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재벌천마
무대가 끝난 후 앵콜요청이 들어왔지만 계획에 없는 일이라 기획측은 앵콜요청을 묵살했다. 어차피 천마와 아이들은 준비한 노래가 하나밖에 없기에 앵콜을 받을 수도 없다. 공연이 끝난 후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중경으로 이동했다.
중경에서 호텔을 잡을 때 천마와 아이들에게 방이 두개가 배정되었다. 원래는 셋이 방 하나를 썼는데 일인실 하나와 이인실 하나가 주어진 것이다. 거기에 냉장고안의 음료들을 마음껏 마시라고 언질도 받았다.
천마는 축하연을 열고 축하주를 마시려 했지만 축하해줄 사람이 없어서 맥주 한캔을 셋이 나눠서 목을 축이는 것으로 가볍게 자축했다. 둘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후 천마는 정좌를 하고 몸속의 신화공의 내력을 점검했다.
관객들의 환호를 받은 후 신화공의 내력이 증가했다. 신화공의 힘이 신도들의 숫자에서 온다는 기록이 있었다. 아마 천마군림보의 사용과 관계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디션에서 천마군림보를 사용할 때 현장에 이백명도 안 되었고 대부분 연예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라 천마군림보에 크게 빠져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공연은 수만명의 사람이 운집해 있었고 아이돌을 미친듯이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마음을 활짝 열고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천마군림보가 활실히 도장을 찍은 것이다. 동시에 영상으로 접하면 천마군림보의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것임을 천마는 확인했다. 인터넷방송 시청율도 좋았고 본방송도 순간시청율이 좋았지만 그때는 내력의 변화가 없었다.
기분이 좋아진 천마는 호텔주변을 산책하려고 방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비상출구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의아한 마음에 다가가보니 서안에서 길거리음식을 잘못 먹어 배탈이 난 아이돌팀의 멤버들이 막내를 교육하고 있었다.
"사진군, 너 정신 제대로 안 차릴꺼야? 고아 주제에 팀에 끼워준 것을 고맙게 여길줄 모르고 꼬박꼬박 말대꾸질이냐?"
"하지만 난 그저 심부름만 했을 뿐이야.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왜 다 내 잘못인거야?"
리더의 발길질에 사진군은 작은 신음을 뱉어냈다. 크게 아프지는 않은데 기분이 무척 나빴다. 천마가 대화를 들어보니 음식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난 죄를 전부 사진군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이다.
"이야, 팀 케미가 장난 아닌데. 이거 동영상 인터넷에 풀면 참 반응 뜨겁겠다."
천마는 촬영을 하지 않았지만 블러핑을 했다. 갑자기 나타난 천마의 말에 놀랐지만 얼굴을 확인하고 곧 이를 갈았다.
"누군가 했더니 촌스런 이름을 가진 팀의 리더구나. 당장 동영상 지우지 않으면 너 연예계에 발도 못 붙일 줄 알아라."
"임마, 현금 가지고 와서 무릎 꿇고 빌어. 협상의 기본도 모르는 새끼가."
천마가 건들거리자 이들은 약간 겁을 먹었다. 리더 빼고는 별볼일 없는 집안 자식들이다. 천마의 뒷배경이 든든하다면 리더 빼고는 기획사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사진군 너 임마 처신 똑바로 해라."
리더는 물러나면서도 사진군에게 한마디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진군이라고 했냐? 맞은데는 괜찮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강사성의 외가가 대단한 재벌집입니다. 잘못 건드리면 진짜 연예계에서 퇴출 당할수도 있습니다."
"사내자식이 소심해서야. 나는 천마다."
연예계에도 흙수저와 금수저의 차별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천마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강호와 가장 비슷한 곳이 연예계라고 생각했다. 강호의 고수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것처럼 이 세상은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들이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규칙으로 제한되고 일정 형식을 따르는 친선비무와 같은 스포츠보다 정형화되지 않은 연예계가 더 강호에 가깝게 느껴졌다.
강사성의 금수저가 28K는 되는지 중경 무대에서 천마와 아이들은 기회를 얻지 못했다. 다음 귀주에서는 호텔방을 하나만 잡아주었다. 다시 우울해진 서문초신과 조자운을 데리고 호텔 가까이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그러다 사진군이 건장한 사내에게 얻어맞는 것을 보고 천마는 한걸음에 다가갔다.
"니 깐 썬머."(너 뭐하는 짓이냐.)
천마의 중국어에 사진군을 패던 사내는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한국어로 대답했다.
"너 천마라는 새끼구나. 한국에 들어가면 너도 손봐줄테니 마음준비는 해두거라."
철썩, 철썩, 철썩. 이는 파도가 뱃전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다. 사내의 뺨에서 출발해 공기의 진동을 타고 사람들의 고막에 살포시 내려앉은 후 고막의 떨림으로 뇌에 전달되는 찰진 소리이다. 얼음물보다 더 시원한 마음의 소리이다.
사내는 분명 따귀를 때려오는 천마의 손을 보고 막고 피하려 했지만 어김없이 얻어맞았다.
"임마, 너 몇살인데 반말이야."
천마의 말에 주눅든 사내가 어눌한 말투로 대답했다.
"스물여섯입니다."
"이 새끼가. 나 열여덟이야. 십팔이라고."
"죄송합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줄 알고 반말했습니다. 다음부터 조심하겠습니다."
사내는 거듭 죄송하다고 허리를 숙여 사죄한 후 천마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도망갔다.
"형, 저자식은 기획사가 붙여준 매니저가 아니고 강사성 개인에게 외할아버지가 붙여준 경호원이예요. 강사성의 외가가 백화점도 짓고 다리도 짓고 자동차도 만들고 하는 대기업의 오너 일가란 말이예요."
"나는 천마다."
천마의 일장연설에 사진군은 시름을 놓을 수 있었다. 옷도 싸구려를 대충 입은 천마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알지 못했다. 반박하고 싶어도 확실한 증거들만 나열하니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형, 덕분에 고마워요. 그래도 어떤 뒷수작을 부릴지 모르니 매니저한테 얘기해서 미리 대비해 두세요."
"우리 매니저 없는데."
홍콩과 광주를 거쳐 상해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상해 콘서트에서는 몇몇 아이돌그룹이 스케줄로 인해 떠나고 그 자리를 메우기로 했던 다른 팀이 일정에 차질이 생겨 오지 못한 덕에 천마와 아이들은 두번째 무대를 가질 수 있었다.
팔만명이 입장할 수 있다는 체육장에는 십만이 되는 인파가 몰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둘에게 천마는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넸다.
"싸대기 후리기 전에 인상 펴. 사내자식들이 패기가 없이 말이야."
이번에도 그닥 좋은 순서에 배치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번보다는 훨씬 나은 순서이다. 최소 수천명이 화장실이나 다른 일을 보기 위해 자리를 뜨는 일은 없었다.
중국관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적당한 편곡을 했다. 전주의 무거운 음악을 가벼운 중국풍의 곡으로 바꾸었다. 천마는 개방의 취선보(醉仙步)를 경쾌하게 밟았다. 쓰러질듯 쓰러지지 않고 일어설듯 일어서지 않는 천마의 비틀거림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주먹을 꼭 쥐었다.
조자운이 랩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남궁세가의 칠정검의 격을 몸으로 펼쳤다. 랩의 운율에 맞춰 격렬하게 떨리는 천마의 몸은 가만히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서문초신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서문초신의 노래가 시작되자 조자운과 천마는 가벼운 율동만 했다. 하지만 그 율동에는 화산의 신법인 연회조양의 무의가 들어있어 여전히 사람의 눈길을 끄는 힘이 있었다.
천마의 차례가 되자 배경음악이 웅장하게 변했다. 그러면서 서서히 락으로 변했다. 천마가 음악적 지식이 부족해 현재까지는 천마후에 의지한 락발성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화공의 내공이 늘어난 덕분에 천마군림보는 두발자국이 가능해졌다. 관객을 등지고 있다가 돌아서며 한걸음, 앞으로 크게 한걸음. 그렇게 두걸음으로 십만 관객을 정복한 후 천마후로 모두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무대의 마무리는 조자운의 랩으로 마쳤다.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의 환호가 시작되기전 운룡대구식의 다섯번의 변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 천마와 아이들, 단 한번의 무대로 대륙을 정복
- 천마와 아이들의 리더 천마, 소림사 속가제자로 취권의 정식전수자임이 밝혀져
- 저 아이는 올림픽에 가서 금메달을 걸어야, 이름을 밝히기 원하지 않는 스포츠계 관계자의 탄식
-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전통 무술인 선우검파씨가 천마의 움직임에 대한 분석
- 마술도구의 도움을 받은것이 분명. 대형기획사 아이돌 안무선생의 일침
운룡대구식의 변화를 다섯번까지 보인 것으로 세상이 들썩였다. 국가대표들을 키우는 체조코치들은 저정도 신체조건이면 올림픽 금메달은 따놓은 것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몸 쓰는것과 관계된 수많은 관계자들이 언론을 통해 자신의 소견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스포츠나 연예계와는 백만리 동떨어진 사람들 중에서도 천마의 행보를 주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연히 뉴스에서 천마의 얼굴을 확인한 대천(大千)그룹의 회장 천리마는 부인에게 질문했다.
"여보, 지난번에 마이클 박사가 내 눈수술이 매우 성공적이라고 한게 틀림없지?"
"이 영감탱이가 노망 났나. 지금 그 질문만 연속 열번째야."
"그런데 왜 우리 방에 박혀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는 외동아들이 저 무대위에서 갓 낚아올린 붕어처럼 펄떡거리는건가?"
그때 대천그룹의 비서실장 화운이 급하게 달려들어왔다.
"회장님, 분부하신대로 천마의 자료를 있는대로 가져왔습니다."
"자네 혹시 나를 감시하나? 나는 그런 분부를 내린적이 없는데."
"요즘 이정도 못하면 비서짓 해먹기 힘듭니다. 분부를 내리기 전에 다 알아서 해내야지요. 천마는 천씨가문의 핏줄이 틀림없습니다."
천씨가문은 국가유공자 가문이다. 고려때부터 시작하여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대한민국이 들어서서도 천씨가문은 정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덕분에 천리마회장은 대천그룹을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다.
그런 천리마회장의 후회라면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군대에 현역으로 보낸 것이다. 군대에서 총기오발사고로 총알을 맞았는데 하필이면 남자한테 가장 치명적인 곳에 맞았다. 외관은 멀쩡하고 성행위에는 지장이 없지만 내용물이 없어서 씨없는 수박이 되었다.
차라리 바깥부분이 손상을 입었다면 인공수정으로라도 후대를 볼수 있는데 대천그룹의 유일한 후계자는 생육능력을 완벽하게 잃어버렸다. 그후 천치(千治)는 그룹을 잘 다스렸으면 하는 회장의 바람과는 다르게 방에 들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있었다.
"천마의 어머니인 초영란은 젊은 시절 댄스가수였습니다. 노래는 전혀 못하고 립싱크로 춤을 추는데 유명하지는 않았습니다. 군부대 위문공연을 갔다가 총알에 배가 명중되어 입원했습니다. 그날이 바로 천치 도련님이 사고를 당한 날입니다."
화운의 말에 천리마회장과 회장부인은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열달뒤에 쌍둥이를 출산했는데 그때 초영란의 처녀막이 터졌다고 합니다. 한동안 신문에서 동방의 예수재림이라고 떠든적도 있었습니다. 아들은 천마라고 이름 지었고 딸은 자기 성을 따라 초선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 자료는 초선과 천치 도련님의 DNA를 분석한 자료입니다. 99.78% 일치라고 나왔습니다. 그때 도련님의 고환을 파열시킨 탄알이 초영란에게 명중하여 쌍둥이를 임신시켰습니다."
화운은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자료 하나를 더 꺼내놓았다.
"보시면 두 아이가 출생할 때 사내아이의 손에 총알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바닥에 살짝 파인 자국이 있습니다. 이건 천마의 친구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입니다. 여기 보시면 손바닥에 희미하게 색이 다른 부분이 있을 겁니다."
강사성은 전화기를 붙잡고 어머니한테 떼를 썼다.
"엄마, 그 천마라는 개자식 혼내주지 않으면 나 아이돌 안할꼬야. 그리고 아무것도 안할꼬야. 외할아버지한테 말해서 그자식 혼내주지 않으면 나 삐뚤어질꼬야."
몇칸 건넌 호텔방에서 천마는 자신의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살짝 패인 손바닥에 희미한 자국이 나있다. 원주인의 기억으로는 태어날 때 손에 총알을 쥐고 있어서 난 자국이라 되어있는데 그게 가능할리가 없다.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총알을 손에 쥐고 태어난다는 소리는 처음이다.
"제길,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할망정 총알이라니. 재수가 지지리도 없구나."
그 총알이 다이아몬드 수저일 것이라고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다음 외전에서 진실이 밝혀지기를 애타게 바라고 있다. 그렇게 상해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갔다.
- 작가의말
외전의 퀄리티가 본편보다 높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개연성을 버리면 무한한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군요. 천마가 환생한 현대판타지를 쓰고 본편을 외전형식으로 썼으면 어땠을까 망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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