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운견일
선우검파와 장운산은 천살의 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선우검파의 검은 천살의 옆구리를 한뼘 깊이로 훑었다. 선우검파의 검에는 피와 살조각들이 덕지덕지 묻혀 나왔다. 장우민은 자신의 공격이 천살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천살의 허벅지에서 손바닥크기의 살 한웅큼을 뜯어냈다.
횡련일기공을 익히지 않았으면 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옆구리가 깊게 베이고 두 허벅지가 뼈가 보일 정도의 상처를 입었지만 천살의 움직임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처음으로 선보이는 응익검이 사진군의 가슴에 긴 상처를 남겼다.
사진군은 천살의 외침에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천살뿐 아니라 장우민과 선우검파의 기습도 방어해야 하기에 천살의 응익검을 제대로 방어해내지 못했다. 가슴이 길게 베이자 사진군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 틈을 타서 천살은 화운을 향해 돌진했다. 화운은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천살에게 공격을 감행했다. 하지만 자신의 공격이 천살에게 적중된 것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천살은 하나의 동굴로 숨어들었다.
화운은 천살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던져 천살이 도망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하지만 천살에게 겁먹은 화운은 용케 피하지 않았지만 위축된 심리로 인해 앞을 가로막은게 아니라 무작정 공격을 감행했다. 천살은 도망이 급했기에 화운의 공격을 그저 맞아준 것이다.
사진군이 큰 부상을 입은듯 하자 장우민은 멈칫했다. 사진군을 제거해 버리면 선우검파가 소교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살을 뒤쫓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선우검파 역시 장우민과 같은 생각을 했기에 천살을 쫓을 기회를 놓쳤다.
사진군은 천살의 검에 의해 찢겨진 옷을 벗어던졌다. 가슴의 상처는 생각보다 옅었다. 구유음풍선의 특징이 표홀한 움직임이기에 천살의 공격은 제대로 적중하지 못한 것이다. 사진군이 콩알만한 환약 하나를 삼키자 가슴의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물어갔다.
머뭇거림도 잠깐이었다. 선우검파와 장우민은 곧바로 천살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핏자국이 사라졌다. 동굴속에 갈림길이 너무 많아 얼마 뒤쫓지 않고 돌아갔다. 천살의 매복에 걸려 장우민이 죽기라도 하면 사진군이 자신을 살려두지 않을 수도 있다. 가문의 세력이 강하기에 선우검파를 죽이고도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천살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번 기습으로 인해 입장이 명확해졌다. 천살이 선우검파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사라졌으니 사진군이 소교주가 되는 것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시각 천살은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찾아 물을 탐욕스럽게 들이켰다. 장우민의 찌르기에 두 허벅지에 뼈가 보이는 상처 두개가 났다. 하지만 더 심한 것은 선우검파의 검이 훝고 지나간 옆구리이다. 검은 한뼘 정도의 깊이로 지나갔지만 검에 실린 내공이 내장에 준 타격이 작지 않아 천살의 뱃속은 현재 엉망이다.
불사공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지만 몸을 복구시킬 힘을 얻어야 한다. 단전안의 내공은 산산조각난 내장을 조금이나마 복구하는데 다 소모되고 말았다. 전신과 배에서 오는 통증이 거대했지만 천살은 이를 악물고 자세를 잡았다.
천살은 첫날 공동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확 띄이는 곳에 삼전도(三顚倒)라는 세글자를 확인했다.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영감에 천살은 다른데 신경 쓸 겨를이 없이 공동안에서 삼전도와 관련된 글귀를 찾기 시작했다. 공동의 벽에는 적지않은 글자들이 있어서 원하는 내용을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습격을 받기 전에 세개의 글귀를 찾을 수 있었다. 첫번째로 찾은 것은 좌우전도였고 두번째는 음양전도였다. 아침에 밥을 먹다 찾은 마지막은 시말(始末)전도였다. 자신의 추측이 맞는지 그것을 받쳐줄 글귀를 더 찾으려 했지만 불의의 습격을 받고 중상을 입어 모험을 하기로 결정했다.
천살은 복마전에서 초화규가 훔친 신화공의 십전도를 해석한 적이 있다. 초화규도 그럴듯하다고 인정했지만 운기경로의 일부 혈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신화동에서 확인한 글귀를 통해 천살은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좌우전도는 혈도의 위치를 말한다. 왼쪽에 위치한 혈도라면 오른쪽에서 대응하는 혈도를 찾아 대체해야 하는 것이다. 첫번째 그림의 혈도들은 왼쪽에 몰려 있다. 그 혈도들에 상응하는 오른쪽 혈도들을 찾아내자 비로소 혈도들이 서로 인접해 있었다. 왼쪽의 혈도들은 몇토막으로 끊어져 서로 이어지려면 그림에서 언급하지 않은 혈도들을 거쳐야 한다.
음양전도는 기운이 혈도를 지날 때 지녀야 하는 성질을 말한다. 음의 기운이라 표기된 부분은 양으로 양의 기운이라 표기된 부분은 음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시말전도는 아마 운기순서를 거꾸로 하라는 뜻일 것이다. 그림의 순서가 잘못된게 아니라 천살의 해석이 부족했던 것이다.
첫번째 그림에서 두번째로 넘어가려던 천살은 곧바로 운기를 멈추었다. 시말전도는 운기순서뿐 아니라 그림의 순서도 포함되었다. 열번째 그림이 첫번째 그림이고 첫번째 그림이 마지막 그림인 것이다. 강하게 몰려오는 통증을 억지로 참고 천살은 신화공의 수련을 시도했다.
천살의 해석이 맞았는지 뱃속에 불씨가 생겼다. 그 불은 무언가를 태워 없애는 음화도 아니고 무언가를 태움으로 자신을 키우는 양화도 아니었다. 물에 꺼지지 않고 나무를 태우지도 않는 홀로 고고하게 존재하는 신의 불이었다. 불씨가 불꽃이 되자 불의 회오리가 시작되었다.
신화공의 불꽃으로 시전된 흡기공은 천살의 체내뿐 아니라 외부로부터 직접 불의 기운을 끌어모았다. 일반 내공심법이 체내의 기운을 단전으로 모으는것과 달리 신화공은 체외의 기운을 직접 단전으로 끌어들였다. 신화동이라 이름지어질 정도로 이곳에는 불의 기운이 많았다. 신화공을 익히기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천살마기는 천살이 통증에 의해 정신을 잃지 않도록 도왔고 불사공은 망가질대로 망가진 천살의 육체를 복구하려 노력했다. 천살마기는 파괴의 기운이라 치료의 효과가 부족하다. 그래서 육체의 복구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신화공의 기운이 모이자 천살은 서창훈이 자신을 구할때 선천기공으로 사용했던 운기경로로 신화공의 기운을 움직였다. 천살마기를 누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복마공이라 이름 지었는데 이름을 요상결(療傷決)로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신화공으로 모은 불의 기운은 양이 적지만 선천기공의 기운보다 더 높은 단계의 기운이다. 그래서 치료의 효과가 무척 대단해서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처가 치명적이지 않음을 자각하자 천살은 복마공을 멈추고 신화공의 수련에 빠져들었다.
천살은 신화공의 수련을 하는 동시에 복마공의 운기도 했다. 이는 흡기공과 횡련일기공을 동시에 운용한것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흡기공은 어차피 소용돌이에 속도가 붙은 후 운기할 필요가 없기에 횡련일기공의 운기만 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화공과 복마공의 두가지를 동시에 운기한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작 천살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여러가지 불의 기운들이 불의 회오리에 이끌려 천살에게 다가왔다. 그것을 십전도의 자세와 운기법으로 정제하여 신화(神火)로 만들었다. 흡기공으로 내공을 모을 때와는 다르게 기운이 모이는 속도가 매우 느렸지만 신화공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 덕분에 천살은 힘겨운 줄 모르고 수련을 계속했다.
불사공은 신화공에게서 기운을 조금씩 구걸하여 천살의 몸을 복구시켰다. 열가지 자세를 반복적으로 취하며 무아지경으로 신화공을 수련하는 천살은 모르고 있지만 천살의 몸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비록 옆구리와 허벅지 뒷편에 보기 흉한 흉터가 생겼지만 말이다. 이미 전신에 수백개의 흉터를 가지고 있는 천살에게는 별 감흥이 없는 흉터들이다.
완성직전에 이른 하단전, 두번째 흡기공을 사용할 때 넘치는 기운과 불사공의 덕분에 완벽에 가깝게 진화한 육체, 잘못된 해석으로 신화공을 수련하면서 토혈공과 불사공으로 튼튼하고 깨끗해진 혈도, 불의 기운이 넘치는 신화동, 흡기공이라는 내공을 쌓는 속도가 전례없는 마공과도 같은 정공, 무아지경까지 여러박자가 골고루 맞아 떨어지자 천살은 신화공의 소성을 이루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천살도 모르는 사이에 열개 자세의 순서가 제멋대로 바뀌었다. 열개의 자세가 이어져야 의미가 있던 신화공은 하나하나의 자세마다 독립된 의미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한호흡에 열번이상씩 변하던 자세가 바뀌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같은 자세를 일각 이상씩 취하고 미동도 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가지 자세를 오래도록 취하다가 또 다시 급변했다. 열가지 자세가 마구 섞이며 미친놈이 춤추듯이 자세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열가지 자세가 사라지고 조용히 정좌를 하고 운기하기 시작했다.
신화공의 시작은 동공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경지에 이르면 정공으로 바뀐다. 횡련일기공이 정공으로 바뀐 것과 마찬가지로 보통 몇년씩 걸리는 과정을 천살은 기연에 기연이 겹쳐 빠르게 완성한 것이다.
신화공의 덕분에 천살은 완성직전에 있던 하단전을 완성했다. 하단전의 완성이란 기운이 음도 아니고 양도 아닌 동시에 음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천살이 깨달음을 얻어 하단전을 완성한게 아니라 신화공의 불의 기운이 그러한 상태이기에 하단전이 자동완성된 것이다.
하단전이 완성되자 신화공은 중단전을 넘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위기를 느낀 천살마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단전까지 신화공에게 넘어가면 천살마기는 다시는 천살의 육체를 장악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신화공과 천살마기는 중단전의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시작했다.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신화공이 주춤하자 천살은 무아지경에서 빠져나왔다. 무아지경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는지는 명확하게 인식했다. 천살의 의념이 돌아오자 신화공과 천살마기의 싸움도 멈춰졌다.
신화공은 천살마기라는 적을 확인하자 변화를 시도했다. 기름정도의 끈끈함을 보이던 신화공은 용암처럼 끈끈한 천살마기와 부딪힌 후 하단전속의 내공을 압축하기 시작했다. 하단전에 꽉 찼던 내공을 압축하자 단전이 순식간에 비워졌다.
정신을 차린 천살은 하단전이 텅 비어버린 것을 확인하고 몸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모은 기운을 다 써버렸다고 생각했다. 신화공을 운용했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진화된 신화공은 열개의 운기경로를 연결하여 하나의 운기경로로 만든 것이다. 열개의 운기경로를 연결하면서 적지 않은 혈도들이 운기경로에 합류했다.
천살은 모르지만 신화공은 천살마기와 대항하느라 천살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 것이다. 일반적인 내공심법과는 다르게 신화공은 불사공과 천살마기처럼 천살의 체내에 둥지를 틀었다. 영문을 모르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것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천살은 곧 혼원동자공으로 단전에 내공을 모은 후 흡기공으로 하단전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 작가의말
拔雲見日, 구름을 헤치고 태양을 보다. 어둠의 시간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절벽기연에 이어 동굴기연. 어서와, 연환기연은 처음이지? 진정한 창조기연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A/S 가 완벽해야 진정한 창조기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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