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공천신
교주의 단전속에 빨려 들어간 천살마기는 단전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가장 좋은건 교주의 몸에서 다시 천살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교주의 단전을 벗어나 혈도가 아닌 곳에 잠복해야 한다. 천살마기의 농도가 매우 높기에 어떤 심법을 운용해도 천살마기를 발견하고 움직이지 못한다.
그러나 괴령이 천살을 업고 급히 도망가는 바람에 본체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점차 영성을 잃어갔고 급기야는 연결이 끊어져서 목적을 잃고 그저 난동만 부렸다. 교주는 단전속에서 난동을 부리는 천살마기의 힘에 만족하며 급해하지 않고 북명신공의 북명광원(北冥曠遠 - 북명은 끝없다)을 사용했다.
북명은 끝없고 어두운 바다를 뜻하는 도교 용어이다. 북명신공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상대의 기운을 뽑아내는 거곤탄수(巨鯤呑水 - 커다란 곤이 물을 삼키다), 그 기운의 이질적인 부분을 마모하는 북명광원, 체내의 기운들을 똑같은 기운으로 만드는 붕익수천(鵬翼垂天 - 붕의 날개가 하늘을 가리다)이다.
천살마기의 높은 밀도와 적지 않은 양때문에 한선후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괴령이 멀리 도망가면 도망갈수록 천살마기의 난동이 목적성이 사라지는 바람에 처음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짧은 사흘이라는 시간만에 천살마기의 난동을 제압했다.
"천신의 뜻인가 보구나.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어."
한선후는 교주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가문의 대를 이어가기 위해, 교주의 자리를 한씨가문에서 계속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하지만 계획은 항상 훌륭하지만 제대로 진행된 적이 없었다. 그의 계획에는 항상 너무 많은 욕심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 가지고 태어난 한선후는 원하는 것중에 한두개는 포기하는 법을 잘 몰랐다.
하지만 천살을 만나고부터 계획대로 진행되는 건 아니지만 그 결과는 항상 한선후에게 유리하게 되었다. 가끔 한선후가 원하던 것보다 훨씬 잘 된 경우도 있었다. 한선후는 드디어 천신이 굽어살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급하지만 한선후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세번째 단계로 넘어가기로 결심했다. 밀실에서 나와보니 밖에 스물이 갓 넘은 청년이 수하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딸인 한화령에게 시킨 일인데 피곤을 핑계로 청년에게 밀어버린 듯 했다. 한선후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감추고 말을 건넸다.
"준비에 서둘러야겠다. 생각보다 대공이 더 빠르게 이루어질 것 같구나."
"경하드립니다. 곧 천하를 발아래에 두게 되시겠군요. 주씨들을 몰아내고 송을 광복하셔서 천추만대에 이름을 빛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한선후의 말에 대답한 청년은 곧게 뻗은 시원한 검미아래에 샛별처럼 빛나는 두눈이 자리하고 있었다. 코는 적당히 높으나 선이 조금 곧지 않은 것이 흠이다. 하지만 마교에서 미남소리를 듣던 선우검파나 사진군보다도 훨씬 잘생긴 미청년이다. 이 청년이 바로 형산파에서 쫓겨난 장현성이다.
황실에 밉보이고 무림맹에 밉보이고 모용세가와의 연맹도 물 건너가고 소림까지 배신한 장원산과 장현성이 투신할 곳은 명화교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명화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정보를 통해 둘의 처지를 알아낸 교주는 두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장현성은 쓸모가 크게 없지만 장원산은 무림맹의 정보들을 많이 알고 있기에 큰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화령과 장현성이 정분이 나버리면서 한화령이 회임까지 하게 되었다. 원래 사도에서 만반의 함정을 준비하고 천살을 상대하려 했는데 한화령의 외도 소문이 은근히 퍼지는 바람에 급히 계획을 바꾸었다. 회임한지 오래되지 않아 고수라도 회임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들기에 소문만 없었으면 원래대로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고의적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바람에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천살의 무위가 놀라울 정도로 높아져서 또 한번 계획을 바꾸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졌고 첫단계와 두번째 단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끝났다. 음식을 먹고 따뜻한 물에 목욕까지 한 다음 달게 한숨까지 자고 일어난 한선후는 세번째 단계로 접어들었다.
붕익수천은 천살의 흡기공과 비슷했다. 하지만 천살의 흡기공이 극단적으로 단전안에서 소용돌이를 만드는 것이라면 북명신공의 붕익수천은 단전에서 출발해 여러 혈도들을 거치면서 다시 단전으로 돌아온다. 그 속도를 점차 빠르게 하여 천살의 것보다는 더 크지만 흡력은 약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천살의 목적은 축기에 있고 붕익수천은 축기가 아닌 기의 동화와 정제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살의 흡기공은 불사공이 없다면 삼화취정의 고수는 되어야 이룰 수 있는 경지이다. 하지만 삼화취정이면 내공의 양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경지이기에 흡기공은 아무 소용도 없다.
천살마기뿐 아니라 천살의 혼원동자공의 내공도 아직 동화되지 않았다. 한선후의 경험에 의하면 낮은 수준의 기운이 높은 수준의 기운에 흡수되어 버린다. 아마 자신의 내공과 천살의 내공이 먼저 겨루기를 해서 상대를 먹어버린 후 천살마기와 다시 다툼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한선후의 예상대로 세가지 기운 중 천살마기는 그저 흐르기만 하고 혼원동자공과 한선후의 신화공 내력이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신화공을 익히지 못해 영성이 없지만 성물에서 뽑아낸 신화공의 내력은 천살의 혼원동자공을 어렵지 않게 제압했다. 하지만 천살의 내력도 만만치 않아 쉽게 제압당했지만 섞이는 과정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괴령은 기분이 매우 좋았다. 지금 이곳에는 괴령과 천살 그리고 괴령의 제자들 뿐이다. 괴령의 제자들은 사실 이혼술의 대상으로 점찍은 아이들이라 자질이 괜찮았다. 천살이 최종으로 이혼술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에 제자들은 기쁨에 겨워 성심성의껏 괴령을 도왔다. 본인은 이제 안전해졌고 괴령에게 잘 보여 이혼술을 전수받으면 장생불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 이번에 데려온 자를 담근 약물이 맑아졌습니다. 하루안에 샘물처럼 될 것 같습니다."
천살을 감시하던 제자의 보고에 괴령은 깜짝 놀랐다. 황급히 천살을 담근 동굴로 가보니 과연 약의 효력이 거의 다하고 있었다.
'천살마성의 그릇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구나. 내가 무공에는 그리 깊은 조예가 없다지만 얼핏 봐도 대단한 육체였는데 아직도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는 말인가?'
괴령은 조심성이 많은 자이다. 그래서 약물도 넉넉히 준비해 두었다. 하지만 칠일만에 약물이 다 소진된 것으로 보았을 때 남은 약물로는 스무날정도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약물의 소비속도가 지금과 같다는 가정하에서 말이다.
"가서 네 사제들에게 일전에 준비했던 약초와 독물들을 최대한 끌어모으라고 해라. 가장 열심히 모은 자에게 새 무공을 전수하도록 하겠다. 그나저나 이 자식은 아직도 신음소리를 내지 않았느냐?"
"이미 사제들에게 약초와 독물들을 모으라 명했습니다. 사부님이 은혜를 베풀어 새 무공을 가르쳐준다고 하면 밤잠도 잊고 열심히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가 눈 한번 안 붙이고 이자를 지켜봤는데 소리 한번 내지 않았습니다."
"내가 백년 넘게 살면서 별의별 인간 다 만나봤는데 저런 독종은 처음 본다. 너도 방심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말거라. 입으로 물어올지도 모른다."
"사부님의 따뜻한 마음씨에 제자 감복하였습니다. 제 몸을 잘 건사해서 사부님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헌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쌍으로 지랄을 하는구나. 내가 자유를 얻는 즉시 네놈의 눈꺼풀을 베어버려 진짜로 눈 한번 못 붙이게 해주마. 그리고 괴령 이 개자식, 다음 생에는 말못하는 짐승으로 태어나거라. 너같은 개잡놈에게 독종 소리 들으니 더 화가 나는구나.'
신화공은 신나게 몸을 불리고 있지만 그건 단전에 한해서이다. 약물속의 기운들을 몸으로 흡수했지만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운들이 순환하면서 아혈속의 기운이 동화되거나 충돌로 사라지면 혈도가 풀릴터인데 요소요소가 끊어졌기에 흐름은 있지만 순환은 없다.
그러나 이 칠일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순환이 끊기는 바람에 천살은 어떤 혈도들이 더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혈도는 감각의 영역이 아닌 의념의 영역이기에 그 차이는 매우 크다. 예전에 천살이 단전을 제외한 모든 혈도에 비슷한 양의 기운을 저장했다면 이제는 중요한 혈도에 더 많은 기운을 저장할 것이다.
많은 운기경로에 포함되는 중요한 혈도들이 기운이 많다면 운기가 더욱 빨라지고 기운의 충돌에도 혈도가 더 강하게 버틸 수 있다. 성라운포를 더욱 빠르고 더욱 쉽게 사용할 수 있는것은 물론 천살의 모든 공격에 속도와 힘이 붙게 된다.
거기에 칠변절독의 강한 자극에 육체가 변화했는데 천살은 그 육체에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원래는 몇년을 두고 천천히 체화해나가야 하는데 칠변절독과 비슷하지만 약한, 그리고 지속적인 자극을 육체가 계속해서 받자 그 과정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칠변절독때처럼 마구 몰아치는게 아니라서 천살이 좀 더 집중할 수 있기에 전혀 움직이지 못하지만 육체의 수련이 진행되고 있다.
괴령은 천살의 알몸을 한번 훑었다. 지금의 몸과는 다르게 덩치도 크고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다. 지금 사용하는 두번째 몸은 이혼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원래 육체와 흡사한 것을 찾다보니 이렇게 볼품없는 것으로 골랐다. 이혼술을 더 많이 이해하고 보니 굳이 비슷한 육신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천살의 하체를 한번 더 확인한 괴령의 입가에는 더욱 커다란 미소가 지어졌다.
한선후가 붕익수천으로 신화공과 혼원동자공을 섞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걸렸을 뿐 아무런 힘든점이 없었다. 십수일의 시간이 지나 천살마기와 신화공만 남게 되자 교주는 또 한번 휴식을 취했다. 굳이 먹고 마시지 않아도 되지만 입의 즐거움을 위해 식사도 챙겨먹었다. 천살의 내공을 동화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지만 덕분에 내공이 훨씬 많아졌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한선후는 천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제사장이지만 천신에게 기도를 올린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다. 다시 붕익수천을 시전하자 신화공은 천살마기와 섞이려고 시도했다.
천살의 신화공은 천살마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스스로 압축되었다. 영성을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한선후의 신화공은 성물에서 뽑아낸 것으로 후하게 쳐줘도 서창훈의 선천기공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서창훈의 선천기공도 제대로 익혀낸 것이 아니기에 비슷한 것이지 장삼풍의 선천기공과 비교하면 신화공의 내력이 훨씬 밀린다.
천살마기는 영성을 잃었지만 본능은 아직 살아있었다. 영성을 가졌던 기운은 북명광원으로 오랫동안 마모해서 본능마저 사라지게 해야 한다. 하지만 교주는 성급한 마음에 천살마기가 난동을 멈추자 바로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다. 그리하여 교주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신화동에서 신화공과 한번 다툰 경험이 있고 천살의 단전에서 신화공에게 떠밀려 한선후에게 흡수된 천살마기는 신화공의 기운을 만나자 적대적으로 변했다. 영성이 없는 신화공의 기운은 북명신공에 의해 동화되려고 하는데 천살마기는 신화공을 적대했다. 절대적 양은 신화공이 훨씬 많지만 천살마기는 응집력이 강했다.
이는 백기의 철갑기병이 만명의 보병속을 휘젓는 것과 같다. 더구나 만명의 보병은 장군의 명에 따라 백기의 철갑기병을 같은 편이라 생각하고 공격을 당하고 나서야 반격을 시도한다. 의도와는 다르게 자신의 기운이 점점 사라지자 다급한 한선후가 붕익수천을 멈추려 할 때 이변이 나타났다.
신화공이 천살마기에게 굴복한 것이다. 천살마기는 굴복한 신화공을 삼키기 위해 응집력을 어느정도 풀고 몸집을 불렸다. 양의 부족함이 느껴지면 조금씩 밀도를 낮추며 덩치를 키웠다. 그렇게 신화공 모두를 삼키자 한선후의 단전안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밀도 높은 내공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하하, 이 신공의 이름은 천신공이다. 신이 내린 신화공을 대신할 새로운 신공이다."
- 작가의말
新功天神, 새로운 무공은 이름이 천신, 천신공이라는 뜻입니다. 그나저나 항응은 천룡생불에게 강의를 듣고 혈도를 깨우쳤는데 천살은 역시 몸으로 때웁니다. 그나저나 주인공 위기인데 다들 기뻐만 하십니다. 몰입도가 너무 낮은건지 제 필력이 부족해서 주인공의 위기묘사가 제대로 안된건지 헷갈립니다.
짧은 소지식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몰라도 상관이 없지만 북명은 성씨이기도 합니다. 동방, 서문, 남궁, 북명을 사대성씨라고 부릅니다. 춘추전국시기에 전성기를 누린 가문인데 진시황이 통일한 후 가문내부에서 상잔하다 세력이 와해되었습니다. 그후 여러 나라의 박해를 받아서 성을 바꾸었습니다.
제가 원래 이걸 소재로 글 하나 쓰려다가 포기했습니다. 동방東方, 여기에서 방은 네모나다는 뜻으로 집의 울타리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방가는 궁전의 담을 따라 돌며 순찰하는 순찰대의 후손으로 정했습니다. 서문西門, 문지기 입니다. 남궁南宮, 궁전을 지키는 파수병, 북명北冥, 어두울 명이기에 어두운 곳에 숨어서 주인을 지키는 호위무사 입니다. 이 네개 가문은 원래 모시던 주인이 후대가 끊겨 흩어졌지만 충성심이 강해 각자 동서남북에 직책인 방, 문, 궁, 명으로 복성을 만들고 혹시 모를 주인의 후손을 기다린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가 없고 이야기를 끌어나갈 건덕지가 없어 포기했습니다. 필요하신 분 계시면 가져다 쓰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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