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기변질
한선후와 한화령이 대면하는 시각 사장로와 장현성이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사장로는 장현성에게 손수 차를 따라준 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장공자도 아둔한 사람이 아니니 돌리지 않고 말하겠소. 천신공의 구결을 알아내 오시오. 그러면 장공자에게 교주자리를 드리겠소."
"사장로께서 저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결코 교주가 될 야심이 없습니다. 저는 자기 분수를 잘 알거든요."
사장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장공자가 나에 대해 오해가 있는 것 같소. 이걸 받으시오."
장현성이 사장로가 건네는 천을 받아서 펼쳐보니 열개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밑에 글이 적혀 있었다. 눈빛으로 영문을 묻는 장현성에게 사장로가 답했다.
"신화공의 사본이오. 교주의 신화공은 초장로가 도둑질하는 바람에 종적을 찾을 수 없소. 신화공을 익히면 자연스럽게 교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소."
천신공은 개인의 무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현성처럼 세력이 없는 자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사장로와 같이 세력이 강한 자들에게는 매우 유용하다.
"신화공은 암문으로 되어 있소. 그 암문을 푸는 책은 교주가 가지고 있소. 장공자는 교주의 심복이니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오. 장공자도 명문 출신이니 믿고 먼저 신화공을 건네겠소."
장현성은 외통수에 걸렸음을 인정했다. 지금 사장로의 제의를 거절하고 신화공을 돌려주면 사장로와 적대하겠다는 뜻이다. 교주의 심복이라 하지만 그저 능력있는 수하에 불과하다. 사장로와 적대하고도 명화교에서 다리 뻗고 잘 수는 없다.
신화공을 가지고 교주에게 찾아가 사장로를 고발해도 사장로가 모르는 일이라 우기면 끝이다. 힘이 없는 장현성으로서는 사장로의 뜻에 순순히 따르는 방법밖에 없다. 속으로 화가 났지만 장현성은 내색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게 해가 될 일은 없겠군요. 거래를 받아들입니다."
응천부를 떠난 천살은 표운과 함께 움직였다. 표운은 무공은 평범하지만 경공이 매우 뛰어났다. 덕분에 천살은 움직임에 큰 제한을 받지 않았다. 더군다나 표운의 금의위 신분패로 역참에서 말도 빌릴 수 있고 관선도 얻어탈 수 있기에 편리하기 그지 없었다.
"표대인, 명화교의 무리가 이곳으로 향하는게 확실하오?"
천살의 질문에 표운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천대인, 우리 금의위는 대명 최고의 정보조직입니다."
천살은 멀리서나마 교주를 한번 바라보려고 했다. 자신의 현재 경지와 교주의 경지를 비교해보려는 것이다. 예전에 교주를 보면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교주의 경지가 천살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사실은 같은 만혈개문의 경지인데 교주의 경지가 더 원숙하기 때문에 아무 느낌도 들지 않은 것이다.
반시진가량 더 지나자 멀리 수백의 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병장기를 숨기지 않고 밖으로 드러낸 건장한 사내들이 대부분이었다. 명화교의 무리가 천살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다. 관도를 따라 한참 걷던 명화교의 무리는 갑자기 분주해지더니 멈춰서서 사방을 경계했다.
"표대인, 교주의 무위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것 같소. 나는 교주의 기척을 감지하지 못했는데 이 거리에서 내 기척을 감지하고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소. 이미 들킨것 같으니 우선 피해야겠소."
천살은 표운과 함께 경공을 시전해 자리를 떠났다. 무위가 강하다고 대결에서 더 강한 위력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바로 살수이다. 살수는 특별한 무공을 익혀 무위는 형편없지만 암습으로 고수들도 죽일 수 있다. 비록 교주의 무위가 상상을 벗어났지만 천살은 여전히 자신이 있었다.
교주는 천신공으로 무위를 강화한 무인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의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감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소교주의 호위대이지만 현재는 교주의 호위대처럼 되었다. 성화료원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어 교주는 그대로 사용했다.
관도를 따라 편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갑자기 호위대의 대원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호위대의 대장인 고삼도 갑자기 제자리에 멈추더니 정좌를 하고 앉아버렸다. 그때 교주의 몸속의 천신기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자 교주도 멈추어 그자리에 정좌를 하고 앉았다.
원래 교주는 마차를 타고 움직였는데 한화령이 와서 마차를 딸에게 양보했다. 성화료원의 대원들이 거품을 물고 쓰러지고 교주와 고삼이 정좌를 하자 교도들은 신속히 이들을 둘러싼 뒤 경계태세를 취했다. 중독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은침과 은접시를 사용했지만 어디에도 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교주의 몸속에 자리를 한 천살마기는 신화공의 내력을 삼키기 위해 덩치를 불렸다.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기운의 밀도가 낮아졌다. 영성을 잃었기에 본능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그러다가 천살이 가까워지자 다시 영성을 회복했다.
영성을 회복한 천살마기는 절망에 빠졌다. 자신의 격이 몇단계나 떨어진 것이다. 힘은 더 강해졌지만 격이 떨어져서 시간이 흐르면 영성이 아니라 본능마저 소멸된다. 본능까지 소멸되면 천살마기에게는 죽음과 다름이 없다. 영성이 없는 것은 혼수상태와 같고 본능까지 사라지면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때는 그저 한선후의 지시에 따르는 평범한 내공이 된다.
자신의 격을 회복하기 위해 천살마기는 한선후의 몸을 벗어나 천살의 몸에 있는 본체에 합류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요동을 쳐도 한선후의 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천살이 교주에게 발각된 줄 알고 떠나버리는 바람에 천살마기의 영성은 서서히 잠들어가기 시작했다.
본체가 멀어지자 천살마기는 비통에 빠졌다.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천살마기는 마지막 발악을 했다. 주변에 느껴지는 비슷한 기운들을 흡수하여 힘을 늘리고 격을 높이려 시도했다.
천살마기는 제멋대로 북명공을 시전해서 주변의 기운들을 흡수했다. 한선후는 천살마기가 제멋대로 움직이자 제어하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천살도 겨우 불사공만 멈춰달라고 설득하는 것이 가능하고 신화공이나 천살마기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한선후 역시 별의별 방법을 다 사용했지만 천살마기의 움직임에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었다.
횡련일기공의 경지가 낮은 자들은 북명신공에 의해 내공을 다 빨린 후 그대로 죽어버렸다. 스물여덟의 호위대원들은 소성의 경지를 넘었지만 대성을 이루지 못했기에 목숨만 보전하고 내력을 전부 잃어버렸다. 유일하게 대성을 이룬 고삼만 천살마기와 동일한 기운을 전부 빼앗긴 뒤 횡련일기공이 움직이며 사라진 내공을 보충했다.
주변의 기운을 다 빼앗은 후 천살마기는 마지막 영성이 사라지기전에 복마공을 운용했다. 복마공은 천살이 조자운의 검에 가슴이 관통당했을 때 서창훈이 선천기공으로 천살에게 사용한 치유법이다. 천살마기는 천살의 목숨이 위험하면 움직였다. 천살의 몸이 치유가 되자 천살마기는 활동을 멈추었는데 천살은 치유법의 운기법이 천살마기를 누른다고 오해하고 복마공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복마공의 운기경로를 따라 운기되자 한선후는 정신을 집중해서 그 운기경로를 기억했다. 천살마기의 움직임이니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천살의 복마공은 예전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신화공이 그 경로를 변화시킨 적이 있다. 이번에도 역시 천살마기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경로를 변화시켰다.
복마공의 운기경로를 따라 운기되는 천살마기는 점점 압축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기운보다 한층 더 압축된 천살마기는 영성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압축에 대한 갈망과 힘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 강화된 본능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한선후는 자신의 천신기가 한단계 더 발전하자 기쁨을 느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십명이 죽어 있고 호위대의 기존 스물여덟이 내공을 잃고 폐인이 되어버렸다. 유독 고삼만 정좌를 한채 운기를 하고 있었다. 교주는 고삼의 운기경로를 감지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고삼은 소양공을 익혔기 때문에 다른 자들에 비해 천신기에 대한 저항력이 강했다. 극양의 기운이기에 음의 기운인 천살마기가 신화공을 삼켜서 만들어진 천신기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기운의 질이 차이가 나기에 결국에는 천신기에 의해 정복당했다.
하지만 덕분에 고삼의 천신기는 다른 자들의 것보다 격이 조금 더 높았다. 천살이 다가오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쓰러진 호위대원들과는 다르게 고삼은 정좌를 하고 저항을 시도했다. 천신기는 천신공의 경로를 따라 움직이며 천살의 천살마기에 저항을 했다. 한단계 거치면서 천살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없기에 저항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다가 교주의 북명신공에 의해 천신기의 기운들이 전부 빨려나갔다. 본능적으로 생명의 위협이 느껴지자 횡련일기공이 움직이며 내공을 모았다. 고삼의 천신기는 교주가 만들어낸 천신공의 운기경로가 아닌 다른 운기경로로 움직였다. 어느정도 본능이 남아있는 천신기이기에 알아서 자기 살길을 찾은 것이다.
그러다 천신기가 다 빨려간 이후 고삼이 횡련일기공으로 모은 소양공의 공력이 계속 그 운기경로를 통해 움직였다. 천신기가 본능적으로 취한 운기는 기운을 모으는 운기였다. 소양공의 기운이 그 운기경로로 움직이자 횡련일기공과는 다른 경로로 내공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내공은 단전으로 흘러들었다.
고삼은 우연한 기회에 내공과 외공을 동시에 운용하여 내공을 모으는 기연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 운기경로는 교주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었다. 이후 교주는 새롭게 진화한 천신공으로 기운을 모으고 복마공으로 기운을 압축하면 되는 것이다. 반쪽짜리였던 천신공이 완전한 내공심법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몸속의 내공이 충만해지자 고삼은 운기를 멈추고 눈을 떴다. 흐릿한 고삼의 두눈은 총기가 사라졌다. 그건 살아남은 스물여덟의 호위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신기들이 위기를 느끼자 주인의 심령을 제압하고 제멋대로 움직이려 했던 것이다. 그중 저항을 시도한 것은 고삼밖에 없지만 이들 전부 천신기에 의해 심령이 제압당해 이성을 잃어버렸다.
"오늘은 일단 이곳에서 야영을 한다. 독에 의해 죽은 자들의 시체는 불에 태워 골회(骨灰 - 뼛가루)만 담아간다."
교주가 명을 내리자 고삼과 스물여덟의 호위대원들은 도끼나 칼을 들고 나무하러 움직였다. 교주는 이들이 자신의 명령에 잘 따르는 것을 보자 오히려 예전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천살의 수하였기에 충성심에 약간의 의심이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그 고민을 덜게 되었다.
"천살의 짓이오. 내공에 반응하는 특별한 독인데 천신공의 내공을 가진 자들에게만 작용하오. 지금 나와 고삼을 제외하고 전부 죽거나 내력을 잃었소. 고삼도 천신공의 내공은 다 잃었소."
회의를 열고 교주가 오늘의 일을 해석하자 교주의 호위대 대장이 가장 먼저 의문을 표했다.
"소교주가 왜 그런짓을 한다는 말입니까. 어차피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명화신교의 지존이 될 분인데 말입니다. 더구나 홀로 무당을 봉문시키는 큰 공을 갓 세운 분이 아닙니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일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소. 소교주는 동자공을 익힌 몸이오. 그래서 내 딸과 혼인을 하였지만 여태껏 합방한 적이 없소."
"교주의 말씀은 영애가 임신한게 소교주의 씨가 아니라는 말이시오?"
사장로의 질문에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천신공도 천살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어낸 것이오. 아무래도 소교주가 그간 종적을 감춘게 이 독과 관련된 것 같소. 당문과 소교주가 가까운 사이라는데 아마 당문의 도움을 받은 듯 하오."
- 작가의말
이후 천살의 천살마기와 구분하기 위해 한선후의 것은 천신기라고 부르겠습니다.
갑 : 안녕하세요. 609호실 사시는 분 맞으시죠?
을 : 안녕하세요. 맞습니다만.
갑 : 저 610호실 사는 이웃입니다. 부탁드릴게 있는데 제발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을 : 이웃분이셨군요. 반갑습니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면 들어드려야죠.
갑 : 두분 신혼이고 금슬이 좋은 건 알겠는데 옆집에서 소리가 너무 생생하게 들리거든요. 두분 소리때문에 잠을 설친게 하루이틀 아닙니다. 밖에 모텔을 잡으시거나 새벽시간대에는 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을 : 하핫, 죄송합니다. 제가 정력이 하도 왕성해서요. 또 짧게 끝내는 경우가 없어서 이웃분을 힘들게 했군요. 염두에 두고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갑 : 저도 웬만하면 참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유독 심하더군요. 저녁 여덟시부터 새벽 네시까지 소리가 끊이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을 : 어, 저 어제 야근이었는데요.
갑 : ...
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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