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간도발
천살이 몰래 돌아와서 보복을 할지도 몰랐기에 여섯의 행동반경은 매우 작았다. 그리고 항상 두세명씩 뭉쳐서 함께 다녔다. 천살뿐 아니라 상대의 수작질도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우민은 자신의 창을 손질하며 후회를 곱씹었다. 그날 천살의 일격은 사진군의 가슴에 길지만 얕은 상처만 남겼다. 사진군은 환약 한알로 외상이 빠르게 치료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삼일뒤 사진군이 핼쓱한 얼굴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선우검파와 장우민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천살의 응익검은 천살의 모든 무공이 집대성된 검법이다. 언젠가 천살마기가 보여줬던 검에 내공을 싣는 방법과 선우검파와의 비무에서 보여주었던 기세를 다루는 방법, 포원경의 발경법, 최근 경천검법에서 얻은 깨달음 등이 전부 응익검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피륙의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검에 실린 내력이 사진군의 내부를 제대로 흔들어 놓았다.
그때 과감한 결단으로 사진군을 처단하고 남은 셋까지 처리했다면 선우검파가 소교주로 될 수 있다. 어차피 사진군의 가슴에 난 상처는 천살이 남긴 것이기에 천살을 흉수로 몰아버리면 된다. 허약해진 사진군을 포함한 넷을 처리하는데 흔적을 남길 걱정도 없다.
생각해보니 장우민은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도무천이 자신의 제자가 되고 싶은지 교주의 제자가 되고 싶은지 질문했을 때 며칠을 고민한 후 교주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주제를 몰랐던 것이다.
신화동에 들어온 후 사진군에게 큰 시련이 닥칠 것을 알았다면 사진군을 선택했을 것이다. 천살에 의해 약해진 사진군을 선우검파로부터 지켜낸다면 사진군도 자신을 홀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흘후 모습을 드러낸 사진군을 선우검파가 공격하자고 제안했을 때 장우민은 망설였다. 자신이 있기에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오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선우검파와 장우민이 의심할까봐 억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천살에게 가격당했을 때의 허장성세에 이어 두번이나 허장성세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그때 장우민이 망설여서 호기를 놓친 것 때문에 선우검파가 장우민을 대하는 태도가 예전같지 않다.
사도무천이 출발전에 넌지시 천살과 연수하는 것을 고려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장우민은 사도무천의 충고를 한쪽귀로 흘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천살과 연수를 한 후 사진군과 선우검파와 협상을 벌였다면 매우 좋은 조건으로 둘중의 하나와 연수를 했을 것이다.
이 모든것은 장우민 자신의 자괴감과 질투심에서 비롯되었다. 자신감이 없었기에 장로인 사도무천보다 교주의 제자자리가 더 부러웠다. 누구의 제자가 되든 잘할 자신감이 있었다면 형세를 더 정확하게 보고 사도무천의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선우검파를 선택한 것도 가문의 위세를 업은 사진군에 대한 질투가 없지 않았다. 선우검파는 가문의 힘도 있지만 개인의 무위로 장우민을 완벽히 누른다. 그래서 둘중에 사진군이 아닌 선우검파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선우검파가 자신을 더 중용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지만 말이다.
천살과 연수하라는 조언을 외면한것도 천살에 대한 질투 때문이다. 자신은 명화교 출신이다. 하지만 외부인 출신인 천살이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질투심이 생겼다. 사도무천의 말대로 천살과 연수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인데 천살에 대한 질투 때문에 외면해 버린 것이다.
모든게 다 끝나고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사라지자 그제야 모든 상황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눈을 가리던 질투와 자괴 그리고 욕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백일이 된다. 사진군이 소교주가 될 것이고 선우검파나 자신은 언젠가 장로가 될 것이다. 물론 권력의 중심과는 거리가 먼 장로가 될 것이다.
작게 한숨을 쉰 장우민은 손질이 끝난 창두를 가죽주머니안에 넣었다. 평소에는 창두와 창대를 분리하고 다닌다. 창두의 무게 때문에 창대가 미세하게 구부러질 수 있다. 목숨을 건 전투에서는 결국 그런 미세한 차이로 승패와 생사가 결정되는 것이다. 손질을 마치고 몸을 일으키는 장우민의 등으로 차가운 기운이 흘러들었다.
누군가 몰래 다가와 장우민의 등에 음한계열의 내공을 주입한 것이다. 급속히 몰려드는 음한계열의 내공에 장우민의 몸이 굳었다. 곧바로 심장이 멎었고 장우민의 인생도 그대로 끝났다.
화운은 천살과 마찬가지로 외부인이다. 화운은 어린 나이에 무당파에 의해 거둬졌다. 무당파에서 화운이 천살성이라고 의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천살성을 화산이 데리고 있는 것을 알고 화운에게 자유를 주었다.
화운은 무당파에서 자신을 제자로 들이려고 데려온 줄 알았는데 몇년간 무공도 가르치지 않고 허드렛일만 시키다가 쫓아내자 앙심을 품었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무당파에 거둬지고 쫓겨나게 된 이유를 알게 된 화운은 앙심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
진무검(眞武劍)이라고 장삼풍이 중년의 나이까지 사용한 검이 있다. 절세의 보검까지는 아니고 꽤 좋은 검이었는데 무공이 경지를 이룬 후 장삼풍은 더이상 검을 잡지 않았다. 무당파에 모셔진 진무검은 소림의 사리(舍利)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화운은 방비가 허술한 식당쪽에 불을 질렀다. 모든 주의력이 그쪽으로 몰린 틈을 타서 진무검을 훔쳐냈다. 훔쳐낸 진무검을 나무토막안에 넣은 후 계곡물에 띄워보냈다. 진무검이 꽁꽁 숨겨진게 아니라 접객당에 높이 걸려있었기에 화운의 계획이 성공할 수 있었다.
이튿날 무당파에 작별을 고한 화운은 계곡물을 훑으며 진무검을 찾았다. 나무뿌리에 걸린 나무토막을 겨우 찾아낸 화운은 진무검을 들고 명화교로 투신했다. 진무검을 교주에게 바치자 교주가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화운이 지금도 후회하는 일이다. 철없이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 명화교의 교주이니 강한 무공을 가르쳐줄 것이라 생각했다. 화운을 제자로 받은 교주는 어떤 무공을 배우고 싶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화운은 가르치는대로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때 교주의 눈에 스치는 실망감을 확인하고 화운은 주눅이 들었다.
교주가 자신에게 명현공이라는 대단해 보이는 무공을 가르치자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사진군을 보고 장우민을 보고 선우검파를 본 후에 그 자신감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여자인 초영란도 이기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
비무에서는 강사성을 이길 수 있지만 자신과 강사성을 전장에 던져넣으면 누가 더 오래 살아남을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리고 외부인에 대한 차별이 알게 모르게 있어 명화교에 깊은 뿌리를 박은 일반인들을 수하로 받아 명화교에 녹아들려고 노력했다.
무당의 제자가 되어 강호를 종횡할 꿈을 꾸다 그 꿈이 파멸되었고 명화교 교주의 제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이 산산조각났다. 그러다가 자신과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은 천살이 두각을 드러내자 화운은 어찌해야 할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자질이 뛰어났으면 천살성이 아닌 것을 알고 무당에서 먼저 제자로 받아들이려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화운 자신이 평범하다는 뜻인데 어린 화운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저 무당을 원망하고 무당을 깍아내림으로 모든 문제가 무당에게 있는 것으로 자신을 속였다.
장로가 되는 것이 꿈인 강사성과는 달리 화운은 뭘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지 못했다. 교주의 제자라는 커다란 감투를 썼는데 그 감투 아래의 내용물이 변변치 않다. 그 차이에서 오는 사람들의 기대와 실망이 어리고 여린 화운을 힘들게 했다.
원래 설거지는 화운과 강사성이 함께 한다. 하지만 며칠이면 백일이 차는 날이라 경계심이 많이 누그러들었다. 기분이 울적하기도 해서 강사성에게 쉬라고 하고 혼자 설거지를 하러 나왔다. 그릇을 빡빡 밀어 깨끗하게 만들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설거지를 하는 물에 사람의 모습이 비치자 화운은 고개를 들어 누구인지 확인했다. 너무 오래 나타나지 않아 아마 죽지 않아도 불구가 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이 멀쩡하게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알몸으로 검을 들고 있는 기괴한 모습만 빼면 말이다.
천살은 그간 신화공의 내력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단전내에 굳게 뭉친 신화공의 내력이 느껴지기에 조급해 하지는 않았다. 하단전이 완성 되었기에 내공을 음한계열과 양강계열로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 소음공이나 소양공처럼 극음과 극양은 힘들어도 그 위력이 여간한 음한무공과 양강무공에 비해 손색이 전혀 없다.
천살은 선우검파의 후예사일의 초식을 흉내냈다. 선우검파가 친절하게 초식이름을 알려준 적이 한번도 없어서 천살은 칠성연주(七星連珠)라는 이름을 달았다. 정확한 운기법을 모르기에 천살은 한번에 일곱개의 목표밖에 노리지 못하고 있다.
화운은 지르려던 소리를 멈추고 천살의 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천살의 검법은 화운이 쉽게 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천살의 검이 화운의 일곱개의 사혈을 베어버렸다. 검에 실린 양강지기 때문에 화운의 살이 익어버리며 피가 흐르지 않았다.
천살은 화운의 품을 뒤져 명현공의 서책을 찾아냈다. 서책을 품에 넣은 후 천살은 경공을 이용하여 동굴속으로 몸을 숨겼다. 명현공을 정독하여 암기한 후 서책을 초영란의 집안에 몰래 집어넣었다.
화운이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자 강사성은 화운을 찾아나섰다. 화운이 시체가 되어 싸늘하게 식어있자 강사성은 황급히 돌아가 사진군을 찾았다. 천살의 응익검에 사진군은 두달내내 고생했다. 그리고 한달동안 몸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리느라 고생을 했다.
"삼사형, 화운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사진군은 강사성의 말에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화운은 검에 죽었고 화운을 살해한 자는 양강계열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이다. 몸에 난 일곱개의 상처는 일검으로 베어낸 것이며 흉수는 굳이 자신의 신분을 숨길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선우검파가 변심한 것인가?'
사실 화운을 죽여봤자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그리고 화운을 죽이려면 장우민을 보내는 것이 낫다. 선우검파가 이렇게 대놓고 자신을 도발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진군은 우선 모른척 하며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화운의 시체를 집으로 옮겨가야겠다."
강사성은 사진군의 분부대로 화운의 시체를 옮긴 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저녁준비를 했다. 반대편에서 장우민이 아닌 초영란이 저녁준비를 하자 강사성은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다.
"장사형은 어디 가고 사매가 저녁준비를 하는 것이오?"
"장사형은 잘나신 그쪽 삼사형이 죽였잖아요. 일부러 비꼬는 건가요?"
초영란은 선우검파가 장우민의 죽음을 비밀로 해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두려움에 자제심을 잃고 강사성에게 소리를 질렀다. 초영란의 외침에 선우검파와 사진군은 밖으로 뛰쳐나왔다.
- 작가의말
離間挑拔, 사이를 가르고 분란을 일으키다.
갑자기 사연참을 해서 놀라셨죠? 사실 계약제의를 받았습니다. 작가의말로 자랑하고 싶어서 글 한편 더 썼습니다.
농담이고 어제 저녁 핸드폰게임을 삭제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한편 더 썼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계약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이 글은 끝까지 무료로 가겠다고 약속드렸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그 댓글을 지워버리고 싶네요. 이래서 남자는 항상 손가락을 조심해야 한다고 조상님들이 강조하셨나 봅니다.
제의를 해주신 분에게 작가의말을 빌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뿐 아니라 글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분들에게도 상품성을 인정 받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저 자신만 만족하는 글이 아니라는 것에 좀 더 자신감이 생깁니다.
첫 글에서 당문을 주로 다루고 개방의 몰락과 하오문의 생성을 다뤘고 두번째 글에서는 해남파의 탄생을 가볍게 다뤘습니다. 이번 글도 뭔가 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다고 호언장담을 드리겠습니다.
Commen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