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장육수
다음날 유씨 삼형제는 옥쇄와전의 초식으로 거듭 공격했으나 대부분 공격이 막히고 말았다. 천사성은 셋과의 차륜대결속에서 옥쇄와전의 초식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힘들것이 분명한데도 꼿꼿하게 서있는 천사성을 뒤로하고 삼형제는 연화봉으로 향했다.
조자운은 셋의 표정만 보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음을 알아냈다. 삼형제도 저녁을 먹은 후 묵묵히 수련에 열중했다. 조자운은 셋이 어느정도 익숙하게 초식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천사성이 저 초식을 버텨냈다는 것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최근 매화검에서 깨달음을 얻어 하루종일 사숙에게 잡혀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다. 직접 두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만 무공수련을 게을리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된다. 다음대 장문이 되려면 작은 오점이라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조자운은 셋의 무공초식을 좀 더 다듬어주고 격려의 말도 전한 후 떠났다. 삼형제는 서로 대화도 없이 묵묵히 초식수련만 해나갔다. 천사성과의 대련에서 자격지심이 생겨 풀이 죽은 것이다.
이튿날 양옥불전의 초식으로 천사성을 몇번이나 쓰러뜨렸다. 하지만 천사성은 오래 누워있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대결에 임했다. 양옥불전의 초식은 옥쇄와전보다 훨씬 어려워 초식이 어긋날때는 일반 공격과 다름이 없었다. 덕분에 천사성은 강한 공격을 몇번 받았지만 전체적으로는 전날보다 훨씬 덜 맞았다.
밤에 잠자리에 든 천사성은 악몽을 꾸고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간밤에 유씨 삼형제의 팔다리를 뜯어내고 몸통을 씹어먹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땀으로 푹 젖은 이불을 밖의 나무가지에 널어놓은 후 동자공의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이 끝나자 뒤숭숭하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내력이 실린 공격으로 인해 천살성의 기운이 조금 움직인 것이지만 자신이 천살지체인 것도 모르는 천사성으로서는 그 영문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후 유씨 삼형제는 파옥권의 두 초식을 섞어서 천사성을 상대했고 천사성은 매일 멍투성이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맞으면서도 반격을 하지 않고 수비에만 열중했다. 보름정도 시간이 지나자 유백도 천사성의 몸에 주먹을 몇번 대지 못했다.
조자운은 유씨 삼형제의 말을 듣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천사성이 화산의 제자가 되면 장문인자리와 호매령 둘다 천사성의 차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조자운은 이를 악물고 셋에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둘이나 셋이 연수하여 압박해라. 그리고 파옥권 최고의 절초인 옥석구분(玉石俱焚)을 가르쳐줄테니 아꼈다가 익숙해진 다음에 사용하거라."
옥석구분은 옥과 돌이 다 불탄다는 뜻이다. 옥은 옥쇄를 의미하고 석은 왕궁을 의미하기 때문에 왕궁이 불에 타서 하나의 왕조가 끝남을 나타내는 참담한 단어이다. 글의 의미 그대로 옥석구분은 권에 내공을 실어 상대의 내외부를 동시에 공격하는 악랄한 초식이다.
이튿날 유백은 천사성의 무위가 높아져서 이대로는 수련효과가 없다며 유중과 유숙이 연수해서 천사성과 대결할 것을 제안했다. 천사성은 잡서에서 무인들은 자존심이 강해 일대일의 대결을 고집한다고 배웠는데 유씨 삼형제가 자존심도 버리고 이대일의 대결을 요청하자 자신이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사실 천사성은 이들이 손속에 사정을 전혀 두지 않는것을 보고 자신을 구타하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려는 욕심에 모른척 하며 이들의 장단에 맞춰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대일을 제안할 정도로 수련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오해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보름간 삼형제의 무공은 큰 발전을 보였다.
삼형제가 천사성의 생각을 알았으면 기가 막혀서 피를 토하고 쓰러졌을 것이다. 무공을 전혀 수련한적이 없는 자가 어려서부터 무공수련을 해온 삼형제를 보름만에 연수하게 만들어놓고는 삼형제가 보름간 큰 발전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럼 보름만에 이들을 연수하게 만든 천사성의 발전은 얼마나 눈부시냔 말이다.
다행히 독심술을 익히지 않은 덕분에 삼형제는 평온한 마음으로 대련에 임할 수 있었다. 천사성은 수련에 열중하는 삼형제에게 감동하여 제대로 된 실력을 보일 작정이었지만 네개의 주먹이 번갈아 공격해오자 초식이고 뭐고 막는데 급급했다. 천사성이 낭패의 모습을 보이자 유백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유숙이 지치면 유백이 교체로 올라가고 다시 유중이 지치면 유숙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삼형제는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았으나 천사성은 여전히 꿋꿋하게 버텼다. 얻어맞기는 엄청 얻어맞았으나 보름간 맞으면서 덜 아프게 맞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삼형제가 돌아가자 조자운은 다그쳐 물었다.
"오늘은 어찌 되었느냐?"
"둘이 연수를 했는데 그자는 전혀 흉성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자가 천살성인건 확실한가요?"
"태상장로님의 말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를 상대로 삼인연수를 수련해서 그자에게 써먹어라."
셋이 연수를 하자 검을 들지 않은 조자운은 여기저기 허점을 보였다. 삼형제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기에 다행이지 천사성을 상대할 때처럼 했으면 조자운도 바닥을 굴렀을 것이다. 조자운을 상대하면서 셋이 연수를 하면 어떻게 싸워야 할지 삼형제는 깨달아 나갔다.
비록 조자운은 검을 주로 익히기는 하지만 파옥권의 성취도 낮은 것이 아니다. 삼형제를 상대로 손발이 어지러워지자 이정도면 무공을 배운적 없는 천사성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삼인연수의 수련을 어느정도 한 뒤 옥석구분의 초식을 수련시켰다.
그뒤로 며칠간 조자운에게는 삼인연수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실제로 이인연수로 천사성을 상대했다. 이인연수에도 천사성은 대처를 못하고 흠씬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삼인연수를 하지 않은 것은 유씨 삼형제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조자운은 자신의 예상과 너무나도 어긋나자 가슴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겨우 사숙에게 반나절의 말미를 얻어낸 조자운은 유씨 삼형제와 함께 효자봉으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몸을 숨긴 조자운은 유씨 삼형제와 천사성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유씨 삼형제도 조자운이 지켜보자 어쩔수 없이 삼인연수를 했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 때문에 배후에서 습격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둘이 동시에 공격한 후 한명이 빠지고 또 둘이 동시에 공격하는 식으로 천사성을 핍박했다. 천사성은 처음과는 다르게 둘의 공격을 어느정도 막아내고 일부는 몸으로 때웠다.
조자운은 천사성이 어설픈 몸짓으로 셋의 연수합격을 막아내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분명 제대로 적중했는데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설픈 몸짓은 분명 무공을 모르는 문외한의 몸짓이지만 주먹에 적중당할 그 찰나의 움직임은 숙련된 자의 움직임과 같았다.
천사성이 버틸수 있는 것은 무의미한 시간을 빠르게 보내고 유의미한 시간을 길게 보내라던 서장로의 말에서 얻은 깨달음 덕분이다. 어차피 권이 몸에 적중하는 순간만 유의미하고 그전의 허초나 변초는 다 무의미한 것이다. 상대의 무의미한 순간에 당황하지 않고 상대의 유의미한 순간에 움직여 그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유씨 삼형제가 전력을 다했지만 천사성이 버티는 것을 보고 조자운은 전음을 날렸다.
'배후공격을 왜 안하는 것이냐. 기왕 시작한 것을 제대로 하거라.'
조자운의 전음을 받은 유백은 이를 악물고 두 동생에게 눈짓했다. 조금 주춤했지만 셋은 곳 삼각형을 이루며 천사성을 포위했다. 천사성을 포함한 넷은 잠깐 쉬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숨을 고르고 난 뒤 셋은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다. 배후의 공격도 유념해야 하기 때문에 천사성은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몸 여기저기가 가격당했다. 천사성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삼형제는 동시에 양옥불전의 초식을 정확히 시전했다.
등과 명치 그리고 옆구리를 동시에 가격당한 천사성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삼형제가 쓰러진 천사성을 계속 공격해야 하는지 망설이는 동안 뾰족한 목소리가 터졌다.
"당신들 무공도 모르는 사람을 구타하는 것인가요? 그것도 셋이서 한명을요?"
호매령의 화난 얼굴을 보자 유백은 다리가 풀릴 뻔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호매령을 설득해야 하기에 황급히 포권을 하며 말했다.
"삼사저에게 인사 드립니다. 사실 저희 셋은 천공자의 무공수련을 돕는 것입니다. 미리 다 합의하고 진행한 대결이며 방금은 저희 셋이 연수에 서툴러서 동시에 공격을 적중시켜 생긴 일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눈먼 사람으로 아는군요. 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그런 변명이 통하리라 생각하나요?"
천사성은 속이 답답했다. 가슴과 뱃속에 누군가 불을 지피기라도 한 것처럼 뜨겁고 답답했다. 하지만 유씨 삼형제에게서 더 많은 무공을 도둑질해 배우기 위해서는 셋의 편을 들어주어야 한다.
억지로 상반신을 일으킨 천사성이 입을 열어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욕지기가 치밀어 오르더니 피를 한웅큼 토해냈다. 하지만 곧 뒤집히는 속과 피비린내때문에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말을 하지 못했다.
"세분은 연화봉으로 돌아가서 오늘 일에 대한 조사와 처분을 받을 준비를 하세요. 천공자는 제가 돌볼게요."
유백은 서릿발같은 호매령의 기세에 더이상 대꾸도 못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연화봉으로 향하는 한걸음 한걸음이 천근과도 같았다. 조자운은 호매령이 천사성의 편을 들어주고 천사성을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것을 보고 질투심이 끝모르게 불타올랐다.
연화봉에 돌아간 유씨 삼형제는 조자운을 애타게 기다렸다. 유일한 구명줄인 조자운이 나타나자 셋은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조자운은 주변을 살핀 후 나직이 속삭였다.
"너희가 떠난 후 그자의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흉성을 나타내었다. 지금 너희는 기호지세이다. 여기서 끝내면 너희들만 손해를 볼 뿐이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거라."
"오늘은 내가 어떻게든 삼사매를 붙잡고 사숙에게 이르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내일 오전 너희셋은 나와 함께 효자봉에 가서 그자가 흉성을 드러낼 때까지 패는 것이다. 그자가 흉성을 드러내면 내가 처단하고 너희를 위해 증인이 되어주마."
- 작가의말
雙掌六手, 두 손과 여섯 손. 주인공 버프가 너무 심한가요? 제 소설의 주인공들은 항상 먼치킨이 아니라 조금씩 성장을 해와서 이런 먼치킨 주인공은 생소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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