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수황천
선우검파는 멍청한 초영란을 속으로 수백번도 더 욕했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음식준비를 하고 싶지만 그러면 사진군이 장우민에게 문제가 있음을 대번에 눈치챌 것이다. 그래서 초영란에게 신신당부했건만 못듣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된다는 듯 큰소리로 장우민의 죽음을 외쳤다.
사진군은 화운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풀었다. 선우검파가 장우민의 죽음을 알릴 수 없기에 화운을 화풀이로 죽인 것이다. 만약 사진군 본인이 장우민을 죽인 것이라면 화운의 죽음에 입도 벙긋하지 않을 것이다. 장우민이 살아있는데 사진군이 선우검파에게 먼저 시비를 걸어 빌미를 주는것은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사진군이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장우민을 사진군이 죽였는지 알 방도가 없다. 장우민의 죽음을 모르고 참고 있을수도 있고 장우민의 죽음을 모르는척 가만히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우검파가 화풀이겸 사진군이 장우민을 죽인 것인지 확인하려고 화운을 죽인게 틀림없다고 사진군은 결론을 내렸다.
"사진군, 가만히 있어도 소교주가 될 수 있었을 터인데 왜 이러는 것이냐?"
"대사형, 대사형이 생각하기에도 내가 장우민을 죽일 이유가 하나도 없지 않소. 여기에서 장우민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나와 대사형을 제외하고도 천살이 있다는 점을 상기했으면 하오."
"장우민은 오늘 죽었고 소음공에 죽었다."
"외통수로군."
사진군은 외통수임을 인정했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백일이 되면 자신은 장우민을 죽인 죄로 소교주가 되지 못할 것이다. 선우검파는 화운을 죽인 죄로 소교주가 되지 못할 것이고 여자인 초영란을 제외하면 강사성밖에 없다.
교주는 적당한 시기에 강사성에게 교주자리를 넘겨줄 것이다. 그리고 교주와 그 세력들이 강사성을 꼭두각시로 만들 것이다. 강사성이 멍청하다지만 사씨가문과 손잡는것보다 교주의 세력과 손잡는것이 훨씬 이득임을 알 것이다. 사씨가문은 직접 교주가 되려는 것이지 꼭두각시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사성과 한화령의 아이는 아마 한씨성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강사성의 뒤를 이어 교주자리를 차지할 것이 뻔하다. 한씨가문의 독주는 계속될 것이다. 사씨가문의 세력이 한씨가문을 능가한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사형을 죽여야만 할 것 같소. 개인적으로 대사형에게 아무 감정도 없소. 나는 누구도 내가 명화교의 교주가 되는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사형제 모두에게 유감이 없었소. 누군지 모르겠지만 상황을 이렇게 몰아가서 우리가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소."
선우검파도 사진군이 장우민을 죽일 이유가 전혀 없음을 안다. 다른 사형제들은 몰라도 선우검파 역시 몰락했지만 명화교의 사대가문중 하나인 선우가문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다른 사형제들을 보는 시각과 사진군이 자신을 보는 시각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확실한 무공으로 사진군을 압도하려고 했지만 교주가 하필이면 사진군에게 소음공을 가르쳐주었다.
사진군이 소음공의 내공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지만 선우검파의 공격도 사진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소양공의 공력이 사진군의 내부에 침투하면 소음공의 공력에 의해 상쇄되기 때문이다. 선우검파가 사진군을 이기고 교주가 되려면 무공으로 압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소음공의 존재가 그 가능성을 아예 말살해 버렸다.
심계가 깊은 교주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선우검파와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머리 터지게 생각했지만 결론을 얻지 못했다. 만약 사진군이 장우민을 죽인 것이라면 소음공을 사용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진군은 선우검파를 죽일 실력이 있는 것이고 사진군이 아니라면 교주의 검은손이 신화동까지 뻗어있다고 여겨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선우검파에게는 희소식이 아니다.
"너에게는 외통수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천살처럼 도망쳐서 백일이 될 때까지 숨어있으면 된다."
선우검파의 말은 사실 사진군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계책일 뿐이다. 선우검파가 도망간다면 사진군은 장우민의 시체를 태워버릴 것이다. 직접적 증거인 장우민의 유체가 사라지면 사씨가문의 힘으로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 초영란과 강사성이 전부 선우검파의 편에 서서 셋이 입을 맞춘다 하더라도 사씨가문을 흔들 수 없다.
"강사성, 화운을 데려오거라."
강사성은 곧바로 화운의 시체를 가져왔다. 사진군은 선우검파가 도망을 가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미 속으로 선우검파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이번 일에는 제삼자의 손길이 닿아있다. 그게 누구고 무슨 꿍꿍이든 선우검파만 죽이면 아무리 용을 써도 소용이 없다. 자신의 흔적이 남은 자들의 시체를 전부 태워버리고 모르쇠를 대면 그만이다.
화운의 시체에서 반양검과 소양공의 흔적이 발견되자 선우검파도 사태의 엄중함을 알아차렸다. 도망간다 해도 목숨을 며칠 더 보전하는 것뿐이다. 그 뒤에 가문의 힘으로 목숨을 건져봤자 살아있는게 아니다. 걸어다니는 시체이고 말을 하는 고깃덩이일 뿐이다.
"외통수로군. 너나 나나 단지속의 귀뚜라미가 되었구나."
단지속에 귀뚜라미 두마리를 넣으면 둘은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 밖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도 모르고 말이다. 선우검파는 교주의 대제자이고 선우가문의 후계자이다. 그런 자신이 귀뚜라미 신세가 될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사진군과 선우검파 둘다 장우민과 화운이 제삼자의 손에 죽었음을 확실히 인지했다. 둘이 손잡고 제삼자를 찾아내거나 백일이 된 후 교주와 장로들에게 서로를 변호해주며 제삼자의 개입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제거하고 제삼자만 조심하면 교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둘다 그 가능성을 외면했다.
흉수로 몰린게 강사성과 초영란이었다면 어떻게든 협력해서 자신이 무고함을 증명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군은 가문의 힘으로 모든것을 무마할 자신이 있었고 선우검파는 가문의 힘으로 교주와 협상할 밑천이 있다.
"초사매, 강사성을 죽이고 화운의 시체를 태운 후 도망가서 숨어라. 그다음 나도 도망갈테니 백일이 되면 그때 다시 공동으로 모이자."
"강사성, 화운의 시체를 지켜라. 만약 화운의 시체가 초영란에 의해 태워진다면 너는 장우민의 시체를 태워버려라."
선우검파와 사진군은 서로 상대의 마음을 흔들려고 애썼다. 상대를 죽인 후 태워버리면 흔적이 남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몸에 다툼의 흔적을 남긴다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 완전히 회복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툼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에 의심의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
선우검파와 사진군의 대결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군은 소음공의 성취가 크게 올라 극음지기를 운용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초식의 운용이 선우검파처럼 능숙하지 못해 선우검파를 적중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 선우검파 역시 무위가 상승한 사진군에게 강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다.
사진군과 선우검파가 생사의 대결을 벌이자 초영란도 강사성을 덮쳐갔다. 초영란은 복잡한 생각은 싫어한다. 일단 적이 확실한 강사성을 죽여버린 후 생각을 할 작정이다. 강사성은 화운의 시체를 지켜야 하기에 움직이지 않고 초영란의 공격을 수비해 나갔다.
'더러운 년,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강사성의 생각과는 달리 초영란은 실력을 숨긴적이 없다. 다만 강사성과 화운을 상대할 때 무공의 상성과 경지의 차이로 쉽게 승리했고 세명의 사형과의 대결에서는 무위의 차이가 심해 손쉽게 패배했을 뿐이다. 누구도 초영란의 무위에 신경쓰지 않았을 뿐 초영란이 숨긴적은 없다.
사진군과 선우검파가 공격과 방어를 주고받는데 비해 초영란과 강사성의 대결은 일방적이었다. 최근 육체를 단련하는 외공을 익혀 전체적인 무위는 상승했지만 내부를 타격하는 초영란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초영란을 상대하려면 횡련일기공의 무위를 높여야 하는 것인데 일년간 강사성의 횡련일기공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중란욕수(衆蘭慾秀)는 난화지의 절초중 하나이다. 수많은 난화가 서로 뽐내려 한다는 이름처럼 신법과 결합되어 강사성의 전신을 어루만졌다. 초영란이 뒤로 물러서자 강사성의 몸 안의 수많은 혈도 주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초영란의 내력이 혈도까지 점거하지 못하고 혈도 근처에서 폭발한 것이다. 잘 단련된 혈도들은 적지 않은 기운을 담아두고 있었는데 폭발에 혈도가 손상을 입자 혈도속의 내력들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예기치 않게 일기현상이 일어나버린 것이다. 물론 나쁜 의미로 말이다.
만약 강사성이 초영란을 믿을 수 있었다면 난화지의 도움을 받아 횡련일기공의 경지를 빠르게 높였을 것이다. 하지만 강사성은 초영란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초영란을 믿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난화지로 횡련일기공을 수련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강사성이 초영란에게 확실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초영란은 기꺼이 강사성을 도와주었을 것이다. 둘은 서로 경쟁상대가 아니니 말이다.
강사성의 몸은 급격하게 불어났다. 혈도속의 내공이 갑자기 쏟아져나오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내공을 익힌 자라면 내공심법을 운용하여 이 기운들을 단전속으로 돌렸을 것이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늘어난 내공 덕분에 경지가 크게 올랐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외공만 익힌 강사성은 몸속의 넘쳐나는 기운을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횡련일기공의 운기법을 운용하면 사태가 조금 나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강사성은 초영란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생각에 운기할 생각을 아예 하지도 못했다.
넘쳐나는 기운 때문에 강사성의 몸은 괴사하기 시작했다. 강사성의 코와 입으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최근 몇달간 고삼의 수련법을 따라서 육체만 단련하는 외공으로 육체를 강화했다. 때문에 육체의 저항력이 강해져 몸속의 넘쳐나는 기운에 대항하고 있는데 기운을 이겨낼 정도는 아니어서 강사성에게 고통의 시간만 늘려주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연기가 점점 많아지는 반면에 강사성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미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잠깐의 시간 후 얼굴이 검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커다랗게 불어난 강사성의 몸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몸의 내부가 다 타버리고 강사성이 죽어버리자 육체의 저항이 사라졌다. 강사성의 몸속의 기운들은 강사성의 칠공을 포함해 모든 구멍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부 기운은 피부표면의 혈도를 통해 밖으로 배출되었다.
육신이 죽은 후에야 피부의 혈도를 열어 횡련일기공의 대성을 이룬 셈이다. 이미 죽은 강사성이 황천에서 이 일을 알았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건장하던 체구는 내부의 장기가 다 타버리고 기운이 전부 빠져나간 덕분에 홀쪽해졌다. 감기지 않은 강사성의 눈은 초영란에게 먼저 출발하지 않고 너도 기다리마 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 작가의말
携手黃泉, 손에 손잡고, 황천길 향해.
다음편에는 19금 내용이 포함될 예정입니다. 하지만 19금 걸어놓으면 저처럼 마음이 순수하여 19금 인증을 하지 않은 분들은 글을 읽지 못합니다. 고민중에 강호정담에서 몇몇 금칙어를 언급하지 않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면 19금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확인했습니다. 어제 질문이 올라왔고 답변도 어제 확인했습니다. 하늘의 계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분들도 계시고 외설적인 묘사를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소설의 진행을 위한 필요라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묘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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