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사이다편
홍삼액은 고려를 떠나는 배에 서서 부두에서 손을 흔드는 큰형과 둘째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홍씨 가문은 고려에서도 알아주는 명문가이다. 이등홍씨는 안동의 김씨, 경주의 김씨를 비롯한 명문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가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무슨 저주를 받았는지 항상 이등만 하고 일등을 배출하지 못했다. 삼등이라도 하면 모르겠으나 귀신이 붙었는지 항상 이등만 했다. 이 운명을 타파하기 위해 집안의 셋째인 홍삼액이 고려를 떠나 원으로 향하는 것이다.
첫째인 홍일점은 가문을 이어야 하고 둘째인 홍이포는 둘째라서 실격이다. 홍삼액은 원으로 향했지만 곧 전국에 반란이 일어나고 주원장이 명나라를 세웠다. 주원장이 국호를 홍무라고 정하는 바람에 홍씨 성을 사씨로 바꾸어야 했다.
홍삼액은 원에 와서 사씨성을 가진 부인을 맞이했다. 그렇게 낳은 첫째아들에게 진호(珍浩)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맨날 이등만 하자 유명한 무당을 불러 점을 봤는데 일등과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이름이 진호라고 했다. 홍삼액이 고려를 떠날 때 아비가 아이의 이름을 진호로 지으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지만 일등을 해야만 하는 부담을 진호는 견뎌내지 못했다. 그래서 열여섯 되는 해에 가출을 했다. 어쩔수없이 둘째가 가문을 잇게 되었다. 둘째가 성가하여 아들을 낳자 홍삼액은 큰손자의 이름을 진호라고 지었다. 하지만 역시 일등의 부담에 짓눌려 진호는 출가를 하여 중이 되었다.
둘째손자가 가문을 이을때는 홍씨 성을 사씨로 바꾼 뒤이다. 둘째손자는 한번에 쌍둥이를 낳았다. 첫번째 진호가 가출(家出)을 하고 두번째 진호는 출가(出家)를 하였다. 가문을 버리고 세상에서 도망친 둘을 경계하기 위해 쌍둥이형의 이름을 도세자(逃世者 - 세상에서 도망친 자)라고 지었다. 제발 이번에는 이름과 반대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쌍둥이 동생의 이름은 이고(二高)라고 지었다. 이 아이가 항상 두번째로 높아 도세자가 일등을 하기 바라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사삼액의 기대아래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하지만 이등의 저주를 받았는지 첫째인 도세자는 출중한 재능을 가졌으나 심리적으로 너무 취약했다. 잦은 일탈로 부친과 마찰을 빚던 도세자는 결국 사삼액의 응징을 받았다. 기개있게 개기던 사도세자는 개처럼 맞고 바닥을 기었다. 사삼액은 가전무공인 저구신공(詛狗神功)의 절초 저구돌진(詛狗突進)으로 사도세자를 두들겨팼다.
저구신공은 저주받은 개라는 이름과 다르게 매우 강한 무공이다. 풍로토수(風路吐水)와 태란신공(胎卵神功)과 더불어 별세계의 삼대신공을 꼽히는 무공으로 곧 환갑이 지난 사삼액이 한창나이인 사도세자를 마음껏 팰 수 있게 하였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미친놈에겐 매가 약이다라는 가훈을 철석같이 믿은 사삼액은 증손자에게 약을 아낌없이 주었다. 하지만 약이 과하면 독이 된다고 사도세자는 거식증을 앓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화가 치밀어오른 사삼액은 둘째인 사이고의 이름을 사이비(史二非)로 바꾸었다. 너는 둘째가 아닌 첫째라는 뜻으로 사이비가 가문의 숙원을 이루어주기를 바랐다. 둘째로 태어나서 그런지 사이비로 이름을 바꾼 사이고는 아무 탈없이 무럭무럭 잘 자랐다.
열여섯의 나이에 나라의 과거시험에 응시를 했다. 사삼액은 사이비에게 일등을 못해도 되니 제발 이등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과거시험장에서 답안지를 완성한 사이비는 이등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한글자를 틀리게 적었다.
하지만 결과가 나오자 사씨 가문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사이비가 방안(榜眼)을 한 것이다. 일등이 장원이고 이등이 방안이며 삼등이 탐화이다. 일부러 이등이 하기 싫어 한글자 틀리게 적었는데 그것때문에 장원을 못하고 방안을 한 것이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러 왔던 역관은 슬피우는 사씨가문의 사람들때문에 사례금도 못받고 머쓱하게 물러났다.
조정의 부름이 있었지만 사삼액의 고집으로 거절했다. 이등으로 얻은 관직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씨가문만의 기개이다. 글공부로는 일등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한 사이비는 가문의 저구신공의 수련에 집중했다.
저구신공의 깨달음을 얻어 신공을 대성한 후 강호로 나갔다. 백번의 비무행에 한번도 지지 않자 사이비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천마라는 자가 천하제일을 자처한다는 말을 듣고 천마를 찾아갔다.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이비의 저구신공에 천마는 오행살(五行殺)로 대응했다. 오행살중의 금살신공(金殺神功 - 사투리 심한 분들은 끔살신공이라 읽습니다)으로 일초만에 사이비를 쓰러뜨렸다.
몸무게가 이백근이 넘어야 배울수 있다는 목살신공이나 원거리 공격무공인 화살신공은 천마가 익히지 않았다. 토살신공은 수련용이고 수살신공은 치료용 신공이다. 그중 화살신공은 천마의 제자가 된 사이비의 후손이 조선으로 돌아가 널리 퍼뜨렸다고 한다.
사이비가 애처롭게 울자 천마는 그 연유를 물었다. 사이비는 조상때부터 얽힌 이등에 관한 저주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천마는 사이비를 위안했다.
"너는 모를수도 있지만 이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다 일등이기 때문에 태어나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한번은 일등을 했다는 것이니 상심하지 말거라."
"저는 쌍둥이 둘째인데요."
말문이 막힌 천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토록 운명이 기구한 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한참뒤 천마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유일무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유이무일이 있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구나."
사이비는 천마에게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빌었다. 바짓단을 잡는 사이비에게 천마가 말했다.
"내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너는 도사나 중 등 종교와 관련된 직업에 적합하다. 나 천마의 제자로는 적합하지 않다."
하지만 사이비는 천마의 바지를 잡고 놓지 않았다. 급기야 천마의 바짓단에 콧물을 흘렸다. 사이비의 정성에 감동한 천마는 사이비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너는 내가 두번째로 받는 제자이다. 그리고 운명에 슬퍼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여라.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그 운명에 진정으로 맞설수 있다.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지 않는건 맞서는 것이 아니라 도피일 뿐이다."
"네 이름을 사이다(史二多)라고 바꿔주겠다. 항상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고 인정해라. 그리고 그 운명에 맞설 용기를 키우거라."
그리하여 천마제자록에 이마 유이무일 사이다가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천마의 가르침덕에 저구돌진을 제외하고도 비룡공습(飛龍空襲), 여왕저주(餘汪詛呪), 수답려거(手踏驢擧 - 사투리 심한 분들은 스탑러커라고 읽습니다) 등 초식을 개발해냈다.
사이다가 직접 창안한 무공을 살피던 천마는 태란신공의 번거려시(繁擧麗弑 - 사투리 심한 분들은 벙커러시라고 읽습니다)의 초식을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특히 최강의 삼연번(三連繁) 초식에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였다.
사이다는 천마가 이미 인간의 경지를 초월했음을 알고 조선의 무당이 진호라는 이름이 저주를 깰 수 있다고 했는데 가능한지 물었다. 천마는 며칠간 천기를 바라보더니 이마를 찌푸렸다.
"너희는 성을 사씨로 바꾸었기에 진호라는 이름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조선에 남은 홍씨가문이라면 진호라는 이름이 최고의 이름이기는 하다."
"다만 이름에 빛이 들어간 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빛날 요(耀)나 불꽃 환(煥)이 들어간 자를 피해야 할 것이다. 저 두글자를 다 가지고 있는 자를 만나면 평생 저주를 깨기 힘들것 같구나."
- 작가의말
천마의 아홉제자중 첫째, 둘째, 여섯째는 확고한 설정이 있습니다. 나머지 제자들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 가진 분 계시면 댓글로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설정되어 있지만 성에 차지않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몇번째 제자, 별호, 이름 이런식으로 세가지만 적어주시면 됩니다. 제 설정보다 나으면 채택하도록 하겠습니다. 외전은 10+1로 11의 배수편마다 하나씩 쓸 예정입니다. 물론 본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이니 그저 재미로만 즐겨주십시오. 외전은 막장을 탈 예정이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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