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열린 결말
신경외과 레지던트 4년차 치프 한적찬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외과장 최태수에게 갔다.
미래의 요구와 의도, 자신에게 시킨 일을 모두 말했다.
최태수는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일단 환자를 봐라. 환자가 최우선이다.”
“예. 알겠습니다.”
이후 미래그룹의 움직임은 얌전했다.
인턴 레지 충원계획을 밝혔다가 협회가 반대하니 철회했다.
이후 전문의를 먼저 충원한 후 인턴 레지를 충원하겠다고 했지만 협회가 반대하니 글을 내렸다.
한적찬의 걱정과 달리 미래그룹에선 인사보복 같은 짓을 하지 않았고, 딱히 협회와 날을 세우지도 않았다.
인턴은 여전히 바쁘고, 레지던트 1년차의 100일 당직도 여전하고, 다른 레지들도 모두 똑같이 바빴다.
아침회진이 끝난 후 과장이 치프를 따로 불렀다.
“밑의 의사들 동요하지 않지?”
“조금 실망한 눈치긴 한데 다들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관리 잘해. 무조건 환자가 최우선이다. 최선을 다해 배우도록 노력시켜.”
노력시켜.
최과장님의 성명절기.
“네. 최대한 노력시키겠습니다. 그래도 이제 긴장할 필요는......”
“까불지 말고 노력시켜. 곧 거대한 태풍이 몰아칠 거다. 그때도 흔들림 없이 환자를 봐야 해.”
“예. 알겠습니다. 노력시키겠습니다.”
“그래.”
최태수는 한적찬의 어깨를 톡톡 두들겨주고는 장기휴가를 낸 펠로우 정한영의 빈 방을 보다가 과장실로 들어갔다.
“예하야. 넌 가봐. 녹음한다며?”
예하의 전담 매니저가 작곡가를 물어왔다.
예하의 미모와 춤, 노래실력은 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수많은 작곡가가 곡을 보내왔다.
진정 예하가 마음에 들어서든 BJ제시의 명성에 올라타려고든 정말 많은 곡이 날아왔다.
심지어 가이드녹음에 맞춰 안무까지 찍어서 보낸 이도 많다.
가이드 녹음된 곡을 하나씩 들었고, 예하는 그 중 마음에 드는 곡을 골랐다.
나머지는 전담 매니저의 역할.
수익 배분 등을 조율하고 계약했다.
이제 예하의 데뷔곡이 정해졌다.
“괜찮아. 멀었어. 연습은 따로 해도 돼.”
“너 데뷔곡인데 대충 할래?”
“난 오빠 도울 거야. 이게 무조건 최우선이얌.”
“에휴. 알았다. 같이 하자. 앉아.”
띠디디디.
알람이 울린다.
4월 초 800만원 아래로 떨어진 비트코인을 열흘에 걸쳐 주웠다.
암호화폐는 1,2월의 낙화 같은 폭락은 없고, 완만하게 조정하며 하락하고 있다.
덩달아 거래량도 팍 죽었다.
줄어든 거래량 때문에 열흘 동안 고작 1조원밖에 사지 못했다.
누가 팔아줘야 살 수 있지 존버맨들이 물량을 내놓지 않으니 살 수가 없다.
수많은 이가 -95% 계좌를 보며 이 악물고 버티거나, 손절하고 앱을 지운 채 떠나버렸다.
커뮤니티 게시판도 조용해졌다.
- 비캐561층 : 700만원의 강력한 지지선이 확인됐습니다. 열흘 째 바닥을 뚫지 못했으니 이제 올라갑니다. 어서 타세요.
ㄴ 아무 가치 없는 전자코드를 수백만원 주고 사는 등신이 있네
ㄴ 코드만 긁어 붙여 넣어도 바로 만든다는데 그걸 왜 사?
ㄴ 10원에 입 벌림
저 아저씨 참 열심이다.
그렇게 잘 알면 진작 손절했다가 다시 줍는 게 이득일 텐데.
댓글도 거의 달리지 않는 글이 불쌍해서 도와줬다.
- 내 수익률 3000배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아직 안탄 흑우 없제 ?
5월초가 되니 비트코인 가격은 1000만원을 넘겼다.
해외 가격은 9500달러.
한 때 50퍼센트를 넘겼던 김치프리미엄이 싹 사라지고 역으로 -5%의 역프리미엄이 생겼다.
한국에서 사서 외국에 팔아 달러를 가져오면 5% 이득이다.
물론 환치기에 대한 세금이 더 비싸니 소액만 하거나 불법을 저질러야 한다.
국가에서 주도해서 거래한다면 채권 거래보다 이득일 텐데 국가의 움직임은 없고.
띠디디디.
“팔자.”
“옙.”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지지선 700만원에 팔고, 1000만원을 넘기자 산다.
반대매매.
물론 심리는 이해가 된다.
계속 떨어지니 더 떨어질 거 같아서 팔고, 한 달 동안 계속 오르니 더 오를 것 같아서 산다.
과거의 나도 그랬다.
그 공포와 유혹을 이겨내야 돈을 벌 수 있다.
주식 투자 책을 읽은 걸로는 버틸 수 없는 심리학의 영역.
잃으면서 담대해지고 손절을 참는 법을 배우는 거지.
1050만원을 넘기자 개미들이 마구 달라붙는다.
- 비캐561층 : 욕심 부리지 말고 전고점 1400만원까지만 봅시다. 거기서 한번 내렸다가 돌파하면 다시 탑니다.
참 좋은 덕담이십니다.
여기서 추가 하락하는 옵션은 없습니까?
자신의 말이 틀렸을 때에 대한 대책은 있나요?
당연히 없겠죠.
띠디디디.
팔자.
달라붙는 개미들에게 꿀물을 준다.
평단 750만원의 코인을 1050에 내 놓는다.
하락해서 바닥에 붙었을 땐 거래량이 팍 죽었는데 1050을 넘기니 오히려 거래량이 늘어난다.
개미들이 붙고, 단타꾼이 붙고, 큰손이 뒤따른다.
“확실히 더 편해졌어.”
상철이 형에게 전화해 기능을 계속 추가했다.
이 형이 잘 안 해줘서 유성주 사장에게 전화해 기능을 추가 받았다.
그저 코딩만 하는 김상철과 달리 투자자를 찾는 고생을 해본 유성주는 물주의 위대함을 잘 안다.
일정량 이상의 매수세가 나오면 자동으로 잡아먹고 빈공간이 나오면 자동으로 매도벽을 친다.
30여개 사이트를 일일이 보며 오류가 생기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슬쩍슬쩍 확인하며 자기 할일을 하면 된다.
축구선수를 검색하고, 야구선수를 검색하고, 코넥스에 있는 회사를 하나하나 살피며 미래의 기억을 더듬는다.
기억에 있는 이름이라면 최소한 코스닥 상장 정도는 할 테고, 그 말은 현재보다 가치가 오른다는 뜻이니까.
그러고 있는데 옆이 조용하다.
예하는 꾀꼬리처럼 항상 노래를 멈추지 않는 새인데.
옆을 보니 예하가 크립토와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뭐해?”
“어? 오빠처럼 차트를 잘 보고 싶은데...... 도저히 모르겠어. 왜 지금 내리는 거야?”
4월 초부터 매일 1~2%씩 꾸준히 올랐다.
한 달 동안 계속 올랐는데 왜 지금 내리는지 모르겠지.
“800만원에 오빠가 들어간 타이밍도 그래. 계속 떨어졌잖아. 더 떨어질지 모르는데 왜 들어간 거야?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했었잖아.”
합리적 의심 옳습니다.
내가 미래에서 왔기에 이런 투자가 가능한 거지.
나 말곤 누구도 못해.
“영원히 떨어지는 건 없어. 떨어졌으면 오르지.”
“하지마안. 한 달 동안 꾸준히 떨어졌잖아. 그 중 언제 꺾일지 어떻게 알아? 하락하는 한 달 중에 언제 들어가도 똑같은데 정확히 저점 잡았잖아. 이번에 내리는 것도 그래. 계속 올랐는데 기다리다가 하필 천오십만원에 전부 정리하잖아. 왜? 보는 방법 알려주면 안 돼?”
시키는 대로만 하던 예하가 진지하게 차트를 보기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음. 그건 말야.”
일기예보는 신의 영역이다.
아무리 열심히 분석해도 인간은 미래를 맞출 순 없다.
하지만 그걸로 돈을 받으려면 틀릴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설명해야 한다.
과거 이럴 때 이랬어요, 예전에 이런 구름이 생기면 이런 날씨가 되었어요.
차트는 일기예보 기상도와 똑같다.
차트를 보는 이유는 미래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분석해도 인간은 미래를 맞출 순 없다.
차트는 미래의 호재와 자연재해나 화재와 같은 돌발 상황을 모르기 때문이다.
차트는 전문가가 제3자에게 설명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자 봐봐. 이게 주봉이고, 이게 1분 봉이야. 이건 240일 선이고, 이건 5일 선이고. 그리고 이걸 스토캐스틱이라고 하고 이건 맥디라는 거거든. 자 봐봐. 이해 돼? 모르겠어? 하아. 그러니까 이동평균선을 보고 그 담에 이격도를 보면 말이야. 어? 모르겠어?”
“미... 미안. 내가 잘못했어. 오빠.”
예하가 포기했다.
“하아. 이것이 천재의 고독이라는 건가. 외롭다. 함께 있어도 대화가 안 돼. 씁쓸하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자세를 취했다.
“미아안. 오빠. 우리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자.”
휴. 적당히 잘 넘어갔다.
미래에서 차트를 보고 왔다고 말할 수 없잖아.
“괜찮아. 네가 노래와 춤에 재능 있는 것처럼 내가 차트를 보는 재능이 있을 뿐이야.”
“어. 그런 거 같아. 오빠가 시키는 대로만 할게.”
“그럼 노래를 연습합니다. 춤을 연습합니다. 그러다가 알람이 울리면 달려옵니다. 알겠습니까?”
“넵. 열심히 하겠습니다.”
땡큐 차트야.
난 차트를 보고 분석해서 가격을 맞추는 척 할게.
과거 LTCM이란 펀드가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여 거의 완벽한 투자모델을 만들어서 3년 만에 2배의 수익을 올렸다.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띠디디디 거래해 이론상 완전 안전하게 2배의 수익을 만든 것이다.
세상이 열광했고, 돈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멸망했다.
이론상 완벽한 투자모델은 수학적으로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투자자들은 사람이고, 정교한 수학계산은 인간의 비이성적인 심리를 계산할 수 없었다.
차트는 과거의 현상을 보여주지만, 미래의 호재를 모른다.
호재를 모르고, 사건사고를 모르고, 비이성적 심리를 모른다.
그래서 차트는 과거를 설명할 수 있지만, 미래를 맞출 수 없다.
차트를 통한 정답률은 50%다.
맞거나 틀리거나.
오르거나 내리거나.
둘 중 하나다.
차트를 보는 건 도움이 되지만, 맹신하면 크게 다친다.
- 비캐561층 : 1200까지 저항선이 없어요. 잠시 쉬었다가 1200까진 쭉 올라갈 거에요. 내리더라도 그때 내리면 되요.
저 사람은 비캐가 561만원까지 오르기를 바라는 심리 때문에 차트를 상승추세로 읽게 만든다.
저 사람은 가격이 오르면 모두가 부자가 되어 행복하겠지, 그런 마음밖에 없을 테지만.
저 악의 없는 희망론에 누군가는 분명 피해를 본다.
“오빠. 그럼 이 사람은 왜 틀린 거야? 저항선이라면 1200 여기가 맞지 않아?”
또 어설프게 차트 공부했군. 쯧쯧.
“파동이론을 적용하면 1파보다 2파가 작아야 해. 점점 파동이 좁아져서 삼각수렴해야지. 후훗. 이것이 바로 눈높이의 차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을 읽지 못하지.”
차트기법은 다양하기에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대신 다양한 차트 중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오를 수도 있고, 횡보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을 차트가 설명해준다.
졸라 열린 결말.
바닥에서 주울 때보다 열배 늘어난 거래량 덕에 이틀 만에 전부 정리했다.
1조원을 투자해 평균 37%의 수익을 올렸다.
“그래서 얼마 벌었어?”
“3600억원.”
“...... 진짜 돈이 돈처럼 안 보인다.”
“이게 어려운거야. 바닥을 찾는 눈과 고점을 찾는 눈.”
“그래. 오빠가 대단한건 아는데...... 하아. 내가 평생 일해도 그만큼 벌 수 있을까?”
“마돈나급이 되어 20년 뼈빠지게 일하면 되지 않을까?”
“하아. 중국가야 하나? 핀빙빙 언니처럼 벌면 5년?”
핀빙빙? 어?
그 사건이 언제였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뚜루루루.
채인수 형이다.
“예.”
-대학병원 난리 났다. 정교수 열한명과 부교수 스물 한명이 사직서 냈다. 나머지는 파업준비 중이고.
이 씹새들이.
“선빵을 날렸네요.”
-그러니까. 단체로 사표내면서 하는 소리가 사업가가 병원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다. 그러면 복귀하겠대.
“어떻게 할까요?”
-환자가 문제야. 입원환자들과 수술스케줄이 있는데 이걸 멈출 수 없잖아? 우선은 받아들이고......
“하. 인질범과 협상을 시작하면 계속 밀릴 텐데.”
-어차피 힘든 상대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 우선은 사태수습부터 해야지.
“네. 일단 수습부터. 내일 병원 가보죠.”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제 오늘 번 돈 3600억으로 해결된다면 웃으면서 막 퍼 줄텐데.
이건 돈으로 안 되는 일이라 참 답답하다.
- 작가의말
차트를 맹신하면 안 되지만, 차트는 꼭 봐야 합니다 라고 생각해유
최씨는 오마주 캐릭터입니다 혹시 논란이 된다면 이번 챕터가 끝난 후에 일괄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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