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마대전
천살이 소림의 복마전에 떨어진 후 주체는 편한 마음으로 국사를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진 일 때문에 다시 밤잠이 잘 오지 않았다. 지휘검사에서 지휘동지로 승급한 금의위 정보책임자는 어깨를 쫙 펴고 주체에게 보고를 올렸다. 보고하는 자가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보고를 듣는 황제의 기분이 더 나빠진다.
"우선 무림맹과 마교로부터 입수한 공통적인 정보에 따르면 현재 강호를 어지럽히는 천마신공은 천살이 만들어낸 것이 확실합니다. 이는 저희 금의위가 자체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여 얻어낸 결론과 일치합니다. 현재 천살은 소림의 복마전에 몸을 숨기고 시기가 성숙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복마전으로 고수들을 파견해서 천살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화포를 근거리에서 두방이나 맞고도 살아난 자입니다. 그리고 남궁천을 비롯한 천하에서 서른안에 드는 고수 일곱명의 연수공격을 막아내고 두명을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을 파고 기다리면 몰라도 진을 치고 있을 복마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크게 효과를 보기 힘듭니다."
"정녕 천살 그자를 처단할 방법이 없는 것인가?"
"처단할 방법을 찾아도 문제입니다. 천살마성이 수명을 못 채우고 죽으면 천하가 환란에 빠집니다. 천살마성이 죽은 곳을 중심으로 하기에 소림에서 천살이 죽어버리면 대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 동창의 대표로 참석한 정화가 입을 열었다. 정난지변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정화는 주체의 심복중의 심복이다.
"소신이 대리 출신인데 코끼리 몸에 한방울만 튀어도 일각안에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극독이 있습니다. 남요몽환(嵐謠夢幻)이라고 만들어내는데 수십년이 걸리는 독인데 충분한 식량을 대가로 주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이 남요몽환을 남요와 몽환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몽환만 사용하여 상대를 혼미상태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천살이라는 자를 몽환으로 기절시킨 뒤 배에 태워 먼 서역으로 데려다가 남요의 독으로 중독시켜 죽이면 됩니다."
"그 독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도 서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혼미상태에 빠지게 할 수 있겠느냐?"
"최대한 많은 양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빠른 배를 만들어야 하고 미리 빠른 길을 탐색해야 합니다. 맡겨 주신다면 제가 두가지 일을 전부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너에게 전권을 줄테니 국내의 조선 기술자들뿐 아니라 안남이나 조선의 기술자들도 원하는대로 가져다 쓰거라. 성공만 한다면 너를 왕에 봉하고 자손만대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
비록 정화는 거세를 했지만 마씨 가문의 다른 형제들이 계속 대를 이어갈 것이다. 정화는 기쁜 마음으로 황제에게 절을 올리고 물러났다. 대리에 있는 가주에게 남요몽환을 있는대로 구해달라는 편지를 써야 하고 사천과 귀주 및 호광의 땅에서 식량을 모아서 가문에 보내야 한다.
"최근에 있었던 마인이 난동을 부린 사건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서안은 매일 드나드는 사람이 많기에 성문에서 검문을 자세히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인은 행색이 초라하여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머리가 난발이 되고 옷도 여기저기 찢어진 실혼인을 발견하고 불러세웠다. 하지만 실혼인은 자신을 부르는 것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걸어들어갔다. 병사들이 두 팔을 잡았지만 실혼인은 그대로 두명의 병사를 질질 끌고 앞으로 전진했다.
성문을 책임지는 수비대장은 그늘진 곳에 의자를 놓고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다 소란에 잠이 깨자 기분이 나빠졌다. 행색이 초라한 미친놈 하나 때문에 단잠에서 깨었다는 생각에 허리춤의 검을 뽑아 실혼인을 향해 휘둘렀다.
내공을 익히지 않았지만 타고난 용력이 있기에 검은 빠른 속도로 실혼인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일부 심약한 자들이 손으로 눈을 가리거나 뒤돌아설 때 실혼인이 팔을 들어 검을 막았다. 검에서 전해져오는 강한 반탄력에 수비대장은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실혼인은 자신을 공격한 수비대장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아무런 초식도 아니지만 속도가 빠르고 실린 힘이 강해서 수비대장은 머리가 터져버렸다. 피를 보고 흥분한 실혼인은 바닥에 쓰러진 수비대장의 몸을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자 구경하던 자들이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갔다.
성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도망가면 군법으로 벌을 받는다. 대부분 병사들은 겁에 질려 어쩔바를 몰라했지만 무리중에는 항상 좀 더 대담한 자가 있는 법이다. 대부분 병사들은 곤봉을 든 반면 급이 조금 높은 병사 둘은 창을 들고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수비대장의 시체를 후려치는데 열중하고 있는 실혼인의 등뒤에서 목덜미를 향해 힘껏 찔러갔다.
실혼인은 등뒤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몸을 젖혀 찌르기를 피하고 곧바로 일어섰다. 붉게 충혈된 두눈과 입가에서 질질 흘러나오는 침이 병사들의 투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병사 한명이 곤봉을 버리고 도망치자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갔다.
실혼인은 도망가는 병사들을 뒤쫓아가서 목숨을 취했다. 그렇게 십수명의 목숨을 취한 실혼인은 동문을 향해 달렸다. 미처 서문의 소식이 동문에 전해지기도 전에 실혼인은 동문을 지나 계속 달렸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들은 서안 부윤은 군대를 파견하고 가까이 있는 종남파에 파발마를 보냈다.
실혼인이 산간지역에 들어서자 군대는 더이상 뒤쫓지 못했다. 평지는 말의 힘을 빌려 쫓을 수 있지만 말이 달릴 수 없는 곳에 들어서자 체력부족으로 실혼인의 뒤를 쫓을 수 없었다. 무공을 익힌 무장 두명이 종남파와 함께 실혼인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조작된 흔적들이 이들의 추적을 방해했다. 겨우 진위를 구분해서 흔적을 쫓아갔을 때는 실혼인의 흔적이 사라져버렸다. 흔적이 끊긴 곳에서는 흥건히 젖은 땅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없었다.
"저희 금의위는 누군가 조직적으로 마인의 추적을 방해했다는 점을 놓치지 않고 광범위한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인의 흔적을 되짚어 갔습니다. 그래서 몇개의 단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보고해야 할 내용들은 전부 암담한 것들이다. 이럴때는 가장 나쁜 소식을 우선 전한 뒤 금의위가 어떠한 노력을 했고 어떤 성과를 얻어냈는지 강조해야 한다. 사람은 나쁜일이 닥칠때면 상황이 나아지기를,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작은 성과를 얻어도 큰 공을 세운 것처럼 느껴진다.
"우선 서안에서 마교의 무리들이 나타났습니다. 말투 자체가 그쪽 억양이 심했고 마인에 대해 캐묻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방해작업을 한 자들하고는 다른 무리 같았습니다."
"그리고 추적전문가들이 마인의 흔적을 되짚어 간 곳에서 수많은 혈흔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서 저희는 마인이 이들에 의해 사육되고 있었고 뭔가 실수를 해서 마인이 탈출했다는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었습니다."
지휘동지의 목소리에는 확신과 자신감이 서려있었다. 이는 보고를 듣는 주체의 마음도 안정을 되찾아가게 만들었다.
"마교의 무리의 흔적은 추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미세했습니다. 이는 전문가의 손길이 닿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마인의 탈출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원래 마인을 가둬두었던 장원에서 다른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한 흔적을 발견했고 그 흔적을 따라갔습니다."
잠깐 숨을 쉬며 긴장감을 준 지휘동지는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 너무 길게 시간을 끌면 오히려 반감만 사게 된다.
"놀랍게도 우리는 그곳에서 마인으로 추정되는 자들을 사육하는 장면을 발견했습니다. 정확하게 가늠이 되지 않지만 최소 십오명에서 많게는 서른 정도로 추측이 됩니다. 금의위에서는 높은 경각심을 가지고 전국각지에서 이러한 무리들이 더 있는지 수색을 진행했고 새로운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귀주에서 사이비로 추정되는 도사의 무리가 나타났는데 병치료에 대단한 능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귀주의 대부족들마다 이들 덕분에 목숨을 구한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자들이 자신들을 혈선이라 칭하며 무공수련을 할 때 몸을 짐승피에 담근다고 합니다. 마인과 기세가 비슷하지만 이성이 존재하는 듯 하다는 분석입니다."
주체의 얼굴에 근심이 어린것을 확인했다. 이 기회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야 한다. 금의위의 최고 권력자는 지휘사이고 그 밑에 지휘동지 두명이 있다. 원래 지휘검사이던 정보 책임자가 지휘동지가 되면서 이제는 지휘동지가 세명이 되었다. 이들중 하나가 노쇠한 지휘사를 대신해 지휘사가 되고 남은 둘은 평생 지휘동지로 남을 것이다.
"우선 감숙지역에서 마인을 육성하는 자들은 마교 출신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귀주에서 발견한 혈선(血仙)이라 자처하는 도사들도 마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작자들입니다. 이들의 사부는 괴령이라는 자로 마교 출신이고 제자들은 비록 마교출신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동안 마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대담한 추측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조금씩 있었습니다. 한선후와 천살의 반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천살은 한선후의 제자이고 사위이며 마교를 이을 소교주입니다. 그런 둘이 이렇게 쉽게 반목한다는 것 자체가 의심이 갑니다."
"그리고 천살은 남궁천을 비롯한 정파의 고수 일곱을 패퇴시켰습니다. 약관이 갓 넘은 자가 그렇게 강한 무위를 보유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물론 금의위가 분석해보니 가능은 합니다. 영약을 밥먹듯 먹고 명사의 지도하에 어린 나이부터 무공을 익힌다면 불가능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뻔합니다. 바로 한선후가 천살에게 무수히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끈끈하다 못해 친부자보다 더 가까워야 하는데 너무 쉽게 반목을 했습니다."
지휘동지는 이 추측을 자신이 했다고 강조했다. 이는 주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주기 위해서이다. 어차피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황제의 근심을 덜어낼 수만 있다면 변방에 가서 수만의 적군의 목을 베는 것보다 더 큰 공로이다.
"만약 천살과 한선후의 반목이 가짜라면 천살이 복마동에서 한선후의 목숨을 취하지 않은 것과 본인이 알아서 복마전에 뛰어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한선후가 복마동에서 눈 하나 잃은 것으로 제 추측이 부질없다 지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오히려 한선후의 야심이 매우 크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청해호에서 첩자가 전해온 소식인데 한선후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번이나 강호일통과 황위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철천지 원수인 천살이 살아있는데 마음 편하게 강호일통과 황위에 대한 야욕을 불태운다는 것은 무언가 믿는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선후와 천살이 손잡고 연극을 펼친 것이라 확신합니다."
주체는 지휘동지의 말에 무언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한선후와 천살이 손잡았다고 하는게 가장 설득력있는 해석이긴 하다.
"그래서 네 생각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세력이 없는 개인은 아무것도 해낼 수 없습니다. 마교가 마인을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리고 무림맹과 서무림맹에게 마교를 제거하라 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귀주의 마인들을 생포하여 정보를 캐내야 합니다. 감숙에 있는 마인들도 확보해서 그 약점을 파내야 합니다. 마인들의 약점이 천살과 한선후의 약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신다면 일말의 차질도 없이 진행하겠습니다."
- 작가의말
명나라의 정화가 일곱번이나 함대를 이끌고 서양으로 향했습니다. 따뜻한 밥 먹고 무슨 할짓이 없다고 그랬나 했더니 천살 때문이었군요. 천살의 죄가 참으로 크고도 큽니다.
그나저나 사장로는 교주가 사고쳐서 천하무림의 협공을 당할까봐 전전긍긍하더니 결국은 본인이 사고를 쳐버리네요. 능력을 벗어나는 일에 욕심을 부리면 항상 파탄이 생깁니다. 저는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 다행입니다. 그저 김태희 정도의 여자랑 결혼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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