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먼치킨편
하루는 천마가 머무는 천마장에 손님이 찾아왔다. 접객총관은 방문록에 손님의 신상을 적기 시작했다.
"어디서 오셨소?"
"대리(大理) 출신이오."
"대리면 무슨 민족이시오?"
"만족이오."
접객총관은 고개를 갸우뚱 했다.
"만족이라는 민족도 있소?"
그때 지나가던 사이다가 참견했다.
"만족(滿族)은 현재 여진족으로 불리우고 있소. 아직 만족으로 불리우기 전인데, 그리고 대리쪽에는 만족이 없소."
"나는 고아라서 사람들이 만족(蠻族 - 야만족)이라 부르오. 청나라를 세우는 그 만족이 아니오."
"청나라라니 무슨 소리오? 당신이 미래라도 예지한다는 말이오?"
"당연한 걸 왜 물으시오. 그리고 빨리 천마를 만나고 싶으니 방문록이나 마저 작성합시다."
"그럼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면치긴(面治緊)이오."
"면씨는 처음 들어보는데."
"황해에 나오는 면사장이 내 후손이오."
"천마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대리만족 먼치킨, 천마께서 접견을 허락하셨소."
"먼치킨이 아니고 면치긴이오. 이름을 마음대로 바꿔 부르다니 불쾌하군."
천마는 면치긴을 접객당에서 만났다.
"나는 왜 찾은 것이냐?"
"나는 당신이 회귀할 때 떨어져나간 파편이오. 성향이 레벨업 시스템과 맞지 않아 단독으로 떨어져나간 조각인데 대리에서 환생했소. 정확히 서술하면 당신은 회귀자이고 나는 환생자이오."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
"올해 여섯살이오."
"내년이면 미워지겠군. 나를 찾아온 것은 보호를 청하기 위해서이냐?"
면치긴은 천마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쩌렁쩌렁한 웃음소리에 천마각이 통째로 흔들렸다.
"나 면치긴이오. 이젠 이불에 지도를 그리지 않는 나이이니 내 앞가림은 내가 알아서 하오. 내 둘째 아들 돌잔치에 당신을 사회자로 모시려고 찾아왔소."
"레벨업 시스템이 없는 단순한 환생자가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지? 네 이야기를 들려주려무나. 두랍비투(杜蠟非鬪)."
곧 검은대륙에서 태어난 내총관 두랍비투가 나타나서 대나무로 만든 판을 두드려 기이한 음율을 만들어냈다. 면치긴은 저도 모르게 두손을 머리위로 들고 어깨를 들썩였다. 흥이 나자 이야기가 줄줄 뽑혀나왔다.
'나는 천마의 파편, 세상은 내편, 여섯 여자의 남편, 내앞에 서면 모두가 반편'
'내 별호는 개사기, 잘하는건 막패기, 못하는건 지기, 싫어하는건 꼰지르기'
'내 무공은 절단마공, 필살기는 연참신공, 깨달은건 색즉시공, 싫어하는건 동자공'
'태어나서 외쳤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벗어나기 싫었어, 나만의 와이파이존(蛙離婆離存 - 개구리와 할머니가 다 떠나고 홀로 존재하는 쓸쓸함을 나타내는 신조어)'
면치긴은 태어나자마자 두눈을 똑바로 뜨고 두발로 걸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친 후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태어나서 삼일만에 수백년뒤에 천마가 창안한 천마신공을 대성하였다.
보름이 되자 이가 자라났고 두달째에 머리를 묶었다. 반년이 되자 대리에 날고 긴다는 석학들이 면치긴과 대담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 그중 부끄러움에 자결을 택한 선비들도 적지 않다.
돌잔치때 천룡사의 고영대사(枯榮大師)와 무공을 겨뤄 세합만에 패퇴시켰다. 고영대사는 면치긴의 무공을 세초식이나 견식한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삼았다. 두살때 투명두래곤(透明豆來鯤)과 겨루었는데 세상의 모든 곤(鯤)중에서 최강이라 불리우는 투명두래곤이 면치긴에게 싸대기를 맞고 눈물을 흘렸다.
최강의 자리를 내주기 싫었던 투명두래곤은 변신을 시도하여 투명두래붕(鵬)이 되었다. 하지만 두 날개가 면치긴에게 의해 찢어져서 애완용으로 전락했다. 와신상담끝에 면치긴과의 두번의 대결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승천하게 되었으니 천계에서는 붕신(鵬神)의 위명을 떨치게 되었다.
홍안은 박명이고 영웅은 호색이라는 말이 있다. 이쁜 여자는 오래 못살고 영웅은 열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면치긴은 자신의 수명이 최소 이백살은 될 것을 짐작하고 못생긴 여자만 찾아서 아내로 맞이했다. 하지만 이쁘고 명짧은 여자는 세상에 널렸어도 진정으로 못생긴 여자를 찾기는 힘들었다.
일년간 발품을 팔아 천하 곳곳을 뒤져서야 면치긴은 겨우 여섯번의 장가를 갈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여섯살이 되던 해에 둘째의 돌잔치를 맞이할 수 있었다. 레벨업 시스템을 장착한 환생천마의 소문을 듣고 돌잔치 사회자를 맡아달라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너는 고아로 태어났는데 태어나자마자 벌모세수를 받았고 평야에서 살았는데 길을 가다가 낭떠러지에서 여섯번이나 떨어졌다는 말이구나. 평범한 사과인 줄 알고 먹었는데 일갑자의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하늘에서 누군가 한입 베어먹고 떨어뜨린 태초의 사과였고 말이다."
"그렇소. 소문이 퍼져서 요즘 사과장수들이 사과를 팔 때 한입씩 떼어먹고 팔고 있소. 베어문 흔적이 없는 사과는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소."
천마는 면치긴을 셋째 제자로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돌잔치 사회를 봐주었다. 그리하여 천마의 천마제자록에 면치긴이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삼마이 개사기 대리만족 면치긴'
면치긴은 이사형인 사이다와 첫눈에 쿵짝이 맞았다. 그리하여 삼마뒤에 사이다의 이를 넣어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던 것이다.
그뒤로도 천마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여덟의 제자를 받은 후 천마가 아홉번째 제자까지만 받는다고 선포하자 경쟁률이 그야말로 치열하여 천마의 아홉번째 제자를 지원한 자가 무려 두명이나 되었다.
"저는 개연성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빠지면 제대로 된 이야기라고 할 수 없지요."
"가문의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가?"
"홀아버지를 모시고 있습니다. 부친의 함자는 개 막자 장자 쓰십니다."
"어허, 개막장의 아들 개연성이라, 하늘의 조화가 아닐 수 없구나."
"저는 조회수라고 합니다. 모든 이야기의 인기도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죠."
"가문의 구성원은 어떻게 되는가?"
"부친의 함자는 조 작자 범자 쓰십니다."
"조작범의 아들 조회수라, 믿음이 가지 않는구만."
천마는 여러 제자들과 상의를 했다. 개연성이나 조회수는 본인의 조건은 아주 훌륭하지만 가족관계가 조금씩 걸렸다. 특히 사이다와 면치긴은 개연성에게 아주 큰 적의를 드러내며 조회수를 극력 추천했다.
결국 천마는 둘다 제자로 받아들인 후 개연성을 정구마(正九魔)로 하고 조회수를 부구마(副九魔)로 하였다. 개연성과 조회수가 정비례한다는 소문을 들은 천마는 둘에게 양심통(兩心通)을 익히게 했다.
면치긴은 항상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사이다 역시 개연성이 엉망이라는 평가를 지속적으로 들었다. 어려서부터 개연성이 부족하고 엉망이라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박혀있기 때문에 개연성의 일거수일투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사형, 처음 보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를 보고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말하더군요. 개연성이 얼마나 형편없었으면 처음보는 나한테도 그런 불만을 털어놓았겠습니까."
"나도 마찬가지네. 뜬금없이 잘 지내던 사람이 갑자기 개연성이 엉망이라며 연락을 끊더군. 개연성이 얼마나 엉망으로 행동했으면 나한테까지 그러겠는가."
조회수는 개연성과 양심통을 수련하며 마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본인이 발전하려면 이사형과 삼사형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이다와 면치긴 그리고 개연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본인에게 유리한데 개연성이 두 사형과 물과 불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자 한숨만 늘었다.
그러던 어느날 천마가 자리를 비운사이 끝내 사달이 났다. 개연성이 면치긴과 사이다에게 지적질을 하자 사이다는 개연성이 어질지 못하고(仁) 예의가 없으며(禮) 배움이 부족하고(知) 믿음이 약하다며(信) 네가지가 없다고 비난했다.
곧 고성이 오가다가 무림인답게 손발을 섞게 되었다. 점점 손에 힘이 실리더니 힘조절을 못한 면치긴과 사이다가 그만 개연성을 죽여버렸다. 양심통의 연결이 끊어지자 조회수가 이성을 잃고 폭발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천마는 제자 모두를 엄벌했다. 보름달을 쳐다보며 쓸쓸하게 혼자 술을 마시던 천마는 붓을 들어 천마제자록의 마지막 글귀를 적었다.
'고(故)구마(九魔) 개연성을 먼치킨과 사이다가 죽이자 조회수가 폭발했다.'
후세의 사학가들은 천마가 면치긴을 왜 먼치킨이라고 적었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일부는 술에 취해서 잘못 쓴 것이라 주장했지만 대부분은 만독불침의 천마가 술에 취할리 없다면서 일부러 저렇게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먼치킨은 모든것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자를 묘사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 작가의말
작은암자님 추천 감사드립니다.
천마제자록은 잠시 멈추겠습니다. 더 재밌는 발상이 생기면 그때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외전은 천마의 환생입니다. 역시 본문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막장을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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