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갑질천마
공항에서는 수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마중나와 있었다. 하지만 천마와 아이들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초췌한 얼굴을 한 서창훈은 셋이 나오자 잽싸게 차에 태웠다.
"너희들 혹시 무슨 사고를 친거냐? 어제 저녁에 갑자기 너희 관련된 기사들이 싹 사라지고 내 블로그에도 협박쪽지가 날아왔다."
서창훈은 직접 블로그를 운영하며 천마와 아이들의 소식을 내보내고 있다. 비록 인기있는 블로그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파워블로거가 될 것이란 희망을 품고 있다. 그런데 어제 저녁 기사들이 내려감과 동시에 천마와 아이들 관련 내용을 전부 지우라는 협박쪽지가 왔다.
"형, 신경 쓰지마. 행사나 무대 많이 잡아줘. 인지도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으면 돼. 벼락스타가 될 생각은 버리는게 좋아."
상해 콘서트가 끝난 후 신화공의 내공이 더 많아졌다. 천마에게 지급 시급한 것은 신화공의 내공을 더 많이 쌓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석성옥의 수법으로 조자운과 서문초신의 혈도들도 일부 개통해 줄 수 있다. 비록 단전이 없어 내공을 익히지는 못하지만 혈도의 기가 원활하면 체력이나 여러가지 방면에서 남들보다 월등할 것이다.
'혈도는 다 그대로인데 세개의 단전만 없다니, 참 이상한 세상이구나.'
내외의 구분이 없는 천마이기에 단전이 없어도 내력을 사용할 수 있다. 자체로 영성이 있는 절세무학이기에 신화공은 단전이 없어도 천마의 몸안의 어디에라도 웅크리고 있을 수 있다.
'나정도는 되어야 환생해도 살맛이 나지 하수들이 이 세상에 환생하면 진짜 재미없겠다.'
하지만 느긋하던 천마도 일주일이 지나도록 행사 하나 잡히지 않자 문제의 엄중성을 느꼈다.
"형, 강사성이라는 자 뒷배가 누구야? 외가가 재벌이라고 하던데. 그 자식이 농간을 부리는 것 같아."
서창훈의 얼굴색이 거멓게 죽었다.
"강사성의 외가라면 우리나라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재벌가야. 어쩌다가 그런 거물하고 시비가 붙은거야?"
"나는 천마다."
천마의 대답에 서창훈은 전후사정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타개책이 전혀 없기에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맨날 얼굴을 찌푸리고 다니던 서창훈이 활짝 웃는 얼굴로 셋에게 희소식을 알렸다.
"이번에 재계에서 비밀모임을 가지는데 너희를 축하무대 하라고 초청했다. 삼겹살 파티나 하자."
비밀모임은 남몰래 하는 모임이 아니라 안에서의 대화내용을 서로 비밀을 지키기로 약속하는 모임을 말한다. 누구라도 그 안에서 오간 대화를 밖에 누설하여 이득을 보려고 한다면 다른 자들의 협공에 순삭 당할 것이다.
이는 천리마회장이 손을 쓴 것으로 천마의 DNA와 천치의 DNA를 비교분석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어떻게라도 얼굴 한번 보려는 목적으로 천마와 아이들의 축하무대를 안배한 것이다.
서창훈은 큰 마음 먹고 셋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셋에게 비싼 옷을 사주고나서 카드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소음공을 사용한 것으로 오해하기 딱 좋게 말이다.
천마는 언젠가 어머니와 동생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좋은 옷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의 천마는 철이 없고 자기 생각만 앞서는 아이였다. 그래서 상심하여 자살까지 결심한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천마는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더 절실히 알기에 어머니와 동생에게 잘해줄 생각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이룬게 없고 둘을 기만하는 것 같아 만남을 꺼려하고 있지만 말이다.
셋을 모임장소에 데려다 준 서창훈은 입장하지 못하고 밖의 차안에세 대기해야 했다. 천마는 몸수색을 꼼꼼히 하는 경호원들을 향해 이마를 찌푸렸다.
"나는 천마다."
경호원들이 들어보니 천마의 말이 도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몸수색을 중단하고 그대로 들여보냈다. 그곳에서 천마는 의외라면 의외일 수도 있는 인물을 만났다. 바로 강사성이다.
"경호원들이 단체로 술 먹었나. 왜 여기에 거지를 들여보냈나?"
강사성이 시비를 걸어오자 천마는 피식 웃었다. 강사성같은 금수저는 평생 사진군 같은 흙수저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기고만장해서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리라.
"너 지금처럼 수백명이 모인 장소에서 대놓고 맞은적이 없지? 주둥이 조심해라."
"어처구니가 없네. 너도 머리가 달렸으면 내가 누군지 알고 있을게 아니냐. 그런데도 머리를 빳빳이 세우냐?"
강사성은 이번생이 아니라 전번 생에서도 이런 수모를 겪어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머리를 숙이고 부하로 들어가는 일은 꿈에도 상상하기 싫다.
철썩, 철썩, 철썩. 이 드립은 이미 한번 써먹었기에 재탕하지 않겠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천마의 손이 강사성의 얼굴과 만남과 이별을 빈번하게 가졌다. 경호원들이 다급하게 달려왔지만 강사성의 얼굴에는 이미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사실 이 자리에 모인 수백명을 순위를 매기라면 강사성보다 뒤에 설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외조부의 총애를 받는것은 힘과 권력이 되지 못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힘과 권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강사성은 아직 애송이라 그럴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재벌 회장의 총애를 받는 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곧바로 무전들이 오가더니 경호팀이 두 사람을 한켠으로 격리시켰다. 천리마의 비서실장인 화운과 현회장의 비서실장인 한선후가 현장에 도착했다. 천리마와 현장로(이름이 장로 입니다, 장생불로의 약자.)는 손에 만원경을 들고 멀리서 지켜봤다.
"화실장은 무슨 일이시오?"
"한선배, 이쪽은 우리가 초청한 손님이라 회장님이 가보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도련님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강사성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한선후는 난감에 빠졌다. 강사성이 먼저 손을 썼다면 당당하게 상대방을 질책할 수 있으나 하필이면 선수를 상대에게 빼앗겼다. 선수를 빼앗겼으면 몇배로 갚아줘야 변호해주는 입장에서도 당당히 법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데 말을 들어보니 반격 한번 못해보고 얻어맞기만 했다.
"도련님, 시비 터지면 선빵 날려야 한다고 몇번 말씀드렸습니까. 선수를 빼앗기면 법정에 가도 판사는 전부 도련님 잘못으로 판결할 겁니다."
한편 화운은 천마에게 아부를 떨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법률지식이 상당하네요. 과학적 통계에 의하면 보통 선빵을 날리는 자가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76% 입니다. 그래서 판사도 선빵을 날린 자에게 손을 많이 들어주고 있는게 요즘 추세입니다. 다만 아쉬운게 상대방도 바보는 아니라서 아예 반격을 하지 않았네요. 반격하면 폭행죄까지 뒤집어 씌울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한선후와 화운은 각자 회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현장로는 강사성이 선빵을 맞았다는 말에 이마를 찌푸렸다. 상대에게 명분을 완벽히 빼앗긴 것이다. 돌아가서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겠다고 다짐하는데 천리마의 흐뭇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놈 차암 잘 생겼다."
천리마의 말에 만원경을 들고 강사성에게 선빵을 날린 지혜로운 소년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다시 천리마의 얼굴을 살핀 현장로는 깜짝 놀랐다. 둘의 얼굴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눈이 두개인 것도 그렇고 콧구멍도 예외없이 둘다 두개이다. 입은 하나인데 윗입술이 위에 있고 아랫입술이 아래에 있는것마저 판박이다. 가장 소름 끼치는 것은 둘다 눈썹이 눈 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두개만 비슷하면 그러려니 할텐데 공통점이 너무 많아. 저녀석은 천리마가 숨겨놓은 자식이나 손주가 틀림없다.'
현장로는 곧바로 한선후에게 지시를 내렸다. 현장로의 지시를 받은 한선후는 정중한 자세로 천마에게 명함 한장을 내밀었다.
"저희 회장님 직통전화 입니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라도 전화를 주십시오."
강사성은 화나고 억울했지만 분풀이를 할 곳이 없었다. 먼저 때리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니 누구를 원망하랴. 기분이 잡친 강사성은 파티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책을 던지고 티비와 냉장고를 박살내며 소음공을 펼쳤지만 단독주택이라 층간소음으로 찾아오는 이웃은 없었다.
공연에서 천마군림보를 사용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속에 구렁이 몇마리씩 키우는 작자들이라 쉽게 홀리지 않는 것이다.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이 충분하다면 가능하나 단전이 없어 내공을 키울 방법이 없다. 외공의 수련도 먹히지 않는것을 이미 확인했다. 신도들을 모으는 것만이 유일한 출로이다.
공연이 끝나자 천리마 회장은 직접 셋을 불러다 치하하고 봉투 하나씩 건넸다. 조자운과 서문초신은 백만원씩 들어있었고 천마에게는 천만원이 들어있었다. 허리를 숙여 감사인사를 올리고 떠나가는 천마의 뒷모습을 천리마 회장은 끝까지 지켜봤다.
"엄마, 나 천마야. 오랜만에 전화했네. 나 아이돌 데뷔했어. 사기 아니라니까. 최근 행사 뛰어 돈 벌었으니 엄마랑 초선이 옷 사줄께. 백화점 앞에서 만나자."
백화점앞에서 만나니 초영란과 초선은 나름대로 꾸미고 나왔다. 첫 만남인데 자신의 옷차림이 너무 성의 없다고 천마가 자책하고 있는데 초선이 말을 걸어왔다.
"오빠는 옷차림이 여전히 성의없네. 좀 꾸미고 다녀."
"그럼 내 옷도 좀 봐줘. 난 어떤 옷이 좋은건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천마의 인내심은 반시간만에 바닥났다. 분명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는데 다른데를 둘러보겠단다. 천마의 얼굴이 굳어지자 초선이 애교를 사용했다.
"오빠, 윗층 고급매장까지만 둘러보고 결정할게. 아아앙."
초선의 어이없는 애교에 천마는 마음이 풀렸다. 진짜 모르는 여자가 그랬다면 선빵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아마 가족애가 있기에 받아주는 것인가 보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곳은 VVIP 회원들만 상대하는 고급매장입니다."
"그 VVIP는 어떻게 되는 거요?"
"한달안에 일억원 소비하시면 VIP가 되고 연속 석달 1억 이상 소비하시면 VVIP가 됩니다."
"근데 밑에 마음에 드는 옷들이 없던데, 옷을 꼭 살테니 들여보내주면 안되겠소?"
교육을 잘 받았는지 천살의 반존대에도 직원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여기 VVIP 회원인 분의 추천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전화를 하셔서 그분한테 저희 지배인에게 전화하라고 하시면 됩니다."
천마는 현회장의 명함을 꺼낸 뒤 전화번호대로 전화를 걸었다.
"나 현장로네, 누구시오."
"현회장님, 천마라고 합니다. 일전에 명함을 주셨는데 도움 받을 일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오, 자네였군. 뭐든 말하면 내가 다 들어주겠네."
천마는 지금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현회장 정도면 여기 백화점 VVIP를 몇명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천마의 말을 들은 현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질문했다.
"이번 일로 내 외손주와의 일은 퉁치는거 맞나?"
"네, 당연하지요."
전화기를 놓은 현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씨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보구나. 배포가 남달라. 겨우 백화점 하나 양도하는 걸로 강사성의 싸대기를 때린 일을 없던걸로 한다니. 내 쫌생이 자식들도 저런 배포를 배워야 하는데."
곧바로 백화점의 지배인과 사장이 내려왔고 한선후가 변호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백화점의 주인이 초영란으로 바뀌었고 초선이 사외이사가 되었다.
"당신 이름이 뭐요?"
"이연화 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 어머니 수행비서일을 맡아주시오. 인사팀에 말해 월급도 조절해 주지."
"감사드립니다."
백화점의 직원이 된지 반년만에 고급매장으로 올린 것만 해도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그런데 고급매장에 온지 며칠 안 되어 백화점 주인의 수행비서가 되었다. 연화는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꿈만 같았다.
공사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휴식시간이 되자 유백은 핸드폰을 꺼냈다. 여자친구인 연화의 사진이 바탕으로 깔려있다. 반년전 백화점에 취직하자 주변사람들은 둘이 곧 깨어질 것이라고 악담을 했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도 둘은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그리고 가을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유백, 너 임마 핸드폰에 꿀단지 숨겼냐? 빨리 와서 일이나 도와."
"반장님, 힘쓰는 일은 왜 항장 저예요. 돈 더 주시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 너만큼 사지 멀쩡한 놈이 어디 있어. 다들 한두군데 다치고 아픈데 네놈은 요령도 피우지 않는데 멀쩡한게 참 이상하단 말이야."
- 작가의말
한동안 수준 낮은 갑질에 지치셨죠? 고품격 갑질로 모십니다. 귀싸대기 맞은 일을 무마하기 위해 백화점 하나 통째로 양도하는 현장로, 여전히 귀요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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