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무관
"폐하, 급보이옵니다. 천마가 지금 경사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벽휘동의 말에 명인종은 픽 하고 쓰러졌다. 어의가 급히 달려왔지만 이미 황제가 숨을 거둔 뒤이다. 재위한지 일년도 되지 않아 주체의 장자인 주고직이 숨을 거두었다.
"당장 벽휘동을 가두고 그 구족을 멸하거라."
황태자 주첨기의 호통에 벽휘동은 역모죄를 선고받고 구족을 멸 당했다. 주체에게 하던 습관대로 우선 나쁜 소식을 전한 후 해결책을 내놓아 황제의 이쁨을 받으려 했는데 주고직은 주체와는 달리 매우 심약한 자이다. 주체가 죽기전에 무림맹을 해체시키라는 조서를 작성한 적이 있는데 주고직은 황제가 된 후 성지를 거두었다.
그후 천살이 마교와 서무림맹을 해산시키고 마지막으로 무림맹까지 해산시키자 주체의 죽음이 천마와 관련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금의위의 정보를 통해 주체가 죽기 며칠전에 천마가 남궁가를 찾아갔고 무림맹의 해체를 언급했음을 알게 되자 확신하게 되었다.
무림맹의 해체를 막았던 주고직은 그것때문에 많은 걱정을 했다. 그런데 벽휘동이 다짜고짜로 천마가 경사로 향한다고 외치자 그만 놀라움이 지나쳐서 심장이 멈춰버린 것이다. 새롭게 황제가 된 주첨기는 천마를 제거하거나 아니면 관계를 개선할 방법을 생각해내라고 금의위와 동창을 윽박질렀다.
호매령은 어린 천효가 여행길의 피곤을 이겨내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그건 불사공을 얕본 것이다. 식탐이 조금 강해진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천효는 날이 갈수록 건강해졌다. 천살은 항상 명현공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제외한 남은 일행들을 주시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경사에 도착하니 황제가 또 붕어하여 경사의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일년도 안되는 사이에 황제 두명이나 죽었으니 분위기가 나쁠 수밖에 없다. 난세가 되면 고통받는 것은 일반백성들이고 북원과 가깝게 위치한 북방의 백성들은 걱정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성밖의 객점에 방을 잡은 후 천살은 하오문을 찾았다. 경사에서 큰 무관을 열 수 있는 건물 하나를 매입하려고 하니 매물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다시 찾겠다는 말을 남긴 천살은 곧바로 남궁가로 향했다.
"남궁대협, 내가 경사에 자리를 잡기로 해서 개봉의 장원은 남궁가에 돌려드리겠소. 어차피 지금 남궁가의 사람들이 관리하고 있으니 복잡한 절차도 필요없소."
호법자리를 내놓고 무공수련에 열중하던 남궁천은 천살이 문득 찾아오자 머리가 아파왔다. 분명 가문의 수뇌부에 천살을 자주 찾아가서 친분을 다지라고 명했는데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천살이 장원을 비우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사실을 모르는 남궁천은 애꿎은 식솔들만 원망했다.
"천대협, 경사는 무엇이든 비싸서 자리잡는게 쉽지 않을 것이오. 거주할 집은 구하셨소?"
"무관 하나를 열려고 준비중이오. 먹고 자는건 무관에서 해결하면 될 듯 하오."
남궁천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손익계산을 끝낸 남궁천은 천살에게 제안했다.
"경사에서 무관을 열려면 초기비용이 적잖이 들 것이오. 우리 남궁가에서 그 비용을 전부 부담하고 무공교관도 보내주겠소. 대신 수익은 반반으로 나누는 것은 어떠시오?"
천살이 무관을 여는 것은 무관에 얼굴을 자주 비춰 자신이 경사에 있음을 한선후에게 알리기 위해서이다. 그외의 것들은 아직 생각하지 않았는데 남궁천이 제안해오자 귀가 솔깃해졌다. 운영이나 이런것 대부분을 남궁가에 맡겨버리고 자신은 수익을 챙길 수 있으니 나쁜일은 아니다.
"남궁대협이 도와주신다니 사양하지 않겠소."
"천대협, 가는길에 천대협이 시를 새긴 바위는 가져가시오. 기세가 너무 강해 우리 남궁가가 감당하기 힘드오."
일반인들은 그저 글자에서 위압감을 느낄 정도이지만 절정검의 대성에 가까워진 남궁천은 수많은 검초들이 자신을 향해 쏘아져오는 기분이다. 천살이 복마전에 새겨진 열여섯글자를 흉내내어 글에 자신의 무공을 담았는데 남궁천이 천살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 글자들을 보면 자신을 공격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살이 경사로 가면 개봉의 장원에는 내가 머물러야겠다. 그러면 천살과 남궁가의 친분이 더욱 잘 알려지겠지.'
남궁천에게 작별을 고한 천살은 개봉으로 향해 달렸다. 만약 바위를 들고 경사로 간다면 아무리 의심이 많은 자라고 해도 천살이 경사에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딱히 그 바위에 애착이 있는것은 아니지만 남궁천의 말도 있기에 경사로 옮겨가기로 결심했다.
천살이 개봉의 장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 오랫만에 장원에 들린 천살을 위해 총관이 한상 거하게 차렸다. 천살은 총관과 하인하녀들을 전부 불러놓고 함께 식사를 했다. 천살은 자신도 농사꾼 출신이라며 하인하녀들에게 편하게 식사하라고 일렀다. 무서운 사람이라 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의외로 소탈하고 격이 없자 술이 몇잔 들어간 하인들은 노래까지 불러댔다.
이튿날 아침에 깨어나보니 문밖에 많은 병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에 근처에서 장이라도 펼쳐지나 했는데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장원의 문을 열고 나가보니 서른정도 되어보이는 무관이 천살을 향해 호통쳤다.
"이놈, 네가 바로 천마라는 악적이냐?"
천살은 지금의 이 광경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천살이다. 그러는 너는 누구냐?"
"나는 하남 변처소 종칠품 지사 동무천이다. 황실의 안위를 위협하는 악적을 나포하러 출두하였다.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오라를 지면 죄를 경하게 벌하겠다."
"황실의 안위를 위협하면 역모죄인데 어떻게 경하게 벌한다는 것이냐? 네가 황제보다 더 높으냐?"
동무천은 급히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만세삼창을 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동무천은 천살을 손가락질을 하며 침을 튕겼다.
"소문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이구나. 네놈의 감언리설에 내가 넘어갈 것 같으냐?"
천살은 자신의 말이 왜 '감언리설' 인지 헷갈렸다. 대충 기척을 짐작해보니 천명정도를 끌고온 것 같았다. 종칠품이 병사 천명이나 움직일 깜냥이 되는지 잘 모르는 천살이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그나저나 내가 왜 황실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냐?"
"네놈은 무공이 고강해서 능히 황실을 위협할 수 있는 자라고 전해들었다. 그러니 너는 네 죄를 인정하고 무릎을 당장 꿇어라."
"네놈이 병사 천명이나 이끌고 있는 것을 보면 능히 황실을 위협할 수 있을것 같구나. 네놈부터 무릎을 꿇어라."
동무천은 다시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만세삼창을 했다. 다시 몸을 일으킨 동무천은 벌컥 화를 냈다.
"그딴 호언장담으로 나를 모함하려 들다니. 내 충절은 하늘이 알고 땅을 안다. 그리고 고작 병사 천명으로 황실을 어떻게 위협한다는 말이냐."
"병사 천명으로도 위협하지 못하는 황실을 나 혼자서 어떻게 위협하느냐?"
"너는 능히 그럴 능력이 된다고 들었다."
"그럼 너와 병사 천명보다 내가 더 강하다는 뜻이냐?"
"그렇다. 이제야 네놈이 죄를 인정하려는 게구나."
"내가 너희들보다 더 강한데 너는 나를 어떻게 나포하려 했느냐?"
천살의 질문에 동무천은 말문이 막혔다. 천명이나 되는 병사를 주면서 강호의 무인 하나를 잡아오라는 말에 동무천은 신나서 달려왔는데 대화를 통해 모순점을 발견했다. 천살이 진짜 황실을 위협할 수 있는 자라면 자신이 나포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 만약 자신이 천살을 나포할 수 있다면 천살이 황실을 위협할 수 없으니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돌아가서 너에게 이번 일을 시킨자에게 말을 전해라. 이번은 그냥 용서해 주겠다고 말이다."
동무천은 천명의 병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주변의 구경꾼들도 분분히 흩어졌다. 천살은 다시 장원으로 돌아가 바위를 허공에 띄웠다. 그 상태로 경공을 펼쳐 북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천살이 개봉을 떠난지 얼마되지 않아 비둘기 몇마리가 천살과 동일한 방향으로 날았다. 큰 바위를 든 천살보다 비둘기들이 더 빨리 경사에 도착했다. 역모죄로 구족을 멸 당한 벽휘동 대신 금의위 지휘사가 된 자는 매우 신중한 자이다. 벽휘동이 남긴 천살에 대한 정보를 그는 신뢰하지 않았다.
"동무천과 천명의 병사들이 아무런 무력충돌도 없이 물러났고 천마도 그대로 곱게 보내주었다고 하오. 흉폭하고 살인을 즐기며 피를 탐한다는 벽휘동의 평가가 틀렸음을 알 수 있소."
"새로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천마가 집채만한 바위를 허공에 띄운채 경사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 대한 경고요. 바보가 아닌 이상 동무천의 배후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오. 화포에 맞고도 살아남은 자이니 제거는 불가능 하다는 결론을 내려도 될 것 같소."
"동창에서 절독인 남요몽환을 대량으로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천살마성이 사라져서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이 바로 처단해도 됩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이지만 당문에서 도둑맞은 무형지독을 천살에게 사용했다는 소문이 있소. 남요몽환이 아무리 대단해도 당문의 무형지독만한지 모르겠소."
"정보를 더 수집해 보겠습니다. 당문의 당무영과 마교의 잔당들을 통해 무형지독의 사용여부와 그 대상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천살의 제거 가능성은 없는것으로 일단 해두겠습니다."
수하의 깔끔한 대답에 백무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벽휘동은 수하들의 공을 가로채서 빠르게 승진했지만 그 덕분에 인심을 잃었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 곁에서 말려주는 사람들이 없었기에 멈출줄 모르고 달리다가 결국 낭떠러지에 떨어졌다. 벽휘동을 거울로 삼아 자신은 벽휘동과 다른 길을 가야 한다. 그 첫걸음이 천살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바위를 옮기느라 이동이 느렸기에 천살은 남궁가의 사람들보다 하루 늦게 경사에 도착했다. 하오문이 미리 알아본 매물들을 돌아본 남궁가의 사람들은 천살의 최종확인만 기다리고 있었다. 천살은 바위를 허공에 띄운채 세곳을 둘러본 뒤 마음에 드는 곳에 바위를 내려놓았다.
건물의 주인은 감히 바가지를 씌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적당한 가격에 건물을 넘겼다. 남궁가가 미리 고용해둔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건물수리도 했다. 글이 씌여지지 않은 커다란 편액을 가져온 남궁가의 책임자가 천살에게 무관의 이름을 새겨줄 것을 요청했다.
잠시 고민하던 천살은 검을 뽑아 천양무관(天陽武館)이라고 네글자를 새겼다. 남궁가의 책임자는 바로 남궁천에게 꾸중을 듣던 남궁호민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기를 바라며 다음대 가주의 유력후보인 남궁호민이 천양무관의 책임자로 경사로 파견되었다.
무관과 거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적당한 크기의 집 하나를 찾아 호매령의 이름으로 구매했다. 천살은 공식적으로는 고천양과 함께 천양무관에 머무르는 것으로 되어있다. 밤만 되면 천살이 천양무관을 떠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고천양과 호매령뿐이다.
삼일간의 정비를 거친 뒤 천양무관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폭죽을 터뜨리며 성대하게 문을 열었지만 구경꾼들만 가득하고 정작 무관에 정식으로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었다. 천양무관의 관주인 고천양의 얼굴에는 걱정이 서렸다.
"길을 비키거라. 냉큼 비키지 못할까."
구경꾼들을 헤치고 잘 차려입은 어린 아이 한명이 십수명의 장한들에게 둘러싸여 나타났다.
"이분은 황제폐하의 십제이자 위공왕이신 주첨연이시다. 냉큼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 못할까?"
고천양이 눈치를 보자 천살이 말을 받았다.
"무관의 제자로 들어오려는 것이면 관주에게 절을 올리고 아니면 냉큼 지나가거라. 그리고 한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평생 말을 못하게 해주겠다."
- 작가의말
실제로 주체의 큰아들은 열달인가 황제 하고 죽었습니다. 그래도 그 열달간의 통치를 인정받아 후세에 좋은 이름을 남겼습니다. 본인은 크게 잘한게 없는데 유능한 대신들에게 일을 다 맡겨버렸죠.
한선후 떡밥 제외하고도 몇개의 떡밥이 더 있습니다. 끝까지 유쾌하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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