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하달
"수하들은 마음에 드는 자들로 뽑았느냐?"
교주의 물음에 천살은 가볍게 대답했다.
"제 부족한 점들을 채워줄 자들이라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네게 임무를 하나 내려주겠다. 먼길을 가지 않아도 되고 간단한 임무이니 너에게 적합한 것 같구나."
천살은 만상무결을 수하들에게 개방했다. 당무영과는 달리 네명은 만상무결을 보물처럼 아꼈다. 특히 무공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는 고씨 형제와 왕쌍말은 셋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상의하며 만상무결의 내용들을 이해하려 했다. 놀라운 점은 머리를 다친 고삼이 무공에 대한 오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연화훈은 고삼의 머리의 혈도가 반쯤 막혀있어 반응이 느린 것이라고 말했다. 천살의 지도하에 간단한 토납법을 익히기 시작한 고삼은 언젠가 충분한 내공으로 머리의 혈도를 타통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런 와중에 불려가서 받은 임무는 간단한 듯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현재 감숙의 번왕은 숙왕(肅王)인 주영이다. 주원장의 열네번째 아들인 주영은 용맹과 지모를 겸비한 자이다. 명화교는 재물을 내주고 주영으로부터 쌀을 받기로 약조하였는데 연왕과 황제의 싸움이 길어지자 주영이 약속을 어기고 쌀을 내어주지 않고 있었다.
교주는 천살에게 숙왕이 약속한 쌀을 받아오라고 명했다. 서로 약조된 부분이니 가서 받아오기만 하면 된다지만 말처럼 쉬운 일일리 없다. 교주는 보통 선우검파나 장우민에게 일을 맡기고 나머지 제자들에게는 임무를 내린적이 없었다. 임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천살이 교주로부터 모종의 임무를 받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이 일은 간단하기 그지 없어서 존주께서 수고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들 만으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왕쌍말은 간단한 일이라며 자신들에게 맡겨달라고 호언장담했다. 연하훈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왕쌍말의 말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들의 계획을 듣고 그럴듯 하다고 생각한 천살은 수하들에게 일처리를 맡기고 본인은 무공수련에 전념했다.
"고일, 자네는 하인이야. 하지만 비천한 출신의 하인이 아니야. 일부러 하인인척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하인역할을 너무 잘할 필요가 없어."
"고삼 너는 호위무사야, 과묵한 호위무사. 절대 입을 열어 말을 해서는 안되고 무슨 일이 있어도 무표정을 유지해. 뒤늦게 반응해서 상대의 의심을 사서는 안된단 말이야."
당무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무사복을 바라보며 자신의 경솔한 결정을 후회했다. 넷이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직접 따라왔다. 그래서 무사복을 입고 고삼과 함께 호위무사역할을 맡게 되었다.
숙왕부는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다. 변방지역이고 항상 전란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태평성세에도 이민족들의 약탈이 잦은 곳이라 살만한 자들은 기회만 되면 이곳을 떠났다. 그래서 숙왕부를 찾는 손님이 드물었다.
그런 숙왕부의 문을 대나무에 복자를 쓴 흰천을 매단 점쟁이 하나가 두드렸다. 문지기는 교육을 잘 받아 상대의 행색이 초라하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기인이사가 넘치는 시기라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가 큰 경을 칠수도 있다.
"어디의 누구시고 숙왕부의 문은 어이하여 두드린 것이오?"
"천하를 제집삼아 돌아다니는 점쟁이오. 내 왕부의 앞을 지나다가 죽통에서 죽첨이 하나 떨어졌는데 쉬이 지나치지 못하고 문을 두드리게 되었소. 숙왕전하를 직접 뵙고 긴한 이야기를 드려야 하겠소."
문지기는 어이가 없어 할말을 잃었다. 지나가던 점쟁이가 문을 두드리고 얼굴 한번 보자고 하면 만나줘야 할 정도로 숙왕이 한가하지 않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지로 누르고 퉁명스런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면 정식으로 배첩을 올리고 허락을 맡으시오. 군사와 관련된 급한 전갈이 아닌 이상 아무나 전하를 알현할 수 있는게 아니오."
"자네 본처가 밖에 있는 첩과 자식의 존재를 알아도 괜찮다면 배첩을 올리지."
문지기는 점쟁이의 소매를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여나 듣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한가득인 모습이다.
"나를 협박해도 소용이 없소. 내가 당신 말을 그대로 옮기면 총관이 허락이나 하겠소?"
점쟁이는 종이 하나 꺼내서 글 몇개 끄적인 후 잘 접어서 문지기에게 주었다.
"이 글을 전하에게 전해주시오. 만약 사사로이 펼쳐보다간 멸문지화를 면치 못할 것이오."
문지기는 창백한 얼굴로 종이를 총관에게 전달했다. 문지기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서 총관도 고심끝에 숙왕에게 전달했다. 종이를 펼쳐서 내용을 확인한 숙왕은 곧 하명했다.
"이 글을 적은 자를 들여라."
종이에는 연자남비(燕子南飛) 일은오미(一銀五米)라고 적혀있었다. 연자남비는 연왕이 남으로 내려가며 황제와 싸우고 있는것을 말하는 것이고 일은오미는 명화교와 쌀을 거래한 가격이다. 숙왕이 암암리에 연왕을 지원한 것을 어찌 알았는지 점쟁이를 다그쳐야 한다.
"숙왕전하를 뵙습니다. 소인은 천하를 떠도는 하찮은 점쟁이인데 오늘 왕부앞을 지나다 죽첨 하나가 떨어졌는데 가길가흉(可吉可凶 - 좋을수도 나쁠수도 있는)이라 비례인줄 알면서도 어쩔수 없이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숙왕의 뒤에 시립해 있던 자의 입술이 가볍게 떨렸다. 숙왕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이다. 호위의 전음을 듣고 상대가 무공고수가 아님을 알자 의심을 조금 덜수 있었다. 마교나 황제가 보낸 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우선 네가 보낸 글에 대한 해명을 하거라."
"사실 저도 뜻은 모릅니다. 전하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을 쳐보니 저 여덟글자가 나왔습니다. 점쟁이라고 모든 점괘를 정확히 풀이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최대한 상세하게 점괘의 의미를 당사자에게 전달하고 정확한 의미는 당사자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숙왕이 생각해보니 그럴듯 했다. 숙왕이 연왕에게 재물을 보낸것을 아는자가 열도 되지 않는다. 전부 믿을만한 자들이다. 그리고 명화교와 거래한 것을 아는 자는 명화교와 숙왕측을 다 합쳐도 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숙왕과 거래한 것이 들통나면 교주인 한선후의 입지도 나빠질게 분명하니 그쪽도 비밀유지에 신경을 썼을 것이다.
"그럼 그 가흉가길의 점괘를 풀이해보아라."
"십사는 십과 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십은 버리고 사를 취하라. 백에 먹구름이 끼면 청에 천둥번개가 내릴 것이니 백의 먹구름을 흩어놓아라. 믿음을 지켜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점괘는 총 육십사괘밖에 없지만 시진과 방위 및 죽첨이 떨어질때의 형태에 따라 무수히 많은 결과가 나옵니다. 점괘는 대길과 대흉, 중길과 중흉, 소길과 소흉, 및 길흉을 동시에 품은 점괘로 나뉩니다."
"이번 점괘를 가흉가길이라 한 것은 화(和)하면 만사가 잘 풀릴것이고 피를 보면 고난이 닥칠 것이다라고 나와있습니다. 전하의 선택에 따라 길흉이 정해집니다."
들을수록 뭔가 그럴듯 하자 숙왕은 은자 열냥을 하사했다. 점쟁이는 은자 두냥을 집어들고 나머지는 사양했다.
"제가 한 일은 은자 두냥어치 입니다. 남은 여덟냥은 전하의 몫입니다.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이 점쟁이가 드릴 조언은 없습니다. 점괘로 세상만사가 모두 점쳐지는 것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점쟁이가 초탈한 모습을 보이자 점점 더 그럴듯해 보였다. 주영은 열네번째 황자이다. 십은 버리고 사를 취하라는 말은 넷째인 연왕을 지지해라는 말로 들렸다. 십황자인 주단은 몇년전에 금단을 복용하고 목숨을 잃었다. 숙왕도 정기적으로 도사들이 만든 단약을 복용했는데 그후로부터 복용을 멈췄다. 만약 점쟁이의 점괘가 정확하다면 단약의 복용을 멈춘것은 잘한 일이다.
백의 먹구름은 아마도 서쪽의 마교나 현재 명나라에 속해있는 여러 이민족들을 뜻하리라. 서쪽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동쪽에 벼락이 친다고 했다. 그 벼락이 연왕을 향하는지 황제를 향하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먹구름을 흩어버리라고 한 것을 보면 연왕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믿음을 지키라는 것은 연왕에 대한 지지를 굳건이 하라는 뜻인것 같았다. 지금처럼 암암리에 재물을 지원하는게 아니라 연왕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행동에 옮기기전에 현재 연왕과 황제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먼저 받아보아야 할 것이다.
숙왕의 부하들이 황제와 연왕의 싸움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고 있을 때 연왕의 밀사가 도착했다. 두명의 호위무사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서생으로 분장한 자와 하인으로 분장한 자는 꾸민 모습이 너무 티가 났다. 서신의 글씨와 인장이 연왕의 것임을 확인한 숙왕은 이들을 밀실에서 접견했다.
하인들도 다 배제했기에 숙왕이 손수 차를 따랐다. 숙왕이 차를 따르자 하인으로 분장한자가 다가와 찻잔을 받아다가 서생으로 분장한 자에게 건넸다. 이들의 어색한 모습에 숙왕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여긴 다른 눈이 없으니 본래 신분을 밝히시오."
"저는 연왕을 모시고 있는 정직한 이라고 합니다. 관직은 없고 연왕전하의 근심을 덜어주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옆에 이 친구도 저랑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고 뒤의 둘은 연왕께서 붙여주신 호위무사입니다."
"나는 연왕을 지지하는 사람이오. 최근에 더 많은 지원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밀사를 보낸 이유를 모르겠군."
"저희도 언질을 받은건 없습니다. 다만 이 서신을 손수 전하라는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정직한은 잘 밀봉된 봉투 하나를 숙왕에게 공손히 건넸다. 뜯어본 흔적이 없는것을 확인한 숙왕은 봉투를 뜯고 안의 서신을 펼쳤다. 여러차례 서신을 주고받으며 익숙해진 연왕의 필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경애하는 십사제 숙왕 영에게
그대가 보내준 마음은 감사히 받았소. 부황께서 가시자 조카가 숙부들을 해하려고 저리 애를 쓰니 이는 다 우리가 부덕한 탓이오. 그저 이 한목숨으로 천하의 평안을 이룰 수 있다면 아깝지 않은데 어린 황제의 곁에서 그 눈을 가리고 귀를 어지럽히는 간신들이 득실거리니 어쩔수 없이 칼을 들어야 했소.
최근 현제에게 살겁이 생길까 걱정되어 밀사를 보냈소. 이 일은 현제만 알고 있기를 바라오. 사실 마교의 교주 한선후와 밀약이 있었소. 나는 한선후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천하가 바로잡히면 한선후에게 일정 지역을 세력권으로 인정해주기로 약조했소.
최근 한선후가 서신을 보내와 현제가 약조를 어기려 하는데 마교의 법도대로 처리해도 되는지 물었소. 그래서 밀사를 통해 서신을 보내오. 한선후는 이미 숙왕부에 자객을 침투시켰다고 말했소. 마지막 경고를 하고 듣지 않으면 피를 볼 것이라 했소.
현제의 믿음(信)에 이 우형이 언젠가는 꼭 보답할 것을 약조하오. 그러니 현제도 지혜롭게 이번 일을 헤쳐나가기 바라오. 밀사로 보낸 둘은 믿을만한 사람이니 밑의 사람들이 의심된다면 이들에게 일을 맡겨도 좋소.
그럼 모두가 평안해지는 그날을 기대하며 이만 글을 마치오.'
- 작가의말
지난 글에 제목이 트랜디하지 않아 조회수와 선작수가 글의 재미에 비해 아쉽다는 댓글이 있었습니다. 저의 제목학원 강사의 능력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로만 봐주시기 바랍니다.
1. 나노(裸露 - 알몸)천마
동자공을 극성으로 익힌 천마가 동자공의 열기를 참지 못하고 항상 알몸으로 다님.(그 열기가 다른 열기라는 설도 있음, 하지만 결국 동자공 때문임.)
2. 천마가 마기를 숨김
마지막에 반로환동한 천마가 마기를 숨기고 화산제자로 들어가 화산을 부흥시킴. 그 전의 내용은 전부 프롤로그행.
3. 레벌업 안하는 천마
제곧내, 레벨업 시스템이 없음.
4. 시골소년의 천마도전기
주인공이 시골출신인건 팩트.
5. 태어나보니 천마
글 첫편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놈이 천마가 될 것을 알고 있음.
6. 업어 키운 천마
본인이 노력한게 별로 없음. 천살마성으로 태어나서 주변 사람들의 여러가지 노력으로 천마가 되어감. 막말로 유씨 삼형제가 패지 않았으면 지금도 화산에서 동자공만 익히고 있었을 거임. 이놈은 그저 천마수저를 물고 태어난 거임.
7. 여러분의 재치를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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