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근면성실한 한국인3
버리는 게 가장 좋긴 한데 백제를 해체한 후 멀쩡하던 회사를 부도내 없애는 건 그룹 이미지에도 안 좋을 듯 하고 이대로 팔아봤자 건물 값만 받고 파는 격이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니까 그럴 거면 차라리 안고 가는 게 낫다.
“제 값에 안 팔리면 그냥 갖고 가죠. 채형. 건축사무소를 미래펀드가 운영하면 욕먹을까요?”
“자잘한 돈이니까 큰 피해는 없을 거야. 그래도 적자기업 들고 간다고 싫어하겠지. 언론에서 부풀리면 펀드 가입자들이 반발 할 테고.”
“본사 자금으로 바꾸죠. 펀드에 본사 돈 넣어서 건축사무소를 벤처투자 소속으로 바꾸고. 황형 가능해요?”
“간단하지. 손해를 네 돈으로 메꾼다는 거지?”
“네. 맞아요. 딱히 손해는 아닐 것 같지만.”
임금을 퍼부어도 건물 값이 상승하면 그게 이득이다.
“저... 사장님?”
이름을 들었는데 잊었다.
대머리 사장이 잽싸게 대답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대화를 들었으면 대충 내 정체를 짐작했겠지.
“소방이나 설비 전기 등 하청설계까지 정직원으로 당기고요, 그들이 놀지 않을 정도로 규모를 키우려면 몇 명 더 뽑아야 하나요?”
“에... 현재의 세배는 돼야 합니다.”
“그렇게 늘리시고, 야근이 어쩔 수 없는 업종이라면 야근 하되 업무 과중은 줄여 주세요. 그렇다고 한 가지 프로젝트만 맡는 건 너무하고, 나름 최적의 스케줄을 짜 보세요. 지금 프로젝트 5개씩 한다면 세 개나 네 개로 줄이는 식으로.”
“예. 이해했습니다.”
“노동법에 의거한 임금이 제대로 나갈 거고, 추가되는 인원에게도 제대로 지급할 겁니다. 대신 호구 물었다고 공무원처럼 야근비 타내려고 장난치면 조질 겁니다.”
“예. 단단히 주의시키겠습니다.”
“3년 해 봅시다. 우리는 마케팅 이득을 얻을 거예요. 근로자를 제대로 대우하는 회사. 다른 회사들이 15시간씩 돈도 안주고 굴린다고 욕하면서 우리는 올바른 회사라는 반사이익을 얻는 거죠. 그렇게 3년간 다른 회사 까면서 운영해보고 안되면 접을 겁니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중요해요. 뭘 해야 할까요?”
“생태계를 바꾸자는 거죠?”
“예. 우린 제대로 된 회사가 살아야 한다 호소할 거고 사장님은 그걸로 일감을 따 와야겠죠? 능력 좋은 직원을 데려 오기도 쉬울 테고요. 관공서라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을 테니까 낙찰 받긴 쉽겠죠. 이렇게 3년간 진행해봅시다. 그래도 안 되면 접을 겁니다. 이것도 직원들한테 주지시켜 주세요.”
“예. 이해했습니다. 정말 훌륭하십니다. 자기 돈을 써가면서 도와주신다는 게. 흑. 이 개떡 같은 업계에 몸담은 지 30년...... 이렇게 기쁜 날이 또 없습니다.”
이 아저씨 울겠네.
어? 진짜 울잖아.
오우 쉣.
옆의 부사장전무상무이사이사이사이사 들도 글썽거린다.
아저씨들 그러지 마.
무섭잖아.
“괜찮아요. 대신 제대로 해 주세요.”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망치듯 나왔는데 아재들이 안 따라온다.
배웅을 잊은 건 아니고 서로 얼싸안고... 아우 쉣.
사장실을 나오자 노동삼매경에 빠진 직원들이 보인다.
사주가 바뀌어도 노동자는 똑같이 열심히 일한다.
좀비들.
휴일없이 하루 15시간 근무에 적응한 이들.
초봉 연봉 3000이니까 월 250 받고, 실수령액 200 받으며 주말도 없이 하루 15시간 일하다가 중간중간 휴게실에서 쪽잠을 자는 인생에 적응한 인간들.
신기한건 더없이 초라한 삶을 사는 이들이 현장에 나가면 무적의 감리가 된다.
공사가 설계대로 정확히 되는지 감시하는 감리는 당연히 설계계통에서 나간다.
기술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이사와 팀을 이뤄 현장에 나가면 이들은 때때로 현장 전체를 멈출 수 있는 파워를 갖게 된다.
이건 불균형하다.
이상한 일이다.
“가지.”
멈춰서있자 채형이 재촉한다.
“네 가요.”
차에 타는데 황형이 말했다.
“너무 막 퍼주는 거 아니야? 3년이면 200억 정도 손해 볼 텐데.”
“그러게. 코인으로 쉽게 벌었다 해도 이렇게 막 퍼주는 건 위험해.”
채형도 말린다.
그래도 괜찮다.
3년이면 건물 값 두 배 될 테니 400억 벌잖아.
돈 벌려고 하는 겁니다.
“백제 건설도 잘 안 팔리죠? 비슷한 이유라면 웬만하면 안고 가죠. 적자기업이라면 제 앞으로 돌리고요.”
백제 건설이 보유한 빌딩과 토지 등 자산이 6000억에, 부채는 4000억이다.
대출을 더 늘여 땅이나 사 놓자.
어떻게 하든 이득이다.
점심 조금 지나 집에 오니 아무도 없다.
우선 코인가격부터 확인하고, 800만원 아래 매수벽을 괜히 확인하고, 전보다 조용해진 코인 게시판을 둘러봤다.
- 비캐 561층 : 700 지지선 네 번째 확인하러 갑니다. 이번에도 뚫지 못하면 바닥층 확실하니 빚내서 올인 해도 됩니다.
ㄴ ㅋㅋㅋㅋ 너도 참 징하다
ㄴㄴ 근데 차트는 그게 맞아
ㄴㄴ 바닥 지지선만 확실하면 매집하는 게 무조건 이득이제
- 비캐 561층 : 거래량을 봐봐요. 하락 차트에선 바닥 찌를 때 거래량이 폭발하고, 윗선 찌를 땐 거래량이 그보다 적은데, 지금은 반대가 되었죠. 추세 전환 신호입니다. 바닥에서 거래량 줄고 윗선 찌를 때 거래량 폭발하는 건 상승 차트 특징입니다. 여기가 확실한 바닥이란 증거지요.
ㄴ ㅇㄱㄹㅇ 찐바닥맞아
ㄴ 진반등만 남았네
ㄴ 나는 그건 모르겠구 그냥 가즈아~
몇 남지 않은 이들이 난상토론을 벌인다.
700만원 지지선.
비트코인은 700만원을 철저히 지켜줬다.
여기 닿았다가 점프하고 추세가 바뀌어 하락하다가도 700에 다다르면 바닥이라 생각한 매수세가 몰리면서 재차 점프했다.
바닥에서 거래량이 줄어들었는데 추가하락하지 않는 것도 큰 상승을 압둔 차트의 특징이다.
팔 사람은 다 팔았고, 이제 팔 사람이 남지 않았다는 뜻이니.
이 반등으로 지난 세 달간 2조원 이상 먹었다.
과거의 나는 700 지지선을 믿었기에 비트맥스 10배 올인을 했었고.
씁.
망했지.
차트매매가 무서운 것은 50% 이상 확률로 차트대로 가지만, 가끔 규칙을 벗어날 때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 가한 : 형들 나 코린인데 후오비에 세타라는거 상장했던데 이거 어떻게 봐? 상섬에서 참여했던데
ㄴ 그건 짝퉁임
ㄴ 이름만 상섬이지, 상섬전자랑 전혀 상관음슴
어라 세타? 나중에 2만원 가는 거잖아.
지금 가격이... 17원?
아직 코인판이 끝나지 않았구나.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흘러가며 시즌1이 종료되는 와중에도 시즌2를 위한 발걸음이 진행되고 있다.
후오비 창을 열어 세타 매수 프로그램을 세팅하면서 권순진에게 전화 걸었다.
“형. 암호화폐 팀 만들어주세요.”
-어? 우리에게 가상화폐도 맡기려고?
“세계 각국 ICO 정보 모으고 기타 정보수집하는 팀이에요. 저한테 개인적인 레포트만 넘겨주면 되요. 지금 알트코인 몰락하면서 전문가들 많이 백수 됐을 거에요.”
-오우케이.
2020년에 세계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9000개가 넘는다.
상장 안 된 코인은 그 수십배고.
정보를 모으게 한 후 그중 기억나는 이름만 들어가면 무조건 수백배 이득이지.
쓰레기 산에서 보물을 발굴했다.
이래서 코인 게시판을 끊을 수 없다니까.
- 리또속리또속신나는노래 : 니들 아직 졸업 안했냐? 형이 이번에 빌딩 샀는데 경비할 사람?
ㄴ 야이새끼 너는 정말 나 좀 일시켜주세요
ㄴ 경비함서 코인해도 되요?
ㄴ 형나 치킨 한마리만 굽신굽신 조흥은행 5141...
여긴 언제나 유쾌한 곳이구나.
타다다닥.
- 내 수익률 6000배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미래를 아는 현자로써 스포 한번 해 줬다.
지금 사고 20% 가격에 매도 걸어놓으면 니들 돈 번다.
욕심 부리면 과거 나처럼 지옥 가는 거고.
음모와 권모술수가 판치는 코인게시판을 치우고 인터넷 방송에 들어갔다.
-하아. 하아. 힘드네요. 바로 이어서 할게요.
예하가 나온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댄서팀과 합을 맞추고 있다.
제시의 데뷔 프로젝트.
전담팀이 예하의 데뷔곡을 받았고, 노래와 춤을 연습하는 과정을 생중계하고 있다.
쿵작쿵작.
예하와 댄서팀이 대형을 갖추고 춤을 춘다.
예하는 격한 동작을 소화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마이크를 껐는지 노래는 들리지 않지만 확실히 부르고 있다.
전문 댄서와 비교해 딱히 더 잘 춘다고 할 수 없지만, 아마추어의 눈에 예하의 춤은 그보다 예쁘다.
예하가 예쁜 것도 있지만, 뭐랄까 보이지 않는 매력이 뿜뿜한다.
-이게 되네? 제시야 이보다 어려운 동작도 가능하니?
최고의 안무가를 모셨다.
선생님의 눈에도 하트가 뿅뿅했다.
- ㅋㅋㅋ 벌써 8번째 수정이다
- 점점 어려워져 ㅋㅋㅋ
- 제시만세! 우리 제시 괴롭히지 마라
- 근데 전부 소화해내는 클래스
- 춤이 어려워질수록 점점 예뻐지는 건 맞다
- 진짜 너무 예쁘다
쿵짝쿵짝.
안무가의 지도하에 춤이 조금씩 바뀐다.
내가 보기에도 좀 더 어려워진 것 같지만 예하는 편안하게 소화해냈다.
그리고 좀 더 예뻐졌다.
하아하아.
-안무타임 끝. 이제 제시님은 작곡팀 꺼.
-10분만 더.
-안 돼.
안무가와 작곡가가 싸운다.
결국 데려간 건 작곡가와 엔지니어팀.
-제시야. 여기서 일렉을 빼기로 했어. 대신 네 목소리로 화음을 깔 거야. 가능하겠어?
-네? 해볼게요
화려하던 반주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 자리를 예하의 목소리로 채운다.
그럴수록 노래가 점점 풍성해지고 화려해진다.
안무를 가볍게 추며 노래를 부르는데 땀에 젖은 예하가 활짝 웃고 있다.
갑자기 화면이 전환되었다.
-시작할게요. 지금부터 한 시간 동안 뉴스 진행을 맡은 뉴제네레이션 비파, 줄여서 뉴비 입니다.
ㄴ 아 뭐에요?
ㄴ 제시 돌려줘요
ㄴ 뉴스 따위 꺼져
ㄴ 형 욕먹는 거 좋아해?
채팅창에 불이 났다.
열기로 가득 찬 게임방의 두꺼비집을 내린 것과 비슷한 반응.
-아뇨 그... 이게 계약이 되어 있는 거라서...
ㄴ 그건 모르겠고 제시 보여줘요
ㄴ 제시를 내놔라
공감한다.
일정표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그건 모르겠고 예하를 보고 싶다.
송출피디가 센스가 없네.
어떻게 제시화면을 넘길 생각을 할 수가 있지.
올림픽 야구 한일전 9회 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 뉴스를 튼 격이잖아.
- 우이씨. 나도 제시 훔쳐보고 싶다고. 그냥 가서 방송하자.
뉴비가 액션캠을 들고 일어섰다.
옆 스튜디오로 가서 제시가 연습하는 장면을 멀리서 비추며 뉴스를 진행했다.
- 첫 번째 뉴스입니다. 백제 그룹의 자회사 백제 식품과 백제 포장, 백제 제지가 팔렸습니다. 박스 만드는 골판지와 비닐포장지 회사까지 세트로 넘긴 거죠. 미래펀드 횐님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총 3200억 투입해서 1조 4000억원 벌었습니다. 와아아 짝짝짝짝
ㄴ 제시 춤 더 화려해진거 같지 않아?
ㄴ 이게 단순한 연습인거잖아
ㄴ 아 앞에 머리 좀 치워요 안보이잖아요
다들 화면 뒤쪽의 예하만 보고 있다.
뉴비의 말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있더라도 시선은 저 뒤쪽 제시에게 가 있겠지.
-우이씨. 왜 나만 갖고 그래. 피디님!
송출화면이 바뀌었다.
아까처럼 제시의 연습화면이 메인이 되었고, 대신 목소리는 남자BJ 뉴비의 목소리만 나왔다.
-다음 뉴스입니다. 미래 애니메이션에서 작화가를 추가 모집합......
훨씬 낫네.
ㄴ 야~ 쟤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ㄴ 야~ 이~ 쟤 새끼야~
사람들은 그게 아닌가보다.
하긴.
뉴스 따위 뭐가 중요해.
불쌍한 뉴비 다음 순서인 모닥불의 먹방은 아예 제시 옆에 차려졌다.
- 다들 밥 먹고 하자. 제시 이리와. 요기 요기.
- 아직 연습시간이야!
- 안무 선생님도 조금 쉬세요.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이리 와요~
모닥불은 아예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버렸다.
인터넷 방송의 신기한 점은 그냥 틀어놓고 있게 된다는 점이다.
마냥 틀어놓고 뇌비우고 멍하니 보게 된다.
오후에 틀어놓고, 예하가 저녁을 먹고, 추가 연습을 한 후 집에 올 때까지 마냥 보고 있었다.
“어 오빠? 안 잤어?”
화면 속 여신이 현실에 나타났다아!
“제시 예뻐!”
이게 제시방에 들어오면 외치는 밈이더라.
“에? 헤헤헤헤. 오빠가 더 멋있어. 밥은 먹었어?”
밥?
점심 굶었고, 저녁도 굶었네.
“먹었어. 내일도 일찍 나가지? 피곤하지?”
“어. 히잉. 생각보다 힘드네. 그래도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
안무팀은 예하가 노래할 동안 쉴 수 있지만, 예하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노래하고, 춤추고 다시 노래하고 코칭 받고.
“힘들어? 굳이 할 필요 없는데”
“어? 아냐. 그래도 즐거웠어. 뭔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야. 뭔가 대단한 걸 한다는 느낌.”
예하도 한국인이구나.
20시간 노동을 우습게 버티는 한국인.
평균 노동시간 세계 2위인 한국인.
“그래. 내일도 고생할 테니 오늘은 괴롭히지 않을게.”
“어? 어? 그래. 아닌데. 힝. 그래 오빠 힘들면 그냥 자고. 힝. 수고한 날 위한 보상... 은... 요...? 히잉. 나 완전 이상한 사람 된 거 같아. 못됐어.”
......
강한 한국인. 이래야 한국인이지.
평균 여가시간 세계 3위인 한국인.
이거 통계가 이상한데?
노동 2위 여가 3위면 잠을 안자나?
“오빠?”
냐하아아앙.
예하가 한국인의 근성을 보여줬다.
- 작가의말
노동시간 세계2위 여가시간 세계3위
다이나믹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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