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천마
천살 일행은 배를 타고 안경부로 향했다. 남궁천은 무림맹주가 되었지만 팽가를 비롯한 황실과 금의위를 등에 업은 세력들이 득세하여 무림맹의 대소사를 쥐락펴락하자 병을 핑계로 남궁가로 돌아가 칩거했다.
남궁가에 가서 천살의 이름을 밝히고 남궁천과의 만남을 청했다. 문지기가 남궁천과의 친분 혹은 관계를 묻자 천살은 검을 두어번 맞대본 사이라고 말했다. 성격이 더러운 남궁천이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과 검을 잘 섞지 않는 것을 아는 문지기는 황급히 안으로 전갈을 전했다.
"대형, 오는 내내 대형의 이름이 귀를 울렸는데 결국 허명인가 봅니다."
고삼은 자신이 죽인 한화령이 형을 죽인 흉수라는 사실을 알고는 많이 밝아졌다.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형의 복수를 직접한 것이다. 그래서 천살에게 농도 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름보다 별호가 더 유명해서 이름을 모르는것 같은 느낌이다."
현재 강호에 마인은 많이 출현하지 않았다. 하오문처럼 조직적으로 천마신공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자들이 사라지자 천마신공을 얻는 유일한 경로가 사라졌다. 그러나 최근 강호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사람은 천살이었다.
남궁천은 천마신공을 만들어내 수많은 마인을 강호에 풀어놓은 천하제일 대마두이자 천마로 불리우는 천살이 방문했다는 말에 깜짝 놀라 술단지를 내려놓았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는 경지라 술을 마시는 행위는 남궁가의 사람들에게 나 오늘 기분 나쁘니 일 있어도 찾지 말라는 신호이다. 그리고 취하지 않지만 술 마시는 행위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귀한 손님이니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그리고 세수할 물을 준비하고 가장 좋은 옷도 준비해 놓거라."
남궁천은 하녀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의관을 정제하고 천살을 만나러 갔다. 강호에 감히 자신한테 장난을 칠만한 담력을 가진 자는 없으니 천살이 맞을 것이다. 절정검을 얻은 남궁천은 몇년전의 천살과 다시 대결하면 이길 자신도 있다. 천살의 그 마지막 초식도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파해할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몇년간 천살도 그저 놀지는 않았으니라. 남궁천은 자신의 부인과 혼인하던 날 동방에서 얼굴을 가린 붉은 수건을 걷어낼 때처럼 두근거렸다. 객당에서 천살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남궁천은 호흡이 가빠졌다.
이 어린 괴물은 몸속에 하늘을 찢고 땅을 뒤집을 수 있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 경지가 낮은 자들은 모르겠지만 남궁천은 주변의 기운들이 움직일 때 천살의 몸을 그저 통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궁천이 절정검의 소성을 넘기고 대성을 향해 나가며 겨우 실마리를 잡은 내외합일의 경지를 천살은 이미 이룬 상태다.
마음속의 호승심이 깨끗이 사라진 남궁천은 천살에게 허리를 살짝 굽혀 포권을 했다. 갓 끓여낸 차를 쟁반에 들고오던 하녀가 그 모습에 놀라 그만 차주전자를 떨궈서 깨뜨렸다. 하지만 남궁천은 모든 신경을 천살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다른 자들도 놀란 나머지 누구도 하녀를 꾸짖지 못했다.
"차는 치우고 술이나 가져오거라. 오늘 남궁천이 천하제이로 확정된 날이니 맨정신으로 버틸수가 없구나."
남궁천의 손님에게 내오는 술이 평범한 술일리가 없다. 네단지의 술이 나오자 남궁천은 일일이 소개했다.
"이 술은 화조(花雕)로 가장 부드러운 술이오. 이 귀주(鬼酒)는 술향기에 귀신도 취한다는 술로 마실때는 괜찮지만 한순간에 취기가 올라오는 술이오. 이 벽운(碧雲)은 남궁가에서 직접 만든 술로 명성은 보잘것 없지만 내가 가장 즐기는 술이오. 마지막 공주(貢酒)는 이름이 없소. 송나라때부터 황실에만 바치는 술이라 이름이 지어지지 않았소."
천살은 벽운을 선택했고 당무영은 공주를 선택했다. 고삼이 화조가 든 단지를 잡자 남궁천이 자연스럽게 귀주를 마시게 되었다. 넷은 안주도 없이 단지채로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손님으로 방문해서 술을 양껏 마신다는 것은 주인에게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쁜 마음을 품었으면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 남궁천이 술로 천살에게 방문의도를 물었고 천살은 단지채 마셔버리는 것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천살도
남궁천이 술을 권하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그저 알게 되었다.
"남궁대협, 무림맹을 해체시킬 생각이오. 그 과정에서 남궁대협이 균형을 잘 잡아주셨으면 하오."
천살의 단도직입에 깜짝 놀란 남궁천은 총관과 하인들을 살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천살의 말을 듣지 못한것처럼 태연한 표정이다. 어떻게 한 것인지 매우 궁금했지만 체면때문에 차마 천살에게 가르쳐달라고 할 수 없었다.
"무림맹이 사라지면 서무림맹과 마교가 혈전을 벌일 것이오. 그 둘은 이미 철천지원수와 다름없는 사이가 되었소."
"그 둘도 해산시킬 생각이오."
"설마 천소협은 천하를 경영할 큰 뜻을 품은 것이오?"
"그랬다면 해산시키지 않고 내가 품었을 것이오. 거력(巨力)은 거악(巨惡)을 만들어내오. 일반인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 모여있는 것은 그닥 좋은일이 아니오."
천살의 말에 남궁천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오. 남궁가라는 거력이 만들어낸 거악이 바로 이 남궁천이니 말이오."
그후 별 의미없는 안부인사를 서로 건넨 후 천살 일행은 남궁가를 떠났다. 천살이 떠난
후 남궁천은 곧바로 가솔들에게 명했다.
"가문의 모든 무인들은 나와 함께 무림맹으로 간다. 그리고 우리 세력들에게도 급히 전갈을 보내 모든 무력을 긁어모아 개봉으로 향하라고 전해라. 그리고 이번 일을 끝내면 나는 은퇴할 작정이니 새로운 호법을 알아서 뽑도록 해라."
남궁가를 떠난 천살은 배를 타지 않고 경공을 이용해 이동했다. 고삼이 배가 싫으면 말이라도 타자고 했지만 천살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쯤 우리 소문이 다 퍼졌을 것이다. 배나 말을 타고 움직이면 금의위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두려운 건 없지만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구나."
천살의 몸에 은자가 많지 않은 관계로 다시 개봉에 들려서 금의위의 비밀장원으로부터 은자를 조금 빌렸다. 자신을 속이고 함정까지 판 대가로 은자만 가져가는 것은 참으로 관대한 모습이라며 천살은 자신의 절도를 합리화했다.
은자가 넉넉하자 오랫동안 고생한 고삼과 당무영을 위해 식사는 항상 유명한 객잔에서 맛있는 것으로 양껏 먹었다. 배불리 먹고 차로 입을 가시는데 다른 상에서 장사치들이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렸다.
"혹시 소문 들으셨나 몰라. 소림이 봉문을 했다는구만."
"당연히 들었지. 그리고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라네. 개봉에 나가있던 소림제자들도 싹 다 숭산으로 돌아갔다네."
"그럼 소림이 왜 봉문했는지도 들었는가?"
"당연히 들었지. 천마와 사흘밤낮 싸웠는데 소림이 져서 봉문했다는구만."
그때 조용히 앉아서 듣고만 있던 자가 입을 열었다. 귓볼에 큭직한 점이 인상적인 자가 입을 열자 남은 장사치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그래서 소림사의 중이 몇명 죽었다던가?"
큰점의 질문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큰점은 친척중에 금의위가 된 자가 있어서 소식이 빠르지는 않지만 항상 정확했다.
"이 소문은 지금 매우 은밀히 퍼지고 있어서 자네들이 들었는지 몰라. 사실 천마와 소림사가 싸운것이 아니라 삼일동안 불경대결을 벌였다네."
"불경대결은 어떻게 한다나? 누가 불경 더 잘 읽나 시합하는 건가?"
"무공 고수들은 자신의 말에 마음을 담을 수 있다네. 자네들이야 이렇게 알려줘도 무슨 뜻인지 모를테니 내가 자세히 풀어줌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자 신이 난 큰점은 목소리를 조금 더 키웠다.
"천마가 소림방장에게 그랬다네. 너희는 부처님을 모시는 중이 아니다. 너희들 중 내 불심을 넘어서는 자가 한명이라도 있으면 오늘 이대로 물러가겠다. 그래서 불경 대결을 했는데 불경을 읽으면서 거기에 담긴 불심이 누가 더 큰지 비교하자는 거지."
"먼저 말했다시피 고수는 목소리에 마음을 담을 수 있다네. 그렇게 천마와 이만명의 소림중들의 불경대결이 시작된거야. 소림의 무승들도 제대로 못 외우는 불경을 천마가 전부 외우고 있었다는 거지. 그래서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첫 불경이 다 끝나기도 전에 만명이 넘는 무승들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네."
그때 조금 경박한 자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단순히 불경을 외우는데 왜 피를 토한다는 말이오?"
큰점은 흥이나 말을 하는데 누군가 끼어들자 역정이 났다.
"목소리에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잖소. 그런데 지면 마음이 다치니까 피를 토하는게지. 고수들사이의 싸움이 우리처럼 주먹으로 치고 박는줄 아시오? 다 고상하게 하는 것이오."
"그러고도 만명이나 되는 불승들이 남아서 천마와 대결을 했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승들도 하나둘 쓰러져갔지. 놀랍게도 소림의 불승들보다 천마가 더 많은 불경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오."
아까 끼어들었던 자가 또 한번 말을 잘랐다.
"그렇다면 천마는 좋은 사람이 아니오? 부처님을 모시는 사람 치고는 나쁜 사람 없다던데."
"어허, 이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 보게. 원래 나쁜일을 많이 한 자들이 더 부처님을 찾소. 돈을 바치고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면서 자기 죄를 용서해달라거나, 자기 죄가 후손에게 미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것이오. 소림사 이만명의 중들의 죄를 다 합쳐도 천마보다 못하니 불경대결에서 소림사가 진것이 아니오."
"그건 무슨 개소리요? 그럼 소림에서 가장 불심이 깊은자는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자라는 것이오? 유명한 고승일수록 나쁜 놈이라는 뜻이오?"
큰점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던 큰점은 겨우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확실하지 않은 것을 잘 말하지 않는 사람이오. 이건 나도 다른 사람의 추측을 들은 것인데 천마가 사실은 부처님이 타락한 불자들을 벌주려고 하계로 보낸 아수라라는 말이 있소."
"어허, 그럼 화산과 무당은 왜 봉문시켰소. 부처님이 너무 오지랖이 넓은 것이 아니오? 그쪽은 원시천존의 관할인데 말이오."
"그래서 나도 확실한게 아니라고 미리 말했지 않소. 그리고 자꾸 끼어들면 나도 그만 말하겠소."
주변사람들이 다급히 큰점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고 안주도 두어개 더 시키면서 큰점을 달랬다. 술 한잔 마시고 안주 몇점 배에 넣자 기분이 풀린 큰점은 말을 이어갔다.
"그렇게 삼일째 되던 날, 아불싸, 백세가 넘은 노스님 한분만 남으셨소. 그리고 그 노스님도 불경이 다 떨어졌는데 그때 천마가 말했소. 난 아직 불경 하나 남아있는데 다 외울때까지 노스님이 버티고 있으면 이대로 물러나겠소."
좌중들은 우 하고 탄성을 질렀다. 마두라고 손가락질 받던 천마가 소림의 노스님보다 더 많은 불경을 외우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이다.
"천마가 마지막까지 남겨둔 불경은 수십권이 되는 불경이오. 천마가 그 불경을 다 외워낼 때까지 그 노스님이 버티고 서있었소. 그래서 천마가 소림에 봉문을 명하고 떠날때 이런 말을 남겼소."
"몇년안에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도 이모양 이꼴이면 내 부처님을 대신해 소림을 피의 강으로 만들겠다."
큰점의 으스스한 말에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모두 굳은 얼굴을 한 주점에서 얼굴을 크게 찡그린 천살과 웃음을 참느라 얼굴이 더 크게 찡그려진 고삼과 당무영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 작가의말
제목보고 외전인줄 아셨다면 죄송합니다. 일부러 노린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천살의 무혈지신은 도가의 표현입니다. 남궁천은 그것을 내외합일로 알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는 시대에 용어를 통일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죠.
한편 더 올릴지 아직 미지수입니다. 그래서 미리 새해인사 드리겠습니다. 2018년에 다들 좋은일 많이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크게 바라지 않고 2017년보다는 나은 한해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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