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연주
말을 해봤자 손해라는 것을 깨달은 원각은 입을 다물었다. 천살성이 역사적으로 많은 해악을 끼쳤기 때문에 이들은 천살을 가두어서 해악을 미연이 방지하고자 했다. 아무일이 없을수도 있지만 만에 하나 천살마성이 다른 천살성들만큼의 해악을 끼친다면 겨우 되찾은 한인들의 나라가 사라지고 다시 외세의 억압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정운산의 장법은 노쇠한 육체때문에 제대로 된 위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개방의 절기인 항룡십팔장은 현재 대부분 실전되어 몇개의 초식밖에 남지 않았다. 원래는 자질이 훌륭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무공인데 어느 순간부터 방주만 익힐 수 있는 방주의 권위를 나타내는 무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방주의 무공자질이 항상 최고인 것이 아니고 자질이 훌륭하다고 해도 항룡십팔장과 맞지 않을수도 있다. 그렇게 되어 많은 초식들이 유실되었다. 항룡십팔장은 외공과 내공이 다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무공으로 개방만의 특별한 수련법이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수련법도 일부 유실되어 항룡십팔장을 제대로 익혀낼 수 없다.
항룡십팔장의 구결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만 전달과정에 글자나 문구의 변형이 자주 일어났다. 그래서 정운산도 몇개의 초식밖에 익혀내지 못했는데 몸이 초식을 따르지 못해 그 위력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것이다.
심후한 내공 때문에 정운산을 청했는데 하필 천살이 내가중수법에 강한 횡련일기공을 극성으로 익혔고 자연지경에 이르러 내공이 마르지 않는다. 정운산의 존재는 천살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지만 포위망에 끼어서 다른 자들의 공격을 방해하기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배분때문에 누구도 정운산에게 빠지라고 말을 하지 못했고 정운산 역시 개방의 앞날을 위해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혜절사태의 검법은 매우 특이했다. 검으로 베거나 찌르는 것이 아니라 후려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창법이나 곤법에서나 볼 수 있는 탄(彈)의 수법을 검으로 펼쳐내는 것이다. 생소한 검법이라 가끔 강호에 나오면 큰 위력을 보이지만 그 검법에 익숙해지면 크게 두려울 것도 없는 검법이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천살은 혜절사태의 검법에 적응하여 손쉽게 막아냈다.
해남파의 해남삼십육검은 매우 신기한 검법이다. 일검일검에 음양이 다 있었다. 보통 일검에 음양을 다 실을 바에는 차라리 태극을 이루는 것이 낫다. 태극을 이루면 검법이 더 자연스럽고 방어하기 힘들어지고 음양이 태극을 이루지 않는다면 위력이 훨씬 강하다. 해남파는 후자를 선택한 듯 하다. 경지에 이르면 태극을 이루지 않고 음양을 구분하는게 훨씬 힘든데 경지가 높아보이는 오천의 검에 음양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신기했다.
오천의 일검에는 음양이 실려있어 두명이 동시에 공격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키가 작은 오천이 자신의 키보다 조금 작은 검을 들고 무공을 펼치는 모습은 외견상 우스워 보이지만 검법의 위력만큼은 대단했다. 단순히 무공의 살상력만 따지면 원각보다 낫고 남궁천과 비슷했다.
얼굴로 향하는 원각의 주먹을 검으로 막아내니 오천의 검이 천살의 하체로 향했다. 땅보다 배위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 해남파이기에 하체를 노리는 공격이 많다. 가장 좋은 방법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지만 포위된 천살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검을 급히 휘둘러 오천의 검에 부딪혀갔다.
그 틈을 타서 혜절사태의 검이 천살의 몸을 향해 후려쳐왔다. 벤다기보다는 후려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검이 천살의 몸에 닿는 순간 포원경의 발경법으로 혜절사태의 검을 튕겨냈다. 좋은 검인지 두 충돌하는 힘에도 부러지지 않았지만 강한 떨림으로 혜절사태의 손아귀를 괴롭혔다.
그때 정운산이 항룡십팔장의 비룡재천(飛龍在天)을 사용했다. 비룡재천은 제왕을 뜻하는 말로 건괘(乾卦)의 오효(五爻)에 나오는 해석이다. 초식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맹한 외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초식이다. 노쇠한 육체로 인해 내공으로 외기를 대신해서 강맹함은 부족하지만 적중했을 때의 위력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천살은 몸을 돌리지 않고 반수(反手)로 태악삼청봉을 사용했다. 정운산이 목숨을 걸면 천살에게 공격을 적중시킬 수 있지만 천살에게 피해를 입힐 자신은 없었다. 원래의 비룡재천이라면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지만 지금은 내력에 그 모든 위력을 의지하기에 천살에게는 큰 효과가 없다.
팽월과 언장동은 정운산을 도와 태악삼청봉의 공격을 막아내며 속으로 불만을 쌓아갔다. 일곱명의 공격이 연속으로 들어가면서 천살의 체력과 내공을 소모시켜 파탄을 드러내게 해야 하는데 정운산이 자꾸 공격을 한답시고 그 흐름을 끊어버린다. 셋이 방어를 하는 사이 남궁천의 공격이 천살을 향했다.
하지만 태악삼청봉을 방어한 셋이 잠깐의 휴식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공격이 흐름이 또 한번 끊겼다. 남궁천은 패에 예와 영과 급을 섞어서 홀로 천살에게 연속공격을 했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보여주는 빠른 찌르기가 반박자씩 빠르게 들어오자 천살도 응익검의 초식을 사용했다.
매화만천(梅花滿天)은 매화검의 초식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초식이다. 매화검의 남지독화에서 환을 줄이고 쾌를 강화한 것이다. 쾌와 변 위주의 매화만천으로 남궁천의 빠른 공격에 맞불을 놓았다. 서로가 서로를 크게 경계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공격 하나 먹이는 것보다 자신에게 오는 공격 하나 막아내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기에 둘의 검은 허공에 수많은 검화를 남기고 거두어졌다.
남궁천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천살의 등뒤에 자리한 셋이 한숨을 돌렸다. 강한 내력과 외기가 실린 천살의 태악삼청봉을 막아내면 잠시 운기가 끊긴다. 한꺼번에 강한 힘을 억지로 끌어올렸기에 잠깐 힘의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천살이 연속으로 공격하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기에 남궁천이 무리를 해서 천살을 잡아둔 것이다.
'처참하게 패배하더라도 이자식과 일대일 대결을 하고 싶구나.'
남궁천에게 있어 오천과 원각을 제외한 나머지 넷은 짐과 다름이 없다. 혜절사태는 그나마 흐름을 끊지 않지만 정운산은 여러번 흐름을 끊어먹었고 언장동은 공격이 느려서 흐름을 타지 못한다. 그나마 팽월이 둘을 잘 보조해서 아직까지 그럭저럭 연수를 해나가고 있다.
남궁천이 뒤로 반걸음 물러서자 원각의 금강대력권이 천살의 명치를 향했다. 거기에 맞춰 팽월이 오호단문도의 일소풍생(一嘯風生)으로 천살의 등을 공격했다. 오호단문도의 절초중 하나로 위력보다는 빠르기에 집중한 베기 초식이다.
천살은 비익쌍비의 초식으로 둘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냈다. 태악삼청봉에서 영감을 얻은 비익쌍비는 한번에 두개의 공격을 하는 초식이다. 천살은 이미 한번의 찌르기로 다섯개의 공격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비익쌍비를 고집한 것은 비익쌍비가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짝을 이루어 부부가 되는 것을 묘사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여전히 비익쌍비지만 원각을 향해 두개의 공격, 뒤의 팽월을 향해 세개의 공격을 행했다. 오천이 원각을 도와 하나의 공격을 분담했고 정운산과 언장동이 팽월과 함께 세개의 공격을 막아냈다. 천살의 후속공격을 막기 위해 혜절이 다시 천살을 향해 탄검을 시도했다.
천살은 여전히 포원경으로 탄검을 튕겨낼 것처럼 하다가 탄검이 몸에 닿는 순간 흡력을 발생시켰다. 무당파의 이유극강의 무리에 따른 대응인데 적당한 흡력으로 탄검의 기세를 다 죽여버린 후 다시 포원경으로 검을 튕겨냈다. 계속 해오던 대응이 아니라서 준비가 부족했던 혜절은 그만 손에서 검을 놓치고 말았다.
남궁천은 패에 맹과 격을 섞어 천살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방금전 무리를 했기 때문에 조금 쉬어야 한다. 물론 조금 무리를 했다고 해서 당장 무공의 위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천살을 생포하려면 천살만 지치게 하고 자신들은 약해지지 말아야 한다. 천살을 약하게 하면서 자신들도 지쳐버리면 아무 의미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천살을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천살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쩔쩔매고 있다. 목숨을 노리는 살초를 자제하고 있다고 해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이미 천살을 바닥에 눌러놓고 포승줄로 꽁꽁 포박한 뒤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을 데우고 있어야 한다.
천살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응비만리로 남궁천에게 강한 공격을 했다. 응비만리는 검을 뻗은 후 회수하지 않고 어깨와 허리 및 다리힘으로 공격을 계속하는 무식한 공격초식이다. 포원경의 촌경의 무리를 섞어서 만든 이 초식은 작은 동작에도 큰 위력을 보이기 때문에 한번 상대해본 적이 있는 남궁천은 경시하지 못했다.
둘의 검이 연속으로 부딪히며 강한 소리를 냈다. 원래 고수들의 대결은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잘 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궁천과 천살은 무식하게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하고 있다. 다만 둘의 경지가 대단하기에 무식해 보이지 않았다.
혜절사태가 검을 다시 주워들고 돌아왔을 때 남궁천이 호흡을 고르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 자리를 원각이나 오천이 대체해야 하는데 원래는 오천의 차례이다. 하지만 오천은 원각을 도와 천살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자신의 차례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곱의 연수는 한순간 지속성을 잃어버렸다.
기회가 생기자 천살은 성라운포를 칠성연주로 펼쳤다. 일곱개의 성라운포가 일곱명을 향해 펼쳐졌다. 자신의 앞에 펼쳐진 별의 바다와 그 별들이 품은 흉험한 기세에 일곱은 자신이 가진 진신절기들을 펼쳐냈다.
정운산은 오른손으로 항룡유회(亢龍有悔)를 펼치고 왼손으로 신룡파미(神龍擺尾)를 펼쳤다. 젊은 시절 무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나 가능했던 기예이다. 노쇠한 육체로는 불가능하지만 목숨이 위험하자 억지로 펼쳐냈다.
팽월은 오호단문도의 최후 절초인 복상승사(伏象勝獅)를 펼쳤다. 엎드린 코끼리가 사자보다 낫다는 뜻으로 웅크려서 모은 힘을 일격에 터뜨리는 초식이다. 공격적인 초식이지만 위급한 상황이 되니 수비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언장동은 천암경수(千岩競秀)의 절초를 꺼내들었다. 천개의 바위가 빼어남을 다툰다는 의미에 부합되게 언장동의 주먹은 수십개 수백개로 늘어났다. 수많은 권기가 실제 주먹처럼 앞으로 내질러지며 천살의 공격을 방어했다.
혜절사태의 죽영광풍(竹迎狂風)은 검초가 아닌 신법이다. 상대의 공격 초식에 반응해서 움직이는 회피법으로 사진군이 사용했던 궁유극미와 비슷한 초식이다. 성라운포의 초식에 실린 거대한 힘에 대항할 엄두가 나지 않은 혜절사태는 회피초식으로 피하려 했다.
오천은 해남삼십육검의 충풍파랑(衝風破浪)을 사용했다. 바람에 맞서고 파도를 깨뜨린다는 의미의 이 초식은 상대의 공격에 힘으로 맞서는 양과 상대의 힘을 흐트러뜨리는 음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공수를 겸비한 최강의 초식이다.
원각은 공명원통(空明圓通)의 수법을 사용했다. 전신의 혈도를 열고 몸을 비운 후 자신을 잊어버렸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 자신에게 향하는 힘을 전부 흘러버리려 했다.
남궁천은 절정검으로 향하는 실마리를 얻어냈다. 덕분에 더 많은 검의를 섞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까지 일곱개의 검의를 섞은적이 없다. 천살은 성라운포를 사용할 때 남궁천에게 사용한 성라운포에 가장 많은 힘을 쏟았다. 의식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무공이 가장 강하고 최근 깨달음으로 경지도 원각을 초월한 남궁천은 자리한 일곱중에서 성라운포의 위력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사람이다. 생사의 관두라는 생각에 집중력이 전에 없이 강해졌고 처음으로 일곱개의 검의를 섞어서 절정검을 펼쳐냈다.
일곱개의 성라운포가 휩쓸고 지나간 공터는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난잡하고 어수선했다. 거친 숨소리만 귀따갑게 들리는 중 천살의 검이 검집으로 들어가는 챙 소리가 유난히 일곱의 귀에 거슬렸다.
- 작가의말
칠성연주는 초식의 이름이기도 하고 무림맹의 일곱명이 연수를 했음을 나타내기도 하며 천살이 한꺼번에 일곱 별을 떨군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타삼피의 소제목입니다.
당분간 외전을 접겠습니다. 글이 끝나는 대로 외전을 계속하겠습니다. 외전이 추천수가 적고 조회수도 적더군요. 핸드폰으로 글 보시는 분들이 외전 때문에 흐름이 끊길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절대 외전에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본문과 비슷하게 외전을 끝내는데 집착해서 글의 퀄리티를 떨어뜨릴까 걱정되어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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