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상봉
"천형은 혹시 용이시오?"
우겸은 천살이 손도 대지 않고 자신을 허공에 띄운채 빠른 속도로 움직이자 놀란 나머지 불쑥 질문했다. 예전에 개울에서 혼절한 천살을 구했는데 하필이면 자신이 위험할 때 나타나 구해주고 인간같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을 경사로 데려다준다. 은혜를 입고 그것을 갚는 용의 전설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우동생, 대형이 강호에 유명한 대마두인데 모르고 있었소? 천마라면 울던 애기도 울음을 그친다는데."
고천양은 먹물냄새가 풀풀 나는 동생이 생기자 신이 났다. 고천양은 웬만한 무공서는 읽을 수 있는 정도로 글을 익혔다. 하지만 과거시험을 보려는 우겸은 어딘가 대단해 보였고 자신을 고형이라 불러주자 매우 기뻤다.
"나도 들었지만 하도 허황되고 여러가지 다른 소문들이 많은 것을 보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린 것이 틀림없소. 힘있는 자들이 일부러라도 누군가를 깎아내리려 한다면 그자는 결코 나쁜사람이 아닐 것이오."
우겸의 말이 위로가 되는 것을 느끼자 천살은 자신이 소문들에 대해 진짜로 무관심한게 아니라 무관심한척 했던 것임을 깨달았다. 아직도 자기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자 크게 자책되었다. 자기주관이 뚜렷하고 그것을 숨기지 않는 우겸이기에 천살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고 있다.
천살의 경공 덕분에 과거시험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과거시험이 끝나고 발표일까지 시간이 꽤 남았기에 많은 응시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덕분에 객잔에 방이 나서 우겸에게 방 하나를 잡아준 뒤 천살과 고천양은 화산을 향해 출발했다.
"대형, 그간 표정이 밝으셨는데 어제부터 무슨 걱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림맹이나 마교보다 더 두려운 존재를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마음이 많이 무겁구나."
천살의 말에 고천양은 밤마다 몰래 나가서 무공수련에 열중했다. 당무영에게 소식을 전할 방도를 생각했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당무영에게 알려 당문의 힘을 빌리자고 말하면 천살의 자존심이 상할것 같아서 말을 못 떼고 속만 끙끙 앓았다.
화산에 도착한 천살은 고천양과 함께 곧바로 효자봉으로 향했다. 하지만 효자봉의 나무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에 세간살이들까지 다 사라진 것을 보니 잠깐 집을 비운게 아니라 아예 이곳을 떠난 것 같았다.
옥녀봉에 한번 들렸다가 다시 연화봉에 도착해서 화산제자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호매령이 화음현으로 이사를 갔다는 말에 천살과 고천양은 다시 화음현으로 향했다. 화음현에 도착한 둘은 난감함에 빠졌다. 덩치가 커다란 사내 둘이 호매령이 어디에 사는지 탐문하려고 하니 의심을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형, 그것을 써서 탐문하시죠."
천살은 상대에게 원하는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러고도 상대의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지만 천살은 왠지 그러고싶지 않았다. 진실의 확인을 조금이라도 미루려는 생각인지 아니면 능력을 사용해서 부정을 탈까봐 겁이 나는건지 천살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대형, 그러면 이렇게 하죠. 당과를 조금 사서 애들에게 나눠주고 애들보고 찾아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고천양은 화산으로 향하는 며칠동안 내내 걱정하다가 자신이 생각했던 흉험한 일이 아님을 알고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인지 눈치도 빨라지고 머리도 더 잘 돌아갔다. 천살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고천양을 바라보았다.
"너 이름을 바꾸고나서 사람이 많이 변했구나."
천살의 칭찬에 고천양은 자책감을 느꼈다. 대형을 두고 자신이 다른 여자를 마음에 두고 혼인을 생각하는것이 배신자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상대는 세가의 직계라 대형의 도움이 없으면 나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야. 내가 장가 가려면 우선 대형부터 혼인 시켜야 한다. 호매령이라는 분이 대형이 사모하는 여인인가 본데 내가 꼭 둘이 성사될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고천양의 기도가 순식간에 변했지만 천살은 자신의 칭찬 때문이라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고천양이 보다 적극적으로 변한 것도 칭찬 덕분이라 생각하며 이후 자주 칭찬해줘야 겠다고 다짐했다.
당과를 파는 장사꾼 주위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중에서 무회라는 아이가 보이자 천살은 발걸음을 멈추고 고천양도 제지했다. 아이를 찾았으니 굳이 당과를 살 필요가 없다. 저 아이를 따라가면 호매령이 있을 것이다.
천살이 찾았다 라고 말하자 고천양은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대형의 눈에 들만한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아이들끼리 작은 다툼이 벌어졌다.
"너는 당과를 먹을 수 없어."
열살정도 되는 아이가 자그마한 아이에게 말했다. 잘 차려입은 옷을 보니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 대장놀이를 하는 듯 애들을 데리고 와서 당과를 사주는 중이었다.
"나는 왜 안되는데? 사람 차별하냐?"
덩치가 작았지만 무회는 매우 당찼다. 천살은 그 모습을 보면서 호매령과 꼭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가 나이도 많고 덩치도 컸지만 추호의 두려움도 없었다.
"너 화산에서 왔다며? 난 종남의 속가제자라서 화산파 아이에게 당과를 사줄 수 없어."
"너 그 나이 먹고 아직도 편가름 하냐? 화산이면 어떻고 종남이면 어때. 다 같은 정파무림의 대들보 아니냐?"
무회의 말에 종남의 속가제자라 밝힌 아이는 말문이 막혔다. 종남이 화산에 대해 경쟁심리가 있어 종남의 속가제자가 된 아이도 화산을 싫어한다. 하지만 왜 화산을 싫어하는지는 본인도 모르고 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네가 화산을 버리고 종남으로 오면 매일 너에게 당과를 사줄게."
아이의 뒤에 줄을 쭉 선 아이들 전부 종남의 편이다. 며칠에 한번씩 당과를 사주면서 끌어들인 아군이다. 매일이라는 말에 '아군'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대장, 쟤는 왜 매일이야? 우리는 며칠에 한번인데."
"쟤는 화산의 사람이잖아. 원래 문파를 버리고 오는 애랑 너희랑 똑같은 줄 알어?"
아이가 버럭 화를 내자 아군들은 조용해졌다. 천살은 화음현에 사는 아이가 종남의 속가제자가 된 것을 보고 화산이 크게 몰락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우리 삼촌한테 물어보고 올게. 종남 갔다가 다시 화산 돌아와도 되는지 허락 맡아야 돼."
"종남 가면 다시 화산으로 못 돌아가. 그리고 네 삼촌이 누군데?"
"조자운이라고, 화산장문이야."
무회의 말에 아이들은 뒷걸음질 치다가 와 하고 도망갔다. 화음현의 아이들이라 화산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당과 때문에 종남의 편에 섰는데 화산장문의 조카라는 말에 두려웠던 것이다. 화산장문이 바로 달려와서 자신들을 꾸짖을 것 같아 겁이 나서 줄행랑을 쳤다. 당과장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레를 끌고 아이들이 도망간 쪽으로 움직였다. 당과장수가 있는 곳에 아이들이 몰리는게 아니라 아이들이 몰린 곳을 당과장수가 쫓아다니는 것이었다.
'조자운이 삼촌이라. 확실히 내가 오해한것 같구나.'
천살은 마음속에서 희망이 피어올랐지만 억지로 눌렀다. 진실을 확인하고 나서 실망하기 싫기 때문이다. 그때 고천양이 곁에서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근데 저 아이 대형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이목구비도 그렇고 체형도 똑같네요."
천살이 아무 대답도 없자 고천양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천살이 이미 없었다. 고천양이 아는 무공초식이 적어서 그렇지 내공만 따지만 천하에서 오십명안에 들 정도인데 천살이 사라지는 기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돈을 주고 당과를 산 천살은 털레털레 걸어가는 무회의 앞에 나타나서 당과를 건넸다. 갑자기 나타난 천살과 당과를 번갈아보던 무회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아빠?"
천살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천살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내가 네 아빠라고 생각하느냐?"
내공의 경지가 높아 격동하는 마음에 비해 평온한 어조로 질문을 건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어디 아파요? 왜 그렇게 심하게 떨어요? 그리고 엄마가 그랬어요. 우리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이라고."
"네 이름이 무엇이냐?"
"원래 이름은 무회(無悔)였어요. 하지만 지난번 생일을 쇠고 어른이 되었기에 이제부터는 천효(千孝)예요."
천살은 손에 쥔 당과를 천효에게 건넸다. 손이 큰 천살이라 두손에 당과 여러개를 쥐었지만 어린 천효는 두개도 힘들다. 그때 고천양이 나타나서 깨끗한 천으로 당과를 감싼 뒤 아이의 품에 안겨주었다.
"당과 감사해요. 적수지은(滴水之恩 - 한방울 물의 은혜) 용천상보(湧泉相報 - 솟구치는 샘물로 갚다) 라 했으니 이 천효 이후 장성하면 꼭 오늘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당과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천효는 이후 돈이 생기면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게 당과를 몇개 사줘야하나 고민했다. 고천양은 멀어져가는 아이를 보며 감탄했다.
"걸음걸이마저 똑같네. 진짜 대형 아들이라 해도 사람들이 다 믿겠습니다."
천살은 고천양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자식아, 능력 안 펼쳤단 말이다.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거냐. 그리고 내 아들 맞아. 내 아들이 틀림없어."
고천양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찼다. 천살을 혼인시킬 일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애까지 있다고 한다. 자신이 장가갈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형, 무얼 망설이는 겁니까. 아이를 따라서 아이엄마한테 가야죠."
"너 내가 예전에 화산의 호장문과 대결했던 일 기억하지? 아이 엄마가 호군천의 외동딸이야. 호장문이 그뒤로 거동이 불편한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어. 내가 찾아가면 우리 혼인을 허락해줄까?"
고천양 자신이라면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무인에게 무공을 잃은것만 해도 큰일인데 거동까지 불편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허락하게 만들어야 한다. 목표를 가진 고천양은 자신의 머리를 한계이상으로 굴렸다.
"대형의 경지면 치료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천살의 얼굴에는 기쁨이 떠올랐다 곧바로 수심으로 바뀌었다.
"만약 실패하면 어떡하냐?"
"미리 연습을 해보시면 되죠.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을 찾아 연습하는 겁니다."
"가자."
천살은 곧바로 서안을 향해 경공을 시전했다. 고천양도 전력을 다해 천살의 뒤를 쫓았다. 서안의 유가장으로 향한 천살은 곧바로 유씨 삼형제를 찾아서 치료를 시도했다.
"네놈들은 죗값을 넉넉히 치뤘기에 이제 용서해준다. 벌이 과하다고 불평하지 말거라. 그리고 이후 착하게 살도록 해라."
유씨 삼형제는 팔다리가 움직여지자 눈물에 콧물 범벅이 되어 엉엉 울었다. 천살의 말에 셋은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대형, 바로 화산으로 가서 장인어른부터 치료를 하시죠."
천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당에 가자. 무당에 비슷한 증상을 한 사람들이 열명은 넘을 것이다. 서둘렀다가 실패하면 큰일난다."
천살의 말에 고천양도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하면 절대 안되는 일이다. 천살 하나의 인생만 걸려있는게 아니다.
"대형, 이쪽은 무당산 방향이 아닌데요."
"종남에 한번 들르자. 삼년정도 문 닫으라고 해야겠다."
- 작가의말
이미지 한번 올려봤는데 실패했습니다. gif 파일인데 움직이지 않네요. 그래서 삭제했습니다. 아직 떡밥 회수 안한거 꽤 있습니다.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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