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다중천마
천마가 도착한 후 천리마 회장부부를 확인한 후에야 초선은 이 모든것이 몰카가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았다. 천치와 초영란이 서로 꼭 안고 있어 끼어들기 힘들자 초선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응석을 부렸다.
천마와 천치는 얼핏보면 형제와 같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눈물의 가족상봉을 마치자 저택의 뒷뜰에서 바비큐파티를 벌였다. 소, 양, 돼지, 닭, 오리, 거위 등 수많은 네발달린 짐승과 두발달린 가축들의 가장 맛있는 부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바비큐를 굽는 사이 입이 심심하지 말라고 온갖 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대천그룹의 자랑중 하나인 대천호텔의 수석요리사가 직접 회를 떴다. 만새기, 참치, 광어, 참돔, 연어 등뿐 아니라 맑은 샘물에만 산다는 산천어도 있었다.
"미안하구나. 우리 집안이 보통 집안이 아니라서 준비가 되기 전에는 비밀로 해야 한다. 차린게 없지만 오늘은 일단 이걸로 만족하거라."
초영란과 초선은 화려한 음식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는데 천리마회장이 차린게 없다고 미안해하자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천마가 한발 더 빨랐다.
"마음이 중요하지 차린 음식이 중요하겠습니까.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릅니다."
회장부인은 천치와 초영란이 꼭 달라붙어 다니는 모습이 눈꼴이 시렸다.
"이것들아, 그냥 방에 들어가라. 보는 우리도 힘들다."
저녁이 되자 천마는 천리마회장과 독대를 했다.
"천마야, 너는 대천그룹을 이어야 하니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에 몰두해야 한다."
"할아버지, 공부 그딴거 아주 쉽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면서라도 공부에 지장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 집안이 무엇을 했다고 국가 유공자 가문입니까? 그것도 고려, 조선, 대한민국 세개 왕조를 거쳐서 말입니다."
"말하자면 길다. 고려시대에 우리 천씨가문은 그럭저럭 괜찮은 양반가문이었다."
천리마는 가문의 비사를 천마에게 얘기해 주었다. 가문 유일의 후계자이니 당연히 알아야 하는 이야기이다.
고려시대 아주 용한 무당이 한명 있었는데 이름이 박수(朴樹) 였다. 굿을 할때 박수를 치기 좋아하는 박수무당은 매우 중대한 예언을 하나 했다. 천씨가문에 국가의 멸망을 가져올 수도 있는 자가 태어난다는 것이다.
고려의 왕은 꾀를 내어 천씨가문에게 원나라로 이사를 가게 하였다. 그 댓가로 천냥의 은자를 천씨가문에 내렸다. 그 천냥의 은자는 재상의 손을 거치면서 오백냥이 되었다. 그 오백냥은 예부상서의 손을 거치면서 이백냥이 되었다.
그 이백냥이 사또의 손을 거치며 백냥이 되었고 이방의 손을 거치며 오십냥이 되었다. 천씨가문이 큰 가문은 아니라지만 은자 오십냥으로 원나라로 이사를 가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박수무당을 찾아갔고 박수는 정확히 어느 핏줄에서 재앙이 탄생하는지 알아내고 그것을 천씨가문에 알려주었다.
그당시 천씨가문에서 가장 부유한 천석군(千石君)이 바로 당사자였다. 가문을 위해 천석군은 천마지기나 되는 밭을 친족들에게 넘기고 원나라로 은자 오십냥만 들고 넘어갔다. 은자 오십냥이 많은 돈은 아니라 원나라에 도착한 천석군은 거지가 되었다.
당시 천석군의 밭이 구백구십구마지기나 천일마지기였다면 괜찮았을턴데 하필이면 많지도 적지도 않게 천마지기였다. 천마지기였기에 천마가 될 운명인 천살마성의 숙주로 점찍어졌다. 거지가 된 천석군은 타고난 인물 덕분에 혼인을 하게 되었고 그 후손들은 농사꾼으로 살게 되었다.
'그래서 고려인의 후손인 내가 중원에서 태어나게 된 것이었군. 확실히 고려에서 내가 태어났으면 나라가 절단났을 것이야.'
그후 천마가 명왕조를 뒤엎고 영토를 넓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조선땅을 침범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려에 이어 조선왕조에서도 천씨가문은 국가유공자로 대접을 받았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었다. 박수가 죽기전에 그 재앙이 다시 돌아올 것이니 천씨가문의 핏줄이 끊어지면 안된다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지금 국립연구원에서 고환의 재생에 대한 연구비용으로 매년 천칠백억이 소비된다. 대통령도 나를 만날때마다 늦둥이 하나 보라고 은근히 충동질하고 있다. 너의 존재가 알려지기전에 국가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충분히 얻어내야 하기에 당분간 네 존재는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
원래는 얻어낼 만큼 얻어내고 천마네 가족과 접촉하려 했지만 천치의 우울증이 너무 심해져서 어쩔수 없이 미리 접촉한 것이다. 천치의 우울증은 어찌나 심한지 정치뉴스를 보고도 웃지 않을 정도였다.
"예전에는 개콘을 보고도 깔깔 웃는 아이였는데, 요즘 우울증이 너무 심해진 것 같더구나."
바비큐 파티가 끝난 뒤 초영란과 초선은 남았지만 천마는 떠났다. 천마와 천치가 너무나 닮았기에 함께있는 장면이 사진이라도 찍힌다면 천리마 회장이 진행하는 국고털기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천마는 조자운과 서문초신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가했다. 행사가 일주일에 한두개만 들어오기에 이미지 메이킹도 할 겸 해서 서창훈이 봉사활동 스케쥴을 잡았다. 봉사대상은 주인에게 학대를 당하고 버려진 개와 고양이들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다리 하나가 반쯤 사라진 개 한마리였다. 작은 덩치의 개는 뒷다리 하나가 잘려있었다. 겁에 질린 개는 모두의 손길을 거부하고 한쪽 구석에 갇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너 괴령이구나. 어쩌다가 개로 환생했느냐?'
천마가 말을 걸자 개의 안에서 잠자던 괴령이 잠에서 깼다. 개로 환생한 괴령은 괴로운 나머지 견격(犬格 - 사람의 인격에 해당함)을 하나 분리해낸 후 자신은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누군가 전생의 이름을 부르자 깨어났다. 괴령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없는 견격은 괴령이 깨어나자 바스라졌다.
'너는 설마? 그때 나를 죽인 천살마성?'
'죽였다니, 네가 나를 발가벗기고 몹쓸짓을 하려다가 제멋대로 죽어버린거지.'
'말 제대로 해. 발가벗기고 몹쓸짓을 하려 했다니. 본편을 대충 본 사람이 있으면 나를 남자 좋아하는 변태로 알 것 아니냐.'
괴령이 죽은 후 천마는 다음생에 말도 못하는 것으로 태어나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당시 아혈이 점혈당해 말을 못하는 천마에게 괴령이 폭언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천살마성의 격이 인간보다 훨씬 높기에 그 저주는 결국 현실이 되고 말았다.
'전생의 인연이 있는데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해라.'
괴령은 부끄러운 얼굴로 답했다.
'나 이번에 개로 태어난 후 아직도 총각의 몸이야. 성욕이 너무 끓어올라 밤잠도 자주 설치거든. 네가 좀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
'너 전생에는 딱지 떼었냐?'
'전생의 일은 이미 지난 일이니 더이상 언급하지 말도록 하자.'
'전생에 네 코는 무척이나 작았어.'
'그럼 코끼리는 거시기가 얼마나 거시기한 것이냐? 그거 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야.'
'알았어, 네 부탁은 내가 해결해주마.'
천마는 괴령이 환생한 강아지를 안아들었다. 그러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어머, 저 강아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던 사나운 강아지인데 저 남자가 안아들었어. 정말 놀랍구나."
"분명 수컷이었는데 우리 손길을 거부하더니 남자의 손길을 받아들이는구나. 남자 밝히는 변태 개일지도 몰라."
구신공격을 받았지만 괴령은 기분이 좋았기에 개의치 않았다. 수의사가 주사를 놓을 때도 괴령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주사를 맞고 몸의 감각이 사라지고 잠이 솔솔 몰려오자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까무룩 잠에 빠지는 괴령의 마지막 의식이 천마와 수의사의 대화를 잡아냈다.
"개가 발정나서 힘들어 하더군요. 안 아프게 거세를 부탁드립니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천마는 집으로 돌아갔다. 괴령을 만나서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되자 몸속에 잠들어 있던 수많은 인격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환생천마 : 이 세상은 왜 이래. 기껏 환생했는데 몬스터도 없고 가상현실게임도 없구나.
헌터천마 : 난 몬스터가 없어도 괜찮아. 어차피 F급 헌터가 될게 뻔한데. 방구석에서 라면이나 뜯다가 헌터되는거 이젠 지겨워.
던전천마 : 나도 그래. 정작 던전은 안 가고 별 매력도 없는 여자들하고 이리저리 엮이고 뻔히 보이는 수에 멍청하게 당할 바에는 차라리 지금이 나아. 그리고 이 몸이 명나라 석학하고도 대담을 하던 몸인데 왜 수준이하의 대학에 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돼.
게임천마 : 난 더 짜증나. 게임에 접속해서 천마신공을 수련해야 돼. 그리고 먼치킨이 되어 분탕 치는데 다른 멍청한 것들은 밸붕게임을 재밌다고 돈을 처넣으면서 해. 난 맨날 그런 정박아들하고만 엮이는데 그런 멍청이들을 쳐부숴서 사이다를 만들어야 돼. 어른이 세살배기를 때리는데 누가 대리만족을 느끼겠어.
재벌천마 : 젠장, 너희는 행복한 줄 알아. 나는 분명 후계서열에서 최하위라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데 친척들 전부 나를 적대해. 심지어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나를 해코지하려고 해. 개고생해서 겨우 음모를 다 물리치고 재벌가의 후계자가 되면 뭐해. 게이트가 생기고 몬스터가 쏟아져나오면 결국 헌터가 되어 또 정부와 싸워야 해. 정부를 이기면 뭐해, 또 중국 미국 같은 강대국과 싸워야 해. 헌터라는 멍청이들은 왜 몬스터와 싸울 생각은 안 하고 맨날 나만 견제하는지도 몰라. 왜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의문이야. 그놈들은 자기 인생이 없어?
천마는 여러 인격의 천마들이 폭주하지 않게끔 마음을 다스렸다. 사지와 그곳에 봉인한 다섯 악룡중 하나라도 풀려나면 이 세상은 멸망한다. 물론 하나라도 풀리면 어떤 신이 시스템을 내려서 레벨업이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세상을 구하는 것은 천마 자신이다. 그런 개고생은 싫다.
대장간천마 : 나는 환생해서 하는 일이 없어. 그냥 살아. 그런데도 글이 진행은 돼.
정의천마 : 너희는 천마인데 왜 세상의 정의를 수호할 생각을 안하는 거냐. 천마라면 국가의 미래와 민족의 생존을 고민하고 우주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지. 오염룡은 잘 봉인되어 있는 것이냐?
중이(中二)천마 : 크하하하캬캬캬캬, 왼손의 흑염룡이 날뛰고 있다. 크햐아캬하냐캬나캬.
흑화천마 : 흑염룡 떼찌할거얌. 떼찌떼찌. 흑염룡 꼬추 잘라 꼬치 해먹을꼬야. 꼬추꼬치.
정의천마 : 중이천마, 오염룡이 다 잘 봉인되어 있는거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다시 봉인할 필요가 있어?
중이천마 : 사염룡만 내 소관이다. 넷이 함께 날뛰지만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살포시 눌러버렸다. 쿠하헬헬크라하라하라.
정의천마 : 남은 하나는 누구 소관이냐?
동자천마 : 묵염대룡은 거시기에 잘 가둬놓고 있다. 이제는 묵염대룡이 거시기인지 거시기가 묵염대룡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구나.
야동천마 : 우리 불쌍한 동자천마, 나랑 같이 일본야구동영상이나 연구하자. 실전이 아니라도 충분히 경험을 쌓을 수 있다.
밤새 날뛰던 천마들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천마는 자신의 처지가 불쌍했다. 쩍하면 환생해야 하고 환생하면 항상 여자친구의 버림을 받아야 한다. 대장간도 차려야 하고 축구도 해야 하고 재벌가에 들어가 구박도 받아야 하며 헌터가 되었다 하면 F급이다. 시험장에서부터 시험관을 비롯한 모든 수험생들이 자신의 점수는 고려도 하지 않고 천마가 시험에 합격 못하게 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다. 이 모든게 하늘의 농간이리라.
'제발 이번 환생에서는 게이트가 터져서 몬스터가 쏟아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 작가의말
서문가의 노가주는 서문고검 입니다. 그런데 제가 2곳에서 손자인 서문초신으로 적었더군요. 그래서 찾아서 수정했습니다. 혹시라도 수정이 안된 곳이 있다면 댓글로 일깨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천마는 참 착합니다. 지난 생에서 육체의 죽음으로 인해 영혼이 사라질 것을 걱정하는 괴령을 위해 영혼이 육체보다 먼저 죽게 했는데 이번 생에서도 발정나서 괴로워하는 괴령을 구해주네요.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 찍어주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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