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남민란
천살은 둘째아들에게 고심끝에 천화(千華)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명은 무애(無哀)라고 지었다. 천살의 득남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고천양과 황제가 보내온 금의위의 지휘사인 백무향이 자리하고 있었다. 천살은 황실의 정보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원래 호매령과 공개적으로 혼례를 올리고 단란하게 모여서 살려고 했다. 하지만 하오문의 작업은 예상했던 성과의 반의반도 미치지 못했다. 천살이 하오문을 통해 퍼뜨린 이야기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기존의 자극적인 이야기가 훨씬 사람들의 구미에 맞았던 것이다.
그래도 천살과 하오문의 노력이 헛된것은 아니다. 천마가 좋은일도 좀 했네, 천마가 아무 이유없이 악행을 저지른건 아니네 라는 시선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천마라는 두글자 앞에는 대마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천마신공을 만든자가 천마라고 믿고 있다.
"대형, 화산의 호장문에게서 어떻게 허락을 받아내셨습니까?"
책사 고천양이 갑자기 물어왔다. 천살은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별말을 안 했어. 딸을 내게 주십시오 하니까 그래라 하던데."
"대형, 잠시 말미를 맡겠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면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천살의 허락을 받은 고천양은 경공을 시전해서 천진위에 자리잡은 모용가를 향해 달렸다. 모용가가 원래 자리 잡았던 곳은 훨씬 북쪽인데 명나라 초기에 천진위로 자리를 옮겼다. 모용가에 도착한 고천양은 모용세가의 문을 두드렸다.
"어디에서 온 누구시고 무슨 용무로 찾으셨습니까."
"천양무관의 관주 고천양이오. 모용세가의 가주를 만나러 왔소."
고천양은 천살의 최측근이자 심복으로 알려졌다. 모용세가의 접객총관은 감이 태만하지 못하고 바로 안으로 안내했다. 고천양이 가주전에 도착했을 때는 모용세가의 가주가 이미 자리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천양무관의 관주 고천양입니다. 미리 연통을 넣지 못하고 불쑥 찾아온 점 사과드립니다."
"먼길을 찾아온 손님인데 결례가 어디 있겠소. 그래 고관주는 무슨 일로 이 모용을 찾으신게요?"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모용가주의 얼굴에는 잠깐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모용가주가 입을 열었다.
"나는 아들만 넷인데 몇년전에 처음으로 딸자식을 보게 되었소. 내 딸아이는 이제 여섯살이니 고관주의 의중을 짐작하지 못하겠소."
"저, 모용부설 소저가 가주님의 따님이 아닌가요?"
"내 조카요."
"조카딸을 저에게 주십시오."
모용가주는 고천양 정도면 괜찮은 사위감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천살이 주체 앞에서 모용가에 대해 나쁜말을 한 후 황실은 모용가를 잠재적 반역자로 보고 주시했다. 덕분에 모용가는 모용부설과 모용궁현의 혼사가 서른에 가까운 지금까지 밀렸다. 가문의 핵심이기에 아무하고나 혼인시킬 수 없는데 어느정도 이름값을 가지는 가문들이 모용가와 관계를 맺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모용부설은 우리 모용가의 보물이오. 혼인을 하면 데릴사위로 우리 모용가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데 괜찮으시오?"
모용부설은 무공도 동년배중에서 뛰어나지만 모용세가를 위하는 마음과 결단력이 사내들 못지 않다. 그래서 모용세가는 데릴사위를 맞아 모용부설을 모용가에 남겨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좀 힘들것 같습니다. 대형이 모든 일을 저와 상의해서 결정하기에 제가 곁을 비울 수 없습니다."
천살은 호매령과 아이들에 관한 일들은 고천양과 많이 상의한다.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기에 고천양을 통해 확신을 얻으려는 것이다. 고천양이 어떤 대책을 생각해내든 천살은 그것을 실현시킬 힘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천양의 말대로 해서 낭패를 본적이 없다. 고천양은 자신의 대책들이 훌륭한 덕분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고천양의 말이 모용가주의 마음을 흔들었다. 강호에 퍼진 소문의 반만 믿어도 황실을 포함해 천살과 대항할만한 세력이 천하에 존재하지 않는다. 몇년전부터 거대문파들과 명문세가들에게 백안시 당하고 있는데 이 기회에 서른이 다 되어가는 모용부설의 혼인도 해결하고 모용가가 고립되어가는 현 상태도 해결할 생각이다.
"좋소. 고관장의 사내다움에 이 모용이 두손을 들었소. 정식으로 청혼첩(請婚帖)을 보내오면 가장 빠른 황도길일로 혼삿날을 잡겠소."
식사를 하고 가라는 만류에도 고천양은 극구 사양하고 다시 경사로 돌아갔다. 천효의 글선생인 우겸의 도움을 받아 청혼첩을 작성해서 천살이 직접 모용가를 방문했다. 본인이 청혼첩을 건네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천살이 갈 수밖에 없었다.
천살의 방문에 모용가는 이번 혼인에 대해 더욱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상의끝에 혼례식은 경사의 천양무관에서 하기로 했는데 혼례날에 황제가 축사를 보내와 모용가의 식솔들을 기쁘게 했다. 혼인을 한 고천양과 모용부설은 모용가가 천양무관 근처에서 구한 장원으로 옮겨가서 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천양무관은 입관을 원하는 수련생들이 급증하여 주변의 건물들을 구입해 무관을 확장했다. 관련 비용은 남궁가와 모용가가 나눠서 부담했다. 모든 복수를 마무리하고 호매령과 아들 둘과 함께 지내는 천살은 세상 모든것을 이룬것 같은 행복에 빠져 시간을 보냈다. 봉문을 선언한 소림에서는 천살이 빨리 찾아와서 재대결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천살은 행복에 겨워 소림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천대인,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이제 세살이 된 천화와 함께 놀아주던 천살은 백무향의 방문에 의관을 정제하고 백무향의 뒤를 따랐다. 천양무관과 천살에게 경사가 있을 때마다 황제는 백무향을 통해 항상 축하를 해줬고 황실에 큰 행사가 있거나 하면 호위를 핑계로 천살을 불렀다. 물론 하는 일에 비해 매우 많은 사례를 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천대협, 내 긴히 부탁할 일이 있어서 불렀소."
황제의 부탁은 이러했다. 운남에서 민란이 일어났는데 무림인이 개입되어 제압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겸과 관련하여 천살의 부탁을 들어준 보답으로 운남의 민란을 평정해 달라는 것이다.
운남의 민란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반란군은 이미 수천의 병력을 보유했다. 거기에 다수의 무림인이 개입해서 군대로 제압할려면 정규군 삼십만 정도가 필요하다. 고원지대이고 길이 잘 닦이지 않은 곳이기에 삼십만이 아니면 단기간에 제압할 수 없다. 문제는 삼십만이나 되는 군대를 움직이면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삼십만의 군대가 이동하며 소모하는 물자는 말할것도 없고 보급에 들어가는 인원도 최소 십만은 필요하다. 길이 잘 닦이고 치안이 좋은 곳이라면 괜찮은데 소규모의 보급부대는 운남의 대부족들의 훌륭한 먹잇감일 뿐이다. 거기에 단기간에 반란을 제압하지 못하면 비용이 훨씬 커진다. 가까운 귀주 사천이 아닌 더 먼 지역에서 식량과 군수물품들을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들 때문에 황제는 천살에게 부탁을 했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은자 수십만냥이 드는 일인데 천살이 해결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홀로 마교의 수만의 무리를 해체시킨 천살이기에 운남의 민란을 손쉽게 해결해 줄 수 있다고 황제는 생각했다.
천살은 그간 얻어먹은 것도 많고 우겸의 일로 빚을 진것도 있기에 황제의 부탁에 흔쾌히 응낙했다. 무림인이 개입된 민란이라고 했으니 핵심세력들만 타격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가는길에 당무영에게도 들려볼 생각이다. 고천양의 혼삿날이 너무 급하게 잡혀 당무영에게 소식을 보냈으나 당무영은 혼삿날을 놓치고 말았다.
그후 당무영의 혼삿날이 천화의 돌잔치와 겹쳐서 축문만 보내고 직접 참가하지 못했다. 가끔 서신만 주고 받기에 이번 기회에 얼굴도 한번 보려는 것이다. 고천양은 모용부설이 임신했기에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천살 홀로 출발하려 했다.
그때 호매령이 화산에 가서 한동안 지내고 싶다며 함께 움직이자고 청했다. 아이를 위해 경사에서의 생활을 선택했지만 오랫동안 타지생활을 하니 향수(鄕愁)가 생긴 것이다. 천효는 공부를 계속해야 하기에 고천양에게 맡기고 천살은 호매령과 천화와 함께 화산으로 향했다.
천화는 세살밖에 안되지만 여도의 피로를 쉽게 이겨냈다. 삼년간 많은 것을 알아낸 천살의 돌봄 덕분이었다. 호매령 역시 천살 덕분에 여행의 피로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마차와 배를 번갈아 타면서 화산에 도착하니 호군천과 조자운 그리고 조유천이 셋을 반갑게 맞이했다.
화산에서 하룻밤 지낸 뒤 천살은 호매령의 몸에 기를 심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크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일러준 후 사천의 당문을 향해 출발했다. 경사의 고천양에게도 똑같은 조치를 했다. 고함을 지르면 천살은 일원으로 순식간에 이들의 곁으로 이동할 수 있다.
당문에 도착하니 당무영이 반갑게 맞이했다. 취하지도 않는 술을 밤새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 당무영은 현재 당문의 소가주가 되어 있었다. 방계 출신으로 처음 당문의 소가주가 된 것이다. 모든게 천형의 덕이라는 말에 천살은 겸양을 표했다.
"당형은 겸양할 필요가 없소. 다른 자에게 당형과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똑같이 잡지 못했을 것이오."
운남의 일이 끝나 경사로 돌아갈 때 다시 들리겠다고 말한 뒤 천살은 운남을 향해 움직였다. 운남의 목왕부에 도착해서 이름을 대자 정중하게 안으로 안내했다. 서평후(西平侯)이자 운남왕(云南王)으로 불리우는 목성(沐晟)이 천살을 반갑게 맞이했다.
공식적으로 후의 호칭을 사용하고 죽으면 공으로 추대받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왕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운남왕이라 불리우는 목씨 일가이다. 처음에 황제가 군대를 보내주지 않고 천살이라는 무인을 보낸다고 했을 때 목성은 황실이 다른 의도를 가진게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수하를 통해 천살의 진면목을 확인한 뒤 왕부의 모든 사람들에게 천살에게 일말의 실수도 하지 말라고 엄명했다. 편벽한 운남지역에서 살다보니 왕부의 사람들은 다소 오만한 부분이 있다. 소림이 지금도 천살의 눈치를 보며 봉문을 풀지 못하고 있다는 정보에 목성은 천살을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현재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수뇌는 혈선이라고 자처하는 자요. 이자는 수백의 제자를 받아서 혈선교라는 사교를 만들어서 혹세무민하고 있소. 중병에 걸리거나 몸이 불편한 자들이 혈선의 혈신공을 익히면 정상적인 사람과 다름없이 행동할 수 있기에 많은 어리석은 자들이 혈선교에 가입하기를 원하고 있소."
"현재 왕부는 이미 각 대부족에 공문을 보냈소. 혈마교(血魔敎)의 교주 혈마(血魔)에게 동조하는 자는 구족을 멸할 것이라고 단단히 경고했소. 그리고 혈마공(血魔功)을 익힌 혈인들이 일정시간동안 피를 접하지 못하면 광인이 된다는 제보도 받았소. 현재 확인중에 있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소."
목성은 천살의 눈치를 한번 살핀 후 말을 이었다.
"우리 목왕부의 분석에 의하면 한때 강호에 유행했던 한선후의 천마신공을 익힌 마인들과 비슷하다는 판단이오. 혈마의 혈마공은 한선후의 천마신공과 똑같거나 비슷한 종류의 마공이라는 판단이오. 천대협은 어찌 생각하는지 알고 싶소."
"나는 천마신공을 익힌 마교의 마인 백명이상을 처단했소. 한선후가 익힌 천마신공에 비하면 조잡하기 그지없었소. 아마 혈마인가 뭔가 하는 자도 한선후가 강호를 어지럽히기 위해 일부러 유출한 천마신공을 익혔을 가능성이 높소. 내 맹세코 혈마공을 익힌 자들을 한명도 놓치지 않겠소."
- 작가의말
명나라에서 일년동안 군사들에게 주는 군향이 600만냥 정도라고 합니다. 군향은 군사들에게 주는 봉급입니다. 30만 정규군을 변방에 보내 반란을 제압하려면 최소 수십만냥의 군비가 필요합니다. 운남 지역은 길도 제대로 닦이지 않아서 더 많은 돈이 들죠. 그리고 운남 출신들은 자신들을 대리라 칭합니다. 외부인들은 운남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정화는 대리라 하고 다른 사람들은 운남이라 부릅니다.
다음화는 천마가 혈마를 조지는 장면입니다. 혈마가 누군지 다들 짐작은 하셨을 겁니다. 예전에 무협 보면 혈마따위가 천마에게 엥기는게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협에서의 지위가 최소 달마아찌랑 삼풍형이랑 동급인 천마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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