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금수저편
김선달은 조선을 떠나는 배에 서서 조선의 풍광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려고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김선달은 하루 시장에 갔는데 키가 허리춤까지 오는 수탉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놈 이거 닭이 맞나' 라고 감탄을 했는데 닭파는 장수가 봉황이라며 동전 이십문을 요구해왔다. 김선달은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전 이십문으로 봉황을 샀다.
동전 이십문을 들고 희희낙낙하는 닭장수를 뒤로 하고 김선달은 곧장 왕궁으로 향했다. 문지기에게 봉황을 구해서 왕에게 바치겠다고 바득바득 우겼다. 봉황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동한 왕은 김선달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김선달이 가져온 커다란 수탉을 보며 왕과 대신들은 김선달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러자 왕에게 바치기 위해 시장에서 동전 백문을 주고 산 봉황이라며 우겼다. 대노한 왕은 시장의 닭장수를 잡아다가 볼기를 친 다음 닭을 판 돈 백문을 김선달에게 돌려주라고 명했다.
그리하여 봉이 김선달은 유명인이 되었다. 유명인이 되면 사칭하는 자가 많아 사인(私印 - 개인을 나타내는 도장)을 만들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본인이 진짜임을 확인시켜줘야 한다. 길거리에서 사인을 해주는 김선달을 본 시골에서 올라온 졸부들이 호기심에 김선달에게 접근해왔다.
"나는 김선달이라 하고 저기 저 대동강의 주인이오. 저 사람들은 나한테 돈을 내고 그 증명으로 사인을 받아가는 것이오. 사인이 없으면 대동강물을 긷지 못한다오."
하루에 대동강의 물을 사용하는 자가 수십만이다. 한명에게서 동전 한닢만 받아도 어마어마한 돈인 것이다. 졸부들은 김선달에게 제발 대동강을 팔아달라고 사정했다. 김선달은 못이기는 척 하다가 계약서를 쓰고 대동강물을 팔아버렸다.
하지만 대동강에서 물을 긷는 자들이 돈을 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자 졸부들은 김선달을 찾아와 따졌다. 김선달은 계약서를 꺼내들고 큰소리쳤다.
"이보시오, 당신들은 어제 대동강이 아닌 대동강물을 사갔소. 당신들이 어제 산 물은 이미 바다로 흘러갔고 지금 대동강물은 새물이오."
졸부들은 눈물을 머금고 더 큰 돈을 내어 대동강을 사버렸다. 김선달도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이제와서 사기라고 하며 돈을 다 돌려줄수는 없었다. 그래서 야음을 타 도망쳐서 명나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것이다.
명나라에 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김선달과 그 형제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데 없었다. 무거운 황금을 등에 메고 안 무거운척 시시각각 연기를 해야 했다. 겨우 북평에 자리를 잡은 김선달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북평제일갑부의 외동딸과 혼인을 하였다.
그후 금선달로 이름이 바뀐 김선달은 세별(稅別)표국, 세별전장, 세별방앗간 등을 세워 가공업, 금융업, 유통업을 잠식해가기 시작했다. 세별은 세금은 별도라는 뜻으로 국가에서 부여한 세금을 소비자들에게 부담시키겠다는 금선달의 경영이념이 들어가 있었다.
돈이 돈을 벌자 금선달은 산동의 교주반도에 반도체(半島體) 공장을 세워 체술에 능한 무인들을 양성했다. 원래는 아무도 없는 섬에 도체공장을 만들어 무공수련에 전념하게 하려 했지만 적당한 섬이 없어 반도체로 선회하였다.
그러다 명황실의 내부쟁투가 시작되자 금선달은 연왕 주체에게 군자금을 대어주었다. 결국 주체가 황제가 되어 금선달의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세별표국, 세별전장, 세별방앗간, 세별반도체, 세별생명(生銘 - 산것처럼 새기다, 인쇄공장), 세별보험(寶驗 - 보물을 감정해주는 전당포) 등이 전국에서 수위를 다투었고 금선달을 세별연합회의 회장으로 추대하였다.
사업에서의 승승장구뿐 아니라 금선달은 두꺼비같은 아들도 한명 얻었다. 생신팔자를 살펴보니 유독 수의 기운이 부족하자 아들에게 수저(水儲 - 물을 저장)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금수저가 무럭무럭 자라 여덟살이 되자 금선달은 공부를 가르칠 선생을 물색했다. 그때 수하중 한명이 최고의 선생을 추천해주니 이름이 과외(過外)이고 호는 불법(佛法)이었다. 과씨가문의 유명한 선비인 과거(過居)의 유일한 아들이다. 과거의 호는 합격(合擊)이다.
불법 과외선생에게서 개인지도를 받은 금수저의 문장력은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그리하여 열살 되던해에 과거시험을 보았는데 시험관들의 주머니를 두둑이 불려준 관계로 장원을 하게 되었다. 그해 방안은 딱 한글자가 틀린 사이비라는 자였다.
열살에 임관하여 지방현령이 된 금수저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면제시키고 본인의 돈으로 세금을 바쳤다. 그리고 명절때마다 백성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니 삼년간 한건의 범죄도 발생하지 않고 칭송만 자자했다.
그후 금수저는 승승장구하며 주체가 황제가 되자 조정으로 불려가서 정삼품의 관리가 되었다. 주체의 신임이 대단하여 북원을 상대로 한 북벌에도 함께하게 되었다. 주체의 부대는 연전연승을 하며 점점 교만해졌다. 그러다 적의 유인에 걸려 주체의 본대를 버리고 도망가는 적들을 쫓아 멀리 나가게 되었다.
그때 매복해있던 북원의 군대가 주체가 포함되어 있는 본대를 포위했다. 주체는 갑자기 나타난 북원군을 확인하고 깜짝놀랐다.
"저자들이 갑자기 땅을 뚫고 나타는 것은 동영의 토둔술(土遁術)인가?"
자세히 살피던 금수저가 대답했다.
"동영의 하찮은 눈속임이 아닙니다. 분명 조선의 저구신공의 벌오우(閥烏雨 - 가로막는 검은 비, 성격 급한분들은 빨리 읽어 버로우라고 읽습니다) 입니다."
"조선에 저런 대단한 신공이 있다니, 조선과는 사이좋게 지내야겠다. 그나저나 지원군이 오기까지 버틸 수 있겠는지 모르겠구나."
"폐하, 이 금수저 그저 글만 읽은 서생나부랭이가 아닙니다. 저희 가전 무공으로 악적들이 폐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금수저는 어려서부터 영약을 먹어서 키운 방대한 내공을 끌어올렸다. 한때는 소림의 대환단의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을 할 정도로 질리게 먹었다. 그 덕분에 내공은 천하제일을 자랑하는 금수저이다.
"갑질신공(匣窒神功)!"
주체는 꼭 입으로 외쳐야 하나 생각했지만 금수저의 갑질신공이 가져온 결과에 놀라서 왜 무공명을 입으로 외치는지 묻는것을 잊어버렸다. 북원의 군사들은 한명한명이 갑(匣)에 갇힌 사람처럼 움직이지 못했고 물에 빠져 질식(窒)해 죽을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제 갑잘신공은 한명이 오든 백명이 오든 천명이 오든 똑같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절세신공입니다.지금 폐하를 포휘한 수만의 군사들은 힘을 합쳐 대항하는 것이 아닌 한명한명이 전력을 다한 저를 상대하고 있습니다."
금수저의 말은 갑질신공이 몇명을 상대하든 그 위력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체는 금수저의 능력에 반해서 그 자리에서 금수저를 천상천하제일갑질충의공으로 봉했다. 공(公)이라면 왕보다 한단계만 낮은 직위이다.
금수저의 덕분에 위험을 제거한 주체는 북벌에 성공하고 돌아간 후 금수저를 은밀히 불렀다.
"지금 명황실의 주적은 북원도 아니고 마교도 아닌 이자다. 이름에 천축어가 많이 들어가 있어서 한문으로 표현하기 힘들구나."
금수저가 종이를 받아서 읽어보았다. 천축어들도 모두 통달한 덕분에 읽는데 거침이 없었다.
"레벨업하는 SSS급 환생천마가 기억을 안숨김? 이자는 이름만 봐도 흉포하고 막강해 보이는군요."
"황당하여 믿음이 안가지만 본인이 수백년뒤에 창안한 천마신공이라는 무공을 세살때 대성했다고 한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독자 제현들이 이구동성으로 재밌다 하니 그저 그런가보다 할수밖에."
"천마신공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지만 저의 갑질신공앞에서는 아무것도 못할 것입니다. 그자의 재산이 저보다 더 많다고 상상할 수가 없군요."
호언장담을 한 금수저는 천마를 찾아가 비무를 요청했다. 비무가 시작되기 무섭게 금수저는 외쳤다.
"갑질신공!"
자신의 방대한 내공이 천마를 에워싸는 것을 확인했지만 금수저는 방심하지 않았다. 원래 무공명만 외치지만 이번에는 신공의 구결까지 외웠다.
"우리집 변기는 황금변기, 우리집 마차는 백은마차, 우리집 강아지는 순혈종, 우리집 위치는 중심가."
천마는 씩 웃더니 손을 한번 휘저었다. 그러자 금수저의 갑질신공이 파해당했다. 금수저는 자리에 주저앉아 억울함을 담아 외쳤다.
"왜 내 갑질신공이 이렇게 쉽게 패배한 것이냐?"
"이 소설의 결말에서 나는 지구를 통일하고 통일왕이 된다. 천하가 내것인데 네 갑질신공이 먹힐 것 같으냐. 내 역갑질신공이 어떠하냐?"
"왜 통일황제가 아닌 통일왕이냐?"
"황제는 왕들보다 존귀함을 나타내려고 만든 호칭이다. 왕이 나 하나인데 굳이 황제라 칭할 필요가 있겠느냐?"
잠시 숨을 고르던 천마는 갑자기 자신의 왼손목을 잡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아, 내 왼손에 봉인된 흑염룡이 날뛰는구나. 목숨을 보전하고 싶거든 어서 자리를 피하거라. 흑염룡의 봉인이 풀리면 이 세상의 반이 불타서 사라질 것이다."
천마의 희생정신에 감동한 금수저는 갑질신공으로 흑염룡의 봉인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러자 천마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금수저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려는데 천마가 입을 열었다.
"오른손에 백염룡, 오른발에 홍염룡, 왼발에 청염룡, 그리고 말하기 거시기한 곳에 묵염대룡(大龍)이 봉인되어 있다. 마저 도와주려무나."
"그곳에 묵염대룡을 봉인하고 있으면 불편하지 않은가요?"
"동자공을 익힌 몸이라 괜찮다."
금수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빌었다. 천마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다 어디 있느냐. 와서 천마제자록에 새제자의 이름을 올리거라."
"새로 받은 육마입니까?"
금수저는 육마라는 소리에 발끈했다.
"나는 마가 아니니 그 쓸데없는 마자는 빼주시오."
그러자 사이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여 천마제자록의 여섯번째 줄에 여섯번째 제자 금수저의 이름이 적혔다.
'육(六)갑질(匣窒) 금수저'
- 작가의말
천상천하제일 갑질충 의공, 한문은 띄어쓰기가 없어서 의사전달이 힘들때가 있습니다. 천상천하 제일갑질 충의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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