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취월장
천살은 자신이 가르친 무공검법의 초식들을 수련하는 부대원들을 지켜보며 방금전 사도무천과의 대화를 되새겼다.
"곧 대규모 접전이 일어날 걸세. 그때 무림맹의 일부 고수들이 자네를 노리겠지. 소림의 대환단이 걸린 일이라 내공수련이 정체기에 빠진 고수들이 눈에 쌍불을 켤만도 하네. 내 자네에게 자령단을 더 주고 싶어도 지금 먹어봤자 그 효과를 전혀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구만. 지난번에 홀로 적의 후미를 공격했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삼가야 하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십장정도이니 그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게."
사도무천의 말에서 천살은 두가지를 깨달았다. 포원경을 배운 후 남은 태청금단을 전부 복용하여 천살은 근 삼십년에 가까운 적공을 보유했다. 일반 무인들과 달리 천살은 영약을 복용하는대로 효과를 보고 있다. 아마 자신의 체질이 특별하던지 불사공의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천살의 추측과는 달리 일반무인들이 영약의 복용에 제한받는 것은 다른 이유때문이다. 영약의 기운의 일부가 단전에 들어가고 남은 기운들은 여러 혈도에 쌓인다. 그러고도 남은 기운들은 낭비되는 것이다. 무인은 오랜 기간을 두고 혈도들에 쌓인 기운을 정제하여 단전으로 인도해야 한다.
천살은 내공이 전혀 없는 주제에 혈도가 매우 튼튼하고 깨끗했다. 동자공을 십년 가까이 수련하면서 몸속의 기운이 비교적 순수하여 영약의 흡수가 매우 빠르다. 몸속의 잡다한 기운들이 영약의 기운과 충돌하는 과정이 생략된 것이다. 덕분에 며칠만에 일반 무인들이 반년에서 일년씩 걸리는 과정을 끝냈다. 효용이 없는듯 한 동자공을 계속 수련한것이 빛을 발한 것이다.
거기에 자령단을 두번이나 복용했고 태청금단은 천살마기가 발작할 때마다 복용했다. 비록 내공으로 가지는 않았지만 천살의 몸이 두가지 영약에 대해 적응을 충분히 하여 흡수가 더 빨라졌다. 하여튼 천살이 첫번째로 깨달은 것은 자신은 영약이 잘 먹히는 몸이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사도무천 정도의 고수가 되면 일정한 공간을 자신의 통제에 놓아둔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천살에게 이러한 정보들은 매우 중요하다. 어느정도 경지에 이른 후 무엇을 해야할지 알려줄 사람이 없는 천살에게는 스치듯 던져주는 한마디도 놓칠 수 없다.
천살은 자신이 실전에서 검증한 무공검법의 초식들을 각자의 형편에 알맞게 가르쳐주었다. 무공검법의 검의나 검리를 가르친게 아니라 초식만 가르쳐준 것이다. 유독 당무영에게만 적구무의의 초식을 자세히 풀어주었다. 이는 천살이 조전의 조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대장님, 대장님이 어떤 높이까지 바라보는지 모르지만 친구 하나가 더 많고 적 하나가 줄어들어서 손해보는 일은 없을겁니다."
소 닭 보듯 부대원들을 대하던 천살이 생각을 바꾼 계기였다. 각자에게 알맞는 초식을 가르치고 당무영에게 적구무의의 초식에 포함된 무리들도 풀이해서 얘기해주었다. 잦은 작전에도 천살의 부대가 한명의 사망자도 없은 것은 천살의 무공이 급격히 발전한 원인도 있지만 부대원들의 실력이 많이 는 덕분도 있었다.
"자, 주목. 무림맹에서 곧 대규모로 도발해 올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미리 준비해 두어서 낭패는 없겠지. 지금부터 삼인연수의 수련에 좀 더 집중해주기 바란다."
삼인연수는 특별한게 아니다. 세명씩 한조를 이루어 함께 싸우는 방식이다. 다만 전투도중 여유가 있는 자가 전황을 살피고 남은 둘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공격에 치중하는자와 방어에 치중하는 자로 나뉜다.
전장에서 머리가 뜨거워지면 구체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다. 머리에 피가 몰려 눈앞의 때려눕혀야 할 적만 보이는 것이다. 삼인연수는 세명중 하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남은 둘에게 전진해야 할지 후퇴해야 할지 알리는게 목적이다.
비록 별것이 아니지만 부대원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걱정해주는 마음에 감동했다. 일부는 천살이 교주의 일곱번째 제자로 낙점되었다는 말에 출세욕때문에 천살을 따르기도 했다. 이유가 어쨌건 삼십명밖에 안되는 부대원들은 천살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마교의 무리들은 들으라. 나는 남궁세가의 남궁천이라고 한다. 나와 검을 겨눌자가 있느냐?"
남궁천은 아주 유명한 자이다. 남궁천이 유명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고강한 무공때문에 유명하다. 스물이 되기전에 남궁가 전체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원로들도 포함해서 말이다.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남궁천의 성격이다. 성격이 어찌나 더러운지 천하에서도 적수를 찾기 어려운 남궁천이 남궁가의 가주가 되지 못했다. 다른 결격사유가 없이 성격 더러운 것 하나때문에 말이다.
세번째로 유명한 것은 남궁천의 부인이다. 당대의 십대미녀건 팔대미녀건 사대미녀건 남궁천의 부인이 빠지는 경우가 없었다. 하지만 못생기기로 유명한 남궁천과 혼인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멀쩡한 꽃이 소똥에 꽂혔다고 다들 혀를 찼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것은 남궁천의 딸 남궁청아이다. 외탁만 했는지 그 미모가 남궁천의 부인을 능가할 지경이다. 다만 남궁천의 더러운 성격때문에 웬만한 가문에서는 감히 중매를 넣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전투는 기세가 매우 중요하다. 장수들의 단기도(單騎挑 - 일대일)는 그 기세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에 전투를 총지휘하는 장군이 정한다. 하지만 제멋대로 나선게 남궁천이라 지휘부에서도 벙어리속을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름도 변변찮은 늙은이가 남궁가의 검을 한번 받아보지."
무당파의 장로가 나왔더라면 사도무천이 직접 나서지 않고 제자들 중 하나를 내보냈을 것이다. 사도무천은 서창훈과 같은 배분이기에 무당의 장로들도 한배분 낮다. 하지만 남궁천의 명성은 배분따위를 무시할만큼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사도무천은 강호에서 종적을 감춘지 오래된다. 나이를 먹으며 얼굴이 변하기도 했고 무당과 화산을 제외하면 사도무천이 명화교에 투신한 일도 모른다. 무당의 장로중 유일하게 화산권파가 명화교에 투신한 일을 알고있는 송암자도 사도무천을 알아보지 못했다.
"늙은이는 이름을 밝히시오. 이 남궁천의 검은 이름없는 자를 베지 않소."
"나이를 먹어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구만. 명화신교에서 장로를 맡고 있으니 장노인이라 부르게나."
"알았소. 관뚜껑에다 노망나서 이름도 잊은 늙다리라고 적어주지."
남궁천은 자신의 상대로 늙은이가 나오자 화가 치밀었다. 내공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육체가 쇠퇴한 늙은이들은 장기전에 약하다. 내공을 사용할 때마다 크고 작은 반탄력이 생기는데 고급무공은 내공으로 그 반탄력을 해결하지만 무공이 허접하거나 무인의 경지가 낮으면 몸으로 버텨야 한다.
내공의 수발이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지 않은 한 중년의 나이의 자신과 붙으면 필패일 것이다. 무당의 세 장로도 남궁천과 일대일로 붙으면 단 일푼의 승산도 없다. 경지를 겨루는 것이라면 몰라도 무공을 겨루는 것이라면 나이가 많은자가 여러모로 불리하다.
하지만 사도무천의 도에 검을 부딪힌 후 남궁천은 곧 마교장로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상대는 나이를 헛먹지 않았는지 내공이 노화순청의 경지에 이른듯 수발이 자유로웠다. 거기에 내력도 웅혼한지 도에서 느껴지는 힘이 무척이나 강했다.
남궁천의 검법은 남궁가의 유명한 칠정검(七情劍)이다. 상(翔), 예(銳), 영(靈), 격(激), 맹(猛), 급(急), 패(覇)의 일곱가지 검의를 가지고 있는데 기분에 따라 알맞는 검의를 선택해 사용하면 위력이 더 강해진다. 남궁천의 성격이 더러워진게 이 검법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처음에 편한 마음으로 영의 검의로 상대했지만 마교장로가 만만치 않은것을 느끼고 예로 바꾸었다. 뱀처럼 움직이며 사도무천의 전신요혈을 노리던 검이 갑자기 시위에 떠난 화살처럼 날카롭게 쏘아져나갔다. 짧은 시간내에 상대를 어찌할 수 없음을 인지하자 격으로 전환하여 상대의 체력을 소모시키려 했다.
사도무천은 도를 사용했다. 병장기를 든 자를 권법으로 상대하려면 체력과 심력의 소모가 매우 크다. 상대가 남궁천이 아니라면 주먹으로 상대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거물인 만큼 무기로 도를 들었다. 경지가 낮은 무인이라면 자충수겠지만 사도무천은 이미 병장기를 가리는 경지는 벗어났다.
격렬하게 부딪혀오는 남궁천의 검을 피해 도가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쏘아졌다. 남궁천은 뒤로 한발 물러서며 몸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사도무천의 도를 피해내고 다시 검으로 도를 때렸다. 남궁천의 검에는 거대한 진력(振力)이 섞여서 상대의 병장기에 강한 힘을 전달한다. 나이가 많아 육체적으로 쇠퇴한 사도무천에게 딱 알맞는 공략법이다.
사도무천은 도를 급히 회수했다. 병장기를 부딪히면서 전해져오는 힘을 내력으로 없앨 수 있다. 하지만 남궁천의 검에 진력이 실려 부딪힌 후 도가 빠르게 떨린다. 그 떨림을 없애는데 많은 내력과 심력이 소모된다. 전성기의 육체라면 괜찮은데 늙은 몸뚱이는 오래 버텨내지 못한다.
천살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남궁천의 검을 지켜봤다. 자신의 쇄검술과 비슷한 듯 한데 위력은 천차만별이다. 단순히 내력의 강약의 차이가 아니라 상대의 검에는 천살이 제대로 짐작하기 어려운 고절한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천살은 상대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남궁천의 검이 사도무천의 목을 스치자 무림맹의 병사들이 환호했다. 사도무천의 도가 남궁천의 옷자락을 쓸며 지나가자 명화교의 병사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사도무천과 남궁천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다.
만약 거기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초식에 억지로 변화를 주었다면 허점을 노출해 상대의 반격에 손해를 보았을 것이다. 흉험하고 긴박한 대결 같지만 둘다 여유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하루종일 싸워도 승패가 나뉘지 않을 것이다.
"당신같은 인물이 마교에서 썩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소. 무림맹으로 기암투명(棄暗投明 - 어둠을 버리고 밝음에 몸을 담다)한다면 이 남궁천이 부귀영화를 보장하겠소."
"자네같은 맹수가 남궁이라는 우리에 갇혀 이빨과 발톱을 썩히고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군. 명화신교로 투신하면 내 장로의 자리를 양보함세."
서로에게 눈짓을 하고 동시에 뒤로 물러선 둘은 마지막으로 상대에게 한마디씩 던진후 본진으로 돌아갔다. 둘의 대결이 적당한 시점에서 멈추어 양측의 사기는 이미 최고조에 이르렀다.
"마교의 무리는 들으라. 혹세무민을 일삼고 ..."
마교를 성토하는 장황한 연설이 시작되자 포장군은 고수에게 북을 치게 했다. 둥 소리가 울리자 명화신교의 병사들은 병장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둥 소리가 울리자 앞과 뒤의 간격을 싸우기 좋을 정도로 적당히 좁혔다. 둥 소리가 울리자 수천의 병사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살(殺), 살(殺), 살(殺)"
북소리가 빨라짐에 따라 천살의 심장박동도 빨라졌다. 자신의 일취월장한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 방금 남궁천의 검을 보고 깨달은 것을 바로 시험해보고 싶었다. 몸속의 천살마기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굳이 억제하고 싶지 않았다. 미친듯이 싸우고 싶은 날이다.
- 작가의말
日就月將, 뜻은 다 아실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아직 주인공이 천마가 되지 못했습니다. 개연성이 아직 살아있는 시점이라 사이다는 일단 냉장고에 보관해 둡니다. 내일 외전에서 천마가 현대로 환생하는 장면을 다룰 것입니다. 거기에는 천마군림보가 나올겁니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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