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 만월의 밤 - 37 화
만월의 밤 – 37
“야! 야! 깨어나! 이 자식아! 좀 깨어나 봐!”
“으음.....! 허어어억!”
건수는 마치 물속에 있던 잠수부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참았던 숨을 터트리는 것같이 하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숨이 턱 끝까지 찼었는지 계속 거친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허억... 허억....”
“이봐, 괜찮아? 내 손가락이 몇 개야?”
그가 눈을 뜨고 앞을 보니 누군가가 그의 멱살을 쥔 채로 눈앞에서 손가락 두 개를 펴서 보여주고 있었다.
“두.... 두 개.”
그는 대답을 듣고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정상입니다. 이 녀석, 이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 다행이군. 젠장! 일을 다 잘해놓고 마지막에 망치는 줄 알았잖아!”
아직 시야가 희미한 건수의 귀에 들어온 것은 릴리카의 목소리였다.
‘릴리카의 목소리다. 정말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네. 그런데 왜 그녀가 이 방에 있는 거지?’
자신에게 손가락을 보였던 자가 그의 멱살을 놓았다. 건수는 두 팔이 몸에 묶인 상태여서 그의 상체는 그대로 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으윽....”
“이봐, 조심해!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방금 들린 목소리는 분명 히메이오스였다. 그러자 건수의 멱살을 잡고 있던 사내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조심하긴 뭘 조심해? 이 자식은 포로야. 네 애인이 아니고.”
곧 여러 병사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하하. 히메이오스, 하룻밤 동안 저놈 곁에 있더니 눈이 맞아버린 거냐?”
“저 자식 취향 한 번 독특하네. 캬캬캬캬.”
“시.... 시끄러워! 이 자식들이 진짜!”
다른 병사들이 놀림에 히메이오스가 분노를 터뜨렸다. 그러자 그들을 진정시키는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이사우라였다.
“모두들 시끄럽다. 릴리카님 앞에서 그따위 시시한 농담이나 지껄일 거야?”
곧 병사들과 히메이오스가 조용해지자 이사우라가 릴리카에게 말했다.
“릴리카님,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늑대의 사제가 몸이 정상이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상태를 보니 자해를 시도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하 창고에 있을 때부터 너무 긴장하고 있었고 피로도 겹쳐서 잠시 혼절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별문제는 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이제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할까?”
“옛! 데디쿠스! 히메이오스! 그리고 헤베이투스!”
“옛!”
“너희 셋이 계속 늑대 사제를 감시한다. 알겠나?”
“옛!”
건수는 방금 검은 방에서 나와서 아직 시력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아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반란을 꾸몄던 삼총사가 자신을 계속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적어도 다른 불새군 병사들이 날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겠군,’
건수는 잠시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
잠시 후, 릴리카를 포함한 모든 부하들이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완전히 시력을 회복한 건수의 시야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놀랍게도 그의 바로 앞에서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에뮤니우스였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건수의 두 눈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건수는 순간 몹시 불쾌해졌다.
‘뭐야? 왜 날 저런 눈초리로 보고 있는 거지?’
건수와 눈이 마주치게된 에뮤니우스는 한번 씨익 웃었다. 건수는 그 모습을 보고 마치 오래 썩은 생선에게서 나는 비린내를 맡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속이 울렁거렸다.
“이제 내가 보이는 모양이군. 잠은 편하게 잘 잤나, 친구? 아님, 아직도 자네 눈앞은 새카만 밤인가? 크크큭.”
“네? 뭐라고요?”
에뮤니우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천천히 건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마치 뭔가 남들이 모르는 것을 자신을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가 흘러넘쳤다.
“나도 그게 어떤 건지 잘 알지. 암. 그래, 그렇고말고. 크크크.”
자기에게서 등을 돌리고 방을 나서는 에뮤니우스를 보고 건수는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뭐야.... 자기가 뭘 안다는 거야?’
동시에 건수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자기의 친구, 싸이언스에게 독을 주입해서 식물인간처럼 잠만 자게 만든 에뮤니우스를 그는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전에 펠리시아의 어머니인 쥬니아 화이트를 잔인하게 해친 그를 심판하려고 텔리와 함께 행동했었지만 실패했던 것이 지금은 애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에뮤니우스. 당신은 정말 용서할 수가 없어! 천하의 악인 같으니라구!’
건수가 느린 발걸음을 옮기는 에뮤니우스의 뒷모습을 째려보고 있을 때, 히메이오스가 다가왔다. 그는 건수의 얼굴을 여기저기 보면서 어디 이상이 없는지 살폈다.
“이봐, 몸은 괜찮아?”
“아, 예예. 이상은 없어요.”
“어떻게 된 거야? 너 말이야. 어제 창문 밖을 보다가 갑자기 기절해버렸다고.”
“이젠 괜찮아요.”
“그건 그렇고, 우리 이제 이동해야 해. 다행히 우리와 함께 가니까 별문제는 없을 거야.”
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 시간이 몇 시죠? 제가 얼마나 오래 기절해 있었나요?”
“지금은 벌써 다음 날 아침이야. 넌 어젯밤에 창문을 보다가 픽 하고 쓰러진 다음 밤새 내내 정신을 잃고 있었어.”
건수는 하룻밤을 정신 잃고 쓰러져 있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왜냐면 지난번 강원도 산속에서 그가 몇 시간 동안 검은 방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바깥세상 기준으로 불과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그 후 다시 100 년이란 시간을 암흑에 들어갔다가 나왔을 때도 바깥세상의 시간은 겨우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었지 않았나. 그런데 이번엔 몇 시간 밖에 있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꽤 많이 흘러있었던 것이었다.
‘전에 산속에서 검은 방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는 시간이 겨우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엔 많이 걸렸네. 이번엔 정신만 들어갔다가 나와서 그런가?’
히메이오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널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혹시 잘못되었나 싶어서 다른 사람들은 릴리카에게 보고하자고 하는 것을 내가 말렸어. 알리더라도 다음 날 아침에 알리자고 그랬지.”
“그건 잘하신 거예요. 아무리 깨우셨어도 아마 전 일어나지 못했을 겁니다.”
“그래? 일부러 그랬던 거구나. 역시 내가 옳았어. 아무튼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참, 내가 누군지 소개를 했었던가? 난 히메이오스라고 해.”
히메이오스는 손을 내밀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그 행동의 의미는 적어도 건수를 포로가 아닌 동료로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건수는 팔과 몸이 묶여있어서 비록 그의 손을 잡을 수는 없었지만 어깨를 살짝 숙이면서 악수하는 시늉을 했다.
“전 손건수라고 합니다.”
둘이 정식으로 인사하는 것을 보고 헨리와 데디쿠스도 다가와서 건수와 통성명을 했다. 데디쿠스는 이미 전에 와본동에서 건수와 안 좋은 모습으로 처음 만났었던 일이 생각나서 좀 어색해하는 듯했지만, 그 역시 손을 뻗으면서 다시 건수와 새롭게 관계를 맺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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