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지 게임이 아니다
신기와 꿈에서 대면하고 많은 대화를 나눈 기신은 아침이 되자 알람 소리에 깼다. 메시지가 처음에는 캐릭터 신기 어쩌고 하다가 후에는 플레이어 기신 어쩌고 했다. 그리고 선수의 스텟치를 볼 수 있게 되어 기신은 무의식적으로 경기를 게임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기신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젊은 선수들을 불러다가 소고기를 굽고 함께 노래하며 시간을 보낸 후 선수단관리가 7에서 8로 상승한 것이 하나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시작이었지만 그때의 기신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유로파 6라운드에서 비엔나와의 원정경기이다. 1:2로 지고 있는 상황이지만 4점 차이로 지지만 않으면 32강에 들 수 있다. 그래서 관객석에서 지켜보는 기신은 전혀 다급해하지 않았다. 그때 공을 잡은 차범수가 킬 패스를 찔렀고 왕후이가 침투해서 왼발슛으로 득점을 했다.
골 결정력 1에 슈팅이 2인 왕후이는 흠잡을 데 없는 침투와 침착하기 그지없는 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결과 원정에서 비엔나와 무승부를 기록할 수 있었다. 차범수도 짧은 패스는 정확하지만 창조적인 패스나 중장거리 패스는 매우 취약하다. 그런 둘이 예상외로 동점골을 뽑아내자 기신은 자신이 현재 상황을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세 번째 계기는 차범수이다. 체력 9에 회복이 10인 차범수는 팀에서 가장 많은 훈련을 하는 선수이다. 경기장에서 그레이의 수비까지 신경 써주다 보니 리더십이 3에서 6으로 성장했고 수비예측력이 5에서 7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는 범위인데 워드에게서 프리 킥을 배우더니 3이던 직접 프리 킥이 7로 변했다.
이는 차범수가 원래부터 프리 킥에 타고난 자질이 있었다는 뜻이다. 차범수의 숨겨진 재능을 기신이 발견하지 못했지만 차범수의 노력으로 빛을 보았다. 기신은 자신이 너무 현재의 스텟에만 의지해서 선수를 판단한 게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진짜 게임이라면 반년이라는 시간에 프리 킥이 이렇게 달라질 가능성이 없다. 그래서 600만 유로에 왕후이를 중국 구단으로 이적시키려는 금창을 설득해서 팀에 남게 만들었다. 왕후이를 더 키워보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신은 심리학 서적까지 탐독하며 젊은 선수들의 실력을 한층 더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을 했다. 두 달여의 시간이 흘러 다시 유럽 무대에 나타난 노츠 카운티는 원래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기신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 것은 몇 달 뒤면 더 강한 노츠 카운티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기신은 원정에서 피오렌티나를 상대로 4-4-2의 진형을 펼쳤다. 중앙 수비수는 딕슨과 호세가 맡았고 왼쪽 수비수는 왕후이가 오른쪽은 안투이가 맡았다. 차범수와 그레이가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고 왼쪽 윙으로 스벤 오른쪽 윙으로 하신이 출전했다. 중앙 공격수는 보나비치와 헌터가 맡았다.
보나비치는 대부분의 스텟이 6이나 7인 선수이다. 물론 기신이 모든 스텟을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신이 확인한 스텟들을 기준으로 내린 결론이다. 다만 보나비치는 판단력이 3밖에 안 된다. 장기간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자리에서 축구를 하다 보니 수치가 성장하지 못한 것이라고 기신은 판단했다.
노츠 카운티에서 적지 않은 기회를 얻었고 훈련도 열심히 해서 판단력이 6으로 올랐다. 좋아진 판단력과 넓은 활동 범위로 보나비치는 한사람 이상의 몫을 해내기 시작했고 유로파리그 원정 경기에서 공격수로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주심이 경기의 시작을 알리자 보나비치는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오렌티나의 수석코치가 예전 보나비치의 첫 유스 감독이다. 공격수를 하고 싶어 하는 보나비치를 미드필더의 자리에 낙점한 것이 바로 현 피오렌티나의 수석코치이다. 보나비치는 자신이 얼마나 공격수에 잘 어울리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공을 잡은 센터백을 압박하자 센터백은 오른쪽 풀백에게 공을 돌렸다. 스벤의 빠른 압박에 풀백은 키퍼에게 패스했고 키퍼는 앞으로 길게 차 냈다. 보나비치는 적당한 속도로 달려서 마지막 센터백과 평형되게 자리를 잡았다.
보나비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그레이가 정확한 헤딩으로 차범수에게 패스했다. 프리 킥을 훈련하기 시작한 후로부터 차범수의 장거리 패스가 많이 정확해졌다. 보나비치는 차범수가 볼을 트래핑 하는 순간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태리의 수비수들은 이런 경우 앞으로 움직여서 오프사이드를 만들기 좋아한다.
공이 차범수의 발을 떠나자 보나비치는 곧바로 속도를 냈다. 오프사이드 트랩이 실패하자 센터백은 보나비치의 유니폼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홈이고 경기가 시작한 지 오래지 않으니 기껏해야 노란 카드라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보나비치는 차범수로부터 배운 수도로 수비수의 손길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키퍼와 일대일이 된 상황에서 왼쪽으로부터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큰 것을 보니 헌터가 분명했다. 보나비치는 자신의 득점 욕심을 버리고 왼쪽으로 패스했다. 헌터가 헤벌쭉 웃으며 공을 빈 골대에 밀어 넣었다.
첫 공격 기회에 골을 넣자 노츠 카운티의 선수들은 추위도 잊을 정도로 흥분되었고 반면 피오렌티나 선수들은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해졌다. 노츠 카운티는 그런 피오렌티나 선수들에게 차분히 다독일 시간을 주지 않고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기세를 돋우었다.
왕후이는 공을 잡은 피오렌티나 윙에게 몸을 가져다 댔다. 허벅지와 골반에 힘을 주면서 엉덩이로 상대 선수의 허벅지에 압박을 가했다. 상대 선수의 중심이 흔들린 느낌이 들자 허리를 튕기며 공을 빼앗아냈다. 상대 선수가 그라운드에 넘어져서 심판에게 호소했지만 심판은 허용범위 안의 몸싸움으로 판단했다.
왕후이는 곧바로 공을 그레이에게 패스했다. 그레이는 이미 패스고자로 소문이 났기 때문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서 오히려 패스를 편하게 받을 수 있다. 약간 자폐증세가 있는 그레이는 사고방식이 남들과 조금 다르다. 자신의 패스를 다른 사람들이 잘 받지 못하자 그레이는 트래핑 훈련을 열심히 했다. 자신의 패스보다 받는 사람의 트래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왕후이의 다소 강한 패스를 안정적으로 받은 그레이는 기신이 알려준 대로 속으로 숫자 하나를 센 다음 차범수에게 패스했다. 공을 받은 차범수는 왼쪽에서 고속으로 앞으로 달리는 스벤에게 공을 띄워주었다. 스벤은 공을 안정적으로 받은 다음 수비수의 밀착 수비를 떨쳐내고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크로스 상황에서 보나비치가 네어 포스트로 달리고 헌터가 파 포스트로 달렸다. 이는 애초에 약속된 움직임이고 적합하지 않을 경우 둘이 상의해서 바꿀 수 있다. 미리 정해 놓으면 같은 편끼리 공을 다투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스벤의 공은 높이가 조금 높아서 보나비치는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착지한 보나비치에게 두 달이나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헌터의 헤딩 패스가 보나비치의 앞에 신속 정확하게 배달되었고 보나비치의 왼발은 공을 가볍게 밀어 넣었다.
"아까 패스 갚은 거다."
헌터의 말에 보나비치는 히죽 웃었다. 항상 헌터의 웃음이 바보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따라 해보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 참 좋았다. 보나비치는 자신의 웃는 모습과 헌터의 웃는 모습이 누가 더 바보 같을지 고민하며 이후 자주 웃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주 웃으려면 골을 많이 넣고 경기에서 자주 이겨야 한다.
피오렌티나의 왼쪽 윙이 발재간을 부리다가 급가속을 했다. 사람은 안투이를 제쳤지만 공을 그만 까먹고 안투이의 발밑에 두었다. 급히 돌아서서 공의 소유권을 안투이로부터 주장하려 했지만 안투이는 호세에게 바로 패스했다. 호세는 곧바로 그레이에게 패스했고 그레이는 차범수에게 패스했다.
차범수는 공을 잡고 왼쪽의 스벤을 보는 척하며 오른쪽의 하신에게 패스했다. 하신은 공을 잡은 후 터치라인을 따르지 않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기신이 경기 전에 상대 중앙 수비수와 풀백 사이의 공간이 크니 그곳을 파고들어 수비선을 흩트려놓으라고 지시했다.
풀백을 제쳐버리자 센터백이 하신을 막으러 달려왔다. 하신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센터백이 달려 나오면서 비운 공간에 패스했다. 보나비치가 귀신같이 달려가서 공을 멈추지도 않고 몸을 회전하면서 슈팅을 했다. 키퍼가 어렵게 쳐냈으나 허리 높이로 튕겨 나오는 공을 헌터가 허리를 숙여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
화가 난 피오렌티나 감독은 질책성으로 양쪽 윙을 전부 바꿔버렸다. 오른쪽 윙은 왕후이에게 공을 세 번이나 빼앗겼고 왼쪽 윙은 안투이에게 공을 빼앗긴 것은 처음이지만 크로스 한번 제대로 올려본 적이 없다.
'세리에 A 감독도 별거 없군. 화가 나서 시야가 좁아지다니.'
현장지휘 10의 스텟 덕분에 경기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신은 두 윙에게 문제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피오렌티나의 미드필더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차범수와 그레이의 훌륭한 합동 수비 덕분에 윙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못해서 윙이 돌파를 빼고 남은 선택지가 거의 없다. 덕분에 풀백들이 편하게 수비한 것이고 말이다.
서양에는 띠가 없지만 만약 있다면 헌터는 제비띠가 분명하다. 경기 30분에 헌터는 코너킥 기회에 헤딩슛을 해서 골포스트에 맞췄다. 포스트에 맞아서 나오는 공을 보나비치가 강한 슈팅으로 골대 윗그물을 출렁이게 만들었다. 피오렌티나의 일부 팬들은 좌석에서 일어서서 3분간 경기장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것으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골 결정력 5의 보나비치와 골 결정력 6의 헌터는 그 뒤로도 몇 번의 좋은 기회가 있었지만 잡아내지 못했다. 헌터는 원래 골 결정력이 4였는데 헤딩이 가능해진 덕분에 6으로 올랐다. 최근 차범수와 그레이와 함께 늦게까지 슈팅 훈련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가시적인 성과는 없다.
후반전이 되자 에두아도를 올리고 헌터를 내렸다. 스벤이 중앙 공격수의 자리로 이동하여 보나비치와 발을 맞췄고 하신은 윙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자리를 옮겼다. 경기 75분에 차범수를 내리고 워드를 올렸다. 차범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레이가 어느 정도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다. 에두아도가 수비에 더 많이 신경을 쓰면서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차범수가 없자 그레이는 공을 잡은 상황에서 누구에게 패스해야 할지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수비 자체는 큰 문제가 없었다.
워드의 킬 패스를 받은 후 키퍼까지 제치고 해트트릭을 완성한 보나비치는 85분에 알렉산드로에 의해 교체되었다. 피오렌티나 팬들은 이태리 출신의 젊은 공격수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보나비치는 교체된 후 피오렌티나 벤치를 찾아 수석코치와 악수까지 나눴다.
일주일 뒤의 경기에서 노츠 카운티는 홈에서 1:3으로 준비를 단단히 한 피오렌티나에게 패배했다. 노츠 카운티의 객관적 실력이 아직도 많이 부족함을 알린 경기였다. 전술도 적절했고 선수들도 열심히 뛰었지만 실력 대 실력의 대결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특히 믿었던 딕슨이 두 번이나 결정적인 실수를 해서 팀의 분위기가 약간 침체되었다.
하지만 마르코와 블랙이 부상에서 회복되면서 기신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늘었고 일 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기신은 어떤 선수가 어떤 전술에 적합한지 잘 알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수백 번이나 반복된 꿈들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기신이 목표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나간 반면 신기는 여러 가지로 마음이 심란했다.
- 작가의말
기신은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이용해 점점 완성되어 가는 캐릭터이고 신기는 강한 힘을 가지고 그 힘에 천천히 적응해 나가는 캐릭터입니다. 성장물과 먼치킨물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 놓친다고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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