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일심
교주의 수하들은 매우 유능했다. 교주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고 소교주인 천살도 자취를 감추었다. 사도에 난리가 날 법도 하고 장로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있을법도 한데 천살의 호위대에 지원해서 석달이상 버틴 자들을 많이 찾아왔다. 특히 근래에 불구가 되어 어쩔수 없이 탈퇴했던 자들도 여럿 데려왔다.
"내가 최근 천신께서 새로 내린 천신공을 익혔다. 신화공은 천신께서 다시 거두어가셨다. 신화공은 교주 한사람만 강하게 만드는 무공이지만 천신공은 교도 모두를 강하게 만드는 신공이다."
그중에는 교주의 천신공을 버틴게 아니라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도 생겼다. 교주는 그들을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천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일부 소문을 알고 자원한 자들 중 천신공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있다. 소교주의 호위대의 이름이 성화료원이라고 들었다. 너희들이 강해져서 성화가 료원(燎原 - 중원을 불태우다)하기를 바란다."
화산에서의 전투를 전해들은 교주는 천살이 항상 살아남는 이유가 천살마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살마기를 빼앗아서 정복한 후 그 천살마기로 긴 수련이 필요없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부대를 만들려고 했다. 그것을 위해 수하들이 돈을 주고 사오거나 납치하거나 속여서 유인하는 등 많은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긁어모았다.
괴령이 전해준 운기법을 여러번 시전해주면 그 다음부터 천살마기가 알아서 그 경로로 움직이며 기운을 불려나갈 것이다. 그러면 또 하나의 천살이 생긴다. 천살의 충성심을 믿을 수 없어 포기한 교주이기에 새로운 천살이 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의 충성심부터 고양시키려 하고 있다.
교주의 연설에 살아남은 명화교도들은 감동의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무공을 못 익혔거나 평범한 자들임에도 소교주의 호위대에 지원하고 석달이상 버틸 정도로 신앙심과 충성심이 투철한 자들이다. 하늘같은 교주가 눈앞에서 직접 천신의 선택을 받았다고 말해주니 버텨낼 자가 하나도 없었다.
며칠의 시간이 더 지나자 두명만 성공했다. 남은 자들은 그 과정을 버티지 못했지만 웃으면서 죽어갔다. 성공한 두명은 교주의 도움이 없이도 상시 운기가 되면서 훨씬 강한 힘과 빠른 속도 그리고 신속한 반응능력을 보여주었다.
다만 무공을 가르쳐도 전투가 너무 본능적이라 소용이 없었다. 둘이 연수를 하게 하면 서로 방해가 될 때가 많아 오히려 홀로 싸울 때보다 못하다. 그래도 서로 공격을 하는 경우는 없기에 교주의 마음에 비교적 드는 결과이다.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자들이 십년이상 무공수련을 한 정예무사보다 훨씬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교주는 수하들에게 뒷처리를 명하고 사도로 돌아갔다. 한화령은 근처의 장원에 남아 아이를 출산한 후에 사도로 돌아오도록 명했다. 모든 신경을 강한 무인을 만드는 계획에 집중하고 싶기에 한화령의 회임때문에 장로들이 이런저런 수작을 부려오는 것을 상대할 생각이 없다.
두명의 성공한 무인도 이곳에 남겼다. 믿을만한 수하들을 시켜 열두시진 관찰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사소한 것이라도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꼼꼼히 적어두라고 명했다. 장현성은 교주의 뒤를 따라 사도로 돌아가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무림맹은 물론 형산파에서도 크게 대접을 못 받던 자신이 명화교 교주의 바로 뒤에 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너를 믿는다. 딸아이가 아니더라도 너와 길게 가고 싶다. 그러니 장장로와 대화할 때 말을 잘 가려서 해라."
장현성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교주는 장현성의 반응을 볼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배가 사도에 도착하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중나왔다. 교주가 오래 자리를 비워 막힌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어서 마음이 급한 장로들이 많이 보였다.
교주가 회의에 들어가서 장로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장현성은 교주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천살의 수하인 연화훈에게 교주의 명이라며 횡련일기공의 수련기관을 만드는 설계도를 그려내라고 명했다. 그리고 고삼과 스물여덟명의 호위들에게 이튿날 오전에 교주의 방문이 있을테니 한명도 빠짐없이 대기하고 있으라 전했다.
장로들이 여러가지 문제들로 괴롭혔지만 교주는 회의내내 여유가 있었다. 심지어 장로들의 괴롭힘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사장로는 커다란 불안감을 느꼈다.
최근 얻은 정보에 의하면 교주가 밖에서 키우는 아이는 괴질을 앓고 있어 오래살지 못한다고 한다. 밖에서 키운것도 습한 곳에서 살기 힘든 괴질이라서 일부러 마르고 건조한 환경에서 키운 것이라 했다. 혹시 눈속임용 정보가 아닌지 이중삼중으로 확인했지만 정보의 진실성만 재삼 확인시켜 주었을 뿐이다.
그리고 천살이 사천으로 가서 서무림맹의 창건을 추진하였고 불가침협약을 맺어왔다. 동맹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불가침협약만 해도 대단한 성과이다. 그런 천살이 사도로 돌아오지 않고 교주의 비밀임무를 수행중이라고 한다. 교주가 등뒤에 얼마나 날카로운 칼을 준비하고 있는지 사장로는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이대로라면 교주를 제치더라도 천살을 넘기 힘들다. 사장로는 개인적으로 천살이 참 미웠다. 이 멍청한 자식은 자신이 잘하면 잘할수록 교주의 방패가 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교주자리를 노리는 모든 세력이 교주를 적대하기에 우선 천살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우복명은 교주의 기색을 살피지 않았다. 어차피 교주의 표정은 꾸며낸 것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선우복명은 현장로를 살폈다. 그리고 뭔가 알지 못하는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감지했다.
평소에 막말을 하기 좋아하는 현장로가 회의내내 입을 한번도 열지 않았다. 교주에게 불리한 말들이 오가도 한마디도 참견하지 않았다. 분명 누설하면 안되는 일을 알고 있기에 교주로부터 함구령을 받았을 것이다. 선우복명은 속으로 주판을 튕겼다. 천살과의 의리를 계속 지키는 것이 좋은지 이번 기회에 교주에게 들러붙을지 말이다.
하지만 가진 정보가 부족하여 둘다 결정하기 힘들다. 교주에게 붙으려면 수하의 세력들을 설득할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주의 심계로 볼 때 그러한 정보를 대가 없이 자신에게 선뜻 건넬것 같지 않다. 천살과의 의리를 지키는 것도 마찬가지다. 새로 규합한 세력들에게 천살과의 의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대야 한다. 심지어 사도무천의 기존 세력중 일부도 이번 기회에 떨어져나갈 수 있다.
선우복명과 사장로가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살필 때 교주는 흐뭇한 마음으로 회의를 지켜보았다. 항상 이 소용돌이에 몸을 담그고 함께 휘저었는데 밖에서 바라보니 참으로 재미가 있었다. 예전에는 왜 이런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는지 후회되었다.
자신의 성격이 근래에 많이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교주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절대라고 할 수 있는 무력이 생기니 자신감이 붙어서 여유로워진 것이라 생각했다. 문득 괴령에게 성물을 보여준 것이 생각나 속으로 다짐했다.
'기회가 되면 성물의 위치를 한번 옮겨야겠군.'
성물은 무작정 불의 기운을 흡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물로 불리지 못했을 것이다. 성물은 우선 한곳에서 자신의 기운을 뿌린다. 그리고 그 기운들을 통해 주변의 기운들을 동화시키고 거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기운을 거둔다. 만약 성물이 기운을 내줄 생각이 없다면 북명신공을 아무리 사용해도 기운 한점 뽑아낼 수 없다.
성물의 단점이라면 불의 기운이 부족한 곳에 가면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기운을 뿌리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교주가 성물을 사도에 숨겨두지 못하는 이유이다. 도망올 때 본거지의 위치를 정한것이 사씨 가문이니 아마 사씨 가문에서 미리 성물의 정보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에는 성물을 조금 더 중원에 가깝게 두고 아들에게 북명신공을 익히게 해야겠다.'
교주가 밖에서 키우는 아들은 습한 곳에 가면 심하게 기침을 하는 괴질을 앓고 있다. 그래서 성물을 숨겨둔 근처에서 비밀리에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성물과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기에 북명신공을 익히고 성물의 신화공 기운을 뽑아내기에 적합하다. 원래는 신화공을 직접 익히게 하려 했는데 초화규가 신화공의 수련도를 들고 도망가는 바람에 길이 막혀버렸다.
"최근에 천신의 계시가 있었소."
교주가 근엄한 얼굴로 말을 꺼내자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교주가 천신을 들먹인다는 것은 진짜 천신의 계시가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무조건 이렇게 할테니 막아서려면 목숨을 각오해라는 협박과 마찬가지다. 장로들은 모두 숨죽이고 교주의 말을 기다렸다.
"횡련일기공을 모든 남교도들에게 개방하고 수련시설을 제공하겠소. 횡련일기공을 익혀내는 자들은 소교주의 호위대인 성화료원의 예비부대에 편입될 것이오. 예비부대에서 수련성과가 좋은 자들은 수시로 성화료원의 정식대원이 될 수 있소."
"그리고 예비부대는 수련시간만 엄수하면 매월 은자 반냥의 향(餉 - 봉급)을 내릴 것이오. 정식부대원들이 항시 대기하며 한달에 한냥씩 받으니 나쁘지 않은 대우요."
장로들은 교주가 천신을 운운하며 입을 열자 긴장해 있다가 별것 아닌 일을 언급하자 긴장이 풀렸다. 하지만 사장로를 비롯해 몇몇은 더욱 큰 긴장감에 휩싸였다. 교주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자 사장로는 돌아가서 가문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자들을 닦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선우복명은 곁눈질로 현장로가 웃음을 억지로 참는 모습을 보며 더 거대한 무언가가 뒤에 숨어있음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사도무천의 세력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정보쪽으로는 매우 부족하다. 그때 선우복명의 머리를 언뜻 스치는 자가 있었다.
'비천신룡이라고 했던가, 장원산이라는 자와 친하게 지내야겠구나.'
천살은 괴령이 자신의 몸에 손을 얹더니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침들이 다 뽑혔지만 천살마기 때문에 단전안의 신화공이 움직이지 않았기에 운기가 곧바로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주요혈도들이 오랫동안 제압당해 있었기에 횡련일기공의 기운이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횡련일기공은 대단한 신공이 아니지만 천살이 극성으로 익혔기에 알아서 움직일 수 있다. 다만 판단력이 부족하기에 불사공이나 다른 신공들처럼 알아서 정확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덕분에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천살의 아혈이 풀렸다.
"야 이 개 잡놈아!"
오십여일간 참아왔던 욕설이 뿜어져 나왔다. 감정이 움직이며 몸속의 기운들도 함께 움직여서 동굴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소리에 실린 공력이 어찌 강했는지 굳은채 죽어있던 괴령의 몸이 뒤로 자빠졌다.
횡련일기공이 더욱 활발히 움직이며 기운을 끌어모았다. 단전의 신화공이 다른 기운의 침입을 철저히 막고 있기에 천살의 몸은 현재 하단전은 신화공, 중단전은 천살마기, 체내혈도들에는 혼원동자공의 기운이 모여 있었다.
만약 교주가 천살마기만 노리지 않고 천살의 전신혈도의 내공들까지 노렸으면 공력이 많이 늘었을 것이다. 천살의 단전의 기운은 딱 천살의 경지와 나이에 부합할만한 양의 내공이었다. 높은 경지 덕분에 동년배들보다는 많지만 수련시간이 부족해서 절대양은 경지에 비해 미흡한 상태이다.
그 정도 양도 교주가 놀라며 흡족해 할만한 양이었다. 하지만 전신혈도의 내공까지 확인했다면 더욱 놀랐을 것이고 괴령의 죽음이 며칠 미루어졌을 수도 있었다. 아무리 고수라도 상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뿐 내공의 양은 짐작하기 어렵기에 교주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괴령의 말대로 진주를 돌려주고 함만 취한 것이다.
'이 쇠사슬은 어떻게 풀어야 하지?'
천살마기는 원래 천살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이고 신화공 역시 내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천살은 전신혈도의 공력을 끌어올려 팔다리에 힘을 주어 쇠사슬을 끊거나 벽에서 뽑아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 작가의말
일인일심, 사람마다 마음이 다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나저나 지난 작가의말에 제가 쓴 시에 대한 품평은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작성하기 시작할 때까지 말입니다. 이태백의 꿈은 버리고 글쓰는 머슴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주인공을 빨리 풀어줘야 하지만 그사이 다른 조연들이 해줘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나저나 이 소설을 네이버에서 연재한다면 매 편마다 그림이 올라가야 하는데 요 몇편은 주인공이 항상 나체라...
네이버로 간다면 여주물로 바꿀까요?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