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등선
무당에서 시작하여 천하로 퍼진 소문에 사람들은 두번 놀랐다. 명나라 황실과 고관대작들로부터 시작하여 뒷골목의 좀도둑들까지 몇달간 싫증을 내지 않고 매일같이 소문의 진위에 대해 의논했다.
사람들을 첫번째로 놀라게 한 것은 무당의 장삼풍이 우화등선을 했다는 사실이다. 드물게 의심하는 자들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믿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장삼풍은 거의 살아있는 신선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소문이 퍼지고 나서 무당을 찾는 향배객이 왕년에 비해 몇배로 늘었다.
두번째 소문은 의논이 분분했다. 무당에서 장삼풍이 우화한 곳을 우화동(羽化洞)이라 이름 짓고 아무나 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삼풍은 우화등선하기 전에 바닥에 글자 다섯개를 적었다고 한다.
천살성하범(天煞星下凡 - 천살성이 땅에 내린다) 이라는 다섯 글자는 대다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믿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역사에 천살성이 나타날 때마다 천하는 환란에 빠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거짓이라 매도했다.
하지만 황실과 일부 대문파에서는 직접 우화동에서 글귀를 보았다. 단단한 바위에 거침이 없이 가볍게 남긴듯한 다섯 글자는 소림의 제일고수인 원굉대사도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바위에 글을 쓰는 정도야 가능하지만 붓으로 종이에 쓴 것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다섯글자를 손가락 한번도 떼지 않고 단번에 써내려갔는데 원각대사는 장삼풍을 빼면 세상 누구도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래서 황실은 한편으로 천살성 이야기가 거짓임을 주장하면서 암암리에 사람들을 풀어 천살성을 찾기 시작했다.
화산의 장로 서창훈은 장삼풍보다 한배분 낮다. 소림의 원각대사보다도 한배분 높은 서창훈은 나이가 여든이 훌쩍 넘었다. 평생 장삼풍의 그늘에서 지낸 서창훈은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삼풍자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나를 자신의 그늘에 가두려고 하는구나. 하지만 천하창생을 위해서라면 내 기꺼이 그 그늘에서 숨을 거두리다."
다른 문파에서 천살성을 찾는다고 천하를 뒤집고 다닐 때 화산파만은 조용했다. 화산의 장문인보다 두 배분이나 높은 서장로가 자신에게 맡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무당에 장삼풍이 있다면 화산에 서창훈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서장로의 권위가 대단했다.
어느하루 서장로는 때가 되었다면서 장문에게 칠칠 사십구일의 기천제(祈天祭)를 지낼 것을 요구했다. 목욕재계를 하고 사십구일간 기천제를 지낸 서장로는 홀로 산을 내려가더니 천사성(千沙城) 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를 데려왔다.
천사성은 서장로가 지어준 이름이다. 사성은 모래성이라는 뜻으로 천살성의 기운이 모래성처럼 무너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었다. 아이의 원래 이름은 천살(千薩)인데 서장로가 아이를 거두면서 이름이 불길하다 하여 바꾼 것이다.
천살은 불행한 행운아이다. 불행하다고 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고 숙부집에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행운아라고 하는 것은 마을사람들이 전부 죽고 개나 닭까지 몰살당해버린 돌림병에서 홀로 살아남았고 마을을 불태우기 전에 기절한채로 사람들에게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일찍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린 아이에게는 이름을 지어주지 않는다. 저승사자가 아이를 데려가려면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이름이 없으니 데려가지 못한다는 미신 때문이다. 숙부는 아이가 홀로 살아남은 것이 그 때문이라 생각했다.
숙부는 결혼한지 몇해나 되는데 자식이 없다. 그래서 아이에게 천살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살은 관세음보살의 살이다. 아이의 질긴 목숨과 보살의 돌봄으로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과연 숙부의 생각이 맞았는지 천살을 입양한 후 일년도 안 되어 천칠(千七)의 아내에게 태기가 들어섰다. 이 모든게 천살의 덕분이라 생각한 숙부는 천살을 친자식처럼 아꼈다. 아이가 태어난 후 그 애정이 덜해졌지만 구박이나 학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사단이 일어난 것은 아기가 태어난지 반년정도 되었을 때이다. 천칠 부부가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어린 천살이 맨발바람으로 달려왔다. 아기를 돌보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천살이 맨발바람으로 달려오자 두 부부는 깜짝 놀랐다.
"의부, 아기가 아파요. 막 얼굴이 퍼래요."
천칠이 넘어지고 구르고 하면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의원이 와 있었다. 천살이 이웃에게 부탁해서 의원을 불러달라 말한 후 천칠에게 알리러 갔던 것이다. 의원의 빠른 조치에 의해 아기의 얼굴색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천칠은 의원에게 넉넉히 사례하고 이웃에게도 감사를 거듭 표했다. 워낙 사는 사람이 적은 동네라 마을사람들 모두 몰려왔다. 아기가 다시 살아나자 사람들은 하늘에 감사를 표하며 분분히 흩어졌다. 하지만 나이 예순이 넘어 노망난 영감이라 불리는 장노인이 떠나면서 한마디 했다.
"쯧쯧, 기세를 보니 꼭 한놈을 데려가고야 성이 풀릴 것 같구만."
"이보게, 장노인. 무슨 망발이오. 대체 무슨 뜻인지 똑바로 말하시오."
천칠이 화를 내며 장노인의 멱살을 잡았지만 장노인은 곧바로 눈이 풀려서 헤실거리며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예순이 넘은 노인에 노망난 늙은이라 차마 주먹질을 못하고 곱게보낸 천칠은 억지로 화를 가라앉혔다.
아기는 언제 아팠냐는 듯이 젖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 아기와 천살이 고른 숨소리를 내는 것을 확인한 천칠의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장노인의 말이 가슴에 걸리오. 하나를 데려가려 하는데 천살이 목숨이 질기니 우리 아기를 데려갈 것 같다는 말이오."
천칠은 아내의 말에 벌컥 화를 냈다.
"천살은 내 조카가 아니라 우리 자식이다. 똑같은 자식인데 그런 소리 하는거 아니다. 한번만 더 헛소리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천칠의 아내는 굴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배아파 낳은 아이와 입양한 아이가 같을 수 없다. 더군다나 천칠의 조카이지 자신과는 남이나 다름없다.
"그럼 갑자기 아프다가 의원이 손 좀 봤다고 갑자기 나아버리는게 정상이란 말이오? 그러다 우리 아기가 화라도 당하면 어쩌려는 것이오?"
아내의 말에 천칠도 꿀벙어리가 되었다. 장노인의 말 때문에 천칠도 계속 심란했었다. 답거리가 궁해지자 천칠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다른 맡길 형제도 없는데 말이다."
아내는 천칠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천칠은 화들짝 놀라더니 손을 들어 아내의 싸대기를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차마 때리지는 못하고 씩씩거리기만 했다.
"한번 더 그딴 소리를 하면 너부터 죽는다. 이 악독한 여편네야."
아내는 천칠이 화가 제대로 난 것 같아 더이상 말하지 못했다. 서로 등지고 돌아누운 두 사람은 밤이 깊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천칠의 아내도 자신이 했던 말이 미안했는지 닭을 팔아서 천살에게 새옷을 지어 주었다. 천칠도 아내가 천살에게 살갑게 대하자 마음의 응어리가 풀려서 아내를 용서해 주었다. 천살은 새옷을 입고 신이 나서 밖으로 자랑하러 나갔다.
며칠후 밭에서 일을 하던 천칠의 아내가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천칠은 급하게 아내를 집에다 데려다 주고 의원을 부르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한사코 돈이 아깝다면서 조금만 쉬면 된다고 의원을 부르지 말라고 했다.
천칠은 다시 밭에 나갔지만 밭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자꾸 풀 대신 멀쩡한 곡식을 뽑자 일찍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천살이 배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수염이 허옇고 검을 등에 멘 도사 하나가 천살을 돌보고 있었다.
천칠의 아내는 바닥에 누워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발치에는 피가 한가득 묻은 날카롭게 갈린 식칼이 있었다. 화가 꼭두까지 치민 천칠은 몽둥이를 찾아 아내를 패려고 했다.
"조용히 있게. 아이의 목숨은 큰 지장이 없으니 말이오."
천칠의 아내는 천살의 배에 식칼을 박기 무섭게 나타난 노인이 신선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나쁜짓을 해서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온 것이라 생각되어 거의 반실성 상태에 이르렀다. 천칠은 천살의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이성을 조금 되찾았다.
"치료가 끝났네. 만약 내가 조금만 늦게 와서 이 아이가 죽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네. 이 아이가 제 명대로 못살고 요절을 하면 천하에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이 죽어나갔을 걸세. 그러니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네."
천칠은 천살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홉형제중에서 형인 천사(千四)와 천칠 자신만 남고 나머지 형제들은 전부 어린 나이에 죽었다. 형인 천사도 돌림병에 죽고 천살 하나만 남았는데 선뜻 보내기가 저어되었다.
"이 아이는 특별한 운명을 타고 났다네. 주변에 자꾸 화를 불러올 것일세. 그러니 내가 데려다가 잘 키우겠네. 화산의 옥골선풍(玉骨仙風) 서창훈이라고 하니 아이 걱정은 안 해도 될 걸세."
천칠은 형의 마을에 갑자기 돌림병이 돌고 천살만 살아남은 것이 생각났다. 거기에 천살을 남기려면 아내를 내쳐야 한다. 가난한 형편이라 새 아내를 얻기도 힘들다. 천칠은 착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서장로는 의원을 찾아 천살의 외상을 돌보았다. 화산의 묘약인 자령단(紫靈丹) 덕분에 생명의 위험은 사라졌다. 외상이 곪을까 걱정되어 의원에게 보인 후 완치되자 화산으로 데려갔다. 이름을 천사성으로 바꾸고 말이다.
- 작가의말
제목에는 천마, 소개글에 사이다. 이번 글은 기대가 됩니다.
전작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독립된 설정임을 말씀드립니다. 내단이나 이런거 안 나옵니다. 순수한 인간의 무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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