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정립
사장로의 내공을 반밖에 흡수하지 못한 한선후는 가랑이 사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있는 힘껏 발길질을 했다. 거기에 정통으로 맞은 초화규는 멀리 날아갔지만 도망가지 않고 한선후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한선후는 더이상 북명신공을 운용할 수 없었다. 거기에 이제 자식을 보는 일이 완전히 물건너갔기에 정신적인 고통도 무척 심했다. 한선후는 초화규를 노려보면서 천천히 몸을 피했다.
한선후가 사라지자 초화규는 사장로의 처분을 두고 고민했다. 자신의 남아인생을 마무리 지은 사장로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혼자서 교주를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때 혈도가 풀린 사장로가 제안을 해왔다.
"사실 나도 교주와 같은 천마신공을 익히고 있소. 내가 천마신공을 알려줄테니 함께 교주에게 대항합시다."
사장로는 한선후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다시피 힘들게 다가와서 자신의 공력을 빼앗아간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약 교주의 천마신공이 깨진 거라면 경지가 높은 자신이 초화규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에 복마전에서 자신이 가장 강한자로 부상하게 된다.
의심많은 초화규를 안심시키기 위해 사장로는 천마신공의 운기경로를 수십번 들려줘야 했고 자신이 직접 천마신공을 수련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사장로의 멀쩡한 모습을 보고 초화규 역시 천마신공을 수련했다.
내공을 모두 잃고 남자도 잃어버린 한선후는 모든 의욕을 다 잃고 이대로 죽고 싶었다. 그때 먼 곳에서 초화규와 사장로의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한선후는 이를 악물었다.
"천마신공을 다시 익혀 초화규와 사장로를 죽인 다음 탈출해서 천살까지 죽여버린다. 그리고 천살의 부인과 아이도 다 죽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을 전부 죽인다. 천하의 초씨와 사씨 그리고 천씨들을 찾아내서 하나도 남김없이 죽여버린다."
복수로 다시 의지를 다진 한선후는 초화규와 사장로와 거리를 벌인 다음 천마신공을 수련했다. 한선후가 장현성에게 써준 천마신공은 갓 미쳐서 백이 넘는 자들을 죽이고 피에 취한 상태에서 쓴 것이다. 그래서 그 운기경로도 그렇고 뒷부분의 깨달음도 그렇고 피냄새가 매우 짙었다.
혈경을 얻어 장생불로할 목적으로 인체와 피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한 괴령과 그 제자들이다. 그래서 괴령의 제자들은 천마신공의 비급을 얻어내자마자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을 찾아냈다. 뒷부분의 깨달음을 제대로 이해 못해서 다섯명이 결국 미쳐버렸지만 선연과 선득은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했다.
그후 두번째 천마신공을 적을 때는 피냄새가 많이 가셨다. 하지만 장로들이 소림사를 언급하는 바람에 천살에 대한 두려움이 일어서 살기가 짙다. 운기경로가 미세하게 바뀌었고 깨달음도 더 많아져서 첫번째 천마신공보다 스무장정도의 글자가 더 많았다.
지금 초화규와 사장로가 익히는 천마신공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천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지가 낮은자에 대한 지배력이 첫번째 천마신공보다 훨씬 강하다. 천살의 천살마기를 대면했을 때의 그 공포가 깊이 새겨져서 운기경로와 깨달음에 알게모르게 지배력과 관련된 부분이 강화된 것이다.
현재 한선후가 익히는 천마신공은 또다른 형태이다. 기존의 두개의 천마신공의 운기경로는 주로 몸통과 머리에 집중되었고 팔다리로 향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의 천마신공의 운기경로는 두다리까지 확장되었다.
한선후는 천마신공의 수련을 중단하고 신형을 일으켰다. 초화규의 기습에 고환이 터졌고 주변 혈도들이 타격을 받았다. 그래서 운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련효과가 매우 미미하다. 인체의 혈도는 제멋대로인 것 같지만 일정한 규칙을 따른다.
좌우의 혈도들이 서로 대칭이 되고 음양이 서로 엇갈린다. 전면과 후면의 혈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손발의 혈도들이 서로 대응된다. 고환부근의 혈도들이 다치는 바람에 머리쪽의 운기도 그 흐름이 원활하지 않다. 한선후는 어쩔수 없이 운기경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대로는 초화규와 사장로에 의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초화규는 천마신공을 익힌 후 급속도로 강해졌다. 체질상 혼원공이 알맞았던 초화규는 천마신공과도 상성이 좋았다. 뇌호혈을 비롯한 머리의 혈도들이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발달한 초화규는 글자를 못읽는 병을 앓았다. 하지만 사람을 미친놈으로 만드는 천마신공을 익히자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했다.
초화규와 사장로는 가만히 앉아서 심법을 수련하는 한선후에게 다가갔다. 초화규가 오른쪽으로 사장로가 왼쪽으로 향했다. 초화규는 한선후의 오른눈이 실명되었기에 오른쪽 감각이 무뎌졌을 것이라 판단하고 오른쪽을 선택했고 사장로는 한선후가 왼팔이 없기에 왼쪽이 안전하다 생각해서 왼쪽을 선택했다.
초화규와 사장로가 반장도 안되는 거리를 남겨두었을 때 한선후의 몸이 갑자기 움직였다. 번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 한선후는 사장로의 오른눈을 손가락 마디를 세워서 가격했다. 사장로의 비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반대편으로 움직여 초화규의 오른눈도 실명시켰다.
"다음번에 다시 마주치면 네놈들의 왼팔을 잘라버리겠다. 두려움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거라. 크하하하."
공평하게 오른눈을 하나씩 잃은 초화규와 사장로는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둘이 멀리 도망가자 한선후는 한모금의 피를 울컥 토해냈다. 새로 만들어낸 천마신공이 소성의 경지로 향하는 관건적인 시기인데 둘때문에 억지로 수련을 멈추고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했다.
어차피 내상 때문에 며칠 쉬어야 하기에 한선후는 붓을 들고 새로운 천마신공의 비급을 작성했다. 자신이 혹시 미쳐버리거나 해서 운기경로를 잊어버릴까 걱정된 것이다. 새로운 운기경로는 머리의 몇몇 혈도들을 경유하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불가능하지만 고환부근의 회음혈을 비롯한 몇개 혈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머리의 운기경로가 바뀔 수 있었다. 비급의 작성을 완성한 한선후는 비급명을 적지 않았다. 천마신공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복마전에서는 서로 딴마음을 품은 초화규와 사장로의 연합이 한선후와 대치하는 형국이 되었다. 한선후가 삼국시대의 위나라이고 초화규가 동오 사장로가 서촉인 형국이다. 초화규와 사장로는 한선후가 운기하는 틈을 타서 기회를 노렸고 한선후는 가짜로 수련하는 척을 하면서 둘을 유인해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초화규와 사장로는 천마신공의 수련을 할 때면 서로 떨어져서 수련했다. 상대를 완전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화규가 은밀하게 땅굴속에 숨어서 수련하고 있는데 멀리에서 사장로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기척을 최대한 줄이고 입구쪽으로 나가보니 사장로가 한쪽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경공으로 달리고 있었다. 한선후가 새롭게 익힌 천마신공은 머리 부분을 운기경로에서 제외했기에 지배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사장로가 마음껏 경공을 펼칠 수 있었고 죽기살기로 도망가기에 한선후에게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사장로, 이쪽으로 오시오."
초화규의 부름에 사장로는 방향을 조금 비틀었다. 초화규를 잘 아는 한선후는 초화규가 의리있는 성격이 아님을 잘 안다. 무언가 함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속도를 조금 늦췄다. 함정이 있더라도 사장로가 발딛는 곳을 따라가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사장로가 땅굴속으로 쏙 사라지자 한선후는 자신이 너무 의심이 과했음을 인정했다. 아무런 도구도 없고 재료도 없는 이곳에서 함정을 만들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지난번 함정은 아마 오랜 시간 공들여서 만든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사장로가 안으로 들어갔으니 함정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장로의 뒤를 따라 들어간 땅굴은 성인의 허리정도의 높이가 된다. 허리를 숙이고 걷는 것보다 엎드려서 기는것이 훨씬 빠르다. 그것은 이 땅굴을 판게 다리를 못쓰는 초화규이기 때문이다. 엉금엉금 기던 사장로는 한선후가 빠르게 따라붙자 강한 발차기를 뒤로 날렸다.
한선후는 잠시 멈춰서 사장로의 발차기를 피했다. 사장로의 발이 거둬지자 폭발적인 속도로 사장로를 덮쳤다. 새로 익힌 천마신공은 위력이 부족하지만 속도가 빨라 살상력은 오히려 더 강하다.
한선후의 주먹이 엉덩이에 닿자 사장로의 엉덩이의 살이 터져나갔다. 다행히 한선후의 공력이 예전처럼 심후하지 않아 뼈가 상하지 않았다. 사장로는 아픔을 참고 속도를 내서 초화규가 사라진 굽인돌이를 돌았다.
갑자기 얼굴에 주먹이 날아오자 사장로는 미처 피하지 못했다. 주먹으로 사장로를 가격한 초화규는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한선후는 굽인돌이를 돌자마자 사장로가 보이자 불문곡직하고 사장로의 다리와 엉덩이를 마구 가격했다.
그때 뒷부분에서 우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한선후가 들어온 입구가 막혀버렸다. 이 땅굴은 예전에 초화규가 파다가 한번 무너진적이 있는 땅굴이다. 그때 몸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땅굴이 좁았기에 초화규는 오던길로 돌아가지 못하고 조금씩 비틀어 파내면서 다른 입구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말의 편자모양을 닮은 입구가 두개인 땅굴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의 입구에는 돌을 얹고 그위에 이끼들로 덮어서 위장하고 다른 입구만 사용했다. 원래는 이곳으로 유인할 생각을 못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공교롭게 되자 초화규가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들어온 입구를 내공을 실은 일장으로 무너뜨린 뒤 자신이 나온 입구도 무너뜨렸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거듭 공력이 가득 실린 주먹으로 동굴벽을 가격했다. 원래 한번 무너진적이 있던 땅굴은 초화규의 거듭된 타격에 다시 한번 제대로 무너졌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초화규는 수많은 돌들을 옮겨다가 입구를 꽁꽁 틀어막았다.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큼직한 돌들을 억지로 입구에 박아넣었다. 한선후가 갑자기 원래 무위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한선후는 새롭게 만들어낸 천마신공의 소성을 이루었다. 그리고 새로운 천마신공을 익히면 미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무공수련시 가끔 통증을 알려오던 머리의 몇개 혈도들이 수련하는 내내 얌전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장로와 초화규가 계속 수련을 방해하자 급한 마음에 둘을 제거하려고 욕심을 부렸다.
비록 천마신공의 소성을 이루었지만 예전에 비하면 고수라고 자칭하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인내를 가지고 확실한 우위를 점한 다음에 복수를 해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에 일을 그르쳤다. 무너지는 힘에 눌려서 사장로는 즉사했고 한선후는 팔과 다리가 눌려 꼼짝하지 못했다. 공력으로 머리를 보호한 덕에 목숨은 부지했지만 한선후의 앞에는 시간이 흘러서 굶어죽는다는 길만 놓여있다.
주먹과 손바닥이 시큰시큰 저려왔지만 초화규는 통쾌한 웃음을 뱉어낼 수 있었다. 수련한지 한달이 조금 넘는 한선후가 저렇게 강한 무위를 보이니 자신이 밖으로 도망가서 몇년 수련하면 천살을 이기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글을 모르는 초화규이기에 한선후가 숨겨둔 천마신공의 비급을 찾아냈지만 수련할 수 없다. 사장로에게서 배운 천마신공을 수련하며 내공을 충분히 모은 초화규는 한선후의 비급을 품속에 넣으려 했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초화규는 붓을 들고 비급의 표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초화규는 두글자 이상의 글을 보면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머리가 어지럽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쓸 줄은 알지만 한번도 세글자 전부 적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표지에 삐뚤삐뚤하게 화규 두글자만 적었다.
사실 규자를 왼손으로 막은 뒤 화자위에 초자를 쓰면 자신의 이름을 완전히 적을 수 있다. 하지만 초화규의 머리는 그쪽으로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천마신공의 비급의 표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며 초화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 비급은 내꺼다.'
- 작가의말
三足鼎立, 갈량 아찌가 연의에서 천시, 지리, 인화로 삼족정립을 예언했죠. 복마전에서 축소판 삼국연의가 열렸습니다.
눈치 빠르신 분들, 무언가 냄새를 맡은 코 좋은신 분들. 직접적인 표현 자제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내용 대충 눈치 까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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