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패소하
사도에 교주와 장현성만 돌아오자 장로들은 의논이 분분했다. 특히 교주의 무위가 놀라울 정도로 강해져 있어서 사장로의 역심을 완전히 눌러버렸다. 사장로의 기세가 죽자 사장로와 친분을 다지던 장로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장원산은 장현성과 함께 술잔을 나누면서 장현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장현성은 장원산에게 교주가 호위대를 학살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장원산은 떨리는 손으로 술을 단숨에 넘겨버렸다. 너무 대단한 비밀을 알게 되어 손의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차라리 잘되었다. 네가 명화교의 교주가 되어 장씨 가문의 뿌리를 이곳에 깊이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장로님, 교주의 무위가 대단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교주는 황제가 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쳤다고 하지만 오는길에 아들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사고능력이나 판단능력이 문제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인내심이 극도로 부족합니다."
"네 덕분에 우리 장씨가문의 핏줄이 황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이게 다 조상님들이 쌓은 음덕이다."
장현성은 술을 단숨에 삼킨 후 심호흡을 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지금 장로님이 제 최대의 약점입니다. 그러니 이대로 입을 다물어주셨으면 합니다."
장현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원산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물었다. 얼굴이 흙빛이 된 장원산이 힘겹게 손가락을 들어 장현성을 가리켰지만 끝내 소리 한마디 내지 못했다. 검으로 장원산의 몸에 칼자리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 후 화골산을 상처에 뿌렸다. 이각정도의 시간이 자니자 장원산의 시체가 사라졌다. 화골산에 녹지 않고 남은 일부 뼈와 머리카락 등 체모는 장현성에 의해 땅속에 파묻혔다.
가장 걱정되던 장원산을 처리한 장현성은 선우복명을 찾아갔다. 한선후가 장현성을 자신의 친자식이라고 선포했기에 선우복명은 장원산을 소교주라 칭했다.
"소교주께서 이 쓸모없는 늙은이는 왜 찾아오셨소?"
천살은 세력에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선우복명의 세력을 유지하는 힘은 천살에게서 나왔다. 그 천살이 교의 주적으로 변해버리자 선우복명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다만 조유천의 제자들이 계속 곁에 남아주었기에 무력은 여전했다.
"제 진정한 신분이 밝혀지기전에 사장로에게 위협을 받은적이 있습니다. 부친께서 대공을 성취하여 끝내 제 신분을 밝혔지만 아직 힘이 부족해 분을 풀 수가 없네요. 그래서 선우장로님께 부탁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선우복명은 천살이 사라진 후 사장로와 사씨가문에 복수할 길이 막막해졌다. 가문이 없다면 늙은 목숨 하나 버린다치고 사씨 가문의 사람들을 암살하는 것으로 분풀이를 하겠는데 가문의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못한다. 교주의 친자식이라고 밝혀진 장현성이 사장로를 적대하는 듯 하자 선우복명은 새로운 희망이 보였다.
"사장로는 모든 사람을 아래로 보는 습관이 있소. 교주에 대해서도 경외심이 별로 없는 작자이니 소교주가 받았을 수모가 상상이 되오. 이 선우복명이 힘이 부족하지만 소교주의 부탁이라면 어떻게든 들어드리겠소."
장현성은 찻잔을 입에 가져다대며 어떻게 말을 할지 정리했다.
"제가 우선 선우장로님께 작은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형산파에 몸을 담았을 때 많은 수모를 겪었습니다. 사장로에게 복수하는 일은 성급히 서두를게 못되나 형산파에 대한 원한은 더이상 참을수가 없군요. 선우장로께서 형산파를 멸문시켜 주신다면 제가 부친께 말씀드려 선우장로에게 힘을 실어드리겠습니다."
자택으로 돌아온 장현성은 기분이 몹시 좋았다. 형산파까지 사라지면 자신이 한원영이 아닌 장현성이라는 것을 증명할만한 존재가 사라진다. 장원산이나 형산파처럼 자신의 출생부터 지켜본 자들이 사라지면 사장로에게 약점을 잡힐 일도 없다. 다른 가족들이 사장로에게 잡혀 증언을 한다고 해도 거짓이라고 딱 잡아떼면 된다. 장원산이나 형산파가 아닌 힘없는 자의 증언에는 힘이 실리지 않는다.
자신의 방에 들어가니 하녀 한명이 한참 청소를 하고 있었다. 토실토실한 엉덩이와 잘록한 허리가 장현성의 음욕을 불러일으켰다. 장현성이 어험 하고 소리를 내자 하녀는 급히 몸을 돌려 인사를 올렸다.
"죄송합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청소를 미리 끝내지 못했습니다."
하녀의 목소리는 장현성의 귀뿐이 아니라 마음까지 간질거리게 했다. 절색까지는 아니지만 어디에서 쉽게 보기 힘든 미모였다. 청소하느라 땀을 흘렸는지 머리카락이 살짝 젖어있었다.
"괜찮다. 천천히 청소를 하고 잠시뒤에 내 목욕시중을 들도록 하거라."
하녀는 빨개진 얼굴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장현성은 흐뭇한 마음으로 하인에게 목욕물을 준비해 놓으라 명했다. 그때 사도에 남아서 목숨을 부지한 호위대원이 교주가 부른다고 장현성에게 통보했다.
천살의 호위대는 고삼이 사라지고 나서 완전히 없어졌고 교주의 호위대는 이번에 따라간 자들이 전부 죽는 바람에 스무명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교주는 자신의 무공을 믿고 얼마 남지 않은 호위대를 장현성에게 넘겨주었다.
장현성은 한원영과 키는 비슷했지만 어깨가 더 넓었다. 그래서 한원영의 옷이 불편해서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호위대원의 말에 교주전으로 향하자 교주가 반겨주었다.
"장현성, 그간 어디에 있었던 거냐? 내 아들의 병이 다 나아서 사도에 왔으니 너도 한번 인사를 하거라. 내가 불렀으니 아마 곧 도착할 것이다."
장현성은 얼굴이 핼쓱해졌다. 교주가 갑자기 정신을 차린것이 아닌지 의심되었다. 그러다 교주가 기다리다 못해 직접 찾아가겠다고 하자 급히 말렸다.
"아비가 자식을 찾아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교주께서 발걸음을 옮기시면 소교주가 불효자가 됩니다. 차라리 제가 가서 직접 모셔오겠습니다."
급히 자택으로 돌아간 장현성은 한원영의 옷으로 갈아입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교주전에 갔다. 장현성이 들어가자 교주가 크게 웃으며 반겼다.
"유손아, 부른지 한참 되었는데 왜 이제야 온 것이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익히던 무공을 마저 수련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한선후는 손수건으로 장현성의 이마에 난 땀을 닦아주었다. 긴장된 마음에 급히 달려오느라 고수 주제에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한선후는 장현성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함께 저녁식사까지 하고 나서야 장현성을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간 장현성은 긴장이 탁 풀렸다. 교주가 제정신을 차리고 그간 자신이 가짜로 아들행세를 한 것을 알아차리면 자신의 목숨은 없는 목숨이다. 옷을 벗어서 차곡차곡 개인 장현성은 든든한 나무로 만든 궤안에 옷을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 이 옷이 사라지기라도 한다면 장현성의 인생은 끝난 셈이다.
'그래도 평생 저옷만 입을수는 없지. 그러면 사람들도 이상하게 생각할거다. 기회가 되면 장원으로 가서 옷을 더 가져와야겠다.'
하인이 데워놓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다보니 갑자기 미모에 몸매까지 훌륭한 하녀가 생각났다.
"내 방청소를 담당한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아직 정식으로 하녀로 들인게 아니라서 아침에 왔다가 저녁식사전에 집으로 돌아갑니다."
"내일 오면 정식으로 채용하도록 해라."
밤이 되자 장현성은 등잔을 밝히고 천마신공을 탐독했다. 오성이 나쁘지 않다고 자부했지만 천마신공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운기경로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지만 교주의 깨달음들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다. 장현성은 무공고수가 되는 것보다 황제가 되는것에 더 흥미가 있기 때문에 천마신공을 익히는데 급급해 하지 않았다. 천신공으로 강해진 자들이 갑자기 죽었던 일 때문에 선뜻 익히기 저어된 것이다.
그후 며칠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 보았던 하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총관에게 다그쳐 묻자 모친이 병환을 앓아 오늘내일 하기에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 듯 하자 장현성은 교주에게 말미를 맡은 뒤 호위대를 거느리고 장원으로 향했다.
장원에서 한원영의 옷들을 전부 가져오면 찝찝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호위대와 함께 도착한 장원이 이미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뭔가 잘못된 것을 알고 급히 사도로 돌아가려 했지만 복면을 한 자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이들을 포위했다.
"딱히 죽일 필요는 없다. 저 옷만 넝마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장현성은 그제야 자신의 비밀이 들켰음을 알아차렸다. 아마 다른 옷을 입고 갔을 때 교주가 장현성이라 부른것이 누설된 모양이다. 명화교에서 그정도 능력이 있는 것은 사장로밖에 없다. 장현성은 옷을 벗어서 호위에게 건네준 뒤 목숨걸고 지키라고 명했다.
복면인들은 장현성보다 옷을 건네받은 호위를 주로 공격했다. 덕분에 장현성이 포위망을 뚫었고 포위망을 뚫은 장현성은 호위들에게 각자 알아서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복면들의 우두머리는 경공에 능한 수하 셋에게 장현성을 쫓으라 명했다. 하지만 이곳에 꽤 오래 머무른 장현성은 지리에 익숙해서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복면인들은 여러 목숨을 대가로 호위대원들을 전멸시켰다. 이틀간 주변을 수색하며 장현성을 제거하려 했지만 장현성의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장현성이 교주가 비밀리에 마련해둔 여러개의 밀실중 하나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배고프고 목이 말라 더이상 버티기 힘들자 장현성은 밀실을 나섰다.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과일로 배도 채우고 목도 추겼다. 한원영의 옷때문에 큰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옷때문에 목숨이 위험하게 되었다. 역시 위험하지만 천마신공을 익혀야 한다. 자신의 편이 되어줄수도 있는 장원산을 직접 제거해버렸기에 의지할 것은 자신의 무력밖에 없다.
사도의 장로회의에서 한원영의 옷을 입은 사씨가문의 소년이 소교주행세를 하고 있었다. 수십명의 장로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누구하나 한선후에게 아들의 얼굴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다. 맹목적인 충신인 현장로는 복마동에서 천살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한선후를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호위대는 대부분 한선후의 손에 죽고 남은 자들은 장현성을 따라서 나갔다가 전부 목숨을 잃었다.
사장로와 원수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선우복명은 장현성의 부탁을 받고 형산으로 향했다. 다만 이상한 점은 무공을 모르는 가솔들까지 전부 데리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사장로는 선우복명이 사라지면 백익무해하기에 굳이 딴지를 걸지 않았다. 아무래도 선우복명은 명화교를 떠날 생각인 듯했다.
새롭게 소교주가 된 사씨가문의 소년은 이동할 때 항상 마차나 가마를 이용했다. 머무는 저택은 사씨가문의 무인들이 물샐틈없이 둘러싸고 있었다. 한선후의 무공이 너무 강해 제거하지 못하고 있을 뿐 명화교 전체가 사씨가문의 손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주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들도 전부 사장로의 사람들이다.
"나는 강호를 일통한 후 천하를 평정해 황제가 될 생각이오. 그래서 가장 먼저 무당을 없앨 생각이오."
"교주, 무당은 오년간 봉문하기로 되어 있소. 아직도 시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 굳이 지금 건드려서 손해를 자처할 필요가 없소."
"그럼 화산을 치겠소."
"화산 역시 봉문을 했소. 거기에 서창훈이 죽어버려 봉문을 풀어도 아무 위협이 되지 않소. 괜히 화산을 쳐서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없소."
"그럼 어쩌자는 말이오?"
"소림을 쳤으면 하오. 소림만 쓰러지면 무림맹도 해산되고 강호세력들이 분분히 우리에게 투항해 올 것이오."
한선후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소림은 안되오."
- 작가의말
成敗蕭何, 성야소하 패야소하, 소하가 유방의 재상이 아니라는 설도 있고 합니다. 소하때문에 성공하고 소하때문에 실패했다는 뜻으로 성공의 이유가 실패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소하가 한신을 유방에게 추천해서 한신이 대장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후에 유방이 한신을 제거하려 하자 그 계책을 소하가 꾸몄습니다. 한신의 성패가 모두 소하때문이라는 뜻으로 나온 말이라는 설이 저는 가장 설득력있게 들렸습니다.
오늘 저녁 메시랑 날두의 대결이 펼쳐집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르샤가 바르기를 원하지만 레알이 우위를 점할 것 같습니다. 메시팬은 아니고 오래전부터 바르샤의 축구철학을 좋아했습니다. 물론 제가 생각하는 바르샤의 축구철학이 바르샤의 감독과 선수들이 생각하는 축구철학인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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