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 금융플랫폼
무수골 저택의 정식 이름은 미래경제연구소다.
일반 주택이 들어설 수 없는 개발제한 구역에 정치인을 위한 뇌물로 조성된 부지이기에 비영리 재단의 사택 형식으로 들어선 것이다.
이 문제 또한 여러차례 보도되어 공격해 왔지만, 되려 뇌물 받으려던 정치인들만 죽이고 끝났다.
무수골 저택에서 살기 위해선 반년마다 경제예측 보고서를 내야 한다.
내가 한마디 하면 기획실에서 나름 합당한 이유를 추론해 살을 붙여 보낸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보고서가 전달되었고, 다섯 번 모두 맞췄다.
특히 놀라운 것은 지난 해 상반기에도 맞췄다.
처음에는 훑어보고 버리던 공무원들도 이제는 반년단위 계획을 세우기 위한 참고자료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읽어보면 적어놓은 예측은 절반이상 틀리는데 결과적으로 주가만 보면 맞아떨어진다.
국민연금 운용계획을 미래연구소 예측에 따라 돌리니 기존공식보다 수익이 1000억 정도 커졌다.
1000억 이상 가치를 지닌 보고서.
고위공무원들은 미래경제연구소에 반기 보고서 외에도, 분기 보고서, 섹터별 보고서 등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이로 인해 시비를 걸어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압박할 수도 없다.
1월 1일.
이메일로 미래경제연구소의 2021년 상반기 한국경제전망이 전해졌다.
“왔다. 바로 재전송해.”
“예.”
대기하고 있던 담당 공무원들이 바빠졌다.
경제 관련 고위공무원 30여명에게 이메일이 그대로 넘어갔다.
저 정보를 이용해 공무원의 아내 아들 친척 친구가 주식을 하고 룸살롱 접대로 보답하겠지만, 그건 언제나 그랬으니 무시한다.
전송을 마친 공무원이 메일을 열었다.
-횡보.
단 한 단어.
이젠 예측 근거도 적지 않는다.
물론 미래그룹에 항의를 보낼 수도 없다.
온갖 비리가 폭로되어 정부의 주춧돌까지 싹 불타는 상황에서 미래그룹에 화낼 용기가 있는 자는 없다.
보내준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횡보래.”
“계획을 수정해야 하나?”
“회의 소집해.”
국민연금 운용계획을 세워야 한다.
겸사겸사 친족들의 뒷주머니도 채워주고 가슴 피며 큰소리도 치고.
점심나절에 집으로 채인수, 황영석, 권순진이 찾아왔다.
예하와 루비는 내려와 세배를 하고 세배돈 받고 다시 코인 작업하러 올라갔다.
일해라.
난 어쩔 수 없이 열외.
“횡보라는 거지?”
권순진이 말했다.
“예. 미국은 좀 더 오를 거고, 미국 빼면 다들 우하향 할 거에요.”
“미국 쪽 지분을 올려야겠네.”
“레버리지 없애고 대출도 모두 빼주세요.”
“다 빼면 세계 주가가 요동칠 텐데.”
“2월 말까지 천천히 정리해요.”
“어.”
미래자산운용사는 지난 해 127%의 수익을 올렸다.
현재 운용자산 총액은 9200조원이며 2배, 3배 상품과 대출을 제외하면 6700조를 갖고 있다.
인덱스 펀드에 1300조, 액티브 펀드에 1180조 들어온 걸 제외하면 나머지가 내 돈이다.
미래 메신저니 미래 메타버스니 하며 세계를 호령하는 기업들을 만들어봤자 정작 돈은 미래자산운용에서 번다.
그룹사들의 영업이익이 200조인데, 자산운용사 혼자 3800조를 벌었다.
물론 이런 수익은 나만 할 수 있는 거다.
보통 자산 운용사는 시장지수만큼의 수익률 이상을 거두지 못하며 시장지수가 하락하면 펀드들도 속절없이 손실을 본다.
“그리고 액티브 펀드 자금이 너무 많아. 더 이상 핸들 할 규모가 아니야.”
“얼만데요?”
“인덱스 빼면 전부. 5000조 이상.”
권순진이 하소연했다.
1년 전 900조 운용하는 걸로도 하소연 했으니 지금 액티브 펀드의 운용자금은 비상식 적이다.
1년 사이에 너무 많이 늘어버렸네.
세계 1위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보면 한국 200대 기업의 주식을 5%이상 갖고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기업의 주식을 5% 이상 갖고 있다.
운용자금이 워낙 크니까 그 정도 보유해야 소화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장 하락이 확실해 보여도 뺄 수 없는 것이고.
우리도 이젠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다.
한 번에 모두 던진다면 경제대공황을 불러일으킬만한 자금이다.
“액티브를 추가모집 하지 않는다 치면. 해결책이 있나요?”
“ETF로 가야지. 자기 선택이 중요하니까.”
인덱스 펀드는 시장지수를 추종한다.
시총 비율에 맞춰 상장된 모든 회사를 산다.
어디에 투자할 지 고민하기 싫은 사람은 인덱스에 넣는 데 이런 수동적인 투자가 싫은 사람도 있다.
당첨자가 정해져 있는 즉석복권과 내가 감이 오는 숫자를 찍을 수 있는 로또의 차이다.
둘의 기댓값이 같을 때 사람들은 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 로또에 더 많이 몰린다.
ETF는 인덱스와 직접 투자의 중간이다.
모든 주식을 사는 건 싫고 내가 직접 투자하는 건 자신 없지만, 특정 섹터, 예를 들면 바이오 섹터가 뜬다, 혹은 전기차 섹터가 뜬다는 필이 팍 왔을 때 그 섹터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ETF 전기차 섹터의 상품을 만들고 약속대로 전기차 섹터의 회사들을 지분비율에 맞게 사두면 섹터 흐름에 따른 수익률을 얻는다.
같은 식으로 건설 섹터, IT 섹터, 메뚜기 테마 등 모든 섹터별로, 모든 테마별로 상품을 만들어 선택하게 만들어준다.
긴 시간을 보면 인덱스와 수익률 차이가 크지 않지만, 인덱스보다 인기 있고 많은 자금이 몰린다.
“액티브 모집을 멈추면 ETF로 몰리겠네요. 최대한 만드세요. 액티브도 제 자금 조금씩 빼서 비중을 낮추고요.”
“그래.”
권순진의 머릿속에 수백 개의 ETF 섹터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길 반복한다.
“테슬라는 얼마예요?”
“800조.”
“뺄 준비는 하고 있죠?”
“어. 천 조에 빼라며.”
“네. 전부 빼주세요.”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시총은 세계 5대 완성차 시총 총합보다 비싸졌다.
확실히 비정상적인 가격.
워낙 유명한 회사도 많이 오른 다는 걸 알기에 지난해 최대한 매집했고, 그래봤자 40조밖에 못 샀다.
수익은 현재 4배.
우리가 보유한 테슬라 지분은 무려 20%.
우리의 비중이 계속 높아지자 미래그룹의 1픽! 이라며 개미들이 달라붙어 가격을 폭등시켰고, 테슬라 사장형이 혹시 경영권에 관심 있는 거 아니냐며 SNS로 매일 하소연했다.
싼샤댐 붕괴로 테슬라 상하이 공장이 박살났는데도 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중이다.
이제 마지막 폭주를 끝으로 다시 오지 못할 가격에 도달하니 전부 정리하면 된다.
옆에서 듣던 황영석이 끼어들었다.
“그거 말인데, 동욱아 이번엔 피할 수 없어.”
“주가 조작이요?”
“그래. 우리 발표로 테슬라가 반토막 날 텐데 이거 까딱하면 80년 형이다.”
80년 형이면 평생 감옥에 갇히네.
미국법 무서워.
돈 쓰는 만큼 관대해지는 한국법이 편리해서 한국 국적 유지했었는데, 아 씁 또 열 받네.
미래그룹이 워낙 커지다 보니 우리 발표 하나로 세계 주가가 5%씩 출렁인다.
그때마다 미래펀드에 주가조작 의혹이 쏟아진다.
워낙 규모가 크고, 수익률이 좋다보니 모든 소비자가 미래펀드로 쏠리고, 덕분에 전 세계 모든 금융기관이 미래펀드를 적대하고 있다.
지난 해 미래펀드가 받은 주가조작 의혹만 수백 개고 정식 고소가 날아온 게 수십 개다.
“그렇다고 안 팔 수 도 없잖아요. 방법이 없어요?”
“발표하고 나서 파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법적 선의를 표할 방법은 있지.”
채인수가 끼어들었다.
두형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왔다 싶었는데 이 말을 하려고 왔나보다.
“분리요?”
“어. 아예 미래 그룹 밖으로 빼고, 사장, 회장도 외부인으로 모셔서 독립법인으로 만들자. 그래야 감옥 안 간다.”
미국 법 무서워.
“상장도 해야겠네요.”
“전 세계 은행들과 스왑딜해서 국적불명 자산운용사로 만들어야 의혹을 피한다. 어차피 대목은 끝났다며.”
“그렇죠.”
황영석이 표 하나를 꺼냈다.
“이렇게 가자.”
미래자산운용사를 독립 금융지주로 만들고, 지분의 50%를 해외 금융사들과 스왑딜하는 방안.
미래자산운용사 가치를 2000조로 평가하고 스왑딜하니 타국 은행의 지분 1000조 어치를 받게 된다.
이 정도로 많은 은행, 증권사와 스왑딜을 하면 미래자산운용은 하나의 플랫폼이 된다.
이익을 나눠먹는 국가가 많아질수록 압박이 적어진다.
권순진도 채인수도 찬성한다.
“이...렇게 가고. 제 자금도 순차적으로 빼고, 인덱스랑 ETF만 계속 늘리죠.”
“그래야지. 지금 자금 규모도 너무 크니.”
“국가는요?”
“영국하고 일본에서 적극 달려든다. 법인세 5년 무료까지 나왔어.”
기업 유치를 위한 정부의 노력.
비대면시대가 열리면서 기업을 유치할수록 이득이 되며 정치적 업적이 된다.
“그렇게 해 주세요. 이렇게 가면 법적 문제는 없어지는 거죠?”
“의혹은 여전하겠지. 하지만 법적 책임은 없어지지.”
우리 발표로 애플의 주가가 10% 하락할 것이 예상되더라도 미래펀드에서 미리 자금을 빼거나 공매도를 치면 큰일 난다.
대신 발표와 동시에 판매를 시작한다.
미래펀드에 투자한 사람들은 이거에 불만을 갖지만, 어쩔 수 없다.
감옥 가기 싫어.
“분리 진행해 주세요. 상장도 알아보고요.”
“어.”
미래펀드의 큰 방향을 잡았다.
연초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이제 설날을 즐기면......
띠리리리.
드드드드.
드드드.
전화가 동시에 울린다.
아놔. 진짜.
뒤에서 누가 감시하는 거 아냐? 내가 주식 사면 꼭 그 순간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야.
비서실의 전화가 오고 있고 메세지도 왔다.
옆에도 같은 상황.
컴퓨터로 메신저 링크를 열었다.
세계 1위 완성차그룹 도요타의 신년사가 흘러나왔다.
미사어구와 헛된 희망 가득한 말끝에 새해계획을 발표하는데,
-저희 도요타 그룹은 미래그룹이 준비하는 미래자동차 플랫폼 파티에 합류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지껄였다.
“아놔.”
“망했네.”
“저 새끼들. 바로 고소할게.”
비밀유지 협약까지 맺었는데 저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술 먹고 발표하나?
노망든 회장놈이 대본에 없는 말을 무심코 꺼낸 것 같지만 봐줄 수 없다.
“고소는 진행해 주시고요, 순진형. 테슬라 주가 어떻게 되겠어요?”
“30% 이상 떨어지겠지. 최악은 반값.”
“젠장. 저 말 한마디에 수십조 손해 봤네. 최대한 빨리 팔아주세요.”
“그래. 들킨 이상 모든 금융사에 전화 돌려서 블록딜 협상 해볼게. 반값 이상이면 되겠지.”
“그러죠. 인수형, 미래자동차 발표 앞당길 수 있겠어요?”
“최대한 당겨야지. 오늘부터 발표준비 할게.”
“그래요.”
도요타의 헛짓거리로 명절을 빼앗긴 우리 직원형들과 테슬라만 죽어나게 생겼다.
테슬라 1000조 못 찍겠네.
- 작가의말
펀드 수익률은 제가 대충 그래프 그리고 대충 상상해서 계산기 두들겼어요. 연초 수익률과 중간에 들어온 자금의 수익률이 다르다는 것 감안하고, 자회사 상장과 지분판매 수익 들을 더하고, 자회사들을 담보로 대출받아 넣고, 외부 기업 인수에 자금 일부가 나가고 막 그런거 더하고 빼서 나온 수익입니다. 당연히 비현실적인 판타지수익입니다
미국은 공정해서 안 가려고 했는데 ㅜㅜ
테슬라가 바닥에서 9배 오르지만, 바닥 100달라에서 40조 매수하는 건 불가능해요. 한번에40조 매수 누르면 역사상 가장 멍청한 차트가 나와요... 평단 200달러 매수로 계산했어요
키리취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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