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등고
교주의 앞에 부복한 고삼과 스물여덟의 호위대원들은 가슴이 벅차 올랐다. 이들은 전부 성화교의 세력권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일부는 명화교도가 아니지만 어릴때부터 교주는 천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기에 교주에 대한 숭앙심이 대단했다.
"최근 소교주가 명화교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그리고 너희와 같은 교도들의 노력도 가상하여 천신께서 천신공이라는 새로운 무공을 내리셨다. 교주만 익히는 신화공과는 달리 천신공은 교도들에게도 전수할 수 있다."
머리를 숙이고 있어 얼굴표정을 확인할 수 없지만 한선후는 이들의 격동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본교를 위해 공을 세운 자들도 있지만 최근 가장 눈에 도드라지는 활약을 한 호위대원들에게 우선적으로 이 무공을 전수할 것이다. 천신께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아시기에 너희가 익힐 필요가 없이 내가 전수만 하면 되는 무공을 내리셨다. 모두 눈을 감고 정좌한 후 정신을 집중해라."
그간 무수한 목숨을 앗아가며 교주는 능숙하게 천신공을 운용할 수 있었다. 고삼까지 포함해 스물아홉명에게 한번씩 운용하는데 이각정도만 걸렸다. 그리고 예전에는 손을 떼면 천신공의 기운이 제멋대로 움직였는데 이들의 몸에 들어간 천신공은 교주가 손을 뗀 후에도 한참동안 운기되다 사라졌다.
예상대로 스물아홉명이 전부 무사하자 교주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연속으로 천신공을 시도해보고 싶지만 그건 추후에 횡련일기공을 새롭게 익힌 자들을 통해 시험해보면 된다. 지금은 당장 필요한 전력을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교주가 새로 얻은 힘의 비밀이 오래갈 것 같지는 않기에 탄로나기 전에 강한 힘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송백자는 무당에 돌아가서 내상을 치유하다가 서무림맹의 성립과 마교와 불가침조약을 맺은 사실을 듣고 내상이 다시 도졌다. 무림맹에서 무당파와 관련 세력의 사람들이 요직에서 서서히 한직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장삼풍이 우화한 후 처음으로 겪는 위기에 무당파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신 대장로님을 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문인의 말에 송백자는 머리가 아파왔다. 하나씩만 해도 머리가 아픈 일인데 그런 일들이 세개나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생각대로 풀리면 좋은 일들이나 그만한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첫번째는 서무림맹에서 온 서신이다. 온갖 미사여구로 무당을 칭송했지만 서신의 내용은 명료했다.
'무림맹에서 탈퇴하고 서무림맹에 가입하시오, 그러면 당분간 명화교가 그대들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오.'
지금 무림맹에서의 기반을 닦기 위해 무당파가 투자한 재화와 인력은 어마어마하다. 그 모든것을 버리고 서무림맹에 가입하기는 힘들다. 어떻게든 무림맹내에서 세력을 유지하고 반전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하지만 마교가 무당을 덮쳐온다면 멀리 있는 소림과 무림맹보다 조금이라더 더 가까운 서무림맹이 도움이 된다.
거기에 서무림맹은 불가침조약을 맺었기에 가입하는 즉시 당분간 마교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무당파를 따라 무림맹에 투자한 동맹세력들과 속가들을 버려야 하고 마교가 무서워서 서무림맹에 가입했다는 질타도 들어야 한다.
두번째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새로 무림맹주가 된 원각은 마교를 강호의 공적으로 지명하고 모든 힘을 모아 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림맹이 오래되지 않아 권위가 부족하기에 무당파에게 소림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해왔다. 무림맹이라는 이름에 소림과 무당이 얹히고 화산의 봉문을 들먹이면 충분한 무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점은 일단 성사되면 예전처럼 군대를 파견하여 마교와 대치를 한다는 점이다. 마교와 가까운 곳에 수천의 군사와 수백의 무인을 주둔시키기에 마교가 무당을 기습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현재 무림맹주가 원각이라는 것이다. 송백자가 무림맹주일 때는 주둔군의 관리를 열심히 했다.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이 큰것도 있지만 무당과 화산이 소림보다 마교와 가깝기 때문이다. 마교 놈들이 혹시라도 미친척 하고 기습을 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무당 아니면 화산이다.
만약 마교를 강호의 공적으로 선포하고 군대와 무인들을 주둔시킨 뒤 원각이 손을 놓아버리면 무당이 그 모든것을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무림맹주도 아니기에 강제성이 전혀 없다. 예전에 무림맹의 권위로 다른 세력들의 협조를 끌어냈다면 지금은 무당파의 자격으로 협상을 통해 협조를 구해야 한다. 무당파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세번째 문제는 앞의 둘보다는 덜 골치 아프다. 종남파에서 지원요청을 해온 것이다. 송백자가 아직 무림맹주일 때 종남에게 화산의 위치를 대신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종남이 무림맹에 가입하고 무당을 지지하는 조건을 걸었다.
천살의 농간으로 주체는 다음대 무림맹주를 소림이나 무당이 하게 하라고 했다. 그 분부를 받은 자는 저번에 무당이 했으니 이번에는 소림이라는 간단한 논리로 소림을 맹주로 밀어주는 공작을 했다. 다행히 송백자가 천기를 살필 정도가 되지 않아 이러한 사실을 모르기에 내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무림맹의 자원을 이용해서 종남을 지원해 주었다. 화산이 봉문한 사이 종남이 서안지역의 세력들을 다독여 마교에 대항해야 한다는 명분도 있기에 무당은 아무런 부담 없이 종남을 밀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종남을 지원하려면 무당 자신의 창고문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사조님이 그립구려. 그분이라면 한가지 방법으로 세개를 다 해결하셨겠지."
토론이 지지부진하고 침묵이 길어지자 누군가 탄식했다. 송백자는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이대도강의 계책이었다.
주체는 자신의 앞에 서있는 자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네가 명교를 대표해 새롭게 협상할 책임자이냐?"
장현성은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검만 휘두르던 망부라 예의를 잘 모릅니다. 실수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난번에 온 자보다는 덜 위험한 것 같구나."
"그때는 교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람이 없어 그자를 보냈습니다. 그자가 큰 무례를 저지르지 않았기만을 바랍니다."
"그래, 찾아온 목적이 소림을 치겠으니 나더러 눈감아달라 인가? 나한테 뭘 해줄거냐?"
무림맹의 총단에서는 회의가 한창이었다. 원각이 무림맹주가 된 후 일정 시간이 흐르자 회의석상의 면면들이 많이 바뀌었다. 무당파나 관련 세력의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들 발언을 삼가고 침묵을 고수했다.
"하북팽가와 진주언가 그리고 산동유가에서 무림맹의 가입을 요청해 왔소. 다들 자기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시오."
"셋 다 지난번에 무림맹 가입을 요청했지만 불응한 가문들이고 관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가문들이군요. 그 배후가 최근 기세가 대단한 금의위나 동창일 듯 합니다."
"금의위나 동창이면 그저 첩자를 심는 수준이지, 나는 더 높은 곳일까 걱정이오."
"관과 무림의 불간섭을 발표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눈에 뻔히 보이는 수작을 부리겠소. 내 생각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것이 분명하오."
"제 짧은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저 세 가문을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힘이 금의위나 동창에게 없습니다. 더 높은 곳이 분명합니다. 의도는 무림맹에 대한 통제가 아닐까요?"
"무림맹은 현재 정식 전투부대가 없소. 어디에 일이 있으면 근처의 문파들이 사람을 모아 해결하는 식이지. 내 생각에 무림맹에 높은 곳에서 노릴만한 무언가가 없소."
"무림맹을 장악하고 무인으로 이루어진 전투부대를 양성하려는 목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원나라때 그 혼군처럼 천하각파의 비급을 바치게 한 후 장생불로할 수 있는 절세무공을 연구한다고 난리 치는걸 지도 모르구요."
"추측을 얘기하지 말고 확실한 것만 얘기합시다. 황실이 무림맹에 위에 언급한 세가들을 통해 영향력을 가지려 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는 황실이 우리 무림맹에 어떤 변화나 변고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뜻이 될수도 있습니다."
송백자가 맹주일 때와는 달리 회의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토론했다. 송백자가 맹주를 할 때에는 미리 회의전에 다 짜고 회의장에서는 사전에 준비한대로 대화를 주고 받은 후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 효율은 훨씬 못하지만 회의장의 분위기는 지금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위처럼 가끔 과격한 말들이 나와 회의장을 침묵에 빠뜨린다.
"제 말을 받는 사람이 없으니 계속하겠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어떤 대문파가 무림맹을 탈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혼란한 틈에 세개의 관에 호의적인 가문을 집어넣어 그 자리를 최대한 많이 차지하려는 것이지요."
사내의 말에 사람들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무당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무당의 사람들은 딴사람 얘기라는 듯 아무 반응도 없었다.
"또 하나는 화산이 봉문된 것처럼 마교가 최근 무언가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어떤 대문파가 봉문될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또 한번 무당파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언질을 단단히 받았는지 무당의 사람들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했다.
고삼은 몸안에서 맥동하는 기운을 느끼며 애써 흥분을 가라앉혔다. 다른 사람들은 다 빠르게 천신공을 성취했는데 자신만 유독 늦었다. 대성한 횡련일기공은 외부의 자극을 받았을 때에만 움직인다. 하지만 교주로부터 받은 천신공은 쉬지않고 계속 운기되고 있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강해지는 것이 체감되었다.
"힘이 강해져서 좋기는 한데 요새 너무 힘들어. 예전에는 마누라가 들러붙는게 힘들었는데 요새는 마누라가 자꾸 도망가서 힘들어."
"형님도 마찬가지시군요. 저희 같은 총각들은 더 힘듭니다. 돈 모아 장가가야 하는데 자꾸 사창가에 돈을 갖다 바치니 언제 형님처럼 가정을 이룰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뭐가 부럽다고. 자네들은 참기 힘들면 사창가라도 가지. 나는 돈 받는 날에 받아서 집까지 가는 동안만 돈을 만져볼 수 있다네. 가끔 돈 받는 날에 집에 안 가고 여기서 호위라도 서면 밤새 돈을 만지작 거린다네."
호위대에 남은 스물여덟은 원래 평범한 무인이거나 무인도 아닌 자들이다. 출세를 위해 혹은 신앙심 때문에 혹은 돈 때문에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소교주의 호위대에 지원해서 악과 독기 그리고 행운으로 남은 자들이다. 그러다 교주의 은덕으로 천신공을 익혀내서 갑자기 강한 힘을 손에 쥐게 되니 그 기쁨을 헤아릴 수 없었다.
마냥 기쁜 이들과는 달리 교주의 찌푸려진 이마는 펴질 줄 몰랐다.
"그러니까 그 둘이 사흘 간격으로 죽었다는 말이지? 더 늦게 죽은자가 횡련일기공의 경지가 미세하게 더 높았고?"
"맞습니다. 그리고 죽을때도 아무 전조가 없었습니다. 갑자기 픽 하고 쓰러졌습니다."
강철의 군대를 만들 예정이었는데 강철의 군대가 아니라 불붙는 나무로 된 부대였다. 강한 위력은 가지고 있지만 다 타면 꺼지는 불이다. 장현성이 이미 황제와 협상을 시작했을 것이다. 소림을 공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줄것은 내줘야 하는 상황이다.
천살은 의념을 손목과 발목에 집중했다. 그러자 극양의 기운이 현철을 달궜다. 현철은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천살의 육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몇번 크게 데인 후 불사공의 노력으로 웬만큼의 뜨거움으로는 천살의 피부를 태우지 못한다.
몸의 공력이 어느정도 소모되자 극음의 기운으로 바꿨다. 전신 혈도의 기운들이 극음으로 변하여 현철을 식혔고 현철에 물방울이 점점이 맺혔다. 공력을 전부 소모한 천살은 휴식을 취하며 공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단전속의 신화공이 움직여주면 반나절도 안 걸릴 것 같은데 단전을 제외한 전신혈도의 기운만으로 하려니 참으로 힘들었다. 혈도들의 기운을 극음으로 극양으로 바꾸는 과정에 많은 기운이 소실되기 때문에 효율이 엉망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공 대체 정체가 무어냐? 혹시 천살마기랑 같은곳 출신인 건가?'
- 작가의말
油盡燈枯, 기름이 다하면 등불은 꺼지죠. 기름값이 올라도 가끔 꺼지더군요.
감기가 다 나았습니다. 젠장, 드립력이 감기와 같이 증발했습니다. 창문 오초간 열어놓고 싶은 심정입니다.
Commen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