는 같이 죽어주마."
"넌 진짜 고지식한데다 바보같은 녀석이야. 내가 그런걸 좋아할것 같아?"
"싫어해도 할수 없는 일이지. 정히 짜증나면 말야 저세상에서 한번 걷어 차 주라고,"
"이.. 고집불통아!"
그녀는 벤하르트에게 장난을 치면서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죽으면' 말이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레니아는 씁쓸하게 웃어 제꼈다.
"이런 기분나쁜 잡담은 그만 하자. 여행을 시작해야 되니까, 마지막으로 라스펠을 둘러 보면서 필요한 것들이나 챙겨보자고,
- 작가의말
어제 귀가 시간 새벽 4시
레포트 쓰고 잔시간 5시
자고 일어난시간 7시30분
2시간 30분을 자고 하루를 지내려니 이건 뭐 제정신으로 있을수가 없네요.
엔쿠라스를 쓸때면 가끔 느끼는게 있습니다. 가끔 벤하르트를 잡고 글을 쓸때면 이 고집스러운놈은 말하는거 들어보면 꼭 '죽고 싶어하는것 같아' (실제로는 다릅니다만,) 라고요...
후우 연참대전도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연참대전때는 댓글 다시는 분들의 호응이 너무 좋아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거기에 추천도 하나 받았고, 글쓰는 사람으로써 너무 기쁘네요.(이래저래 힘들기도 합니다만은,)
근데 연참대전이 끝나면?.. 전.. 아마.. 안될지도..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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