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출현
천살은 태악삼청봉의 초식을 시전했다. 태악삼청봉은 검, 내공, 외기의 세개의 공격이 각각 다른 목표를 공격하는 대단한 초식이다. 내기와 외기의 균형이 매우 중요한 초식으로 익혀내기 힘들지만 일단 익혀내면 시전이 힘들지 않다. 다만 초식의 위력을 뽑아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천살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이 없기에 외기를 두개 일으켜야 세개의 공격을 할 수 있다. 내공이 있다면 외기를 일으키는 일이 좀 더 쉬워질 수 있지만 내공이 없다고 검이 외기를 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태악삼청봉의 수련이 별 진전을 보이지 않자 천살은 다시 응익검의 초식들을 수련했다. 응비만리는 폭경이 아닌 촌경으로 대체해서 그럭저럭 펼쳐낼 수 있었고 비익쌍비는 다섯개까지 가능했던 공격이 두개로 줄어들었다. 칠성연주는 베기초식이라 아직 두개의 공격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첫번째 공격이 막힌다면 두번째 공격이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첫번째 공격이 막혀도 그 뒤의 공격들이 계속 이어져야 하기에 한번의 베기로 많은 공격을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매화만천의 초식은 매화점점이라고 바꿔야 할 정도로 몇개의 공격밖에 펼쳐낼 수 없다. 성라운포는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응익검의 초식들이 막힐때면 천살은 다시 무공검법으로 돌아가 무공검법의 초식과 기본 형들을 수련했다. 무공검법을 수련하면 수련할수록 천살이 육체와 무공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
갑자기 천살마기가 꿈틀거리자 천살은 수련을 중단하고 마음을 안정시켰다. 가끔씩 꿈틀대는 천살마기가 발작하는게 아니라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충 짐작이 갔다. 하지만 무엇을 의도하는지는 아무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사장로는 다시 총기를 찾은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사십명이 채 되지 않는 마을의 사람들을 몰살시킨 아이는 광증을 극복하고 정신을 차렸다. 두번째 아이도 죄수들의 목숨을 취하게 하는 것으로 광증을 극복했다. 눈에 언뜻언뜻 광기가 비치기는 하지만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기에 본인의 의지로 광증을 누르는게 가능해졌다.
그러나 사장로의 좋은 기분은 며칠 가지 못했다. 실혼인들 중 세명이 탈출했다는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 세명의 실혼인은 장원을 지키는 자들의 태반을 살해하고 동쪽으로 도망갔다. 보고에 의하면 이 셋은 여전히 이성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인데 뭔가에 홀린 것처럼 맹목적으로 동쪽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추살대와 암살대가 같이 가서 셋의 목숨을 취하도록 한다. 이번 기회에 천마신공을 익힌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연습한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남은 실혼인들은 감옥이 있는 곳으로 옮겨서 가둔 후 계속 관찰한다."
사장로는 머리가 아파왔다. 실혼인들을 튼튼한 창살이 있는 감옥에 가두고 관찰해야 한다. 아이들의 천마신공 수련을 위해 적당한 살인장소를 물색해야 한다. 귀주에서 괴령의 제자들의 연공상황도 계속 지켜보아야 하며 당문으로부터 무형지독에 대한 정보를 캐내고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내든지 훔쳐내든지 해야 한다. 매우 어려운 일 아니면 인력이 상당히 소모되는 일이다. 이 모든것은 믿을만한 자들로만 해내야 하니 총지휘인 사장로의 머리가 터질 지경인 것이다.
"교주는 요즘 무엇을 하고 있느냐?"
사장로의 질문에 사명군은 즉각 대답했다.
"매일 무공수련에 열중하는 듯합니다. 특히 소림을 언급한 이후면 더욱 무공에 열중합니다. 비록 미쳤지만 천살이 위협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듯 합니다."
천살을 처치한 후 다음 대상은 교주이다. 이 둘을 제거해야 천마신공을 익힌 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강호를 헤집어 쑥대밭으로 만든 후 사씨가문이 명화교의 교주가 되어 이 혼란을 끝내버려야 한다. 좋은 명성을 쌓으면 황제가 되는 길이 더욱 쉬워질 것이다. 몰래 밖에서 가문과 관련되지 않은 자들에게 천마신공을 가르쳐서 이용해야 하는데 인력도 부족하고 재물도 부족하다.
사장로는 가슴어림에 통증이 느껴지자 급히 단약(丹藥) 하나를 복용했다. 나이가 많은데 너무 걱정거리가 많아서 몸 여기저기가 불편하다. 하지만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사장로가 직접 일일이 관여하는 수밖에 없다.
추살대의 대장인 사현군은 가문에 대한 불만이 매우 많다. 교주의 제자를 뽑을 때 무공이 가장 강한 사현군이 아닌 사진군을 뽑았다. 사진군이 소음공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아왔지만 자신이라면 소음공 따위는 손쉽게 극복해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주의 아들 역할을 사명군이 맡은 것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자신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명군이 중요회의에 꼬박꼬박 참석하자 배알이 꼴렸다.
가장 큰 불만은 천마신공이라는 교주의 무공을 입수했는데 자신에게 전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정성이니 뭐니 핑계가 많지만 사현군은 자신에 대한 견제라고 생각했다. 사현군의 부친이 바로 현 가주이기 때문이다. 허수아비 가주이기는 하지만 사현군은 명분상 다음대 가주의 위치에 가장 가까운 자이다.
"대장, 실혼인을 발견했소."
이번 일을 추살대와 암살대에게 함께 맡긴것도 불만이다. 어제 실혼인의 흔적이 흩어져서 암살대와 따로따로 추적하기로 했다. 사현군은 추살대의 대원들에게 명을 내렸다.
"빠르게 처리하고 세번째 실혼인도 우리가 처단한다. 암살대에게 지면 돌아가는 대로 지옥의 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아라."
사현군이 직접 창안한 지옥의 훈련은 무공수련이 아니다. 커다란 바위를 안고 청해호에 잠수해서 오래 버티기 등등 사람을 괴롭히는 훈련이 대부분이다. 알몸으로 산속에서 밤 지새우기가 가장 힘든 훈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저기 물어오는 벌레들 때문에 훈련을 빙자한 괴롭힘이 끝나면 의원에게 며칠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현군의 으름장은 추살대의 사기를 고취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과했다. 실혼인이 시야에 들어오자 추살대원들 모두가 열흘 굶은 늑대처럼 실혼인을 덥쳐갔다. 사현군도 경공을 이용해 추살대원을 추월해서 가장 먼저 실혼인에게 검을 적중시켰다.
구유음풍선이 성격에 맞지 않아 사현군은 현원검을 익혔다. 현원(玄元)검은 곤륜이나 전진교의 무공으로 추정되는데 도가계열에서 보기 드문 강검이다. 현원검은 음과 유를 기본으로 하는 구유음풍선에 상극인 검법으로 구유음풍선이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들은 무공의 상성에 의해 사현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목을 베어가는 검을 실혼인은 왼팔을 들어 막아냈다. 철로 된 검과 살로 된 팔이 부딪혔는데 나무토막끼리 부딪히는 둔중한 소리가 났다. 손으로 전해지는 반탄력에 사현군은 곧바로 외쳤다.
"강한 반탄력이 느껴진다. 최소 장로급 고수의 반탄력이다."
추살대를 따라온 두명의 기록관이 급하게 사현군의 말을 받아적고 말한자가 사현군이라고 주석까지 달았다. 사현군이 어떤 초식으로 공격했고 실혼인이 어떻게 대처했는지까지 빠르게 적어내려갔다.
"사혈을 타격했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목과 심장 그리고 머리를 향하는 공격외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팔을 베었다. 그런데 피가 흐르지 않는다. 상처는 이푼 정도로 깊다."
"쾌검으로 시전한 찌르기 세개를 동시에 피해냈다. 초식이 아니라 빠른 반응으로 본능적으로 피해낸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실혼인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실혼인은 두눈이 충혈되자 더 강한 힘을 냈다.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러나왔고 얼굴과 목의 피부가 점점 붉게 변했다. 기록관들은 이러한 변화를 차근차근 기록해 나갔다.
"지금 초반보다 힘이 반배정도 더 강해진 것 같다. 반응속도는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손으로 팔을 만져봤는데 매우 뜨겁다. 손이 델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인이 저정도 열이 나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것 같다."
그뒤로도 일각의 시간이 흘러도 더이상의 변화가 없자 사현군은 검에 내력을 실어 실혼인의 팔을 베어갔다. 목을 베어갈때는 팔로 잘 막아냈지만 팔을 베어가니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이 잘려나갔다.
"요해를 공격하면 더 많은 공력을 운기한다. 직접 팔다리를 공격하면 적은 공력으로 막아내기에 부상을 입히기 더 쉽다."
목이나 머리 심장을 노리면 팔에 많은 내공을 모아 막아내지만 직접 팔을 공격하면 팔에 모이는 내공이 적어 더 쉽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팔 하나 베어낸 후 사현군은 뒤로 물러나고 찌르기에 능통한 자들이 실혼인의 곳곳을 찔러갔다.
"대부분 사혈들은 수비를 하지 않는데 명문혈만 필사적으로 수비를 한다. 저곳이 약점일 가능성이 높으니 최종 확인을 승인해주기 바란다."
사현군이 고개를 끄덕이자 곤을 들고 뒤에서 대기하던 추살대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여러개의 곤이 두 다리와 남은 팔 하나를 교묘하게 엮어서 실혼인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 실혼인의 반항이 심했지만 여러 고수가 내공까지 이용해 누르니 엎드린 자세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사현군은 허리춤에서 비수 하나를 뽑아 기록관에게 건넸다. 기록관은 경공만 익혔고 무공은 매우 평범하다. 기록관은 비수를 실혼인의 명문혈에 꽂았다. 어디를 베어도 흐르지 않던 피가 명문혈에 비수가 꽂히자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반발력이 전혀 없음. 다른 부위와 다르게 피가 흐르기 시작함."
다른 기록관은 비수를 꽂은 기록관의 말을 그대로 기록했다. 명문혈에 비수가 꽂히자 다른 추살대원들이 실혼인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무공을 모르는 자와 다름이 없는데. 그리고 아까 베인 상처에서도 이제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구나."
곧바로 비수를 뽑고 실혼인이 회복되는지 지켜보았다. 하지만 반각도 되지 않아 실혼인은 숨을 멈췄다.
"명문혈에 타격을 받은 후 무공을 모르는 자와 다름이 없고 반각정도의 시간만에 목숨이 끊어졌다. 빨리 시신을 태우고 다음 실혼인을 잡으러 가자."
실혼인의 시신을 불에 태운 후 남은 재를 헤집어서 특별한 점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화장에 익숙한 명화교도이기 때문에 시체를 태운 후 평소와 다른지 쉽게 판별할 수 있었다. 태워진 시체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것을 확인한 사현군은 휴식도 없이 그대로 오던길로 되돌아갔다.
암살대는 추살대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바로 죽이려면 죽일수도 있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암살대는 수많은 독들을 하독하며 실혼인의 반응을 일일이 살폈다. 일부 독들은 독성의 발작이 느리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이다. 독에 대한 반응을 일일이 적은 뒤 심장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넣는 것으로 실혼인의 목숨을 끝장냈다.
"독에 대한 저항력이 대단하군. 약한 독들은 아예 아무 소용도 없고 강한 독들도 반응속도를 늦추는 정도밖에 효과가 없다."
그때 때까치 한마리가 날아왔다. 무식한 사현군의 추살대와는 달리 암살대는 두명을 세번째 실혼인의 종적을 쫓게 했다. 그렇게 되면 다시 돌아가 흔적을 쫓을 필요가 없이 때까치로 전해진 정보의 지점으로 향하면 된다.
"큰일났다. 실혼인이 서안에 도착해서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지금 종남파가 뒤쫓고 있으니 최대한 빠르게 제거하고 흔적을 지워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 일체의 휴식이 없고 전부 경공을 최대한으로 시전해라."
"도착한 뒤 삼호가 종남파를 비롯한 추적자들의 눈을 가리는 일을 맡는다. 이호는 상황을 봐가면서 도움이 필요한 쪽을 돕는다. 나는 실혼인을 처단하고 그 흔적을 지우겠다."
- 작가의말
천살의 천마신공을 익힌 천살의 수하들이 도처에서 나쁜짓을 하는군요.
교주가 왜 잠잠한지 의문을 가지실 분들이 있을까 간단히 적어드립니다. 교주가 어디를 공격하겠다 하면 장로들이 소림을 먼저 칩시다 합니다. 그러면 교주는 안돼 합니다. 그러면 흐지부지 해지고 사장로의 뜻대로 명화교가 굴러갑니다.
사장로는 비선실세였던 것입니다. 의회를 장악해서 교주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습니다. 천살은 언론에 의해 악역이 되어 덤터기를 쓰고 현재 감옥에서 복역중에 있습니다. 사형제도가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에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비선실세의 보좌관이 감옥에 있는 천살을 독살할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천살이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언론이 양심을 되찾고 천살의 무죄를 밝혀줄 지, 비선실세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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