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VS 포르투갈
- 창과 방패의 대결, 한국은 무승부면 토너먼트 진출.
한국과 포르투갈의 경기는 공격과 수비의 대결로 예상되었다. 한국의 예상외로 훌륭한 수비는 큰 화제가 되었다. 결정적인 공격 기회는 3번밖에 창조하지 못했다. 대신 높은 수준의 팀 수비를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 내내 훌륭한 수비를 보여준 한국과 전통적으로 수비는 약하지만 공격은 항상 훌륭했던, 안타깝게도 좋은 공격수가 없어 수많은 득점 기회에도 골을 만들지 못했던 포르투갈의 대결이다.
해설위원 최문어는 한국팀 1:0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포르투갈의 공격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한국팀이 실점하는 그림이 도저히 그려지지 않았다. 첫 경기 한국팀이 보여준 수비력은 그 정도 파급력이 있다.
"경기 시작합니다. 한국팀 선발을 보시면 지난 경기와 비교해 한 명의 조절이 있습니다. 지난 경기 두 번째 골을 넣은 유재범 선수 대신 현기철 선수가 선발로 나섰습니다."
"공격수 두 명을 내세운 건 좀 더 공격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는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수비적인 태세를 취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팀은 무승부만 내면 됩니다. 아무래도 안정적으로 수비하며 현기철 선수의 개인 능력과 세트피스 상황을 이용해 득점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신은 심술꾸러기였다. 경기가 시작해 5분 정도 상대를 가늠한 후 공격 일변도의 경기를 벌였다.
"지금 김시웅 선수가 뒤를 받치고 차범수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움직입니다. 물론 수비 상황이 되면 빠르게 수비에 복귀합니다."
"다음 라운드에서 한국팀은 휴식을 취합니다. 7일 정도 휴식이 가능하니 체력을 아낄 필요가 없습니다."
공민훈은 포르투갈의 수비수를 손쉽게 돌파했다. 포르투갈의 양측 윙백은 공격수 출신이다. 수비 능력은 평범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산시스와 두 중앙수비수가 수비형 선수이고 남은 선수들은 거의 공격에 집중한다.
"공민훈 크로스. 박정현 슛. 골! 골입니다."
포르투갈의 두 중앙수비수 중 한 명은 키가 194로 훌륭한 헤딩 능력을 갖추었다. 유일한 약점은 중국 리그에서 뛰고 있다는 것이다. 설렁설렁 뛰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심한 압박을 받지 않으니 위기 상황에서 반응이 조금 느리다.
"느린 화면 다시 보겠습니다. 공민훈 선수가 낮고 빠른 크로스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박정현 선수가 가까운 포스트 쪽에서 발로 슛인지 패스인지 구분이 안 되는 슈팅을 했습니다. 슈팅은 포르투갈 수비수의 다리에 맞아 굴절되면서 골이 되었네요."
얻어걸린 골이다. 원래는 공민훈의 크로스를 박정현이 먼 포스트에 있는 현기철에게 패스하는 전술이다. 현기철이 가까운 포스트로 달리면 발아래 공도 대비할 것이지만 박정현이 달리자 수비수는 헤딩만 생각했다.
그때 허를 찔러 낮은 크로스를 보냈다. 점프를 대비해 무게 중심을 낮춘 수비수는 반응이 아주 조금 느렸다. 그 전에 헤딩 가능한 높은 크로스를 많이 보내서 수비수가 선입견을 품었다. 득점에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후 낮은 크로스를 배제하지 못하는 수비수의 판단은 느려지고, 수비수의 판단이 느려지면 공격수는 공을 잡기 편해진다.
"이 골은 분명 사전에 충분한 연습을 거친 골입니다. 선수들의 호흡이 딱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정말 기 감독은 베타고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렇죠. 수비수가 건드리지 않았다면 현기철 선수가 박정현 선수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었을 겁니다. 지난 경기에서 보여주지 않은 공격 전술을 경기 초반에 보여주는군요."
"그럼 이제 수비를 하면서 반격 위주의 경기를 펼쳐도 되겠습니다. 혹시 기 감독이 또 전반전에 교체를 하는 건 아니겠죠?"
두 해설은 한국팀이 안정적으로 수비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오늘 기신의 컨셉은 심술꾸러기다.
"저희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팀은 라인을 전혀 내리지 않습니다. 미드필더 지역에서 강한 압박을 하며 공격을 계속합니다."
"침투 패스는 황동근 선수가 잘 걷어내고 있죠. 그리고 한국팀도 수비 상황에서는 천천히 라인을 내립니다. 공격 상황에 라인을 엄청 빠르게 올리는 것과 반대여서 무모해 보이는 겁니다. 선수들 얼굴을 보십시오. 자신감이 넘칩니다. 미리 준비해 온 전술이 분명합니다."
"차범수 선수의 돌파. 보기 드문 장면이죠. 항상 드리블로 패스 경로를 확보하고 바로 패스하는 선수인데 오늘은 돌파도 합니다."
"차범수 선수의 돌파는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변에 패스를 받으려고 계속 움직여주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패스를 염두에 둔 수비수를 돌파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차범수의 패스에는 정보가 담겨있다. 패스의 속도, 공에 실린 힘, 패스 경로, 받는 사람에 따라 선수들은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한다. 한 달 시간을 공도 만지지 못하고 체력과 전술 훈련만 하면서 연마해낸 땀의 결실이다.
처음에 기신이 공도 없이 깃발에서 깃발로 달리는 훈련을 시킬 때 군기를 잡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훈련이 계속되며 생각이 달라졌다. 마음에 드는 움직임을 보이기 전에 공을 만질 생각을 하지 말라는 기신의 말에 선수들은 머리를 굴리며 열심히 훈련했다. 그저 생각 없이 달리기만 해서는 기신의 요구에 부합할 수 없다.
한윤의 발에 닿은 공은 묵직했다. 크로스를 올리라는 뜻이다. 묵직한 공의 힘을 해소하기 위해 시간이 조금 걸린다. 패스하지 말고 혼자 해 먹으라는 뜻이다.
크로스 시늉을 하던 한윤이 상대가 멈칫하는 사이를 틈타 쉽게 돌파했다. 윙백과 중앙수비수 사이의 공간을 지키고 있던 산시스가 달려왔지만 한윤은 빠르게 크로스를 올렸다.
현기철과 황희가 가까운 포스트로 달렸다. 최길수와 차범수가 미리 중앙에 자리 잡았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산시스가 윙백을 지원하러 가는 바람에 아크 지역이 비어있다. 그 지역으로 김시웅이 달려갔다.
포르투갈의 두 중앙수비수는 차범수와 최길수를 마크했다. 왼쪽 윙백이 돌아와 박정현을 마크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키가 큰 수비수가 마크해야 하는데 윙백이 제멋대로 박정현을 마크했다.
힘껏 점프한 차범수는 공을 살짝 건드리기만 했다. 한윤의 공은 먼 포스트에 있는 박정현을 겨냥했다. 그런데 크로스를 급히 올리며 공의 궤적이 조금 낮았다. 차범수는 아크 지역의 김시웅에게 패스하려고 했는데 공을 건드리기만 했다.
박정현을 지키던 윙백이 큰 포물선을 그리고 떨어지는 공을 향해 힘껏 점프했다. 리그에서는 윙으로 뛰는 선수라 수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골키퍼가 자기 공이라고 소리 질렀지만 공을 걷어내려는 마음에 무시하고 점프했다.
골키퍼와 수비수가 부딪혔다. 키퍼는 원래 공을 잡으려고 했는데 자기 수비수의 방해로 쳐낼 수밖에 없었다. 팔을 휘두를 시간이 부족했고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공을 멀리 쳐내지 못했다.
차범수 등이 앞으로 달릴 때 포르투갈 선수 대부분이 함께 안으로 달렸다. 그래서 아크 지역에 있던 김시웅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공을 잡았다. 공을 잡은 김시웅은 곧바로 오른쪽 공민훈에게 공을 보냈다.
공민훈은 크로스를 올릴 듯 자세를 취했다. 가장 가까운 수비수가 공민훈의 크로스를 방해하기 위해 몸을 던졌다. 공민훈은 공을 왼쪽으로 툭 친 후 왼발로 슛했다.
시즌 후반기부터 연습하던 컷인 플레이다. 블랙을 사부로 모시고 배우고 있다. 그 보답으로 블랙에게 크로스를 가르치고 있다. 아직 리그에서 선보인 적이 없는데 월드컵에서 첫 영업을 개시했다.
슈팅 타이밍이나 공의 높이와 속도 등은 괜찮았으나 골대 밖으로 벗어나는 슛이다. 그때 현기철의 머리가 불쑥 공의 경로에 나타났다. 현기철의 옆얼굴에 맞은 공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골대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의료팀이 빠르게 안으로 투입되었다. 포르투갈은 골키퍼와 왼쪽 윙백이, 한국은 현기철이 쓰러졌다. 포르투갈이야 강한 충돌에 의한 일시적인 호흡곤란일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은 뇌진탕도 걱정해야 한다.
기신은 굳이 걱정하지 않았다. 현장 정보가 현기철에게 큰 문제가 없음을 알려왔다. 현장의 만 명에 가까운 한국 팬들은 현기철의 이름을 연호하며 무사히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2:0으로 앞선 상황에서도 한국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첫 경기에서 아껴 두었던 다양한 공격 전술을 쏟아냈다. 다음 경기부터는 토너먼트다. 감추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 실전보다 더 나은 훈련이 없으니 이번 경기에서 최대한 많은 전술을 시험해볼 생각이다.
포르투갈 감독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 한국이 수비적으로 나올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두 윙을 윙백으로 출전시켰다. 그런데 공격에 제대로 투입되지 못하고 수비에 체력을 허비하고 있다.
이미 실점을 한 상황에 두 윙백을 내리고 수비형 풀백을 올릴 수 없다. 선발진에서 지고 들어가며 자승자박한 꼴이다.
두 골을 앞섰음에도 한국은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공격력은 강하다. 수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공격으로 본선 진출을 이뤄낸 포르투갈이다. 개인 능력도 출중하고 팀워크도 괜찮다. 기신은 아예 이들이 골대에 접근할 기회를 제한하기로 했다.
공민훈을 상대하던 윙백은 허점을 발견하고 곧바로 돌파를 시도했다. 공민훈을 가볍게 벗겨낸 윙백의 앞에 김시웅이 나타났다. 김시웅은 우선 몸싸움을 걸었다. 발이 빠른 포르투갈 윙백을 상대로 섣불리 발을 내밀지 않았다.
왼쪽 다리에 무게중심을 두고 윙백을 멈춰 세웠다. 허벅지와 엉덩이 힘으로 상대를 밀어낸 후 오른발로 공을 건드려 공민훈에게 넘겼다. 한 호흡도 걸리지 않는 시간 안에 이 모든 것을 해냈다. 공을 잡은 공민훈은 앞으로 길게 찼다.
박정현이 헤딩한 공을 어느새 앞으로 달려간 최길수가 잡았다. 김시웅이 몸싸움을 거는 순간 앞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과 수비의 전환이 매우 빠른 한국팀이다.
한 달의 지옥 훈련 덕분이다. 호각 소리 혹은 박수 소리에 따라 정해진 시간 안에 정확한 깃발까지 달려가야 한다. 그 지겨운 훈련을 신물 나게 반복하니 집중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판단도 과감하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침투하는 박정현에게 공을 찔러준 후 최길수는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달렸다. 박정현은 드리블을 잘 하는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덩치가 있어 포르투갈 수비수가 공을 건드릴 경우 터치라인 쪽으로 올 확률이 높다.
박정현은 몸으로 포르투갈 수비수를 막으며 공을 지켜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할 여력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다가오는 최길수에게 패스했다.
박정현을 수비하던 포르투갈 수비수는 박정현을 버리고 최길수에게 향했다. 그러나 박정현에게 향하는 패스도 차단해야 하기에 쉽게 접근하지 않았다. 덕분에 최길수는 편하게 크로스를 올렸다.
빠르게 올라간 크로스는 포르투갈의 골대 앞에서 급히 떨어졌다. 바닥에서 튕겨 오르는 공에 현기철이 몸을 날렸다. 현기철을 수비하는 두 수비수는 키가 크고 몸놀림이 둔한 수비수다. 잘못 건드리면 자책골이 되는 공에 조심스럽게 움직이느라 현기철을 방해하지 못했다.
두 팔을 활짝 펴고 비행기 모습을 한 현기철의 헤딩슛이 포르투갈의 골대를 또 갈랐다. 절묘한 크로스와 정확한 슈팅으로 만들어낸 골이다. 이번 골은 그저 두 선수가 잘한 것이다. 포르투갈 수비수나 골키퍼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
전반전 33분에 세 골로 앞선 한국팀은 공격에서 힘을 빼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수비하다 공격 상황만 되면 라인을 중앙선까지 끌어올렸다. 겨우 전반전인데 포르투갈 선수들은 급격히 지쳐갔다.
- 작가의말
윙 혹은 공격수를 풀백으로 출전시킨 건 옛날에 포르투갈이 실제로 했던 일입니다. 그때 훌륭한 공격수가 없어서 골은 많이 못 넣었죠. 공격형 선수들은 참 많았는데 득점은 많이 못했습니다. 루이 코스타 참 좋아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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